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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 ==== 행정 ==== 개국하면서 충청도, 전라도에게 땅을 넘겨주면서 영역이 줄어들었다. 보은, 옥천, 영동은 충청도로, 무주는 전라도로 넘어갔다. 세조 시기 단종 복위 운동이 있을 때는 순흥도호부(현재의 [[영주]]와 [[봉화]] 일대)가 지도에서 잠시 사라지고 이 일대가 인근 지역 단양, 영월에 흡수되기도 했다. 이후 순흥은 부활하고 다시 설치됨 ㅋ 오늘날 도청에 해당하는 '감영'은 경주(초기) → 상주(1408년)로 이동했다. 워낙 경상도가 큰 탓에 한때 낙동강을 경계로 경상도가 좌우로 분할된 적이 있었는데 경상좌도의 감영은 경주, 경상우도의 감영은 상주에 두었다...가 도로 둘을 합치면서 감영은 상주에 두게 된다. 임진왜란 때 상주가 불타버려서 감영은 성주, 칠곡, 안동 등을 떠돌아다니다가 1601년 대구에 최종적으로 안착하면서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그로부터는 다들 알다시피 고종 시기에 23부제를 실시하여 동래, 안동, 대구, 진주부로 나뉘...었다가 23부제가 폐지되고 이듬해에 실시된 13도 체제로 경상남북도로 분리된다. ==== 정치적 위상 ==== {{인싸}} ㄴ 사림의 대두부터 인조반정 이전까지 {{찐따}} ㄴ [[인조반정]] 이후 여말선초의 향촌은 대격변을 맡는다. 첫째로 [[원나라]]에선 [[모내기]]와 같은 강남지방의 선진농법이 고려로 전래되면서 농업기술이 벌크업하고 오지개간이 활발해졌다. 둘째로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벌크업하면서 이전까지 향촌에서 왕 노릇을 하던 향리가 몰락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전국의 향리들 중에서 방구 좀 뀌던 놈들은 사표를 낸 뒤, 변두리 미개발지를 개간하고 그곳에 눌러앉으면서 우리가 잘 아는 양반으로 진화했다. 이들 중 [[안동]]을 비롯한 경북 북부 지방에 살던 이들은 산밖에 없던 자기 고향을 존나게 개간하여 경작지를 늘리고, 이 경작지를 기반으로 [[경주]] 일대, 경남 서부등 기존 영남의 핵심 지역 사족들 못지않게 쩔어주는 파워그룹을 형성했다. 이렇게 파워그룹을 형성한 영남 사족들은 15세기 후반 [[사림]]의 정계 진출이 시작되면서 중앙정계의 요직들을 쩝쩝하고 [[경기도|기]][[충청도|호]]의 사족들과 [[자강두천]]의 빅매치를 벌였다. 한편, 영남 사족들은 [[선조]] 치세에 들어서 [[이황]]([[안동]] 출신)부터 시작된 경북 북부의 이황파, [[조식]]([[합천]] 출신)으로부터 시작된 경남 서부의 조식파로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각각 남인, 북인으로 개편되었다. 남인은 [[류성룡|씹사기캐 머튽님]]이 활약하신 선조 치세, 북인은 [[광해군]] 치세에 중앙 정계를 차지하면서 리즈 시절을 누렸다. 남인과 북인이 흥하면서 경상도는 정치적으로 존나게 중요한 곳으로 벌크업했다. 하지만 [[인조반정]]으로 북인이 썰려나가고 서기 1728년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으로 남인이 좆망하면서 정치적 위상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특히 이인좌의 난에 적극 가담했던 경남 서부와 [[머구]]는 대놓고 [[반역향]]으로 찍혀버렸다. 그 결과 [[흥선대원군]] 시기 영남만인소가 일어날 때까지 [[평안도]]보다 쬐끔 나은 수준의 병신 취급을 받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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