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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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낚시|이덕화}} | |||
{{혐오|[[한예슬]]|[[이덕화]]|[[한예슬]]|[[이덕화]]|욕쳐먹더라}} | |||
ㄴ 한예슬은 드라마 촬영으로 몇 시간이나 대기하고 있던 이덕화를 제쳐두고 촬영 펑크낸 후 LA로 튀었다. 한예슬은 이덕화가 유일하게 싫어하는 연예인이라고 봐도 무방함. | |||
[[파일:금강야차.jpg]] | [[파일:금강야차.jp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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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명품배우로서 TV 영화 등에서 많이 출연하며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 | 대한민국의 명품배우로서 TV 영화 등에서 많이 출연하며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 | ||
언젠진 모르겠는데 너 나 우리가 응아응아 하며 태어나기 전부터 정상급 배우였을거다 | 언젠진 모르겠는데 너 나 우리가 응아응아 하며 태어나기 전부터 정상급 배우였을거다. 데뷔를 1972년에 했다. | ||
악역배우의 전설이다. 이 사람보다 악역 잘하는 배우는 대한민국에 단언컨데, 없다. | 악역배우의 전설이다. 이 사람보다 악역 잘하는 배우는 대한민국에 단언컨데,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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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주연 점령 욕심은 많으면서 그지랄하다간 나중에 노잼 그자체가 된 일본 영상물이나 한때 리즈찍다 좆망한 홍콩 영화처럼 되버린다 | 작품 주연 점령 욕심은 많으면서 그지랄하다간 나중에 노잼 그자체가 된 일본 영상물이나 한때 리즈찍다 좆망한 홍콩 영화처럼 되버린다 | ||
사실 [[최진실]]의 생명의 은인이다. 둘이 같이 베스트셀러극장이라고 해서, 잘팔린 소설책을 드라마로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 주연으로 나왔었다. | |||
거기서 최진실이 집에 불지르고 자살하는 연기를 하게 되어 있었는데 연기는 잘 끝났지만 빠져나오질 못했다. | |||
이 때문에 최진실이 불타죽게 생기자 이덕화는 달랑 소화기 하나만 들고 몸을 날려 그 불타는 건물 속으로 뛰어들어가서 최진실을 업고 나왔다. | |||
이후 이덕화는 최진실에게 장난삼아 "나 진실이 너 때문에 머리 홀랑 타서 머대리 됐다. 아이, 시원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 |||
[[김영삼]] 대통령과는 반쯤 친척인데 김영삼의 큰딸, 그러니까 [[김현철]]의 누나가 이덕화랑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인 동갑내기 친구다. | |||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이 살아생전에는 이덕화만큼은 아예 자신의 [[장남]]으로 여겼다. 이덕화도 김영삼을 사실상 아버지로 모셨다. | |||
* 김영삼: 덕화야, 할 거 없으면 맥주나 한잔 하자. | |||
* 이덕화: 네, 좋죠 아부지. | |||
이런 인연으로 인해 이덕화는 자기가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김영삼을 도와주려고 지역구 [[국회의원]] 출마까지 했었는데 남궁진한테 고작 1,400표 차이로 아깝게 낙선하고 말았다. | |||
출마한 선거구도 은근히 코메디인게 [[광명시]]의 바로 그놈의 '''[[교회]]촌'''이 이덕화가 출마한 선거구였다. 그렇다. 10m마다 교회가 있다는 그 곳이었다. | |||
이 선거출마 후유증 때문에 이덕화는 꽤 오랜 기간 동안 [[무인도]]에서 서식하며 공백기를 맞이하게 된다. 낚시를 시작한 게 여기서였다나 뭐라나... 왜 이지경까지 갔었냐면 저 당시엔 득표율 15% 이상이면 법정선거비용의 전액, 10% 이상이면 반액을 돌려받는 환급제도가 없었거든. | |||
{{예토전생}} | |||
이덕화는 친한 동생 [[전영록]]에게 [[오토바이]]를 빌려탄 적이 있었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일로 인해 전영록의 오토바이는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 이덕화는 친한 동생 [[전영록]]에게 [[오토바이]]를 빌려탄 적이 있었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일로 인해 전영록의 오토바이는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 ||
