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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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五刑)의 하나==
{{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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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소가 끄는 나무 수레를 타고 [[시골]]로 여행을 떠나는 형벌이다. 배가 고파지면 그 소의 응디를 뜯어다가 [[소고기]]를 먹으면 된다.
왕이 밉보인 신하를 외딴 첩첩산중이나 섬 등 험한 곳으로 보내는 형벌. 귀양(歸養)이라고도 한다.
=== 조선 ===
사극에서는 소가 끄는 나무 수레를 타고 [[시골]]로 가는 것으로 표현하지만 실상은 아니다. 대부분 걸어서 갔다. 일부 돈 많은 양반이 당나귀를 빌려 타는 경우가 가끔 있었을 뿐이다.


보통 임금이 죄를 지은 사람을 멀리 추방시키고 그 곳에 감금시키는 형벌이 유배인데 형벌의 크기는 수도와의 거리와 정비례한다. 그러니까 멀리갈수록 무거운 형벌이다.
형벌을 얼만큼 주고 싶냐에 따라서 유배지가 정해졌다. 서울과 멀수록 무거운 형벌을 받는 것이다. 정말 꼴 보기 싫은 경우는 죽을 가능성이 높은 외딴 섬으로 보냈고, 좀 밉긴 해도 죽이기는 싫다면 추운 북방, 하도 안 좋은 말이 많아서 좀 보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라면 그나마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 정했다. 무거운 형벌 귀양지의 대표격으로 [[삼수갑산]]과 [[제주도]] 등이 있었다.


[[문재인]]만약 유배 형벌을 다시 부활시키면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까지 걸어가는 게 유배 중 최고로 무거운 형벌이 될 것이다. 몬테비데오 앞바다가 정확하게 [[서울]]의 지구 정반대편이라서다.
유배지에 있는 죄수는 허가 없이 함부로 나돌아다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지원은 전혀 안 해줬기 때문에 죄인 스스로 먹고살 길을 찾아야 했다. 그나마 복귀 가능성이 있거나 명망 높은 사람이라면 지방관이나 유력자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고생만 주구장창 하다가 끝내 풀려나지 못하고 귀양지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치기도 했다. 그래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정도 당상관들은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항상 상단을 휘하에 두고 있다가 유배갈 때 같이 데려가서 그 상단들에게 돈을 벌어다 바치라고 해서 먹고 살았다. 물론, 8품 이하 잡관직의 당하관들은 그런것도 없어서 유배지에서 굶어 죽기도 했다.


실제로 [[삼국지]]에서는 일남(日南)이라고 오늘날의 [[베트남]](당시 베트남은 쯩니, 쯩짝 자매가 [[마등]]의 직계조상인 복파장군 마원에게 토벌당한 시점부터 중국의 속국이었다.) 중부지방인데 거기로 유배당하는 게 유배 중 최고의 형벌이었고(낙양으로부터 13,400리나 이격되어 있다.) 실제로도 이 일남으로 유배당하면 참수형과 동급인지라 자신의 장례식을 직접 치르고 본인의 장례식에서 스스로 상주가 되는 진풍경을 경험한 뒤 유배지로 출발했다.
=== 다른 나라 ===
[[삼국지]]에서는 일남(日南)이라고 오늘날의 [[베트남]](당시 베트남은 쯩니, 쯩짝 자매가 [[마등]]의 직계조상인 복파장군 마원에게 토벌당한 시점부터 중국의 속국이었다.) 중부지방인데 거기로 유배당하는 게 유배 중 최고의 형벌이었고(낙양으로부터 13,400리나 이격되어 있다.) 실제로도 이 일남으로 유배당하면 참수형과 동급인지라 자신의 장례식을 직접 치르고 본인의 장례식에서 스스로 상주가 되는 진풍경을 경험한 뒤 유배지로 출발했다.


[[공손찬]]이 진짜로 이 일남으로 유배가는 형벌을 받았다. 하지만 유배지로 가던 도중 죄가 사면되어 다시 요동으로 복귀했다.
[[공손찬]]이 진짜로 이 일남으로 유배가는 형벌을 받았다. 하지만 유배지로 가던 도중 죄가 사면되어 다시 요동으로 복귀했다.


[[조선]]의 경우는 국토가 워낙 좁아터지다 보니 이 정도 중한 유배형을 내릴 경우 팔도 방방곡곡을 몇 바퀴 돌게 했다. 가장 각광을 받은 유배지들로는 [[함경남도]]에 있는 삼수갑산과 [[제주도]]였다.
러시아는 악명높은 [[시베리아]] 북부지역에 굴라그를 만들어 죄수뿐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까지도 유배시키고 시베리아 개척에 잘 써먹었다.


