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사용자 30명의 중간 판 67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다른 뜻 설명|고대 조선에 대해서는 [[고조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다른 뜻 설명|고대 조선에 대해서는 [[고조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다른 뜻 설명|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서는 [[북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다른 뜻 설명|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서는 [[북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한국사의 시대 구분}}
{{고인드립허용}}
{{헬조선}}
{{지옥}}
{{나가겠어}}
{{똥}}
{{병신}}
{{피꺼솟}}
{{쌤통}}
{{노답}}
{{패드립}}
{{흑역사}}
{{극혐}}
{{개쓰레기}}
{{문과}}
{{미개}}
{{꼰대}}
{{틀딱}}
상업, 과학에 투자 안 하고 좆도 쓸데없는 성리학(문과)에만 투자했다.
{{디스토피아}}
{{심플/망한 시즌}}
{{심플/망한 시즌}}
{{한국사의 시대 구분}}
 
{{대한역사}}
{{대한역사}}
== 개요 ==
== 개요 ==
{{국가 정보 | 국기 =조선의 국기.png | 추가사진 =한반도 지도.png| 국가명 = 조선국<br>대조선국| 영어국가명 = 朝鮮國 / Kingdom of Choson<br>大朝鮮國 / Kingdom of Great Choson |글씨색상코드 = #FFFFFF | 배경색상코드 = #306ab2 | 수도 = [[서울특별시|한양]] |대륙 = [[아시아]] | 면적 = |인구 = 약 17,000,000(1907년)|  지도자 =| GDP =| 언어 =중세 한국어(~16세기)<br/>근대 한국어(16~19세기)<br/>현대 한국어(19세기~현대)| 인종 =[[한민족]] | 종교 = [[유교]]([[성리학]]) | 공식 홈페이지 = }}
{{국가 정보 | 국기 =조선의 국기.png | 추가사진 =한반도 지도.png| 국가명 = 조선국<br>대조선국| 영어국가명 = 朝鮮國 / Kingdom of Choson<br>大朝鮮國 / Kingdom of Great Choson |글씨색상코드 = #FFFFFF | 배경색상코드 = #306ab2 | 수도 = [[서울특별시|한양]] |대륙 = [[아시아]] | 면적 = |인구 = 약 17,000,000(1907년)|  지도자 =| GDP =| 언어 =중세 한국어(~16세기)<br/>근대 한국어(16~19세기)<br/>현대 한국어(19세기~현대)| 인종 =[[한민족]] | 종교 = [[유교]]([[성리학]]) | 공식 홈페이지 = }}
15번째 줄: 36번째 줄:
존속 기간: 그레고리력 서력기원 1392년 8월 13일~1910년 8월 29일<ref>대한제국의 존속 기간까지 포함. 총 518년 16일 동안 존속했다. 대한제국을 제외하면 1897년 10월 11일이 끝으로 총 505년.</ref>
존속 기간: 그레고리력 서력기원 1392년 8월 13일~1910년 8월 29일<ref>대한제국의 존속 기간까지 포함. 총 518년 16일 동안 존속했다. 대한제국을 제외하면 1897년 10월 11일이 끝으로 총 505년.</ref>


서기 (그레고리력) 1392년 8월 13일 혹은 (율리우스력) 8월 5일 (음력 7월 17일), 이성계가 [[고려 왕조]]를 무너트리고 세운 나라로 왕은 곤룡포(4개의 용, 붉은색)를 입었다. 다만 위 사진에서 보듯이 이성계는 특이하게 푸른색 용포를 입었다.
서기 (그레고리력) 1392년 8월 13일 혹은 (율리우스력) 8월 5일 (음력 7월 17일), [[이성계]]가 [[고려 왕조]]를 무너트리고 세운 나라로 왕은 곤룡포(4개의 용, 붉은색)를 입었다. 다만 위 사진에서 보듯이 이성계는 특이하게 푸른색 용포를 입었다.


같은 경우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체재의 일본이 '명의 속국'임을 인정 받으면서 명 황제에게서 조선의 곤룡포와 동일한 곤룡포를 하사 받았다. 사진은 KBS에서 방영한 '임진왜란 1592'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연기한 김응수 씨가 곤룡포를 입은 모습이다.
같은 경우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체재의 일본이 '명의 속국'임을 인정 받으면서 명 황제에게서 조선의 곤룡포와 동일한 곤룡포를 하사 받았다. 사진은 KBS에서 방영한 '임진왜란 1592'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연기한 김응수 씨가 곤룡포를 입은 모습이다.


조선 초기 정도를 빼면, 한국 역사 최고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으며 외국에서도 중국에게 무분별한 사대와 힘이 없고 변방의 국가로 취급된 이미지로 그 취급이 좋지 않다. 구한말에는 영국이나 미국도 개병신으로 보게되었음. 고종이 일제에게 먹히기 직전 타이밍에 미국에게 도움 요청했는데 국제정세는 실리에 움직여서 미국도 일본편에 섬. 참고로 조선이 일본보다 강했다는건 1450년 까지의 이야기지 [[임진왜란]]으로부터 10년 전에도 일본이 더 강했을듯하다.
조선 초기 정도를 빼면, 일제시대, 북한과 함께 한반도 역사 최악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으며 외국에서도 중국에게 무분별한 사대와 힘이 없고 변방의 국가로 취급된 이미지로 그 취급이 좋지 않다. 구한말에는 영국이나 미국도 개병신으로 보게되었음. 고종이 일제에게 먹히기 직전 타이밍에 미국에게 도움 요청했는데 국제정세는 실리에 움직여서 미국도 일본편에 섬. 참고로 조선이 일본보다 강했다는건 1450년 까지의 이야기지 [[임진왜란]]으로부터 100년 전에도 일본이 더 강했을듯하다.


그런 개병신 같은 나라였는데 2000년대 들어서 사극을 빙자한 판타지물때문에 이미지가 세탁되어서 한국사의 황금기인 마냥 재포장되었다 ㅅㅂ... 아니 미국처럼 남의 나라 사람을 노예로 쓴게 아닌 자국민을 노비로 부리는 이상한 나라인거에 이상함을 느껴야되지 않나?
그런 개병신 같은 나라였는데 2000년대 들어서 사극을 빙자한 판타지물때문에 이미지가 세탁되어서 한국사의 황금기인 마냥 재포장되었다 ㅅㅂ... 아니 미국처럼 남의 나라 사람을 노예로 쓴게 아닌 자국민을 노비로 부리는 이상한 나라인거에 이상함을 느껴야되지 않나?


생각해보면 의외로 조선이 현대 대한민국과 크게 연관성이 있지는 않다. 오히려 나라를 못 지키고 원숭이 제국에게 박살 나는 바람에 나라가 두 동강이 나고 후손들은 나라를 지키려고 군복무를 필수 하게 되었다.<ref>우선 남북 분단의 원인은 논란이 크다. 조선이 망하지 않고 계속 존재했다면 남북의 분단은 없었을 수도 있지만 징병제가 도입되지 않았을지는 모른다. 사실 어떤 나라든지 자국을 지키기 위한 군대가 필요한 법이고 조선 또한 군대가 존재했기에 병사를 모집하는 제도 자체는 징병이든 모병이든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징병제가 지금처럼 빡세진 건 북한이 가장 큰 원인이다.</ref>
생각해보면 의외로 조선이 현대 대한민국과 크게 연관성이 있지는 않다. 오히려 나라를 못 지키고 원숭이 제국에게 박살 나는 바람에 나라가 두 동강이 나고 후손들은 나라를 지키려고 군복무를 필수 하게 되었다.<ref>우선 남북 분단의 원인은 논란이 크다. 조선이 망하지 않고 계속 존재했다면 남북의 분단은 없었을 수도 있지만 징병제가 도입되지 않았을지는 모른다. 사실 어떤 나라든지 자국을 지키기 위한 군대가 필요한 법이고 조선 또한 군대가 존재했기에 병사를 모집하는 제도 자체는 징병이든 모병이든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징병제가 지금처럼 빡세진 건 북한이 가장 큰 원인이다.</ref>
주위 대부분이 이씨 조선도 공식 명칭 취급하지만 한국만 이씨 조선을 멸칭으로 취급한다. 그러므로 한국말 잘 하면서 리씨 조선이라 하는 인간 신고해보자. 운 좋으면 [[절대시계]] 받을 수도 있다.