이 때가 1977년이다. 디키러들이 태어나기 한참 두참이나 전의 일이고 이덕화는 이 때 데뷔 5년차 배우였다. | |||
이덕화는 생명이 위독했고 겨우 살아났으나 엉덩이를 완전히 제거할 정도로 큰 중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허벅지 뱃살 등 살점을 여기저기 이어붙여 엉덩이를 아예 새로 짰다. 이 때문에 이덕화는 장애 3급이다. | 이덕화는 생명이 위독했고 겨우 살아났으나 엉덩이를 완전히 제거할 정도로 큰 중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허벅지 뱃살 등 살점을 여기저기 이어붙여 엉덩이를 아예 새로 짰다. 이 때문에 이덕화는 장애 3급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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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빵 한 번 맞으면 2~30바늘을 꿰매는데 이덕화는 이 사고로 무려 1,500바늘이나 꿰맸다. 이건 레알 시체를 되살려 놓은 수준의 대수술이었다. | 칼빵 한 번 맞으면 2~30바늘을 꿰매는데 이덕화는 이 사고로 무려 1,500바늘이나 꿰맸다. 이건 레알 시체를 되살려 놓은 수준의 대수술이었다. | ||
이 교통사고로 이덕화는 3년 정도 병원에 입원했는데 첫 10개월 동안 중환자실에 있었고 뻑하면 생명이 위독해져서 의사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집중관리대상이었다. 이덕화 본인의 말로는 '''하루하루가 비명으로 시작해서 비명으로 끝났다'''고 할 정도의 [[생지옥]]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는 났으니 천만 다행이다. 그 위엄쩌는 탱크보이 연기를 볼 수 있어서 이 얼마나 다행인가. | 이덕화 담당의사의 입장에서는 이만큼 영원히 잊지 못할 환자는 없을 것이다. | ||
자신의 환자 중 가장 유명한 인물임과 동시에 가장 크고 가장 어려운 수술을 한 환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인들에게 자기가 이덕화 살려낸걸 자랑하고 다닐 것이다. 진심 지인들한테 귀 터질때 까지 자랑해도 할말없을듯 | |||
이 교통사고로 이덕화는 3년 정도 병원에 입원했는데(실제로는 1981년 초에 퇴원) 첫 10개월 동안 중환자실에 있었고 뻑하면 생명이 위독해져서 의사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집중관리대상이었다. 이덕화 본인의 말로는 '''하루하루가 비명으로 시작해서 비명으로 끝났다'''고 할 정도의 [[생지옥]]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는 났으니 천만 다행이다. 그 위엄쩌는 탱크보이 연기를 볼 수 있어서 이 얼마나 다행인가. | |||
더 큰일은 이 사고 때문에 그 당시 지병으로 치료를 받던 이덕화의 아버지이자 원로배우인 [[이예춘]]이 아들이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것때문에 쇼크를 엄청나게 먹고 사망했다. | 더 큰일은 이 사고 때문에 그 당시 지병으로 치료를 받던 이덕화의 아버지이자 원로배우인 [[이예춘]]이 아들이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것때문에 쇼크를 엄청나게 먹고 사망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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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이 이덕화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다. 자신은 반신불수 되고 아버지는 작고했기 때문이다. | 이 순간이 이덕화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다. 자신은 반신불수 되고 아버지는 작고했기 때문이다. | ||
이 때 현재 이덕화의 아내가 된 김보옥 여사가 있는데 이 분 완전히 대인배다. | |||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이덕화가 아예 결혼하자마자 과부가 되느니 차라리 다른 남자한테 시집가라고 권유했는데 김보옥은 그걸 거절하고 3년 동안 거의 사투에 가까운 처절한 간호를 해줬다. | |||
그리고 이덕화가 퇴원하자 이덕화와 결혼했다. 덕분에 이덕화는 지금까지도 상당한 애처가라고 한다. | |||
아무튼 아재 오래사쇼 | 아무튼 아재 오래사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