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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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항목 [[필수요소]]
{{갈림길}}


[[파일:N0807-12.jpg]]
== 실제 심영 ==


[[합필갤]]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의 인물, [[필수요소]]로, 공산주의 연극에서 [[무뇌봉]] 동무를 소개한 직후 [[김두한]] 일당을 보곤 [[전위대]]를 부르고 황급히 도망쳤으나 결국 [[김두한]] 일당 중 하나인 [[상하이 조]]의 총에 맞아 [[고자]]가 되었다.
[[심영(배우)]]


이후 백병원에서 눈을 뜨고 [[의사양반]] 앞에서 그 유명한 대사를 외치니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였다.
==니들이 찾는 심영==


==명대사==
[[심영(야인시대)]]
"[[내가 고자라니]]"


"[[님은 바로 사회주의 낙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화 심영==
[[심영(영화)]]


"[[내가 죽는다고요!]]"
==삼국지 인물==
[[심영(삼국지)]]


"[[이 반동노무 시키들]]"
"[[전화! 전화좀 갔다주시오!]]"
"[[에액따!]]"
"[[여기가......어디요?]]"
"[[아래쪽에 감각이 전혀 없으니 어떻게 된거요?]]"
"[[나 이렇게 오래 있을 수가 없소...]]"
등 야인시대 64화(+-1화)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다른 뜻|심영 (동음이의)|배우 <del>고자</del>심영|다른 뜻}}
== 개요 ==
심영(沈影, 1910년 9월 3일 ~ 1971년 7월 24일)은 [[일제 강점기]], [[북한]]에서 활동한 <del>고자</del> [[배우]]로써, 본명은 심재설(沈載卨), 창씨개명한 이름은 아오키 진에이(?木沈影 - 청목 심영)이다.  <del>좌익 인사인데 파란색이라니</del> 당시 많은 예술가들의 주요 테크였던 [[친일파]]에서 [[공산주의자]] 테크를 탔다. 뭐, 보통이라면 평범한 글이나 문서가 작성되지 않았겠지만... [[대한민국]]의 [[야인시대|어느 드라마]] 때문에...
=== 생애 ===
1910년 9월 3일 [[강원도]] [[철원군]]에서 태어났다. 서울에 이주하여 의정부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2고등보통학교(현재의 경복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 무용에 관심을 가지다가 학교의 승인 없이 연극 활동과 사회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았다.<del>뭐요? 이보시오, 이보시오 교장양반! 퇴학이라니, 아니, 내가 퇴학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del> 토월회 연구생으로 입단하면서 연극계에 입문했다.
==== 연극계 입문 ====
[[춘향전]]에서는 [[황철]]이 [[이몽룡]] 역을, 심영이 <del>[[고자]]</del>[[방자]] 역을 맡았으며 <del>상하이에 맞고 낭심에 울고</del>[[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에서는 심영이 주인공 홍도의 <del>고자</del>남편 역을, 황철이 홍도의 오빠 역을 맡았다.
[[1939년]] 극단 <del>고환</del>고협의 대표로 활동하였다. <del>고환</del>고협을 비롯한 여러 연극 단체들이 [[조선총독부]]의 후원으로 친일 연극 단체 조선연극문화협회를 결성했을 때 이 단체의 간부를 맡았는데 <del>고환</del>고협은 태평양 전쟁 중 <del>무뇌봉</del>[[문예봉]]의 남편인 [[임선규]]의 [[빙하]], <del>백병원에서</del>[[상아탑에서]], [[송영]]의 [[해당화 피는 섬]], [[김태진]]의 [[아름다운 고향|아름다운 <del>고환</del>고향]] 등 친일 연극을 다수 공연했다. [[1943년]] [[9월 16일]]부터 [[12월 26일]]까지 열린 제2회 연극경연대회(演劇競演大會)에서 일어극 부문 개인 연기상을 수상했고 친일 영화 《너와 나》, 《<del>극장</del>망루의 <del>전위대</del>결사대》에도 출연했다. 2008년에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연극/영화 부문에 선정되었다. 1941년에 발매된 가수 [[박향림]]의 앨범 《걸작집》에 실린 노래 〈<del>상하이 조의</del>코스모스 탄식, 쓸쓸한 <del>백병원</del>여관방, 흐르는 남끝동〉에서 대사 파트를 담당했다.
