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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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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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서태지 팬들은 선민사상뽕 맞은 팬덤으로 유명하다
ㄴ 서태지 팬들은 선민사상뽕 맞은 팬덤으로 유명하다
{{실험음악}}
ㄴ 여러 음악 장르들을 조합하여 [[K-POP]]이란 음악을 만드는게 아이들 시절때부터 꽤 실험적이었다. 7집부터는 서태지만의 실험성이 더 강해진다.


{{인물 | 그림 = 서태지.jpg | 이름 = 서태지 | 영문 이름 = Tai Ji Seo | 별명 = 문화대통령,서크루지 | 생년월일 = 1972년 2월 21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생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 학력 = 서울북공업고등학교 중퇴 | 직업 = '''가수''' }}
{{인물 | 그림 = 서태지.jpg | 이름 = 서태지 | 영문 이름 = Tai Ji Seo | 별명 = 문화대통령,서크루지 | 생년월일 = 1972년 2월 21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생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 학력 = 서울북공업고등학교 중퇴 | 직업 = '''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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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을 빼놓고 90년대 이후의 대중문화를 논하기가 어렵다.  
이 사람을 빼놓고 90년대 이후의 대중문화를 논하기가 어렵다.  


팬들이나 일부 음악평론가들은 좆만한 [[트로트]]나 [[발라드]]만 있었을 시대에 [[팝]], [[록]], [[힙합]]등 [[유럽|구]][[미국|미]]선진음악을 도입하여 한국 음악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서태지를 옹호하는게 아니라 이건 엄연한 사실이였다. 솔직히 당시 유명한 댄스,힙합,록,팝 음악이 몇개나있었냐? <del>[[들국화]]정도?</del> http://biz.heraldcorp.com/common_prog/newsprint.php?ud=20070905000157 타이거jk도 컴백홈 때문에 한국에서 활동하게 되었다고 밝힌바있고...</ref>
팬들이나 일부 음악평론가들은 좆만한 [[트로트]]나 [[발라드]]만 있었을 시대에 [[팝]], [[록]], [[힙합]]등 [[유럽|구]][[미국|미]]선진음악을 도입하여 한국 음악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서태지를 옹호하는게 아니라 이건 엄연한 사실이였다. 솔직히 당시 유명한 댄스,힙합,록,팝 음악이 몇개나있었냐? <del>[[들국화]]정도?</del> http://biz.heraldcorp.com/common_prog/newsprint.php?ud=20070905000157 타이거jk도 컴백홈 때문에 한국에서 활동하게 되었다고 밝힌바있고...
 


당시 국내에서는 듣도보도못한 뮤직비디오를 활성화시켰다.
당시 국내에서는 듣도보도못한 뮤직비디오를 활성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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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초상권의 개념을 확립시켰다 .<ref>[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read_body.jsp?ID=9401123108 서태지 9천만원 소송(색연필)] 조선일보, 1994.01.12</ref><ref>[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read_body.jsp?ID=9407273108 "닮은꼴인형 무허가 시판"] 조선일보, 1994.07.27</ref>
저작권, 초상권의 개념을 확립시켰다 .<ref>[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read_body.jsp?ID=9401123108 서태지 9천만원 소송(색연필)] 조선일보, 1994.01.12</ref><ref>[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read_body.jsp?ID=9407273108 "닮은꼴인형 무허가 시판"] 조선일보, 1994.07.27</ref>


상투적인 사랑노래였던 대중가요(이건 독재의 영향도 크지만)에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집어넣기 시작한 가수이기도 하다. 교실이데아(주입식교육), 컴백홈(가출청소년), 인터넷 전쟁(악플), Victim(낙태), F.M Business(음악 상업화) 등.
상투적인 사랑노래였던 대중가요(이건 독재의 영향도 크지만)에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집어넣기 시작한 가수이기도 하다. 교실이데아(주입식교육), 컴백홈(가출청소년), 인터넷 전쟁(악플), Victim(낙태), F.M Business(음악 상업화) 등.


