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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과 함께 유명한 산업스파이
최무선과 함께 유명한 산업스파이


중국에서 모카 씨를 가져온 인물
중국에서 모카 씨를 가져온 인물


명언으로는 내 솜씨를 제대로 보여줄 시간이군!이었지만 노잼이라 묻혔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건데, 좆본은 한국보다 먼저 목화 들여왔는데도 상업적 재배 실패하고 관상용으로 쓰다가 나중에 조선 중기 때 한국에서 재배된 목화 들여와서야 재배 성공했다.


사람들이 모르는 건데, 좆본은 한국보다 먼저 목화 들여왔는데도 상업적 재배 실패하고 관상용으로 쓰다가 나중에 조선 중기 때 한국에서 재배된 목화 들여와서야 재배 성공했다.  
근데 목화씨를 가져온건 문익점이 맞는데 붓통에 숨겨왔다는건 픽션이다. 실제로는 그냥 가져왔고 원나라가 목화씨 밀반출을 엄격히 통제한것도 아니다.  거기다 장인인 정천익이 재배하고 성공했다는것도 다 픽션이다.
:ㄴ 장인 정천익이 재배해서 성공했다는 건 사실이다. 고려사에서 해당 기록 가지고 왔다. / 문익점(文益漸)은 진주목(晋州牧 : 지금의 경상남도 진주시)의 강성현(江城縣 : 지금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람이다.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한 후 거듭 승진해 정언(正言)이 되었다. 사신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그대로 주저앉은 체 덕흥군(德興君) 편에 붙었다가 덕흥군이 패망한 후 귀국했다. 중국에서 목면(木緜) 종자를 얻어다가 그 장인인 정천익(鄭天益)에게 부탁하여 심게 하였다. 처음에는 키우는 방법을 몰라 거의 말라죽고 한 줄기만 남았는데, 3년 만에 크게 번식했다. 씨 뽑는 물레와 실 뽑는 기계는 모두 정천익이 만들었다. (文益漸, 晋州江城縣人. 恭愍朝登第, 累遷正言. 奉使如元, 因留附德興君, 及德興敗乃還. 得木緜種, 歸屬其舅鄭天益種之. 初不曉培養之術, 幾槁止一莖在, 比三年, 遂大蕃衍. 其取子車·繅絲車, 皆天益創之.) [네이버 지식백과] 문익점 [文益漸] (국역 고려사: 열전, 2006. 11. 20.,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근데 목화씨를 가져온건 문익점이 맞는데 붓통에 숨겨왔다는건 픽션이다. 실제로는 그냥 가져왔고 원나라가 목화씨 밀반출을 엄격히 통제한것도 아니다. 단지 목화씨 재배지역이랑 고려랑 조오오오오온나게 멀리 있어서 아무도 가져올 생각을 안한거. 거기다 장인인 정천익이 재배하고 성공했다는것도 다 픽션이다.


내 솜씨를 제대로 보여줄 시간이군.


팩트만 정리하자면 원나라 갔다가 목화로 옷 만들어 입는거 보고 쓸모있어 보여서 고려 오는 길에 가지고 와서 재배해서 보급 한게 문익점.
팩트만 정리하자면 원나라 갔다가 목화로 옷 만들어 입는거 보고 쓸모있어 보여서 고려 오는 길에 가지고 와서 재배해서 보급 한게 문익점.
밀수니 장인어른이니 뭐 다 구라임. 썰에 썰을 더하면서 구라가 장착 됨.


근데 왜 그 전에 고려 놈들은 원나라에서 목화를 안가져왔냐면, 고려랑 원나라랑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놈들은 다 귀족이나 관리들인데, 걔들은 목화가 필요 없었거든...
근데 왜 그 전에 고려 놈들은 원나라에서 목화를 안가져왔냐면, 고려랑 원나라랑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놈들은 다 귀족이나 관리들인데, 걔들은 목화가 크게 필요 없었거든...
 
