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일제시대 시인. 월북했다가 정치질에서 밀려 벌집피자가 됐다. 독재자를 찬양하는 시를 썼다고 욕먹는 시들은 이즈음에 어떻게든 수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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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 |||
{{심플/북괴}} | |||
{{잘생긴 남자}} | |||
매우 잘생겼던 것으로 유명하다. 아내도 존나 예뻤다고 하니 선남선녀일세 | [[File:임화.JPG]] | ||
일제시대 시인. | |||
[[종로구]] 동숭동 출신이다. | |||
어렸을 적부터 자뻑이 심했다. 머리 하난 지리게 똑똑해서 독학만으로 갖가지 사상, 철학, 예술 관련 지식을 섭렵하는데 성공했다. | |||
좀 더 나이 먹고부터는 단편의 편지체 시를 쓰면서 사회주의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카프의 수장이 되었다. 하지만 오직 천황 이데올로기만 신봉하는 니혼의 탄압에 이기지 못하고 카프 해체 | |||
이후로도 시를 쓰면서 일제에 저항했지만 얼마나 괴롭힘 당했는지 결국 절필을 선언한다. | |||
해방 후에는 남한에서 주로 활동했다. [[박헌영]]이 아래에서 문화 총괄직을 맡으며 남로당 딱가리 짓만 줄기차게 했다. 물론 빨갱이는 남한에서 계속 머물 수 없었다. 미국의 압박으로 인해 못견디고 부카니스탄으로 탈!출! | |||
힘들게 월북했더니 거긴 이미 [[김일성]]이를 비롯한 돼지 권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덕분에 평양에 입성해보지도 못하고 좌천된다. | |||
6.25 때는 오오오 혁명입네다 남조선에 혁명을 하러 왔습네다~ 하며 군대와 함께 남하해왔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임화는 서울을 다시 보게 되자 극도로 감격했다고 전해진다. | |||
근데 쫓겨남. 어딜 빨갱이들이 서울에 발을 붙여? 미국의 공세로 붘한군이 후퇴하게 되자 그 난리통에 딸을 잃어버리고 서럽게 눈물을 흘린 느그들의 임화. 이 때 쓴 전쟁시들은 북한 군인들에게 높게 평가받으며 훌륭한 시의 표본이라고 떠받들어졌었다. | |||
하지만 6.25 이후 박헌영이가 처형되자 임화도 덩달아 처형당했다. 원래 김일성이고 지랄이고 ㄹㅇ 사회주의와 관계없는 애들 관련 시는 안 썼는데, 묘하게 죽음이 임박했다는 예감이 들자 김일성이를 위한 찬양시를 썼다고 한다. 독재자를 찬양하는 시를 썼다고 욕먹는 시들은 이즈음에 어떻게든 수명을 늘려보려 쓴 것에 불과하다. | |||
즉, 살려고 지 신념을 꺾으며 찬양시를 썼는데 킴일성이가 그걸 쿨하게 씹고 죽여버린 것. | |||
이후 북한에서는 임화와 관련된 기록, 문서가 모두 말살되었고 지금은 언급도 되지 않게 되었다. 원래 우리나라도 임화 금지였는데 자유 민주주의 국가답게 금제가 사라진지 꽤 되었다. | |||
매우 잘생겼던 것으로 유명하다. 아내도 존나 예뻤다고 하니 선남선녀일세. 처음엔 멀쩡하더니 살찌면서 존나 똥송해진 김일성이 임화를 잘생겼다고 질투한적도 있다고 한다. | |||
대표작으로 우리 오빠와 화로 등이 있다. | 대표작으로 우리 오빠와 화로 등이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