특히 [[시대유감]]을 통해 당시 권위주의를 비판하였고, 대중가요 심의 문제를 양성화시켰다
특히 [[시대유감]]을 통해 당시 권위주의를 비판하였고, 대중가요 심의 문제를 양성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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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가수들은 한번 노래를 내면 휴식기없이 계속 활동해야 하는 노오오오예 취급을 받았는데 서태지 이후로 노래를 내고 활동하다가 잠적한 후 다시 새로운 노래를 내서 활동하는, 소위 '컴백'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예전에 가수들은 한번 노래를 내면 휴식기없이 계속 활동해야 하는 노오오오예 취급을 받았는데 서태지 이후로 노래를 내고 활동하다가 잠적한 후 다시 새로운 노래를 내서 활동하는, 소위 '컴백'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한국 아티스트들 중 멜론 명반 딱지를 가장 많이 받은(6개) 아티스트이다.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아티스트인 [[칸예 웨스트]]도 4개인데...
== 음악성 ==
엄청난 [[완벽주의]]자로 유명하다. 노래, 랩, 작곡, 믹싱, 마스터링을 자기 혼자 다 할 정도이며 아이들 시절때부터 매 앨범의 수록곡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앨범의 컨셉이나 멜로디, 가사에 신경을 많이 쓴다. 심지어 뮤비의 퀄리티에도 신경을 많이 써서 8집이나 25주년 리메이크 앨범의 경우 전곡 다 뮤비가 있다.
아이들 시절에는 구미 음악을 한국 대중음악계에 가져오려는 시도를 했다면 솔로 앨범부터는 '''매 앨범마다 스타일을 바꾼다.''' 5집은 힙합요소가 약간 들어간 [[얼터너티브 록]]이었고 6집은 [[뉴 메탈]], 7집은 이모코어의 영향을 받은 감성코어, 8집은 자기가 직접 만들어낸 장르인 네이처 파운드를 시도했다.
솔로 활동 이후에도 해외 트렌드의 음악을 한국에 그냥 가져오냐는 비판도 있었으나 [[뉴 메탈]] 장르인 6집 발매 당시 뉴 메탈의 원조격인 [[Korn]]과 보컬의 입털기로 다른 뮤지션들과 사이가 안좋기로 유명했던 [[림프 비즈킷]]도 호평했듯이 해외 록음악의 트렌드를 가져오되 자기만의 스타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아티스트이다.
해외 뮤지션들 중에서도 [[칸예 웨스트]], [[라디오헤드]], [[린킨 파크]], [[브링 미 더 호라이즌]] 등 작품적으로 다채롭고 훌륭한 평가를 많이 받는 뮤지션들은 앨범 스타일을 자주 바꾸는 경우가 흔한데 국내에서는 서태지 외에는 잘 없는 거 같다.


== 비판 ==
== 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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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논란은 지금 대부분 반박당한 상황이지만 서태지 표절 음모론을 주장하는 음지의 병신tv 사이버렉카들은 여전히 난 알아요가 girl you know it's true의 표절이라는 진작에 논파당한 주장을 우려먹고 있다.
표절 논란은 지금 대부분 반박당한 상황이지만 서태지 표절 음모론을 주장하는 음지의 병신tv 사이버렉카들은 여전히 난 알아요가 girl you know it's true의 표절이라는 진작에 논파당한 주장을 우려먹고 있다.
서태지도 이걸 아는지 [[8th Atomos|8집]]은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사운드를 보여줬다.