== 세계가 보는 조선의 이미지 ==
== 세계가 보는 조선의 이미지 ==
<gallery>
파일:200405191203252100 1.jpg


파일:중국속국.jpg
[[파일:200405191203252100 1.jpg]]
 
[[파일:중국속국.jpg]]


파일:2ca5d12680c7c9.jpeg
[[파일:2ca5d12680c7c9.jpeg]]


파일:수정된last2된.jpg
[[파일:수정된last2된.jpg]]


파일:서울대 이영훈 낙성대경제연구소.png
[[파일:서울대 이영훈 낙성대경제연구소.png]]


파일:K-455.jpg
[[파일:K-455.jpg]]


파일:fae21ba98c18ae9f39d9a260609de545.jpg
[[파일:fae21ba98c18ae9f39d9a260609de545.jpg]]


파일:115A894D4E81F19B14F4D5.jpg
[[파일:115A894D4E81F19B14F4D5.jpg]]


파일:DdqlKeZVwAAQ rz.jpg
[[파일:DdqlKeZVwAAQ rz.jpg]]


파일:국뽕 현상.jpg
[[파일:국뽕 현상.jpg]]


</gallery>
</gallery>
91번째 줄: 114번째 줄:
애초에 서양놈들이 보는 황인종 이미지는
애초에 서양놈들이 보는 황인종 이미지는
* 일본 : 예전부터 강한 국가였고 시민의식도 탑클래스
* 일본 : 예전부터 강한 국가였고 시민의식도 탑클래스
ㄴ여기서 예전의 기준이 뭐냐?
ㄴ 서양은 근세나 근대 기준으로 인지도를 알아보기때문에 여기서 예전의 기준이라면 뭐겠냐
* 한국 : 최근에 뜨기 시작한 국가인데 가끔식 북한이랑 헷갈림
* 한국 : 최근에 뜨기 시작한 국가인데 가끔식 북한이랑 헷갈림
* 중국 : 황인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여러모로 황인종 이미지 말아쳐먹음
* 중국 : 황인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여러모로 황인종 이미지 말아쳐먹음
98번째 줄: 124번째 줄:
바로 조선시대 때문이다.
바로 조선시대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 조선 역사는 최악의 콤플렉스로 손꼽히며 세계사적인 시각, 객관적 역사관에서 바라봤을 때 국내 사학자들이 가장 정신승리, 짜집기, 왜곡 등을 즐겨하는 파트이기도 하다. 세계사 시각, 특히 서구학계 관점, 애초에 전 세계에서 국내 사학계를 빼면 조선의 대한 시각과 이미지는 문화도 조촐하며, 중국의 클랜국이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유투브나 구글에 'Vassal Of Qing'을 치면 조선이 나오는 것을 손쉽게 볼 수 있고, 미국인들이나 서양인들의 역사 유튜브 영상에서 조선을 청의 속국으로 표시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Ui_1OxzKUdc&t=4s] 뿐만 아니라 식민사관이 만들어지게 제공한 나라이기도 하며, 온갖 한국에 병신 같은 이미지는 모두 미개한 조선에서 나왔다고 보면 된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 조선 역사는 최악의 콤플렉스로 손꼽히며 세계사적인 시각, 객관적 역사관에서 바라봤을 때 국내 사학자들이 가장 정신승리, 짜집기, 왜곡 등을 즐겨하는 파트이기도 하다. 세계사 시각, 특히 서구학계 관점, 애초에 전 세계에서 국내 사학계를 빼면 조선의 대한 시각과 이미지는 중국의 클랜국이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유투브나 구글에 'Vassal Of Qing'을 치면 조선이 나오는 것을 손쉽게 볼 수 있고, 미국인들이나 서양인들의 역사 유튜브 영상에서 조선을 청의 속국으로 표시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Ui_1OxzKUdc&t=4s] 뿐만 아니라 식민사관이 만들어지게 제공한 나라이기도 하며, 온갖 한국에 병신 같은 이미지는 모두 미개한 조선에서 나왔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안 그런 영상이나 지도도 있다.구글에서 Qing dynasty를 쳐보면 청나라와 조선을 별개의 나라로 취급한 지도도 몇 개 발견할 수 있음. 아니 애초에 미국인이나 서양인이 그렇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도 안 하고 무조건 옳은 거임? 그들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봄? 외국인이 똥을 메주라고 하면 그대로 믿을 양반일세?
하지만 안 그런 영상이나 지도도 있다.구글에서 Qing dynasty를 쳐보면 청나라와 조선을 별개의 나라로 취급한 지도도 몇 개 발견할 수 있음. 아니 애초에 미국인이나 서양인이 그렇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도 안 하고 무조건 옳은 거임? 그들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봄? 외국인이 똥을 메주라고 하면 그대로 믿을 양반일세?
106번째 줄: 132번째 줄:
1980년대부터 국뽕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선사에 대한 미화, 왜곡이 끊임없이 지속되었지만 미디어, 핸드폰 발달로 조선이 얼마나 좆병신인지 알게 된 국민들의 사고관에 큰 영향력을 주지 못했다. 그러자 요즘엔 조선을 띄우기 위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전시대 역사인 고려를 까면서(동족상잔) 조선에 대한 이미지를 복구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1980년대부터 국뽕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선사에 대한 미화, 왜곡이 끊임없이 지속되었지만 미디어, 핸드폰 발달로 조선이 얼마나 좆병신인지 알게 된 국민들의 사고관에 큰 영향력을 주지 못했다. 그러자 요즘엔 조선을 띄우기 위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전시대 역사인 고려를 까면서(동족상잔) 조선에 대한 이미지를 복구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2018년 현재 현대 대한민국은 이러한 조선이 똥 싼 이미지들을 대부분 개선하는데 성공했다. 삼성, 현대, LG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를 창출했고 IMF 선정 세계 10대 경제 대국, 파리 클럽의 회원국, G20 주요정상회의 국가, MIKTA 리더국으로서 현재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국가로서 발돋움했으며, 세계적으로도 '지역 강국' 위상을 부여 받으며 청이나 명의 속국으로 취급되던 조선과 달리 '작지만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무역에 대해 소극적이던 조선과 달리 대외무역흑자를 G7 국가 이탈리아보다 더 많이 내고 있는 나라로, 최근엔 민주주의 지수 증가, K-POP(BTS, 싸이) 같은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 발생, 성의 자유화 등으로 조선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으면서 조선은 그 반면교사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2022년 현재 현대 대한민국은 이러한 조선이 똥 싼 이미지들을 대부분 개선하는데 성공했다. 삼성, 현대, LG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를 창출했고 IMF 선정 세계 10대 경제 대국, 파리 클럽의 회원국, G20 주요정상회의 국가, MIKTA 리더국으로서 현재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국가로서 발돋움했으며, 세계적으로도 '지역 강국' 위상을 부여 받으며 청이나 명의 속국으로 취급되던 조선과 달리 '작지만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무역에 대해 소극적이던 조선과 달리 대외무역흑자를 G7 국가 이탈리아보다 더 많이 내고 있는 나라로, 최근엔 민주주의 지수 증가, K-POP(BTS, 싸이) 같은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 발생, 성의 자유화 등으로 조선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으면서 조선은 그 반면교사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 조선의 현실 ==
== 조선의 현실 ==
{{더러워}}
{{더러워}}
[[파일:조선 시대의 불편한 진실.png|800px]]
{{극혐}}
{{강제개행}}
{{미개}}
{{정화}}
<div align=center>
[[파일:조선 시대의 불편한 진실.png|800px]]</div>


