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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부 교토시 기타구에 있는 임제종 상국사파의 사찰. '''금각사({{ja|金閣寺}})'''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 교토부 교토시 기타구에 있는 임제종 상국사파의 사찰. '''금각사({{Lang|ja|金閣寺}})'''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 ||
교토의 상징을 넘어서 일본의 상징건축물로써 자리잡고 있으며, 그를 인정받아서인지 '''고도 교토의 문화재({{ja|古都京都の文化財}})'''의 일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교토의 상징을 넘어서 일본의 상징건축물로써 자리잡고 있으며, 그를 인정받아서인지 '''고도 교토의 문화재({{Lang|ja|古都京都の文化財}})'''의 일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
참고로, 이 사찰은 독립사찰이 아닌 상국사({{ja|相国寺}})<ref>도시샤대학이 이 사찰의 경내에 있다. 개신교대학이라 의아하겠지만, 이 대학을 상국사가 열심히 지원을 해 줬다고 한다.</ref>의 탑두사찰이다. 이는 자조사 (은각사)도 마찬가지. | 참고로, 이 사찰은 독립사찰이 아닌 상국사({{Lang|ja|相国寺}})<ref>도시샤대학이 이 사찰의 경내에 있다. 개신교대학이라 의아하겠지만, 이 대학을 상국사가 열심히 지원을 해 줬다고 한다.</ref>의 탑두사찰이다. 이는 [[자조사]] (은각사)도 마찬가지. | ||
==역사== | ==역사== | ||
원래 평안시대 태정대신이었던 사이온지 기쓰네({{ja|西園寺公経}})의 별장이었던 건물로, 이후 [[아시카가 요시미쓰]]({{ja|足利義満}})의 개인별장으로 이용되다가 그가 죽자 그의 호인 녹원({{ja|鹿苑}})을 이름으로 한 사찰로 개조한 건물이다. 절로써 사용된 시기는 1397년(응영 4년)부터이다. | 원래 평안시대 태정대신이었던 사이온지 기쓰네({{Lang|ja|西園寺公経}})의 별장이었던 건물로, 이후 [[아시카가 요시미쓰]]({{Lang|ja|足利義満}})의 개인별장으로 이용되다가 그가 죽자 그의 호인 녹원({{Lang|ja|鹿苑}})을 이름으로 한 사찰로 개조한 건물이다. 절로써 사용된 시기는 1397년(응영 4년)부터이다. | ||
교토 전체를 불태운 사건인 응인•문명의 난({{ja|応仁•文明の乱}})에는 이 사찰 역시 전소되어 사라졌으나 이후 복원되었다가 1950년에 정신병을 앓고 있던 땡중새끼한테 한 번 더 불태워진다. 이후 다시 복원하였는데, 금각사의 상징이었던 사리전에 금을 원래보다 훨씬 많이 떡칠을 해 놔서 복원논란이 터진 적이 있었다. | 교토 전체를 불태운 사건인 응인•문명의 난({{Lang|ja|応仁•文明の乱}})에는 이 사찰 역시 전소되어 사라졌으나 이후 복원되었다가 1950년에 정신병을 앓고 있던 땡중새끼한테 한 번 더 불태워진다. 이후 다시 복원하였는데, 금각사의 상징이었던 사리전에 금을 원래보다 훨씬 많이 떡칠을 해 놔서 복원논란이 터진 적이 있었다. | ||
이후 교토를 넘어선 일본 전체의 상징으로써 자리매김하기 시작하였으며,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서 교토로 여행을 할 때 거의 필수코스로 들린다. 그래서인지 관광지로 바글바글대서 시기를 즐못 잡으면 사람 뒷통수만 보다가 올 수도 있다. | 이후 교토를 넘어선 일본 전체의 상징으로써 자리매김하기 시작하였으며,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서 교토로 여행을 할 때 거의 필수코스로 들린다. 그래서인지 관광지로 바글바글대서 시기를 즐못 잡으면 사람 뒷통수만 보다가 올 수도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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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 ==건축물== | ||
* '''종문({{ja|総門}})''': 녹원사 대문이다. | * '''종문({{Lang|ja|総門}})''': 녹원사 대문이다. | ||
* '''종루({{ja|鐘楼}})''': 녹원사의 종루이며, 가마쿠라시대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 * '''종루({{Lang|ja|鐘楼}})''': 녹원사의 종루이며, 가마쿠라시대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 ||