== 인간관계 ==
== 인간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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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목록==
==음반 목록==
{{갓음악}}
{{갓음악}}
{{서태지 디스코그래피}}
1~4집까지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음반, 5집부터는 서태지 솔로 활동 이후 발매된 음반들이다.
1~4집까지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음반, 5집부터는 서태지 솔로 활동 이후 발매된 음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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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이 기억하는건 테이크 시리즈랑 울트라맨이야, 라이브와이어 정도. 그러나 최근 소격동과 펜타포트락페로 청소년과 극성 락빠들에게 호감을 불러 일으켰다...만 급식들은 별 관심이 없다
대중들이 기억하는건 테이크 시리즈랑 울트라맨이야, 라이브와이어 정도. 그러나 최근 소격동과 펜타포트락페로 청소년과 극성 락빠들에게 호감을 불러 일으켰다...만 급식들은 별 관심이 없다
=== 1집 Seotaji and Boys 1 ===
1992년 발매된 본격적인 [[K-POP]]의 시초를 탄생시킨 앨범이다.
당시 한국 음악계에선 생소한 샘플링을 통한 작법을 보여주었는데 이것때문에 나중에 표절 논란이 불거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훗날 점수를 깐깐하게 매기면서도 실험적인 음반을 선호하는 피치포크에서 무려 8.3점이란 고득점을 주었다.
'''<추천곡>'''
* '''[[난 알아요]]''' 왠만한 성인들은 나안~ 알아요!하면 알아듣는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90년대 초 대중음악계를 평정하게 만든 노래. 음악 교과서에도 수록되곤 한다. 이 노래가 나온 1992년에는 초등학교 반에서 1반부터 10반까지 장기자랑으로 서태지 노래를 준비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 '''[[환상 속의 그대]]''' 난 알아요보다 대중성은 떨어져 1집 타이틀곡에서 밀려났지만 수준은 난 알아요보다 높다. 가사도 별로 주목받지 않았지만 의외로 강력한데, 현실에선 조금의 노력도 안 하는 방구석폐인에 불과한데도 극적인 성공을 꿈꾸는 잉여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디시인한테 딱 한 곡만 추천한다면 반드시 이 곡을 꼽아야 할 것이다. 가사는 항목 참조. 단 뮤비는 8-90년대 특촬물 느낌임. 요즘 보면 졸라 싼티난다.
=== 2집 Seotaji and Boys 2 ===
1993년 발매. 한국 대중음악 최초로 더블 밀리언셀러를 달성하며 220만장의 판매고를 달성했다.
'''<추천곡>'''
* '''[[하여가]]''' 예예예예예 야야야야야 예이예이예이 야이야 팬이건 안티건 486새끼들은 서태지하면 예예예예예 이것부터 떠올릴 것이다.<ref>엄밀히 말해서 486은 서태지랑 별 상관 없다. 일단 486은 죄다 60년대생이라 72년생 서태지가 형님이라 불러야 할 판국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동할 즈음 486은 이미 20대후반~30대였다. 소위 말하는 X세대가 서태지랑 가장 접점이 크다. 민주화 이후부터 IMF 전까지, X세대의 문화를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해 준 가수가 서태지이기도 하고</ref> 기타솔로가 다른 사람이 사람이 작곡해 준 것인데 표절시비에 걸렸다. 그 뒤로 기타솔로는 잘리는 경우가 많음. 최근 복면가왕에서 [[음악머튽]]이 불러서 재조명되었다. 
* '''[[너에게]]''' 서태지답지 않은 상투적인 발라드 사랑노래였으나 최근 드라마에서 리메이크곡이 인기를 끌으면서 재조명받았다. 덤으로 2011년 서태지와 그분 간의 그렇고 그런 관계가 밝혀지면서 영 좋지 않은 의미로 재조명받았다.. 그분을 만난 1993년에 이 노래가 나온지라...
=== 3집 Seotaji and Boys 3 ===
1994년 발매. 이 앨범부터 본격적으로 컨셔스한 면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추천곡>'''
* '''[[발해를 꿈꾸며]]''' 남북분단문제를 비판한 노래인데 남북관계가 박살난 지금 상황에서는...
* '''[[교실 이데아]]''' 94년 한국 교육제도를 비판한 곡인데, 지금 들어도 현실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교실이데아에서 지적한 과열 경쟁과 주입식 획일화 교육의 문제는, 교실이데아가 나온 해에 태어난 세대가 대학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도 개선된 게 없다. 오히려 IMF 크리를 맞으면서 금수저와 흙수저의 교육격차 문제가 추가되었다. 백마스킹 관련해서도 상당한 이슈였는데 항목 참조.
=== 4집 Seotaji and Boys 4 ===
1995년 발매. 사실상 아이들 시절 앨범의 정점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으면서도 랩이 들어간 댄스곡에 더 가까운 난 알아요나 메탈에 랩을 섞은 하여가와는 달리 제대로 된 힙합 반주를 가지고 온 Come Back Home, 사전심의제도를 폐지시킨 필승과 시대유감 등 한국 대중음악사에 영원히 남을 띵곡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후반부의 Good Bye, Free style 등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를 암시하는 노래들도 있고 그게 현실이 돼버려서 좀 슬픈 음반이기도 하다.
노래해석으로 봤을때 원래는 2집에서 벌써 해체를 생각했으나(2집의 마지막 축제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어찌저찌 더 활동하고 4집에서 해체했다는 썰이 있다.
'''<추천곡>'''
* '''[[시대유감]]''' 신나는 분위기와 대조되는 공격적인 가사가 일품. 권위주의를 비판했더니 권위주의자들에게 심의 크리를 맞았다. 서태지가 그에 대한 항의로 가사를 몽땅 짤라 inst 형태로 앨범에 수록했다. 이때 일이 서러웠는지 서태지 라이브 하면 한번쯤은 꼭 이 노래가 나온다.
* '''[[Come Back Home]]''' 가출청소년 문제를 꼬집는 노래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끝인상을 강렬하게 남긴 곡. 이 노래가 수록된 앨범 발표 이후 서태지는 은퇴했다. 요즘도 서태지와 아이들을 패러디 하는 경우 이때 들고 나온 옷차림이나 스타일을 패러디한다. 어떤 듣보잡이 컴배콤으로 패러디했다가 욕을 먹었는데 하필이면 그 듣보잡이 당시 음악저작권협회장과 가까운 사이여서 이에 열받은 서태지가 음악저작권협회를 탈퇴하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7집 이후의 서태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곡들은 아직까지도 노래방에서 부를 수 없다. 2015년 테이크원-키스에이프 디스전에서 래퍼 테이크원이 컴백홈 비트 깔고 디스했는데 들어보면 아직까지도 비트가 존나 세련됐다는 걸 알 수 있다.
* '''1996년,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편곡이 살린 케이스. 원곡은 싼티가 나서 조금 묻혀있었는데 2004년 7집 컴백 무대에서 락버전으로 편곡되자 엄청난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원곡을 알고 있다면 인트로부터 듣는 사람을 한 대 후려치는 기분이다. 그 결과 디시인사이드 [[서태지 갤러리]]에서 서태지 최고 라이브로 선정됨. 가사는 원래부터 일품이었다. 헬조선의 천민자본주의, 배금주의를 비판한 노래인데 요즘 시대에 적용해도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그 문제가 심해졌으면 더 심해졌지
=== 5집 Seo Tai Ji ===