* 쪽본이 패망하자 백성들은 임시정부와 광복군 등 독립에 힘쓴 지식인들과 군인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러나 정작 '''조선 왕족은 한국 정부로부터 입국 거부를 당했다.''' 이는 당시 백성의 여론이 조선 왕조에 대한 반감이 큰 것을 이유로, [[이승만]]이 민심을 받아들인 갓-정책이다. 다만 이후 [[박정희]]가 입국 금지를 풀었다고 한다. 그래도 임시정부 시절에는 조선 황실 우대 조항이 (일단은) 있었다고 한다.
* 쪽본이 패망하자 백성들은 임시정부와 광복군 등 독립에 힘쓴 지식인들과 군인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러나 정작 '''조선 왕족은 한국 정부로부터 입국 거부를 당했다.''' 이는 당시 백성의 여론이 조선 왕조에 대한 반감이 큰 것을 이유로, [[이승만]]이 민심을 받아들인 갓-정책이다. 다만 이후 [[박정희]]가 입국 금지를 풀었다고 한다. 그래도 임시정부 시절에는 조선 황실 우대 조항이 (일단은) 있었다고 한다.
* [[고구려]]와 [[고려]]가 만든 '작지만 강력한' '작은 고추가 맵다' 등의 이미지를 전부 깎아먹었다. [[임진왜란]] 전까지 명나라는 조선하면 고구려와 고려의 이미지를 떠올렸지만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일본쪽바리에게 신 나게 얻어맞자 그때부터 '조선은 참 문약한나라구나'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피해를 따지면, 조선은 이겨도 이긴 게 아니었다. 일단 엄청난 학살과 일본으로 끌려간 포로들 때문에 인구가 급감했고 전쟁의 주된 무대가 한반도였기 때문에 땅은 황폐화 되어서 농사가 매우 힘들어졌다. 수많은 문화재도 불탔는데 고려 실록은 전부, 조선 실록은 판본 1부 빼고 전부 불탔다. 이후에 [[경신대기근]]까지 겹치면서 국력은 지구 내핵을 향해 드릴을 뚫고 있었다. 명이나 일본도 역시 피해를 입었으나 조선에 견줄 바는 아니었다. 명나라가 망한 이유는 [[만력제]]의 병신 짓과 대기근 때문이지 임진왜란 때문이 아니다.  
* [[고려]]가 만든 '작지만 강한 나라' 이미지를 전부 깎아먹었다. [[임진왜란]] 전까지 명나라는 조선하면 고구려와 고려의 이미지를 떠올렸지만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일본쪽바리에게 신 나게 얻어맞자 그때부터 '조선은 참 문약한나라구나'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피해를 따지면, 조선은 이겨도 이긴 게 아니었다. 일단 엄청난 학살과 일본으로 끌려간 포로들 때문에 인구가 급감했고 전쟁의 주된 무대가 한반도였기 때문에 땅은 황폐화 되어서 농사가 매우 힘들어졌다. 수많은 문화재도 불탔는데 고려 실록은 전부, 조선 실록은 판본 1부 빼고 전부 불탔다. 이후에 [[경신대기근]]까지 겹치면서 국력은 지구 내핵을 향해 드릴을 뚫고 있었다. 명이나 일본도 역시 피해를 입었으나 조선에 견줄 바는 아니었다. 명나라가 망한 이유는 [[만력제]]의 병신짓과 대기근 때문이지 임진왜란 때문이 아니다.  
* [[1897년]]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을 세우고 대외명칭을 'Dai-han'(대한)으로 정하여 외국 선교사들을 통해 이를 널리 알리려고 했으나 듣보잡 취급 당하고 전부터 부르던 Korea로 불렀으며, 지금도 Republic of 'Korea'를 영문 국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 [[1897년]]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을 세우고 대외명칭을 'Dai-han'(대한)으로 정하여 외국 선교사들을 통해 이를 널리 알리려고 했으나 듣보잡 취급 당하고 전부터 부르던 Korea로 불렀으며, 지금도 Republic of 'Korea'를 영문 국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 '''[[중국몽|명이 있어야 조선이 있는 법]]'''...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사실 조선에 매우 어울리는 말이다. 빵셔틀로서 고통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러워한 나라라는 사실이다.
* '''[[중국몽|명이 있어야 조선이 있는 법]]'''...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사실 조선에 매우 어울리는 말이다. 빵셔틀로서 고통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러워한 나라라는 사실이다.
* 제임스 팔레란 한국학 미국 학자는 조선을 '노예제 국가'로 규정하며 조선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국민을 노예로 만든 유일한 나라'''라고 평가하였다. 이 평가에 대해 국사학자 아무도 태클을 걸지 못하다가 유일하게 반박한 사람이 있는데, 뉴라이트로 유명한 '''이영훈'''이다. 다만 서구의 Slave와 조선의 노비를 같게 볼 수 있는지는 아직 논란이 좀 있다. 이 사람은 남북전쟁 당시 미국도 노예제 사회로 봤다고 한다.
* 제임스 팔레란 한국학 미국 학자는 조선을 '노예제 국가'로 규정하며 조선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국민을 노예로 만든 유일한 나라'''라고 평가하였다. 이 평가에 대해 국사학자 아무도 태클을 걸지 못하다가 유일하게 반박한 사람이 있는데, 뉴라이트로 유명한 '''이영훈'''이다. 다만 서구의 Slave와 조선의 노비를 같게 볼 수 있는지는 아직 논란이 좀 있다. 이 사람은 남북전쟁 당시 미국도 노예제 사회로 봤다고 한다.
* 세계적으로도 인지도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국내 반크나 사이버외교사절단 등이 유튜브나 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홍보하고 있지만 여전히 효과는 미지근하다. 애초에 문화력이 우수한 나라였다면 17 ~ 18세기의 일본처럼 서구에서 자포네스크라도 유행시켰을 텐데, 그냥 문화가 평범하니 해외에서도 안 알아준다는 게 지배적이다.
* 세계적으로도 인지도가 전혀 없었다. 물론 고구려처럼 국력은 ㅅㅌㅊ 수준이였지만 지나치게 이전인 과거사는 몰라도 조선은 근대국가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였는데도 듣보잡 취급이다. 그래서 국내 반크나 사이버외교사절단 등이 유튜브나 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홍보하고 있지만 여전히 효과는 미지근하다. 애초에 문화력이 우수한 나라였다면 17~18세기의 일본처럼 서구에서 자포네스크라도 유행시켰을 텐데, 그냥 문화가 평범하니 해외에서도 안 알아준다는 게 지배적이다.
* 사실 조선 왕조가 일본으로부터 나라만 지켰어도 군대 갈 확률이 적었을 거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징병제는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일본 경제재건의 아버지 김일성 씹새끼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 사실 조선 왕조가 일본으로부터 나라만 지켰어도 군대 갈 확률이 적었을 거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징병제는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일본 경제재건의 아버지 김일성 씹새끼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 보통 군사력이 약하면 문(文)적으로 발달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대표적인 게 [[송나라]]) 조선은 [[한글]] 말고 문화적으로 융성했던 게 한 가지도 없었다. 『일동장유서』에서 조선 사신단이 일본의 수치 사용을 보고 조선은 수치를 다루는 방법조차 모른다며 한탄하였으며, 위생의 개념이 없어 목욕을 하지 않았고 길거리에 용변을 보는데 거리낌이 없었으며, 실제로 일제에 먹혔을 당시와 일제 패망 직후 해방 당시에도 문맹률이 90%에 달할 정도로 백성들은 글자를 몰랐다. 오직 양반만이 글자를 쓸 수 있고 양반만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그것을 본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만들어준 글자가 바로 [[한글]]이다.
* 보통 군사력이 약하면 문화적으로 발달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대표적인 게 [[송나라]]) 조선은 [[한글]] 말고 문화적으로 융성했던 게 한 가지도 없었다. 『일동장유서』에서 조선 사신단이 일본의 수치 사용을 보고 조선은 수치를 다루는 방법조차 모른다며 한탄하였으며, 위생의 개념이 없어 목욕을 하지 않았고 길거리에 용변을 보는데 거리낌이 없었으며, 실제로 일제에 먹혔을 당시와 일제 패망 직후 해방 당시에도 문맹률이 90%에 달할 정도로 백성들은 글자를 몰랐다. 오직 양반만이 글자를 쓸 수 있고 양반만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그것을 본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만들어준 글자가 바로 [[한글]]이다.
* 조선 시대 옹호자들을 보면 이들이 마조히스트가 아닌가 의문을 품게 된다. 신 나게 두들겨 처맞고 문화력도 융성하지 못했으며, 세계적으로도 변방으로 취급된 나라가 뭐가 좋아서 빠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꼭 마조히스트적인 면만 있어서 빠는 것만은 아닌데, 국내에 전주 이씨나 여흥 민씨, 안동 김씨 같은 조선 시대 이름 있는 명문세가 후손(이마저도 매관매직이지만)이 수백만에 이르기 때문에, '''자기 조상뽕'''에 맞아 빠는 경우도 많다. 족보 자랑 하는 놈들은 죄다 자기 족보 말고 자랑할 게 하나도 없는 병신들이니 그러려니 해라.
* 조선 시대 옹호자들을 보면 이들이 마조히스트가 아닌가 의문을 품게 된다. 신 나게 두들겨 처맞고 문화력도 융성하지 못했으며, 세계적으로도 변방으로 취급된 나라가 뭐가 좋아서 빠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꼭 마조히스트적인 면만 있어서 빠는 것만은 아닌데, 국내에 전주 이씨나 여흥 민씨, 안동 김씨 같은 조선 시대 이름 있는 명문세가 후손(이마저도 매관매직이지만)이 수백만에 이르기 때문에, '''자기 조상뽕'''에 맞아 빠는 경우도 많다. 족보 자랑 하는 놈들은 죄다 자기 족보 말고 자랑할 게 하나도 없는 병신들이니 그러려니 해라.
* 보통 국까 카테고리는 역센징 일뽕만이 들락거리는데, 조선 왕조 카테고리는 역센징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일반인도 '''병신 같은 나라'''라고 기여하고 가는 유일한 문서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북한|휴전선 이북의 모 불법단체]]조차도 조선이란 이름을 계승했다고 자뻑하면서도 조선시대를 극혐하며 맹비난을 퍼붓는다 그래서 북괴에서 조선시대를 가르칠 땐 이조(李朝)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근데 어차피 지금 지들의 모습도 조선시대 그 이하이자 하위호환인 모습인데 결국 누워서 침뱉기 아닌가?
* 보통 국까 카테고리는 역센징 일뽕만이 들락거리는데, 조선 왕조 카테고리는 역센징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일반인도 '''병신 같은 나라'''라고 기여하고 가는 유일한 문서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북한|휴전선 이북의 모 불법단체]]조차도 조선이란 이름을 계승했다고 자뻑하면서도 조선시대를 극혐하며 맹비난을 퍼붓는다 그래서 북괴에서 조선시대를 가르칠 땐 이조(李朝)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근데 어차피 지금 지들의 모습도 조선시대 그 이하이자 하위호환인 모습인데 결국 누워서 침뱉기 아닌가?
* 한국 여성들이 제일 극혐하는 역사다. 대다수의 조선 혐오 증상은 한국 여성들에게서 발원되며, 대표적으로 성리학의 산물인 '''남존여비''', '''현모양처''', '''사농공상''', '''군인 푸대접'''(문과 중시, 무과 천시) 등이 대표적이다. 시집 가면 시어머니가 갈구는 풍습도 조선 남존여비-현모양처 단계를 타면서 깊숙이 뿌리내린 악습이다. 반면에 한국 여성들이 제일 호감으로 여기는 역사는 [[고려]]다. 아휴 진짜... 요즘 일부 여자들 무고 무섭다. 아니... 세모자 사건이나 서정범 교수 무고 사건을 보면 벌써 1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씨발 정말 전국적으로 [[남녀칠세부동석]]이라도 시행해야 하나?
* 한국 여성들이 제일 극혐하는 역사다. 대다수의 조선 혐오 증상은 한국 여성들에게서 발원되며, 대표적으로 성리학의 산물인 '''남존여비''', '''현모양처''', '''사농공상''', '''군인 푸대접'''(문과 중시, 무과 천시) 등이 대표적이다. 시집 가면 시어머니가 갈구는 풍습도 조선 남존여비-현모양처 단계를 타면서 깊숙이 뿌리내린 악습이다. 반면에 한국 여성들이 제일 호감으로 여기는 역사는 [[고려]]다. 아휴 진짜... 요즘 일부 여자들 무고 무섭다. 아니... 세모자 사건이나 서정범 교수 무고 사건을 보면 벌써 1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씨발 정말 전국적으로 [[남녀칠세부동석]]이라도 시행해야 하나?
* 웬만하면 모든 한국 역사를 날조해서 [[미국]]으로 만들어버리는 [[환빠]]들도 혐오하는 나라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최근 환빠들은 조선이 아예 반도에 있지 않고 아메리카에 있었다는 '아메리카대조선'이라는 설을 퍼뜨리고 있다.
* 웬만하면 모든 한국 역사를 날조해서 [[미국]]으로 만들어버리는 [[환빠]]들도 혐오하는 나라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최근 환빠들은 조선이 아예 반도에 있지 않고 아메리카에 있었다는 '아메리카대조선'이라는 설을 퍼뜨리고 있다.
* [[일본]], [[대만]], [[중화인민공화국]] 등 인접 국가 모두가 만만한 약소국으로 보고 있다. 한 나라도 아니고 여러 나라가 다 병신으로 본다면 그것은 상대가 우릴 비하하려 왜곡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업보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짱깨 새끼들은 청나라 시절 생각하면서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도 있다고 봐야한다.
* [[일본]], [[대만]], [[중화인민공화국]] 등 인접 국가 모두가 만만한 약소국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1800년대 이후에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도 조선을 만만하게 봤다. 한 나라도 아니고 여러 나라가 다 병신으로 본다면 그것은 상대가 우릴 비하하려 왜곡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업보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짱깨 새끼들은 청나라 시절 생각하면서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도 있다고 봐야한다.  
* 매년 미스코리아 같은 대회를 창설해 전국 8도에서 가장 이쁜 여자들을 뽑아 명나라에 처녀로 조공했다. 다만 처녀 조공은 세종 시기에 폐지되었다고 함. 세종이 너무한거 아니냐고 존나게 싹싹 빌어서 폐지함 ㅇㅇ
* 매년 미스코리아 같은 대회를 창설해 전국 8도에서 가장 이쁜 여자들을 뽑아 명나라에 처녀로 조공했다. 다만 처녀 조공은 세종 시기에 폐지되었다고 함. 세종이 너무한거 아니냐고 존나게 싹싹 빌어서 폐지함 ㅇㅇ
* '''국가가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서 백성이 나라를 지킨 유일한 나라'''다. 대표적인 게 임진왜란이다. [[고종]]은 아예 생판 다른 나라인 러시아 공사관으로 튀는 [[아관파천|기행]]을 보여줘서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에게 빅-웃음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 '''국가가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서 백성이 나라를 지킨 유일한 나라'''다. 대표적인 게 임진왜란이다. [[고종]]은 아예 생판 다른 나라인 러시아 공사관으로 튀는 [[아관파천|기행]]을 보여줘서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에게 빅-웃음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 '''국가가 다른 나라 군대를 불러서 자국민을 학살한 유일한 나라'''다. (1894년 9월) 제2차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고종은 이를 제압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에 지원을 요청했다. 제1차 농민 봉기 (동년 3월) 때 전주성을 동학농민군에게 점령당했던 트라우마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10년 전 갑신정변 때 맺었던 톈진조약 핑계로 청군과 같이 한반도에 들어왔고 수많은 의병을 학살했다. 어찌 보면 청일전쟁의 실질적인 원흉이 바로 고좆이다.
* '''국가가 다른 나라 군대를 불러서 자국민을 학살한 유일한 나라'''다. (1894년 9월) 제2차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고종은 이를 제압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에 지원을 요청했다. 제1차 농민 봉기 (동년 3월) 때 전주성을 동학농민군에게 점령당했던 트라우마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10년 전 갑신정변 때 맺었던 톈진조약 핑계로 청군과 같이 한반도에 들어왔고 수많은 의병을 학살했다. 어찌 보면 청일전쟁의 실질적인 원흉이 바로 고좆이다.
* '''국가가 자국민의 절반을 노비로 부린 유일한 나라'''다. 전 국민의 40%가 노비였다. 40% 노비의 대다수는 전쟁 포로가 아니고 자국민이었다. 다만 정석 노비로 부리면 세금 낼 놈들이 없어지니까, 봉급도 주고 땅도 빌려주는 일종의 노동자 개념으로 부렸다. 몰론 [[공무원|공노비]] 한정으로 [[좆소기업|사노비]]는 그냥 노예 그 자체였을 뿐이다.
* '''국가가 자국민의 절반을 노비로 부린 유일한 나라'''다. 전 국민의 40%가 노비였다. 40% 노비의 대다수는 전쟁 포로가 아니고 자국민이었다. 다만 정석 노비로 부리면 세금 낼 놈들이 없어지니까, 봉급도 주고 땅도 빌려주는 일종의 노동자 개념으로 부렸다. 몰론 [[공무원|공노비]] 한정으로 [[좆소기업|사노비]]는 그냥 노예 그 자체였을 뿐이다.  
* 부민고소금지법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백성들이 왕에게 상소문을 올리지 못하게 하였다. 오늘날로 치면 멀쩡하게 돌아가던 청와대 국민청원을 뜬금없이 섭종해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 부민고소금지법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백성들이 왕에게 상소문을 올리지 못하게 하였다. 오늘날로 치면 멀쩡하게 돌아가던 청와대 국민청원을 뜬금없이 섭종해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 자국 역사 왜곡에 가장 앞장선 나라다. 정통성을 위해 고려사를 일정 부분 훼손 시도했는데, 세종과 정조가 이것을 금하여 그나마 〈고려사절요〉 같은 사서가 남게 되었다. 또한 발해를 '북적' 취급해서 고구려와 조선을 별개의 역사로 봤을 뿐만 아니라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기자조선'을 정통성으로 보았다. 현대 우리가 '단군조선'을 정통성으로 보는 것은 환빠 역사학자들이 그나마 조선의 악습 사관을 개선한 유일한 공으로(유일하게 환빠를 좋게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선은 '소중화 사상'을 외치며 중국인과 혈육적으로도 내선일체하려고 노력하였다.
* 자국 역사 왜곡에 가장 앞장선 나라다. 정통성을 위해 고려사를 일정 부분 훼손 시도했는데, 세종과 정조가 이것을 금하여 그나마 〈고려사절요〉 같은 사서가 남게 되었다. 또한 발해를 '북적' 취급해서 고구려와 조선을 별개의 역사로 봤을 뿐만 아니라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기자조선'을 정통성으로 보았다. 현대 우리가 '단군조선'을 정통성으로 보는 것은 환빠 역사학자들이 그나마 조선의 악습 사관을 개선한 유일한 공으로(유일하게 환빠를 좋게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선은 '소중화 사상'을 외치며 중국인과 혈육적으로도 내선일체하려고 노력하였다.
* 짱개, 쪽본 놈들도 조선이란 단어가 욕인 걸 아는지 서로 '서조선'(물론 여기서 말하는 조선은 북한이긴 하지만 어쨌든 짱깨국 내에서는 공산당 비판을 대놓고 하다가는 공안이 마라탕을 배달하러 오므로 잘 사는 것만 빼면 북한이랑 다를 게 없다고 돌려까는 의미로 쓰인다), '동조선' 거리면서 자국을 깎아내리는데 조선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 짱개, 쪽본 놈들도 조선이란 단어가 욕인 걸 아는지 서로 '서조선'(물론 여기서 말하는 조선은 북한이긴 하지만 어쨌든 짱깨국 내에서는 공산당 비판을 대놓고 하다가는 공안이 마라탕을 배달하러 오므로 잘 사는 것만 빼면 북한이랑 다를 게 없다고 돌려까는 의미로 쓰인다), '동조선' 거리면서 자국을 깎아내리는데 조선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 [[헬조선]] 단어의 아버지이다. 사실 헬조선이라는 것은 현대 대한민국의 단점이 조선 시대의 그 비참한 역사와 동질감을 형성한다고 생각하는 시각에서 온 비하 용어로, 결국은 조선의 병신 이미지를 한국 사회에 덮어씌우는 것이다.
* [[헬조선]] 단어의 아버지이다. 사실 헬조선이라는 것은 현대 대한민국의 단점이 조선 시대의 그 비참한 역사와 동질감을 형성한다고 생각하는 시각에서 온 비하 용어로, 결국은 조선의 병신 이미지를 한국 사회에 덮어씌우는 것이다. 물론 헬조선 이론에 일제강점기가 큰 영향을 주긴 했지만 일제강점기는 막타였고 1800년대 이후부터 내부에서 썩어간 나라가 조선이였다고 말해도 틀린건 아니다.
* 나라가 너무 썩어문드러져 망해가던 시기인 개화기때 이것저것 개혁을 시도하려했으나 왕 자체가 유교탈레반 꼰대 틀딱이었고 뭐 좀 하려고하면 늘 왕의 헛기침 한방에 엎어져버렸다. 그나마 왕을 견제할 수 있었던 [[양반]]새끼들도 뭐 좀 하려고 들면 [[유교]]에 반하는 행위 운운하면서 단체로 반대했었다.<ref>실제로 한국사에서 종종 양반층이 단체로 왕한테 개기던 적이 몇 번 있었을 정도로 양반도 무시 못 할 권력계층이었다. 당장 그 유명한 안동 김씨가문도 이씨왕조한테 개길수 있을만큼 힘이 강했다.</ref> 반면에 당시 일본은 지금처럼 왕이 내각에다 통치권한을 신하들에게 위임하고 아무것도 안 했기 때문에 일본의 상징으로서 남아 있다. 그래서 개혁이 쉽게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개화파]]들을 [[친일파]]로 흑화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그 후 [[한일합방]]이 일어났다.
* 나라가 너무 썩어문드러져 망해가던 시기인 개화기때 이것저것 개혁을 시도하려했으나 왕 자체가 유교탈레반 꼰대 틀딱이었고 뭐 좀 하려고하면 늘 왕의 헛기침 한방에 엎어져버렸다. 그나마 왕을 견제할 수 있었던 [[양반]]새끼들도 뭐 좀 하려고 들면 [[유교]]에 반하는 행위 운운하면서 단체로 반대했었다.<ref>실제로 한국사에서 종종 양반층이 단체로 왕한테 개기던 적이 몇 번 있었을 정도로 양반도 무시 못 할 권력계층이었다. 당장 그 유명한 안동 김씨가문도 이씨왕조한테 개길수 있을만큼 힘이 강했다.</ref> 반면에 당시 일본은 지금처럼 왕이 내각에다 통치권한을 신하들에게 위임하고 아무것도 안 했기 때문에 일본의 상징으로서 남아 있다. 그래서 개혁이 쉽게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개화파]]들을 [[친일파]]로 흑화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그 후 [[한일합방]]이 일어났다.
* 조선 말기에는 신분을 사고 파는 일까지 일어났다. 양반이 스스로 양반 직위를 포기해서 백성에게 매매하는거다 당연 백성은 나도 양반좀 되어보자며 좋다고 사들였다 이런 일은 나라가 망했을때 부자들이 빨리 현금화하기 위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개족보가 이때 나왔고 현시대에 뼈대있는 양반가문이라고 자뻑하는 가족들은 이때 양반 족보를 산게 아닌지 의심해봐야된다.
* 한민족 역사속의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영토 전체가 외세의 '''직접통치로''' 넘어간 나라다. 고려시대에도 원 간섭기였지 언어를 지키려는 세력이 탄압받고 고려의 부유층이 원나라의 말단 공무원의 눈치를 보는 수준은 아니였다. 한민족 전성기라면 나름 전성기인 삼국시대 역시나 신라의 통수질로 만주땅 잃었지만 당나라와 당당히 싸워서 이기고 통일신라까지는 일본이 함부로 깝치지 못했다.