* '''고리({{ja|庫裏}})''': 녹원사의 고리이며, 선종양식으로 건축되었다. | * '''고리({{Lang|ja|庫裏}})''': 녹원사의 고리이며, 선종양식으로 건축되었다. | ||
* '''당문({{ja|唐門}})''': 녹원사의 당문이다. | * '''당문({{Lang|ja|唐門}})''': 녹원사의 당문이다. | ||
* '''사리전({{ja|舎利殿}})''': 녹원사의 상징으로, 금으로 떡칠되어있는 건축물이 바로 이거다. 이름 그대로 녹원사의 사리탑이기도 하다. | * '''사리전({{Lang|ja|舎利殿}})''': 녹원사의 상징으로, 금으로 떡칠되어있는 건축물이 바로 이거다. 이름 그대로 녹원사의 사리탑이기도 하다. | ||
* '''방장({{ja|方丈}})''': 녹원사의 방장이다. | * '''방장({{Lang|ja|方丈}})''': 녹원사의 방장이다. | ||
* '''신운({{ja|榊雲}})''': 가스가 명신을 모시는 신사이다. | * '''신운({{Lang|ja|榊雲}})''': 가스가 명신을 모시는 신사이다. | ||
* '''석가정({{ja|夕佳亭}})''': 에도시대에 건설된 정자로, 후수미천황({{ja|後水尾天皇}})이 상황으로 물러난 이후에 건축하였다고 한다. | * '''석가정({{Lang|ja|夕佳亭}})''': 에도시대에 건설된 정자로, 후수미천황({{Lang|ja|後水尾天皇}})이 상황으로 물러난 이후에 건축하였다고 한다. | ||
* '''부동당({{ja|不動堂}})''': 일본의 대승인 홍법대사가 건축한 것으로, 부동명왕을 모시는 전각이다. | * '''부동당({{Lang|ja|不動堂}})''': 일본의 대승인 홍법대사가 건축한 것으로, 부동명왕을 모시는 전각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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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20일 (목) 16:07 기준 최신판
鹿苑寺
교토부 교토시 기타구에 있는 임제종 상국사파의 사찰. 금각사(金閣寺)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교토의 상징을 넘어서 일본의 상징건축물로써 자리잡고 있으며, 그를 인정받아서인지 고도 교토의 문화재(古都京都の文化財)의 일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참고로, 이 사찰은 독립사찰이 아닌 상국사(相国寺)[1]의 탑두사찰이다. 이는 자조사 (은각사)도 마찬가지.
원래 평안시대 태정대신이었던 사이온지 기쓰네(西園寺公経)의 별장이었던 건물로, 이후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満)의 개인별장으로 이용되다가 그가 죽자 그의 호인 녹원(鹿苑)을 이름으로 한 사찰로 개조한 건물이다. 절로써 사용된 시기는 1397년(응영 4년)부터이다.
교토 전체를 불태운 사건인 응인•문명의 난(応仁•文明の乱)에는 이 사찰 역시 전소되어 사라졌으나 이후 복원되었다가 1950년에 정신병을 앓고 있던 땡중새끼한테 한 번 더 불태워진다. 이후 다시 복원하였는데, 금각사의 상징이었던 사리전에 금을 원래보다 훨씬 많이 떡칠을 해 놔서 복원논란이 터진 적이 있었다.
이후 교토를 넘어선 일본 전체의 상징으로써 자리매김하기 시작하였으며,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서 교토로 여행을 할 때 거의 필수코스로 들린다. 그래서인지 관광지로 바글바글대서 시기를 즐못 잡으면 사람 뒷통수만 보다가 올 수도 있다.
여담으로, 표가 부적이다. 관심있는 사람은 가져다가 부적처럼 쓰자.
- 종문(総門): 녹원사 대문이다.
- 종루(鐘楼): 녹원사의 종루이며, 가마쿠라시대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 고리(庫裏): 녹원사의 고리이며, 선종양식으로 건축되었다.
- 당문(唐門): 녹원사의 당문이다.
- 사리전(舎利殿): 녹원사의 상징으로, 금으로 떡칠되어있는 건축물이 바로 이거다. 이름 그대로 녹원사의 사리탑이기도 하다.
- 방장(方丈): 녹원사의 방장이다.
- 신운(榊雲): 가스가 명신을 모시는 신사이다.
- 석가정(夕佳亭): 에도시대에 건설된 정자로, 후수미천황(後水尾天皇)이 상황으로 물러난 이후에 건축하였다고 한다.
- 부동당(不動堂): 일본의 대승인 홍법대사가 건축한 것으로, 부동명왕을 모시는 전각이다.
각주
- ↑ 도시샤대학이 이 사찰의 경내에 있다. 개신교대학이라 의아하겠지만, 이 대학을 상국사가 열심히 지원을 해 줬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