'''서태지 최고 명반, 서태지 자기 자신도 절대 못 뛰어넘을 미친앨범.'''
서태지 솔로 활동 시작 이후 발매된 첫 앨범.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미국에서 긴 휴식기를 가진 뒤 1998년 발매했다.
전작과의 공백기가 3년이나 되지만 서태지의 밸류 덕분인지 110만장이나 팔았다.
록, 댄스를 기반으로 힙합, 발라드, 테크노 등 다양한 음악을 시도했던 아이들 시절에 비해 이 음반부턴 락커로써의 정체성이 더 강해지고 실험적인 락커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전체적인 장르는 얼터너티브 록, 랩 메탈인데 사운드적으론 아이들 시절 록+힙합 음악의 연장선에 있는 듯 하지만 가사가 더 난해해져서 신비주의가 더 강해졌다.
일반적인 노래제목을 쓰지 않고  Take One, Take Two 이런 식의 Take 시리즈로 1부터 6까지 있는데 노래 하나하나가 명곡으로 평가 받는다.
대신 노래 중간중간에 삽입된 인터루드곡 3곡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노래들은 말 그대로 6곡 뿐이라 러닝타임은 30분이 안될 정도로 짧다.
특히 Take Three는 가사를 곱씹어보건대 주갤럼한테 [[한강|추천]]해주고 싶은 곡 1순위이다.
=== 6집 Tai Ji(울트라맨이야) ===
5집이 얼터너티브 록 장르에 랩이 약간 들어간 느낌이라면 6집에서는 메탈에 랩이 들어간 뉴 메탈 장르를 시도했다.
서태지가 대중을 위한 음악에서 매니아를 위한 음악으로 전환하는 기점이 된 음반이다. 애시당초 5집부터가 일반인이 들을만한 음악은 아니지만...
노래들은 전부 갓곡이고 유명한 노래들도 많지만 이쪽 계열의 시초격인 콘이나 림프 비스킷과 비교받으며 카피캣이란 까임을 당하기도 했다. 추후 콘과 림프 비스킷도 작품성을 인정하면서 논란이 마모되긴 했지만.
'''<추천곡>'''
* '''[[울트라맨이야]]''' : 영어로는 Ultramania. 울트라맨~~ 어렸을 적 내 꿈에~~
* '''인터넷 전쟁''' : 인터넷이 막 개통되던 2000년에 인터넷 악플 문제를 꼬집은 노래다.중반부 샤우팅은 정말..디시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노래 no.2
=== 7집 7th Issue ===
2004년 발매. 이 때를 기점으로 서태지의 음반 발매 간격이 존나 길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6집에 비해 서태지만의 개성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많아서 평론적으론 6집보다 평가가 더 좋다.
서태지가 이 음반의 장르를 "감성코어"라 명명하며 당시 유행하던 이모코어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있으나 해당 장르의 팬들도 이모코어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차별화되는 면이 있다.
5, 6집의 거친 일렉기타 사운드를 유지하면서도 멜로디에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노래들이 훨씬 감성적인 느낌이 난다.
또한 Live Wire 같은 몇몇 곡들에 [[드럼 앤 베이스]] 비트를 반주로 사용하여 락과 일렉트로니카의 결합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는 8집에 더욱 심화되어 이어진다.
'''<추천곡>'''
* '''Live Wire''' 음악이 금지된 세상에서 음악의 자유를 외치는 노래. 들어보면 존나 신난다. 근데 평론가들한테는 자신만이 혁신의 아이콘이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것 같다고 까였다.
* '''F.M Business''' 상업주의에 물들어가는 한국 음악 시장을 직설적으로 비판한 곡이다. 어떤 팬이 '''학교 과제로'''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된 뮤비를 제작했는데 나중에 공식화됐다. 서태지의 노래들 중 최초로 Fuck이 들어가서 19금을 먹기도 했다.
=== 8집 Atomos ===
2008년 싱글앨범 Atomos Part Moai, 2009년 싱글앨범 Atomos Part Secret을 발매한 후 두 앨범을 합쳐서 정규앨범으로 냈다.
서태지 커리어 중 가장 오랫동안 제작했고 가장 오랜 기간동안 활동한 앨범이다.
독보적인 실험성 때문에 매니악한 앨범이라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솔직히 한국 록음반 중에서도 이거만큼 세련되고 시대를 앞서나간 앨범은 찾기 힘들다. 2022년에 들어도 여전히 세련됐다.
네이처 파운드(Nature Pound)라는 자기만의 새로운 장르를 제시했는데 자연적인 느낌을 기반으로 자연음과 전자음 록사운드 등 이것저것 다 섞은 느낌이다.
특이하게도 7집까지만 해도 있었던 랩의 비중이 아예 없고 가사도 대부분 추상적으로 변했다. 가사가 잘 안들린다는 평가도 있는데 아마 사운드에 집중을 더 해서 그런지도.
'''<추천곡>'''
* '''Moai''' 처음엔 싱글 앨범의 타이틀곡이었다. 그 싱글 앨범이 4곡(그 중 한곡은 리믹스)에 10500원이라는 창렬가를 자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음반시장이 죽어가던 2008년에 21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 9집 Quiet Night ===
8집으로부터 무려 6년이 지난 2014년에 발매되었다.
이지아와의 이혼 및 소송, 이은성과의 재혼 및 딸의 출생이 앨범 발매 지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딸과 같이 들을 수 있는 앨범으로 기획됐기 때문에 [[전체이용가|모든 연령이 들을 수 있고]] 전체적으로 동화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잔혹동화|소름끼치고 현실의 잔혹함을 담은 부분도 있다.]]
조금 촌스러운 면도 있고 아이들 시절은 물론 5~8집 시절의 스타일과도 달라서 호불호가 꽤 갈린다. 하지만 전문가 평가는 좋다.
전체적으로 얼터너티브 록에 가까운 5~8집 스타일과는 달리 노선을 틀어서 80~90년대 복고풍에 가까운 신스팝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완전 옛날 느낌은 아닌게 복고적인 사운드와 2014년 당시 기준으로 트렌디한 현대적인 사운드들이 조합되어 있다.
발매 이후 크리스말로윈 리믹스 콘테스트를 했는데 여기서 [[요한 일렉트릭 바흐]], 아이돌 작곡가 [[TAK]] 등 일렉트로니카 쪽으로 재능이 있는 인재들이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추천곡>'''
* '''크리스말로윈''' 잃어버린 전통문화인 김장의 부활을 꿈꾸는 아름다운 노래다. '''김장해 다들~''' 서태지 그도 김치를 좋아하는 김치락커에 지나지 않았떤 거시다. 하지만 이 노래도 사운드적인 면에선 실험적이고 시대를 앞서 나간게, 록밴드인데 하우스 풍의 멜로디를 연주하고 덥스텝에서나 쓰이는 그로울 사운드를 집어넣었으며 2010년대 이후 대중화된 트랩비트에 서태지가 랩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의외로 좋은 노래들 ==
== 의외로 좋은 노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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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친척 형인 신해철 역시 이 사유로 사망했다. 다만 신해철은 이 질병과 관련된 수술을 받다가 돌팔이새끼가 의료사고를 저지르는 바람에 그만 오래 못가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친척 형인 신해철 역시 이 사유로 사망했다. 다만 신해철은 이 질병과 관련된 수술을 받다가 돌팔이새끼가 의료사고를 저지르는 바람에 그만 오래 못가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슬하에 딸을 두고 있다. 2017년생으로 서태지가 간간히 유튜버에 딸과 같이 찍은 영상을 올리며 근황을 알리기도 한다.
지금은 슬하에 딸을 두고 있다. 2014년생으로 서태지가 간간히 유튜버에 딸과 같이 찍은 영상을 올리며 근황을 알리기도 한다.