== 조선은 어쩌다가 이렇게 병신같은 나라가 됐는가? ==
=== 어쩌다가 나라가 병신이 되었는가? ===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나라의 근간을 잘못 잡은 탓이 크다. 조선은 성리학을(조선 건국 당시에는 성리학이 최신학문이었다) 국가 이념으로 삼고, 유교 이상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인 국가였다. 그래서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는 것을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삼았고, 대대로 세금을 굉장히 적게 걷는 편이었다. 엥? 좋은 거 아니야?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국가가 제대로 안 돌아갈 정도로 세금을 안 걷으니까 문제지. 세금을 너무 적게 걷으니까 왕 앞마당인 서울은 몰라도 지방쪽에는 예산이 당연히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지방 지주인 향리층의 부정부패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백성들의 부담이 커지는 역효과를 낳게 되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나라의 근간을 잘못 잡은 탓이 크다. 조선은 성리학을(조선 건국 당시에는 성리학이 최신학문이었다) 국가 이념으로 삼고, 유교 이상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인 국가였다. 그래서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는 것을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삼았고, 대대로 세금을 굉장히 적게 걷는 편이었다. 엥? 좋은 거 아니야?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국가가 제대로 안 돌아갈 정도로 세금을 안 걷으니까 문제지. 세금을 너무 적게 걷으니까 왕 앞마당인 서울은 몰라도 지방쪽에는 예산이 당연히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지방 지주인 향리층의 부정부패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백성들의 부담이 커지는 역효과를 낳게 되었다.