더우면 삼베 모시 입고 봄가을엔 비단옷 입고 겨울엔 양모나 가죽 모피입고 생활하니 목화로 만든 면이 필요 할리가 없지.


더우면 삼베 모시 입고 봄가을엔 비단옷 입고 겨울엔 양모나 가죽 모피입고 생활하니 목화로 만든 면이 필요 할리가...
그렇다고 아예 면 자체가 소개가 안된건 아닌게,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면 400필 하사 받았다는 기록은 있다. 그냥 받아놓고 땡이었던거지.
:ㄴ 기록이 없다뿐이지 1999년 부여 능산리 절터 조사 때 출토된 직물이 면직물이라고 밝혀지면서 면 자체는 백제시대부터 썼다는게 밝혀졌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03381464] 상용화의 계기를 문익점이 마련해줬다고 봐야 할 듯.


당장 문익점 전에 100여년 이규보라는 무신정권의 딸랑이 같은 사람은 자기 하인들이 겨울에 춥다고 땅굴 파고 나뭇가지로 움집 짓고 지내니까
당장 문익점 전에 100여년 [[이규보]]라는 무신정권의 딸랑이 같은 사람은 자기 하인들이 겨울에 춥다고 땅굴 파고 나뭇가지로 움집 짓고 지내니까


"씨발 놈들아 겨울에 추운건 당연하지'" 하면서 씨발 제대로 된 옷도 없이 겨울에 밖에서 벌벌 떨던 하인들 임시 움집도 허물어 버리고'''그 허물어 버린 움집을 자기 방 난방용 땔감으로 써버림'''
'''씨발 놈들아 겨울에 추운건 당연하지''' 하면서 씨발 제대로 된 옷도 없이 겨울에 밖에서 벌벌 떨던 하인들 임시 움집도 허물어 버리고 '''그 허물어 버린 움집을 자기 방 난방용 땔감으로 써버림'''


ㄴㅅㅂㅋㅋㅋㅋ
ㄴㅅㅂㅋㅋㅋㅋ 더 웃긴건 조선시대 까진 그거 가지고 자연주의적이니 뭐니 존나게 의미부여를 하면서 이규보를 빨아줬다는 거


그런 상황에서 목화를 보고 와 이거 존나 신박하다. 있으면 다른 사람들 존나 편해지겠다. 생각한게 문익점 한명 밖에 없었다는거임.  
그런 상황에서 목화를 보고 와 이거 존나 유용해 보인다. 있으면 다른 사람들 존나 편해지겠다. 라고 생각한게 문익점 한명 밖에 없었다는거임.  
[[분류:한국사]]
[[분류:한국사]]

2023년 7월 26일 (수) 16:41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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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인물 필리프 4세 · 필리프 6세 · 장 2세 · 이븐 바투타 ·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 오스만 1세 · 티무르 · 원 혜종 · 홍무제 · 건문제 · 고다이고 덴노 · 아시카가 다카우지 · 아시카가 요시미츠 · 충렬왕 · 충선왕 · 공민왕 · 문익점 · 최무선 · 신돈 · 우왕 · 창왕 · 공양왕 · 최영 · 정몽주 · 이성계 · 정도전 · 정종 · 태종
관련 작품 기황후 · 육룡이 나르샤
이 문서는 몇 안되는 개념있는 금수저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서민들을 위해 돈을 쓰며, 돈을 벌고 그 돈을 서민들을 위해 , 정당한 방법으로 축적하는 개념 금수저에 대해 다룹니다. 죽창으로 찌르면 안 되는 대상입니다. 우리 흙수저들 편이기 때문입니다.

"We are the 1%..We stand with the 99%"

이 문서는 역사 속의 인물을 다룹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상은 역사 속의 네임드 급 인물들입니다. 이 틀은 고인이 된 대상에게 사용하십시오.