== 마비노기 영웅전 ==
== 마비노기 영웅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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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6WDfCK0cexE}}
{{youtube|6WDfCK0cexE}}


[[창모]]가 이번 신보 Underground Rockstar에서 서태지를 오마주한 태지란 곡을 냈는데 존나 미쳤다. 서태지 스타일을 2020년대가 느껴지는 창모 스타일로 완전히 재해석해서 낸 느낌임. 그래서 그런지 서태지와 아이들이 요즘 트렌드 다 가지고 세상에 다시 나온 느낌이다. 다만 가사는 서태지가 싫어할 거 같다. 무려 Come Back Home을 샘플링해서 넣었는데 서태지가 워낙 신비주의이기도 하고 피쳐링이나 곡을 쉽게 내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까 어떻게 샘플링 허가 받았냐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많았다. 이후 창모가 샘플링 허가받은 후기를 올렸는데 자기도 첨엔 서태지가 워낙 유명한 인물이고 신비주의다 보니까 떨렸는데 그냥 허락해줬다고 한다.
[[창모]]가 2집 [[UNDERGROUND ROCKSTAR]]에서 서태지를 오마주한 태지란 곡을 냈는데 존나 미쳤다. 서태지 스타일을 2020년대가 느껴지는 창모 스타일로 완전히 재해석해서 낸 느낌임. 그래서 그런지 서태지와 아이들이 요즘 트렌드 다 가지고 세상에 다시 나온 느낌이다. 다만 가사는 서태지가 싫어할 거 같다. 무려 Come Back Home을 샘플링해서 넣었는데 서태지가 워낙 신비주의이기도 하고 피쳐링이나 곡을 쉽게 내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까 어떻게 샘플링 허가 받았냐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많았다. 이후 창모가 샘플링 허가받은 후기를 올렸는데 자기도 첨엔 서태지가 워낙 유명한 인물이고 신비주의다 보니까 떨렸는데 그냥 허락해줬다고 한다. UGRS 다큐에서 말하길 딸을 키우면서도 전화로 태지의 가사에 직접 피드백을 줬다고 한다.
 
2023년 9월 CGV에서 25주년 기념 공연을 상영하였다.