146번째 줄: 178번째 줄:


결국 거지인데다가 폐쇄적인 사회였다는 것=국가 전체가 수백년간 고인물로 남아있었다는 점이 조선의 병신성을 99% 설명할 수 있다.
결국 거지인데다가 폐쇄적인 사회였다는 것=국가 전체가 수백년간 고인물로 남아있었다는 점이 조선의 병신성을 99% 설명할 수 있다.
조금 더 보태자면 본래 조선 건국세력은 실용적 측면이 강했던 급진파 사대부 훈구였다.후대의 명분 의리만 따지는 온건파 사대부 사림이 아니라.
근데 조선은 쭉 보면 문종때까지는 과학적으로도 썩 나쁘지는 않은 모습도 보이고 행정도 괜찮은 모습을 보이는데,단종때 세조가 계유정란을 일으킨 이후 훈구가 권문세족마냥 미쳐돌아간다. 결국 훈구(=급진파 실용주의적 사대부)는 선조대에 들어 명분의리를 과도하게 따지는 사림에게 완전히 사라지면서 정말 마음속 끝까지 중국 응디를 핥게 된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성리학을 기본 이념으로 한 것도 문제지만 문종이 갑자기 너무 빠르게 사망한 것도 어느 정도 조선의 똥국가화에 기여했다고 할수 있는데
문종 죽인게 세조가 뒷공작을 했다는 가설이 있다.
내가 봤을때 조선왕조는 지 도와준 놈들한테 공직을 물 퍼주듯이 나눠준 세조부터 개망테크를 탔다고 생각한다
== 관련 문헌 ==
[[북조선]]을 보면 된다. 조선과 정확하게 99% 일치한다
왕 = 최고조넘
유생 = 평양 린민
노비 = 그 외
사실 꽤 많다.
ㄴ 제대로 보면 일본 제국이다. 이영훈도 북한을 일본의 천황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국가라고 저서 대한민국 이야기에서 서술했다.
[[파일:조선은 왜!.jpg]]
오항녕 교수의 「조선의 힘」도 읽어 봐라. 이 사람은 어쨌든 조선사 전문가니까.


== 정통성 ==
== 정통성 ==
308번째 줄: 314번째 줄:


== 공녀제도와 명나라의 조선인 후궁들 ==
== 공녀제도와 명나라의 조선인 후궁들 ==
공녀제도로 조공제도를 공격하는 이유는 당시대가 인신매매가 합법적이었던 전근대시대였다는 사실을 자꾸 까먹는 경우 때문이다.


지구 어디서나 국가간에 노예를 사고 팔았으며, 심지어 러시아의 경우는 너무 노예로 많이 팔려가서 민족이름이 '슬라브'가 되었다.
참고자료: '''명나라 황제들이 맞이한 조선인 후궁들'''  
일본도 도요토미 정권하에 수만에 달하는 여성들이 무기수입을 위해 포르투갈에 노예로 팔려나갔다(자국민으로도 수요가 차지 않아 조선인까지 팔아치우게 되었음).
근대 국민국가 성립 초반까지 인간은 세계 어디에서나 '상품'으로 매매되었다.


