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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생활 == {{거품}} {{재평가}} 1977년~1981년까지 뉴욕 메츠의 감독을 했지만 타자상태가 말이 아니여서 살리지 못하고 286승 420패 승률 0.405라는 처참한 기록(5년간 6위 3번/5위 2번)을 남기고 짤린다. 그리고 자신의 친정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감독을 맡는다. 그 당시 브레이브스는 조 토레가 떠난 이후 단 한번도 포스트시즌을 간 적이 없었다. 게다가 꼴찌를 많이 해쳐드셔서 양질의 선수층이 많이 쌓인상태였다. 게다가 중심인 데일 머피가 있었다. 이런 선수빨을 등에 업고 바로 첫 시즌만에 가을야구를 보낸다. 그러나 어중간한 선수빨은 시즌이 끝이었다. 바로 3대떡 아웃 그래도 올해의 감독상은 그의 것이나 다름없었고 당연히 탔다. 토리는 MVP와 올해의 감독상을 탄 첫 인물이 되었다. 그런데.....점점 쳐지더니 2년 내내 콩도끼가 되었다. 비고로 이 때 브레이브스는 투수진도 평균이상이었고 타자진은 씹상타였다. 결국 3년만에 5할 아래의 승률 기록하고 짤린다. 돌도끼시절은 선수빨 받아서 257승 229패 승률 0.529이었다. 그리고 5년간 해설자생활을 하다가 1990년 호지그 감독의 장기집권을 끝내고 조 토레를 임명한다. 그 당시 세인트루이스는 타이틀 컨텐더급이었고 오즈의 마법사, 맥기, 콜맨이 있는 좋은 팀이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조졌다. 1990시즌 후반에 임명된 토리는 24승 34패를 해버린다. 그 이유는 이미 그가 왔을땐 팀 레전드 두명이 떠났다. 윌리 맥기와 빈스 콜맨이 각각 FA와 트레이드로 없었다. 또 그의 장기자 한계인 5할대 승률을 3년 기록하다 1994년 단축시즌에 5할 이하기록을 내고 잘릴 준비를 했다.근데 리빌딩중이라 좋은 성적을 내놓는게 더 이상한거다 그리고 1995년 짤렸다. 그리고 후에 자신과 함께 명전입성을 같이한 참된 명장이 후임으로 온다. <BIG>'''그리고 그의 운빨이 여기서 터진다.'''</BIG> 1980년대 길고 긴 암흑기를 끝내고 씹새끼 구단주까지 영구제명이 되면서 부활을 준비하던 양키스는 리빌딩 전문가 "야잘알 쇼동님" 벅 쇼월터를 양키스 감독으로 임명하며 리빌딩을 시작한다. 그렇게 빅 선수들이 툭툭 터져나오는 운빨과 함께 쇼동님의 감독능력이 합쳐지며 4년만에 타이틀 컨텐더급까지 팀을 올려놓는다. 그런데 커미셔너가 바뀌면서 구단주새끼가 사면이 되었고, 다시 팀에 관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5년 가을야구를 근 15년만에 하나 랜디존슨&모이어&티노&에드가&켄 그리피 주니어가 있는 막강한 시애틀에게 개 털린다. 솔직히 이 팀을 이기는건 불가능했다. 2승을 한게 더 대단한거지 그런데 여기서 쇼동님을 갑작스럽게 짤라버린다. 그리고 토리를 새로운 감독으로 앉힌다. 쇼동님이 1-9번 1-3선발 마무리까지 다 완성시켜논 팀을 날로 쳐먹으며 명장 세탁을 시작한다. 솔직히 토리가 한건 구단주새끼 비유 맞춘거 밖에 없다. 타선은 1-9번까지 꽉꽉차있었고 후보까지 메인급이었다. 게다가 페티트-맥주-콘가 있었다. 이정도면 우승을 못하는게 개병신인거다. 그렇게 쭉쭉 빨아먹다가 중심타자들이 슬슬 노화되니까 런해버렸다. 그리고 또 슬슬 올라오는 다저스 감독 3년 해먹다가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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