== 같이 보기 ==
== 같이 보기 ==
* [[이지아]]
* [[이지아]]
* [[이은성]]
* [[서태지컴퍼니]]
* [[서태지 갤러리]]
* [[서태지 갤러리]]
* [[아이유]]
* [[아이유]]

2023년 9월 14일 (목) 13:04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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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그의 결혼과 이혼 당시의 태도로 논란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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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서태지 팬들은 선민사상뽕 맞은 팬덤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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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란 것입니다.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중에서는 음악계의 신선한 혁명을 가져온 사람도 있고, 전혀 이해가 불가능한 정체불명의 작품만을 남긴 사람도 있습니다.

ㄴ 여러 음악 장르들을 조합하여 K-POP이란 음악을 만드는게 아이들 시절때부터 꽤 실험적이었다. 7집부터는 서태지만의 실험성이 더 강해진다.

서태지
Tai Ji Seo
생년월일 1972년 2월 21일
국적 대한민국
출생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별명 문화대통령,서크루지
학력 서울북공업고등학교 중퇴
직업 가수


대한민국의 가수로 1992년[1][2]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 현재는 서태지 밴드의 보컬로 활동하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하기 전 그는 한국 락의 사관학교라 불리는 시나위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이때도 김종서가 보컬이고 신대철이 기타였다.

문화대통령

유머를 존나 못한다. 으으 노잼

몇안되는 서울토박이다.요즘은 부모님중 한사람만 서울출신이어도 서울토박이로 쳐주는 경향이 강한데 서태지는 집안대대로 서울출신이라고 한다.

서태지의 어원은 그냥 태,지 라는 자신이 좋아하는 글자를 조랍해 서 를 붙어 명명한 것으로 엑스재팬과는 전혀 상관없다.

단지 엑스재팬은 그가 음악적으로 좋아하는 밴드였다.

일명 문화대통령.

그의 행적이란 행적은 공중파 3사 메인 뉴스인 9시에 오르내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이후로 아무리 수많은 그룹들이 날고기어도 공중파 9시뉴스에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하여간 거물이긴 거물이다.

이 사람을 빼놓고 90년대 이후의 대중문화를 논하기가 어렵다.

팬들이나 일부 음악평론가들은 좆만한 트로트발라드만 있었을 시대에 , , 힙합선진음악을 도입하여 한국 음악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서태지를 옹호하는게 아니라 이건 엄연한 사실이였다. 솔직히 당시 유명한 댄스,힙합,록,팝 음악이 몇개나있었냐? 들국화정도? http://biz.heraldcorp.com/common_prog/newsprint.php?ud=20070905000157 타이거jk도 컴백홈 때문에 한국에서 활동하게 되었다고 밝힌바있고...

당시 국내에서는 듣도보도못한 뮤직비디오를 활성화시켰다.

저작권, 초상권의 개념을 확립시켰다 .[3][4]

상투적인 사랑노래였던 대중가요(이건 독재의 영향도 크지만)에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집어넣기 시작한 가수이기도 하다. 교실이데아(주입식교육), 컴백홈(가출청소년), 인터넷 전쟁(악플), Victim(낙태), F.M Business(음악 상업화) 등.

특히 시대유감을 통해 당시 권위주의를 비판하였고, 대중가요 심의 문제를 양성화시켰다

당시 가장 큰 업적은 한국 대중음악가요 사상최초로 인세(음반 판매수익)를 받은 가수이다. 그전시대부터 잘나가던 가수들이 인세를 받지 못했는데 서태지가 회사에게 따지면서 인세를 받게되는 가수가되었고, 서태지 이후로 모든가수가 인세를 받게되었다. 80년대 통일을 노래하는 노래들이 많았지만 이게 주류로 성공한적은 없었다.(발해를 꿈꾸며)

예전에 가수들은 한번 노래를 내면 휴식기없이 계속 활동해야 하는 노오오오예 취급을 받았는데 서태지 이후로 노래를 내고 활동하다가 잠적한 후 다시 새로운 노래를 내서 활동하는, 소위 '컴백'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한국 아티스트들 중 멜론 명반 딱지를 가장 많이 받은(6개) 아티스트이다.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아티스트인 칸예 웨스트도 4개인데...

음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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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완벽주의자로 유명하다. 노래, 랩, 작곡, 믹싱, 마스터링을 자기 혼자 다 할 정도이며 아이들 시절때부터 매 앨범의 수록곡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앨범의 컨셉이나 멜로디, 가사에 신경을 많이 쓴다. 심지어 뮤비의 퀄리티에도 신경을 많이 써서 8집이나 25주년 리메이크 앨범의 경우 전곡 다 뮤비가 있다.

아이들 시절에는 구미 음악을 한국 대중음악계에 가져오려는 시도를 했다면 솔로 앨범부터는 매 앨범마다 스타일을 바꾼다. 5집은 힙합요소가 약간 들어간 얼터너티브 록이었고 6집은 뉴 메탈, 7집은 이모코어의 영향을 받은 감성코어, 8집은 자기가 직접 만들어낸 장르인 네이처 파운드를 시도했다.

솔로 활동 이후에도 해외 트렌드의 음악을 한국에 그냥 가져오냐는 비판도 있었으나 뉴 메탈 장르인 6집 발매 당시 뉴 메탈의 원조격인 Korn과 보컬의 입털기로 다른 뮤지션들과 사이가 안좋기로 유명했던 림프 비즈킷도 호평했듯이 해외 록음악의 트렌드를 가져오되 자기만의 스타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아티스트이다.