조선이 언제 돈 받고 팔았냐? 그냥 바쳤지 ㅋㅋ 끌려가기 싫어서 명 사신이 왔다는 말에 일부러 스스로 얼굴에 독약을 바른다는 비극적인 일들이 버젓이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명나라에 어린 소녀들을 정액받이로 바쳐댄게 그냥 전근대 국가간에 흔했던 거래에 불과하다면 세종이 기를 쓰고 처녀 조공만은 근절시키려고 명 황실에 애걸복걸하며 노력한건 대체 왜 그런걸까? 응?
이 글은 중국의 지식공유 사이트, 커뮤니티에 게재된 ' 명나라 황제는 모두 몇 명의 조선 아내를 맞아들였을까?'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한중 양국민의 과거 역사 인식에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을 번역했다./ 편집자 주


또한 명나라로 간 공녀들은 궁녀 뿐 아니라 요리사, 기예가, 후궁로서 명황궁에 종신고용된 경우도 많으며, 그 중에는 귀족 출신으로 명황실 권력의 핵심부에 머무른 여성도 적지 않다. 임란때 구원군을 보낸 만력제가 조선에 호의적이었던 이유도 당시 명황실의 왕할머니 포지션인 조선인 할머니에게 품었던 호의에 비롯된 면도 있다.
대장금이 있던 조선시대, 중국과 조선 사이에는 한가족 같이 지내는 일이 많았다. 명나라 영락(永樂), 선덕(宣德)황제 시대에는 각각 8명의 조선 후궁이 있었다. 시녀, 여사(女史, 후궁을 섬기며 기록과 문서를 맡아보던 여관)로 있던 조선 여성은 영락황제 시절 22명, 선덕황제 시절 16명, 청나라로 넘어가기 전 10명, 순치(順治)황제 시절 16명이 각각 있었으며 노래와 춤을 전문으로 하는 예술인, 주방장만하더라도 선덕황제 때에만 100명이 넘었다.  


지랄한다 오히려 후궁이나 궁녀가 되어 잘살게 된 케이스야 말로 소수고 대부분은 거리의 창기가 되어 슬픈 생애를 마감해서 조선 사신이 그 꼬라지를 보고 울었다는 기록도 있는 판국에 ㅋㅋ고려가 원나라에 처녀조공 한 걸 보면 후궁따위를 넘어서 아예 기황후처럼 원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위치까지 간 케이스도 있는데 그렇다고 고려가 원에게 바쳐댄 소녀들이 잘먹고 잘살았을거 같냐?
이 같은 여성은 조국의 언어, 음식, 복장, 가무, 지방 특색과 풍습 등 문화풍속을 중국 궁정에 그대로 들여 와 두 민족의 문화적 교류를 촉진시켰으며 양국 정부와 인민의 우호관계를 증진시키는 중요한 역사적 역할을 했다.  
 
물론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공녀제도 자체는 당연히 사악한 것이고, 몽골인의 인구확대를 목적으로 대규모의 납치가 이루어지던 원나라 시절과 혼동하며 자학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선의 공녀는 원나라시절 같은 대규모의 강제 인구이동이 아니라 훨씬 소수, 문명5로 치면 '사치품 수출입'에 가까운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unayoon715&logNo=220797594437&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응 정신승리 그만해 황궁에 종신고용은 개뿔 정액받이로 비참하게 살다 일생 끝마치는 처녀들이 훨씬 많았음 ㅅㄱ
 
게다가 대체 언제 조선이 값을 받고 명나라에 인간을 수출했냐? 그냥 '바친'건데 어디서 전근대 흔한 거래였다는 식으로 은근슬쩍 넘기려 하냐 짱깨몽 새끼야ㅋ
 
짱깨새끼들이 한민족에게 한 짓은 일제시대만큼 악랄했다.
 
참고자료: '''명나라 황제들이 맞이한 조선인 후궁들'''
 
이 글은 중국의 지식공유 사이트, 커뮤니티에 게재된 ' 명나라 황제는 모두 몇 명의 조선 아내를 맞아들였을까?'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한중 양국민의 과거 역사 인식에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을 번역했다./ 편집자 주
 
대장금이 있던 조선시대, 중국과 조선 사이에는 한가족 같이 지내는 일이 많았다. 명나라 영락(永樂), 선덕(宣德)황제 시대에는 각각 8명의 조선 후궁이 있었다. 시녀, 여사(女史, 후궁을 섬기며 기록과 문서를 맡아보던 여관)로 있던 조선 여성은 영락황제 시절 22명, 선덕황제 시절 16명, 청나라로 넘어가기 전 10명, 순치(順治)황제 시절 16명이 각각 있었으며 노래와 춤을 전문으로 하는 예술인, 주방장만하더라도 선덕황제 때에만 100명이 넘었다.
 
이 같은 여성은 조국의 언어, 음식, 복장, 가무, 지방 특색과 풍습 등 문화풍속을 중국 궁정에 그대로 들여 와 두 민족의 문화적 교류를 촉진시켰으며 양국 정부와 인민의 우호관계를 증진시키는 중요한 역사적 역할을 했다.  


명나라 영락황제, 선덕황제는 각자 여러 명의 조선 후궁을 거느렸으며 일부는 1482년 이후까지 살았다. 정덕(正德) 후기, 명 무종(武宗)은 조선에 가서 후궁을 선발해 조선 전체가 순식간에 불안에 빠지기도 했으며 청나라가 세워지기 전 섭정왕인 도르곤은 조선 여인을 첩으로 맞아들이기도 했다.  
명나라 영락황제, 선덕황제는 각자 여러 명의 조선 후궁을 거느렸으며 일부는 1482년 이후까지 살았다. 정덕(正德) 후기, 명 무종(武宗)은 조선에 가서 후궁을 선발해 조선 전체가 순식간에 불안에 빠지기도 했으며 청나라가 세워지기 전 섭정왕인 도르곤은 조선 여인을 첩으로 맞아들이기도 했다.  
400번째 줄: 385번째 줄: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의 후궁은 언어, 음식, 패션, 가무, 지방 특색과 풍습 등 조국의 문화풍속을 중국 궁정으로 들여와 양국 민족의 문화교류를 촉진시켰으며 양국 정부와 인민의 우호관계를 증진시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의 후궁은 언어, 음식, 패션, 가무, 지방 특색과 풍습 등 조국의 문화풍속을 중국 궁정으로 들여와 양국 민족의 문화교류를 촉진시켰으며 양국 정부와 인민의 우호관계를 증진시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unayoon715&logNo=220797594437&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그러나 대부분은 정액받이로 살다 비참하고 슬픈 인생을 끝마쳤다.


=== 성리학과 조선의 제도 ===  
=== 성리학과 조선의 제도 ===  
443번째 줄: 426번째 줄:


== 말기 ==
== 말기 ==
{{지옥그자체}}
{{지옥그자체|심플}}
인세지옥이자 인페르노 조센
'''인세지옥이자 인페르노 조센'''


본격적으로 헬조선이 망해가던 시기
본격적으로 헬조선이 망해가던 시기
487번째 줄: 470번째 줄:
로얄귀족의 나라 고려를 비판하며 까대던 이새끼들도 막상 족벌주의와 지역차별이 존나게 심했다. 영남, 호남, 호서로 불리던 세 지역은 지방치고는 대대로 조선의 지배층들을 많이 배출하였는데, 함정 카드로 이쉑들 뿌리가 최소 고려 시절부터 헤처먹던 새끼들이다. 이 지역들은 곡창 지대를 가지고 있거나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받던 곳들이 있어서 옛날부터 은근 탐을 내던 새끼들이 많았다. 그리고 거기에 가서 진짜 헤처먹고 그 부를 조정과 지들 출신 집안에 보내는 새끼들 많았다. 평안도, 함경도 같은 북부도 존나게 차별을 받았지만 여기서도 이성계 라인을 탔던 출신이면 잘 나갔다. 어떻게 보면 홍경래 같은 새끼들이 개빡쳐서 지랄했던 것도 이해가 될 정도이다. 참고로 조선 조정에서는 이런 불만론자들에게 니들 지방 출신도 기용하는데, 뭐가 불만이야! 역적패당들아!라고 했으나 까보면 지들이랑 상관이 없었기에 좆도 먹히지 않았다. 조선시대 학자인 윤기도 그딴 꼬라지를 좆같이 여겼다. 이새끼에 의하면 당시 조선은 집안이 후지면 답이 없었다. 반대로 집안이 좋으면 어떻게든 기회가 생겼다. 참고로 음서제로 유명한 고려는 이것보다 더 심하긴 했다. 무신들이 빡쳐서 높으신 문신들 쳐죽인 게 이해가 될 정도이다. 집안이 더 좋으면 좆밥 관직이여도 지보다 높은 관직을 가진 하찮은 출신 놈한테 심지어 명령을 내리거나 멸시하는 하극상마저 가능한했던 게 고려이다. 조선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무신들도 그런 형태를 참고 참다가 무신 노인네한테 한 하극상에 빡쳐서 반란 일으켰다. 저 하극상 사건은 지금으로 치면 60대 중장(3스타)에게 30대 5급 사무관이 뺨아리를 갈겨서다. 물론 무신들도 막상 지들이 정권을 잡니 천출들을 좋아하진 않았다.
로얄귀족의 나라 고려를 비판하며 까대던 이새끼들도 막상 족벌주의와 지역차별이 존나게 심했다. 영남, 호남, 호서로 불리던 세 지역은 지방치고는 대대로 조선의 지배층들을 많이 배출하였는데, 함정 카드로 이쉑들 뿌리가 최소 고려 시절부터 헤처먹던 새끼들이다. 이 지역들은 곡창 지대를 가지고 있거나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받던 곳들이 있어서 옛날부터 은근 탐을 내던 새끼들이 많았다. 그리고 거기에 가서 진짜 헤처먹고 그 부를 조정과 지들 출신 집안에 보내는 새끼들 많았다. 평안도, 함경도 같은 북부도 존나게 차별을 받았지만 여기서도 이성계 라인을 탔던 출신이면 잘 나갔다. 어떻게 보면 홍경래 같은 새끼들이 개빡쳐서 지랄했던 것도 이해가 될 정도이다. 참고로 조선 조정에서는 이런 불만론자들에게 니들 지방 출신도 기용하는데, 뭐가 불만이야! 역적패당들아!라고 했으나 까보면 지들이랑 상관이 없었기에 좆도 먹히지 않았다. 조선시대 학자인 윤기도 그딴 꼬라지를 좆같이 여겼다. 이새끼에 의하면 당시 조선은 집안이 후지면 답이 없었다. 반대로 집안이 좋으면 어떻게든 기회가 생겼다. 참고로 음서제로 유명한 고려는 이것보다 더 심하긴 했다. 무신들이 빡쳐서 높으신 문신들 쳐죽인 게 이해가 될 정도이다. 집안이 더 좋으면 좆밥 관직이여도 지보다 높은 관직을 가진 하찮은 출신 놈한테 심지어 명령을 내리거나 멸시하는 하극상마저 가능한했던 게 고려이다. 조선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무신들도 그런 형태를 참고 참다가 무신 노인네한테 한 하극상에 빡쳐서 반란 일으켰다. 저 하극상 사건은 지금으로 치면 60대 중장(3스타)에게 30대 5급 사무관이 뺨아리를 갈겨서다. 물론 무신들도 막상 지들이 정권을 잡니 천출들을 좋아하진 않았다.