이게 최근까지 이어진 나라가 바로 [[러시아]]. 러시아는 저기 악명높은 [[시베리아]] 북부지역에 굴라그를 만들어놓고 그 굴라그에 유배시켰다.
[[일본]]의 경우 죄다 엄청 멀리 떨어져있는 섬이다 보니 도망 따위 [[히히히 못가]]. 실제로도 [[우키타 히데이에]]는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서군죄를 지어서 하치조시마에 유배되었는데 이 섬은 일본 본토로부터 287km나 이격되어 있는데 이 정도 거리이면 [[서울특별시]]에서 [[남원시]]까지의 거리에 필적한다. [[우키타 히데이에]]는 무려 50년간 이 섬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일본]]의 경우 죄다 엄청 멀리 떨어져있는 섬이다 보니 도망 따위 [[히히히 못가]]. 실제로도 [[우키타 히데이에]][[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서군죄를 지어서 하치조시마에 유배되었는데 이 섬은 일본 본토로부터 287km나 이격되어 있는데 이 정도 거리이면 [[서울특별시]]에서 [[남원시]]까지의 거리에 필적하며 더군다나 그 거리의 물이다. 땅이 아니라서 도망도 못간다.
=== 다른 오형 ===
* [[태형]]
* [[장형]]
* [[도형]]
* [[사형]]

2021년 5월 4일 (화) 12:24 기준 최신판

오형(五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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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메에에- 이곳은 깡촌, 즉 존나 시골입니다.
이곳은 인프라도 없고, 살기도 안좋은 시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자연인이 되기에는 매우 좋은 곳입니다!
이 문서는 이거나 과 관련된 것을 다룹니다.
이 문서에는 육지에서 떨어진 섬이나 암초 같이 물 위에 드러나 있는 땅이나 그와 관련된 것들을 다룹니다. 세금둥둥섬이나 오키노토리 같은 인공섬도 포함됩니다. 꿀빠는 곳일 수도 있고 어떤 곳은 헬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헬이라고 알려진 곳에 갈 때는 항상 식인종노예꾼들을 조심합시다.

왕이 밉보인 신하를 외딴 첩첩산중이나 섬 등 험한 곳으로 보내는 형벌. 귀양(歸養)이라고도 한다.

사극에서는 소가 끄는 나무 수레를 타고 시골로 가는 것으로 표현하지만 실상은 아니다. 대부분 걸어서 갔다. 일부 돈 많은 양반이 당나귀를 빌려 타는 경우가 가끔 있었을 뿐이다.

형벌을 얼만큼 주고 싶냐에 따라서 유배지가 정해졌다. 서울과 멀수록 무거운 형벌을 받는 것이다. 정말 꼴 보기 싫은 경우는 죽을 가능성이 높은 외딴 섬으로 보냈고, 좀 밉긴 해도 죽이기는 싫다면 추운 북방, 하도 안 좋은 말이 많아서 좀 보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라면 그나마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 정했다. 무거운 형벌 귀양지의 대표격으로 삼수갑산제주도 등이 있었다.

유배지에 있는 죄수는 허가 없이 함부로 나돌아다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지원은 전혀 안 해줬기 때문에 죄인 스스로 먹고살 길을 찾아야 했다. 그나마 복귀 가능성이 있거나 명망 높은 사람이라면 지방관이나 유력자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고생만 주구장창 하다가 끝내 풀려나지 못하고 귀양지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치기도 했다. 그래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이 정도 당상관들은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항상 상단을 휘하에 두고 있다가 유배갈 때 같이 데려가서 그 상단들에게 돈을 벌어다 바치라고 해서 먹고 살았다. 물론, 8품 이하 잡관직의 당하관들은 그런것도 없어서 유배지에서 굶어 죽기도 했다.

다른 나라

[편집 | 원본 편집]

삼국지에서는 일남(日南)이라고 오늘날의 베트남(당시 베트남은 쯩니, 쯩짝 자매가 마등의 직계조상인 복파장군 마원에게 토벌당한 시점부터 중국의 속국이었다.) 중부지방인데 거기로 유배당하는 게 유배 중 최고의 형벌이었고(낙양으로부터 13,400리나 이격되어 있다.) 실제로도 이 일남으로 유배당하면 참수형과 동급인지라 자신의 장례식을 직접 치르고 본인의 장례식에서 스스로 상주가 되는 진풍경을 경험한 뒤 유배지로 출발했다.

공손찬이 진짜로 이 일남으로 유배가는 형벌을 받았다. 하지만 유배지로 가던 도중 죄가 사면되어 다시 요동으로 복귀했다.

러시아는 악명높은 시베리아 북부지역에 굴라그를 만들어 죄수뿐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까지도 유배시키고 시베리아 개척에 잘 써먹었다.

일본의 경우 죄다 엄청 멀리 떨어져있는 섬이다 보니 도망 따위 히히히 못가. 실제로도 우키타 히데이에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서군죄를 지어서 하치조시마에 유배되었는데 이 섬은 일본 본토로부터 287km나 이격되어 있는데 이 정도 거리이면 서울특별시에서 남원시까지의 거리에 필적한다. 우키타 히데이에는 무려 50년간 이 섬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다른 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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