해외 뮤지션들 중에서도 칸예 웨스트, 라디오헤드, 린킨 파크, 브링 미 더 호라이즌 등 작품적으로 다채롭고 훌륭한 평가를 많이 받는 뮤지션들은 앨범 스타일을 자주 바꾸는 경우가 흔한데 국내에서는 서태지 외에는 잘 없는 거 같다.

비판 세력들은 주로 팬이었다가 안티팬으로 돌아선 사람들인데 지금으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지만 언론에서 신비주의 컨셉으로 유명했다.

극성 팬들과 기사거리 뽑아내기에 혈안이된 황색언론에 자기에게 밥그릇을 논했다는 음반회사들에게 표적이 되어있었고 이에 서태지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그는 두문불출하게 되었고 팬들은 자신들과의 거리감을 둔다는 것으로 알았다.

당시 최고의 샐럽인 서태지의 연애 결혼 떡밥은 엄청난 화제거리임에 틀림없었고 언론과 팬이 소식을 듣는데 서태지가 음악 관련으로 미국에 갔을 때 열애설이 터진 것이다.

훗날 사실은 맞았으나 당시 이러한 관심에 지친 서태지는 이에 관해 블러핑과 거짓말을 했고 뒤늦게 결혼 및 이혼 사실이 공개되자 팬들은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

안티들에게는 문화사기단으로 불리는 여러가지 논쟁을 많이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인터넷 개통후에는 표절신

이지아 사건후에는 사육신으로 불리고 있다.

그래도 서태지와 아이들 중에서는 이것들 말고는 사건사고 전혀없이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오^

표절 논란은 지금 대부분 반박당한 상황이지만 서태지 표절 음모론을 주장하는 음지의 병신tv 사이버렉카들은 여전히 난 알아요가 girl you know it's true의 표절이라는 진작에 논파당한 주장을 우려먹고 있다.

서태지도 이걸 아는지 8집은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사운드를 보여줬다.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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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가쪽으로 가수 겸 작곡가이면서 음악 프로듀서인 故신해철과 육촌간이다. (신해철과 6촌 형제지간. 외종육촌간) 역시 음악의 피는 못속여 ㄷㄷ

- 한번의 이혼경력이 있다. 이지아와 이혼[5]후 이은성과 함께 부부의 연을 맺었다(더 이상 언급 금지)

-절친은 가수 김종서. 최근엔 윤상, 이승환과 함께 술마셨다 함. (근데 잠깐… 술을 마셨다고?!) (서태지는 위 건강 때문에 술을 안마신다.)

-인디에서 놀던 을 영입하고 밀어줬다. 지금은 넬이 따로 독립해서 레이블을 세울만큼 커짐

음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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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디스코그래피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서태지와 아이들 2집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서태지 5집 울트라맨이야 7th Issue 8th Atomos
Quiet Night 25주년 리메이크

1~4집까지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음반, 5집부터는 서태지 솔로 활동 이후 발매된 음반들이다.

아이들 시절 1~4집은 모두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당연히 멜론에서도 1~4집은 명반딱지를 받았고 솔로 활동 이후에 낸 앨범들 중에선 7, 8집이 명반딱지를 받았다.

추천곡들은 지금 당장 유튜브에 들어가서 무조건 들어라. 지금 들어도 세련된 곡들이 많다.

솔로 활동 이후에도 낸 곡도 많으나(정확히는 서태지 밴드로써 활동), 대개 듣보잡이다.

대중들이 기억하는건 테이크 시리즈랑 울트라맨이야, 라이브와이어 정도. 그러나 최근 소격동과 펜타포트락페로 청소년과 극성 락빠들에게 호감을 불러 일으켰다...만 급식들은 별 관심이 없다

의외로 좋은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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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노래보다 더 좋다 ㅎㅎ

2000년대 이후 서태지 노래는 신나기보다는 몽환적인 노래가 많다

ㄴ 이건 개취다. 헤피앤드나 텍5 좋아하는 본인도 버뮤다랑 휴먼드림은 거른다.

T'IKT'AK 도 노래 좋은데 왜 안들어가냐?

coma, 레플리카, 로보트 같이 여기에는 없는 명곡들도 많다만 솔직히 이건 사람마다 캐바캐가 갈리는 듯

2집 orange

숨겨진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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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집 재발매판 또는 15주년 기념 앨범 Watch out J-ROCK 스타일의 짧은 곡이다. 일반인들은 전혀 모를 노래인데 이 곡을 들으면 "난 알아요", "Come Back Home", "발해를 꿈꾸며", "울트라맨이야"와 같은 너무 유명해진 곡들 때문에 형성되었을 서태지에 대한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질 것이다.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 최근에 나온 곡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세련된 곡이다. 정식 활동 때 나왔다면 앨범차트 1위는 충분히 쌈싸먹을 정도로 좋은데 아쉽다. 뮤직비디오의 쉴 틈 없는 화면전환이 가져다 주는 역동적인 분위기의 영상미도 좋다.