== 명나라와의 관계 ==
== [[명나라]]와의 관계 ==
[[파일:순이.jpg]]
<div align=center>[[파일:순이.jpg]]</div>


그냥 간단히 명백한 명나라의 속국이다. -> 조선왕조실록 보면 그냥 스스로 처음부터 외번을 자청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야, 우덜이 요동 실효지배 시도하다 버리고 떠난 관청이랑 백성들 있는데 거기서 왕 할래?" 괜히 제안한 거 아니다.
한마디로 명백한 [[명나라]]의 속국이다. [[조선왕조실록]] 보면 그냥 스스로 처음부터 외번을 자청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야, 우덜이 요동 실효지배 시도하다 버리고 떠난 관청이랑 백성들 있는데 거기서 왕 할래?" 괜히 제안한 거 아니다.


그나마 독립국으로 인정은 해줬다는게 다행이다. 사실 이점은 청나라때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그나마 독립국으로 인정은 해줬다는게 다행이다. 사실 이점은 청나라때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498번째 줄: 481번째 줄:
=== 건국 초 ===
=== 건국 초 ===
{{의외}}
{{의외}}
홍무제는 생전에 조선군 20만명만 요동에 쳐 기들어와도 우린 헬게이트 오픈임 ㅇㅇ 이랬다고 한다.
[[홍무제]]는 생전에 "조선군 20만명만 요동에 쳐 기들어와도 우린 헬게이트 오픈임 ㅇㅇ"이랬다고 한다.


물론 당시 명나라가 조선보다 동원력이 월등히 앞썼고 오랜 전란이 겨우 끝났다고 해도 정예병력만 20만이기 때문에 엄살처럼 보일수도 있겠으나 아직 후방에는 북원세력이 도사리고 있었고 그나마도 원나라 잔존세력과의 대치때문에 병력이 분산되어 있었다.  
물론 당시 명나라가 조선보다 동원력이 월등히 앞썼고 오랜 전란이 겨우 끝났다고 해도 정예병력만 20만이기 때문에 엄살처럼 보일수도 있겠으나 아직 후방에는 [[북원]]세력이 도사리고 있었고 그나마도 [[원나라]] 잔존세력과의 대치때문에 병력이 분산되어 있었다.  


이때문에 홍무제는 조선을 견제하고 있었고 태조시기에는 조선도 처돌았는지 명나라의 몽니에 어깃장을 부린다. 대표적인 게 정도전이다.
이때문에 홍무제는 조선을 견제하고 있었고 태조시기에는 조선도 처돌았는지 명나라의 몽니에 어깃장을 부린다. 대표적인 게 정도전이다.


정도전의 요동정벌 계획 및 여진족 귀순문제를 둘러싼 마찰로 인해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또한 정도전이 말 안듣고 계속 개지랄하니까 여러번 정도전을 명에 보낼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정도전]]의 요동정벌 계획 및 여진족 귀순문제를 둘러싼 마찰로 인해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또한 정도전이 말 안듣고 계속 개지랄하니까 여러번 정도전을 명에 보낼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인용|임금이 황제의 명령에 따라 이성, 강계 등지에 와서 의탁한 여진의 인물을 찾아 돌려보내기를 청하였다. 임금이 좌우에 이르기를 "황제는 군사가 많고 .... 작은  나라를 자주 책망하면서 강제로 청구함이 한량이 없었다. 지금 또 나에게 죄가 아닌것을 책망하면서 군대를 일으키겠다고 위협하니, 이것이 어린아이에게 공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였다.
{{인용|임금이 황제의 명령에 따라 이성, 강계 등지에 와서 의탁한 여진의 인물을 찾아 돌려보내기를 청하였다. 임금이 좌우에 이르기를 "황제는 군사가 많고 .... 작은  나라를 자주 책망하면서 강제로 청구함이 한량이 없었다. 지금 또 나에게 죄가 아닌것을 책망하면서 군대를 일으키겠다고 위협하니, 이것이 어린아이에게 공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였다.| 태조실록}}
                                                                                                                          < 태조실록 >}}


원래 명나라 주원장은 여진족 기병을 기반으로 삼은 이성계를 경계하고 있었다.
원래 명나라 주원장은 여진족 기병을 기반으로 삼은 이성계를 경계하고 있었다.
581번째 줄: 563번째 줄:


세계사를 통틀어 왕이 나라경영을 뒷전으로 배우고 사상학문에 몰빵하는 나라는 조선이란 나라밖에 없었다. 현대 헬조선 학자들은 대단한거라고 자위하지만 대기업 회장이 경영학, 경제학 안배우고 성경책이나 도덕책 보고있는 꼴이나 마찬가진걸 뭐가 대단하다는 건지?  
세계사를 통틀어 왕이 나라경영을 뒷전으로 배우고 사상학문에 몰빵하는 나라는 조선이란 나라밖에 없었다. 현대 헬조선 학자들은 대단한거라고 자위하지만 대기업 회장이 경영학, 경제학 안배우고 성경책이나 도덕책 보고있는 꼴이나 마찬가진걸 뭐가 대단하다는 건지?  
ㄴ 웃긴건 그 지랄을 했어도 철학 수준마저도 서양에 털렸다


하지만 조선에서도 청나라를 통해 학문분화는 후기에나 시작되지 그마저도 같은 유학내의 분파 개념이라고 생각해야 하며, 그들이 집권을 못함으로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하지만 조선에서도 청나라를 통해 학문분화는 후기에나 시작되지 그마저도 같은 유학내의 분파 개념이라고 생각해야 하며, 그들이 집권을 못함으로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633번째 줄: 617번째 줄:
:귀족 놈들은 죄다 자국민 노예로 삼았다. 자국민 노예 해방자란 헛소리가 있는 칭키즈칸도 막상 자국민 부족 학살하고 보골로 삼았다. 황금씨족들조차 청나라 때 만주족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들한테 개기는 자국민 노예들 죽이는데 관심이 있었지.
:귀족 놈들은 죄다 자국민 노예로 삼았다. 자국민 노예 해방자란 헛소리가 있는 칭키즈칸도 막상 자국민 부족 학살하고 보골로 삼았다. 황금씨족들조차 청나라 때 만주족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들한테 개기는 자국민 노예들 죽이는데 관심이 있었지.


알렉산더 보빈 같은 학자들은 일본과 연관하여 역사시대 이전 한반도는 일본어와 유사한 언어를 사용했는데, 그들과 다른 특정 집단에 의한 정복에 의해 현대 한국어로 서서히 바뀌었다는 주장도 한다. 왜냐면 한국과 일본이 지리적으로 보면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생물학적으로 보면 비슷하면서도 뭔가 확연히 다른 것들이 있다. 일본은 확실히 동남아에 가깝다. 실제로 체취에 대한 유전자도 동남아와 유사하다. 물론 요즘 연구 결과론 우리 한민족도 옛날에는 동남아 민족들과 연관이 있었다고는 하는데(한반도에 처음 있었던 새끼들은 유전자가 동남아 민족들과 비슷함), 인위적으로 학살을 당해서 유전자 개조를 당했을 수 있다. 일단 놀랍게도 일본과 부계는 출신이 확연히 다르지만 모계는 거의 일치한다. D5, D4,G,M7,F,B4,B5,A,N9a가 일본인의 구인의 모라 불리는데, 한국인과 일치한다. 심지어 모계로만 보자면 만주족보다도 가깝다. 물론 부계가 다르기 때문에 일본년들이 한국년들과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일단 중국의 경우 유교가 주류를 이루기 전까지는 북방에 있던 중국 민족 새끼들이 남방에 있던 중국 민족들을 진짜 대량 학살하여 유전자가 변한 곳이 많다. 쓰촨 지역도 원래는 남중국인들이 있었으나 이미 한나라 시절 정도면 거의 다 몰살되어서 혈통은 북중국이었다. 물론 모계로 보면 중국 새끼들 혈통도 사실 다를 수도 있다. 중국인들은 부계는 일치하는 편이나 모계는 그야말로 막장인 편이다.


