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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손}} {| class="wikitable" width=59% ! colspan=6 style="background-color:#ffffff; color:;"|'''[[무신정권]]의 집권자''' |- ! colspan=2 | 10대 [[임연]]!! ← !! '''11대 임유무''' !! → !! 정권 종결 |- |} [[무신정권]]의 열한번째 집권자이자 말기 [[무신정권]]의 세번째 무신집정. 그리고 '''100년 [[무신정권]]의 마지막 무신집정'''이기도 하다. [[임연]]의 아들로서 [[임연]]이 [[원종]] 폐위 사건에 대해 몽고에 직접 입조하여 조사를 받으라는 소환장이 날라오자 이를 근심하다가 등창이 터져 죽자 마지막 무신집정이 되었다. 나이가 어렸던 모양인지 실질적인 국정 운영은 외할배인 이응렬과 임연의 심복이었던 송군비가 담당하고 자신은 그냥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말이 임유무 정권이었지 이미 [[무신정권]]은 붕괴한 상황으로 애비 [[임연]]의 가신들만 임유무 정권을 지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관리들은 모조리 개경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상황이었다. 임유무의 교정별감 취임도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자기들만의 정치쇼였던 것이다. [[원종]]도 이 당시엔 강화도에 없었는데 몽고에 갔다가 돌아오던 와중 [[임연]]에게 자신이 폐위됨을 알게되자 다시 몽고로 돌아갔다가 임연이 자기를 복위 시키자 고려로 귀국하여 강화도로 가지 않고 개경에 눌러 앉은 상태였다. 결국 [[원종]]은 강화도에 있는 고려 관료들에게 개경환도를 명하게 되고 왕명에 따라 고려 관리들이 하나 둘씩 개경으로 떠나기 시작하자 똥줄이 탄 임유무 정권은 강화도 포구를 틀어막고 개경으로 돌아가려는 관리들을 막는 한편 [[원나라]]와 [[원종]]에게도 대항하려 한다. 이제서야 살길이 생겼다고 좋아하던 상황에서 졸지에 반역자가 될 위험해 쳐해진 강화도에 있던 군인들은 임유무 정권의 이러한 행동에 뜨악했고 결국 [[발터]]를 들어 임유무를 살해했고 임유무 정권의 실세인 이응렬, 송군비는 유배형에 처해진 한편 강화도에 남아있던 [[임연]]의 가족들은 전부 몽고로 끌려갔는데 아마 거기서 다 죽었을 것이다. 이때가 임유무 정권이 [[원나라]]와 [[원종]]에게 항전을 선언한지 불과 한달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미 [[원종]]이 개경으로 돌아가버려 그들만의 리그가 되버린 [[무신정권]] 이었지만 임유무가 살해당함으로서 마침내 [[무신정변]]으로 부터 100년간 지속된 [[무신정권]]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부록으로 강화도에 남아있던 [[삼별초]]가 [[원종]]이 삼별초 군인들의 명단을 확보하여 [[대숙청]] 하려고 하자 [[죽창]]을 든 [[삼별초의 난]]이 있다. [[분류:역사]] [[분류:한국사]] [[분류:잘뒤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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