광복 이후 미군정 시기에 혁명극장 등 좌익 계열 단체 연극동맹에서 활동했다. 1946년 [[친일파]]이자, 좌파 성향의 극작가 [[박영호의]] [[님]] 공연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광교에서 [[김두한]]에게 피격을 받아  하복부 중상(重傷)을 입었다.<del> 그 다음에는 김두한의 부하 [[상하이 조]]에게 다시 피격받아 하복부 중상에 이어 고환 파열이 되는 중상을 입었다.</del><ref>드라마 야인시대는 심영이 치료받은 병원은 [[백병원]]이라고 하는데, 김두한이 심영이 백병원으로 실려갔다는 증언을 하여, 작가 이환경은 김두한을 증언을 바탕으로 심영이 후송한 병원이 백병원으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당시 신문기사(동아일보)에 의하면 백병원이 아닌 '''[[김성진 외과]]'''라는 병원으로 후송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심영이 실제로 고자가 된 거가 아니고, 야인시대 작가 [[이환경]]이 창작한 것이다.</ref>
==== 월북한 이후 ====
월북 이후에는 《내<del>고환</del>고향》(1949), 《향토<del>백병원</del>를 지키는 사람들》(1952), 《정찰병》(1953), 《벗들이여 우리 함께 가자》(1960), 《두만강》(1960), 《다시 찾은 <del>고환</del>이름》(1963) 등 출연하였고 1952년 조선연극인동맹 중앙위원 및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립 연극극장 배우, [[1959년]] 조선연극인동맹 부총장을 맡았다. 1961년 조선영화인동맹 위원장 겸 조선문화예술인총동맹 부위원장을 지냈으며 같은 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화대표단 단장으로 [[소련]]을 방문했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연기과장과 평양연극영화대학 강좌장을 역임했으며 1957년 [[공훈배우]] 칭호, 1964년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다. [[1971년]]에 사망하였다.
== 야인시대의 등장인물 ==
[[파일:simyung.jpg]]
{{인용문|'''날 보고 성 불구자가 된다구? 고자가 됐다, 그런 말인가? 고자라니, 아니, [[내가 고자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에잌 고자라니!! 내가, 내가 고자라니!!'''|심영|야인시대 64화,백병원에서 독백.|left}}
<s>설명 끝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s>
위의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로 [[야인시대]]의 <s>[[진 주인공]]</s>등장인물. 담당 배우는 [[김영인]].
야인시대 57화, 58화, 59화, 61화, 63화, 64화, 65화에 등장<ref>단, 64화와 65화를 제외한 나머지 화는 거의 까메오급으로 등장한 것이다.</ref>하였으며, 현재 여러 커뮤니티에서 [[고자]]의 대명사로서 열심히 합성되어 왔다.(...)
여담이지만 배우인 [[김영인]]씨는 처음엔 자신의 이미지가 잘못된 방향으로 굳어가는 것 같아(...) 탐탁치 않게 생각했지만(실제 이유는 어린 딸이 있었는데 이 딸이 자신이 고자라니 드립을 치면서 유명해진 것이 공개적으로 알려지면 혹시 자신의 딸에게 이미지적 충격이나 문제가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곧 자신의 출연작이 더 널리 알려진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며, 심지어 [[푸른거탑]]이나 [[SNL 코리아]]에마저 본인이 등장하여 고자라니 드립을 쳤다!
=== 작중 행적 ===
[[/작중 행적|'''항목''']]을 참고.
=== 합성물 ===
[[추가바람]]
{{주석}}
[[분류:배우]]
[[분류:야인시대]]
[[분류:야인시대]]
[[분류:인터넷 필수요소]]<br><br>''이 문서는 리브레위키에서 포크했음''
[[분류:삼국지]]

2021년 7월 29일 (목) 10:57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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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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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배우)

니들이 찾는 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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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야인시대)

영화 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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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영화)

삼국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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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삼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