최무선과 함께 유명한 산업스파이

중국에서 모카 씨를 가져온 인물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건데, 좆본은 한국보다 먼저 목화 들여왔는데도 상업적 재배 실패하고 관상용으로 쓰다가 나중에 조선 중기 때 한국에서 재배된 목화 들여와서야 재배 성공했다.

근데 목화씨를 가져온건 문익점이 맞는데 붓통에 숨겨왔다는건 픽션이다. 실제로는 그냥 가져왔고 원나라가 목화씨 밀반출을 엄격히 통제한것도 아니다. 거기다 장인인 정천익이 재배하고 성공했다는것도 다 픽션이다.

ㄴ 장인 정천익이 재배해서 성공했다는 건 사실이다. 고려사에서 해당 기록 가지고 왔다. / 문익점(文益漸)은 진주목(晋州牧 : 지금의 경상남도 진주시)의 강성현(江城縣 : 지금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람이다.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한 후 거듭 승진해 정언(正言)이 되었다. 사신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그대로 주저앉은 체 덕흥군(德興君) 편에 붙었다가 덕흥군이 패망한 후 귀국했다. 중국에서 목면(木緜) 종자를 얻어다가 그 장인인 정천익(鄭天益)에게 부탁하여 심게 하였다. 처음에는 키우는 방법을 잘 몰라 거의 말라죽고 한 줄기만 남았는데, 3년 만에 크게 번식했다. 씨 뽑는 물레와 실 뽑는 기계는 모두 정천익이 만들었다. (文益漸, 晋州江城縣人. 恭愍朝登第, 累遷正言. 奉使如元, 因留附德興君, 及德興敗乃還. 得木緜種, 歸屬其舅鄭天益種之. 初不曉培養之術, 幾槁止一莖在, 比三年, 遂大蕃衍. 其取子車·繅絲車, 皆天益創之.) [네이버 지식백과] 문익점 [文益漸] (국역 고려사: 열전, 2006. 11. 20.,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팩트만 정리하자면 원나라 갔다가 목화로 옷 만들어 입는거 보고 쓸모있어 보여서 고려 오는 길에 가지고 와서 재배해서 보급 한게 문익점.

근데 왜 그 전에 고려 놈들은 원나라에서 목화를 안가져왔냐면, 고려랑 원나라랑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놈들은 다 귀족이나 관리들인데, 걔들은 목화가 크게 필요 없었거든...

더우면 삼베 모시 입고 봄가을엔 비단옷 입고 겨울엔 양모나 가죽 모피입고 생활하니 목화로 만든 면이 필요 할리가 없지.

그렇다고 아예 면 자체가 소개가 안된건 아닌게,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면 400필 하사 받았다는 기록은 있다. 그냥 받아놓고 땡이었던거지.

ㄴ 기록이 없다뿐이지 1999년 부여 능산리 절터 조사 때 출토된 직물이 면직물이라고 밝혀지면서 면 자체는 백제시대부터 썼다는게 밝혀졌다.[1] 상용화의 계기를 문익점이 마련해줬다고 봐야 할 듯.

당장 문익점 전에 100여년 이규보라는 무신정권의 딸랑이 같은 사람은 자기 하인들이 겨울에 춥다고 땅굴 파고 나뭇가지로 움집 짓고 지내니까

씨발 놈들아 겨울에 추운건 당연하지 하면서 씨발 제대로 된 옷도 없이 겨울에 밖에서 벌벌 떨던 하인들 임시 움집도 허물어 버리고 그 허물어 버린 움집을 자기 방 난방용 땔감으로 써버림

ㄴㅅㅂㅋㅋㅋㅋ 더 웃긴건 조선시대 까진 그거 가지고 자연주의적이니 뭐니 존나게 의미부여를 하면서 이규보를 빨아줬다는 거

그런 상황에서 목화를 보고 와 이거 존나 유용해 보인다. 있으면 다른 사람들 존나 편해지겠다. 라고 생각한게 문익점 한명 밖에 없었다는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