여성낙태 금지를 지지해서 은근 페미성향을 띄고 있기도 하다. 그 이유는 <victim> 들어보면 알게될거다.

Victim의 앞트랙인 Nothing을 들으보면 윗말은 개소리인것을 알 수 있다.

ㄴ 개소리 아닌데? ㅋㅋㅋ 낫띵이 여성위주로 돌아가는거 부정적으로 보는 남성 인터뷰한거고 그다음곡이 이전곡 제대로 돌려까는곡이다. 앞곡내용에 대해서 반박하는 가사를 담은곡인거지

ㄴ 낫띵이 성차별한적도 없는데 했다고 피해의식가지면서 부들대는 여성들 아니꼽게 보는 남정네 인터뷰한걸 그대로 스킷형식으로 만든 Interlude성 곡이고 그다음에 이어지는 노래가 그 앞부분하고 완전 상반된 '낙태반대'라는 내용으로 여인네들 보호하는 목적가지고 맹근 노래인건 맞다.

페미들이 원하는 게 낙태인데 이게 왜 페미인지 모르겠다.

2016년에 남녀갈등을 주제로 일겅이라는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거기선 관객들을 남녀따로 나눠서 공연을 한후 마지막에 남녀동시 입장가능한 공연을 했다.

그걸 보면 페미니즘보다는 남녀간의 화합을 추구하는 쪽에 더 가깝다.

개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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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의 친척 동생으로 두 사람의 어머니들이 사촌이다. 그런데 가족력 지병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위장에 빵꾸가 나는 것이다. 이른바 위천공. 실제로도 서태지는 위천공 사유로 병역이 면제되었으며 이것 때문에 서태지와 아이들을 활동할 때도 끔찍한 통증으로 인해 매일같이 진통제를 달고 살았다.

그리고 친척 형인 신해철 역시 이 사유로 사망했다. 다만 신해철은 이 질병과 관련된 수술을 받다가 돌팔이새끼가 의료사고를 저지르는 바람에 그만 오래 못가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슬하에 딸을 두고 있다. 2014년생으로 서태지가 간간히 유튜버에 딸과 같이 찍은 영상을 올리며 근황을 알리기도 한다.

마비노기 영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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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노기 영웅전 시즌2의 보스 저거노트의 별명이기도 하다.

아마도 해당 보스의 헤어스타일이 서태지와 닮았으며, 중간에 콘서트를 여는 듯한 비주얼의 특수패턴이 존재하기 때문.

자세한 것은 마비노기 영웅전 - 시즌2 참조

ㄴ 엌ㅋㅋㅋ 지금봣는데 6집때 서태지인줄

2021년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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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다른 가수들을 불러서 만든 25주년 리메이크 앨범 이후 하도 소식이 없다가 최근 근황을 알렸다. 딸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는데 하필이면 코로나 땜에 딸의 학교가 문을 닫아서 온전히 집에서 홈스쿨링만으로 딸을 키우다 보니까 10집 만들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내년이 벌써 서태지 30주년인데 내년에도 활동이 힘들 거라고 한다. 대신 유튜브에 4년 전 BTS 멤버들하고도 같이 공연한 25주년 기념 공연을 올렸다.


주소

창모가 2집 UNDERGROUND ROCKSTAR에서 서태지를 오마주한 태지란 곡을 냈는데 존나 미쳤다. 서태지 스타일을 2020년대가 느껴지는 창모 스타일로 완전히 재해석해서 낸 느낌임. 그래서 그런지 서태지와 아이들이 요즘 트렌드 다 가지고 세상에 다시 나온 느낌이다. 다만 가사는 서태지가 싫어할 거 같다. 무려 Come Back Home을 샘플링해서 넣었는데 서태지가 워낙 신비주의이기도 하고 피쳐링이나 곡을 쉽게 내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까 어떻게 샘플링 허가 받았냐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많았다. 이후 창모가 샘플링 허가받은 후기를 올렸는데 자기도 첨엔 서태지가 워낙 유명한 인물이고 신비주의다 보니까 떨렸는데 그냥 허락해줬다고 한다. UGRS 다큐에서 말하길 딸을 키우면서도 전화로 태지의 가사에 직접 피드백을 줬다고 한다.

2023년 9월 CGV에서 25주년 기념 공연을 상영하였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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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이주노의 아내가 1992년 생인건 안자랑.
  2. 여담으로 롯데 자이언츠는 서태지 데뷔후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3. 서태지 9천만원 소송(색연필) 조선일보, 1994.01.12
  4. "닮은꼴인형 무허가 시판" 조선일보, 1994.07.27
  5. 중립적으로 한마디만 하자면 이게 알려졌던 2011년 당시에는 졸라 떠들썩한 사건이었다. 그시절 디시위키가 존재했다면 이 문서가 온갖 틀과 ㄴ으로 도배되면서 한바탕 수정 전쟁이 벌어졌을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