:추가 설명하자면, 일본인은 동남아랑 관계가 있었다기 보다는 고아시아인 조몬인들 때문에 한국인들하고 유전적 차이가 생긴거고(y하플로 d계열, mt하플로 Y계열들) 한국하고 일본은 o2b도 공유하기 때문에 부계도 쌩판 다르다고 볼 수 없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한국은 동남쪽으로 갈수록 일본인과 비슷해지고, 북서쪽으로 갈수록 한족과 비슷해진다. 전라도, 경상도는 y하플로 d1그룹이 타 지역보다 높게 나타나고 (o 출현 이전 아주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 살아온 사람이거나 일본에서 건너온건데 인구수가 너무 적어서 5%도 안됨) 일본인 대표 y하플로 중 하나인 o2b-47z도 상당히 자주 나오기 때문에 일본인과 관계가 깊다고 볼 수 있다. 언어같은 경우에는 존나 복잡한데 한국어랑 일본어는 문법은 거의 비슷하면서도 단어는 쌩판 달라서 이전에 넘어간 야요이인(고대 한국인)들이 일본어에 영향을 준 거 아닐까라는 가설도 있고 그냥 우연의 일치라는 가설도 있다. 일단 한일은 중일이나 다른 국가에 비하면 붙어있다시피 한만큼 둘이 부정을 하든말든 서로 교류가 많았다는 건 사실이다.


조선 성종 때 신자치(愼自治)의 여종 겁탈사건이 실록에 기록돼 있다. 참봉 신자치의 집에 외모가 뛰어난 도리(道里)라는 계집종이 있었다. 어느 날 참봉은 부인 몰래 도리를 겁탈을 하게 된다. 그러나 종의 몸으로 상전의 노리개가 됐다고 해서 당시로서는 문제가 될 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신자치의 아내가 알게됐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조선 성종 때 신자치(愼自治)의 여종 겁탈사건이 실록에 기록돼 있다. 참봉 신자치의 집에 외모가 뛰어난 도리(道里)라는 계집종이 있었다. 어느 날 참봉은 부인 몰래 도리를 겁탈을 하게 된다. 그러나 종의 몸으로 상전의 노리개가 됐다고 해서 당시로서는 문제가 될 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신자치의 아내가 알게됐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648번째 줄: 630번째 줄:
국뽕교과서로만 공부하면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인데 노비의 비율이 무지막지하게 높아진 때가 조선왕조이다.  
국뽕교과서로만 공부하면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인데 노비의 비율이 무지막지하게 높아진 때가 조선왕조이다.  
미국인 한국역사학자 제임스 팔레 교수는 '같은 민족을 노예로 삼는 나라는 조선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인 한국역사학자 제임스 팔레 교수는 '같은 민족을 노예로 삼는 나라는 조선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노비 인구가 전체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퍼센트를 넘지 않았는데 세종이 신하들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노비종모법을 통과시키면서 노비의 불법증식이 시작되며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노비인구는 전체의 40퍼센트 가까이까지 치솟는다. 더구나 노비는 양반을 고발할 수 없게 만들었다. 신문고를 두드려도 소용없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노비 인구가 전체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퍼센트를 넘지 않았는데 세종이 신하들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노비종모법을 통과시키면서 노비의 불법증식이 시작되며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노비인구는 전체의 40퍼센트 가까이까지 치솟는다. 더구나 노비는 양반을 고발할 수 없게 만들었다. 신문고를 두드려도 소용없다.  
756번째 줄: 736번째 줄:
오죽하면 조선 중,후기들어서 실학자들이 주장한게 "도로 정비해서 수레좀 씁시다"였을 정도다 대표적으로 급식시절 초중고에서 배우는 실학자 박지원의그 유명한 허생전 자체가 조선은 도로가 없어 유통이 이루어지지않음으로 말미암은 열악한 시장상황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오죽하면 조선 중,후기들어서 실학자들이 주장한게 "도로 정비해서 수레좀 씁시다"였을 정도다 대표적으로 급식시절 초중고에서 배우는 실학자 박지원의그 유명한 허생전 자체가 조선은 도로가 없어 유통이 이루어지지않음으로 말미암은 열악한 시장상황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가끔 조선 쉴드치는 국뽕들이 좆선은 해운에 의존하여 도로 안지었다고 쉴드 존나 치는데 시발 무슨 강이 한반도 내륙마다 그물마냥 연결되어 있으면 모를까 개헛소리니 들을가치조차 없다.
가끔 조선 쉴드치는 국뽕들이 좆선은 해운에 의존하여 도로 안지었다고 쉴드 존나 치는데 시발 무슨 강이 한반도 내륙마다 베네치아마냥 연결되어 있으면 모를까 개헛소리니 들을가치조차 없다.


다만 이는 근대 이전 국가에서 전형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로마를 언급하는데 로마 이후 유럽에서는 로마와 같은 포장도로를 발달 시키지 못했고 도로 대다수가 질척한 흙길이었다. 오죽했으면 17세기의 어떤 영국인은 도로가 병신같아서 집에서 나온 나를 저주한다는 기록을 남겼을 정도다. 다만 조선이 국가적으로 도로를 닦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도로를 닦는 것과 같은 일로 인력을 동원하는 건 민폐라고 생각했으리라 추측한다.
다만 이는 근대 이전 국가에서 전형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로마를 언급하는데 로마 이후 유럽에서는 로마와 같은 포장도로를 발달 시키지 못했고 도로 대다수가 질척한 흙길이었다. 다만 조선이 국가적으로 도로를 닦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도로를 닦는 것과 같은 일로 인력을 동원하는 건 민폐라고 생각했으리라 추측한다.


:삼면이 바다 그거는 ㄹㅇ 존나 어처구니 없는게 씨발 이탈리아도 반도지만 얘네는 워낙 씹사기니 넘어가더라도 바다 낀 나라가 한둘이 아니거늘 그 어느 나라도 조선만큼 도로가 후진 나라는 없었다. 전국 방방곡곡의 도로를 석재로 포장하는건 근대 이전에 로마만이 해냈던 일이기는 한데, 로마처럼 아예 싹 다 포장하는 미친 짓만 안했을 뿐이지 최소한의 관리들은 했다. 동시대 청나라와 비교하는 북학파들의 글만봐도 조선은 전근대 국가 중에서도 특별히 도로가 병신임이 다 나온다.
:삼면이 바다 그거는 ㄹㅇ 존나 어처구니 없는게 씨발 이탈리아도 반도지만 얘네는 워낙 씹사기니 넘어가더라도 바다 낀 나라가 한둘이 아니거늘 그 어느 나라도 조선만큼 도로가 후진 나라는 없었다. 전국 방방곡곡의 도로를 석재로 포장하는건 근대 이전에 로마만이 해냈던 일이기는 한데, 로마처럼 아예 싹 다 포장하는 미친 짓만 안했을 뿐이지 최소한의 관리들은 했다. 동시대 청나라와 비교하는 북학파들의 글만봐도 조선은 전근대 국가 중에서도 특별히 도로가 병신임이 다 나온다.
777번째 줄: 757번째 줄:
조선의 가장 큰 도시는 역시 수도인 한양이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세종대에 인구가 10만이었고 임란 이후에 4만, 조선 후기에 20만이었다고 한다. 한성부과 관할하는 한성 밖 10여리 정도의 인구까지 포함하면 30만명 정도의 인구가 살았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지명 뒤에 '-포', '-진'이 붙은 곳이 한성 주변 인구밀집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노량진, 마포등이 그 예이다.
조선의 가장 큰 도시는 역시 수도인 한양이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세종대에 인구가 10만이었고 임란 이후에 4만, 조선 후기에 20만이었다고 한다. 한성부과 관할하는 한성 밖 10여리 정도의 인구까지 포함하면 30만명 정도의 인구가 살았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지명 뒤에 '-포', '-진'이 붙은 곳이 한성 주변 인구밀집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노량진, 마포등이 그 예이다.


앞서 말했듯이 조선후기 도시의 인구집중화 현상으로 위생,환경 문제가 크게 발생한다. 한양의 식수은 토양의 오염으로 염분도가 상승했고 길거리는 오물과 똥이 방치되고 벌레가 들끓었다. 상'하수도가 정비되지 못해서 그냥 맑은 물 만있으면 마셨고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 복통에 대한 잦은 기록들이 조선 특유의 과식과 한양의 식수원 오염이 원인이라고 추정된다.
앞서 말했듯이 조선후기 도시의 인구집중화 현상으로 위생,환경 문제가 크게 발생한다. 한양의 식수은 토양의 오염으로 염분도가 상승했고 길거리는 오물과 똥이 방치되고 벌레가 들끓었다. 특히 여름되면 어떤 말로 표현도 못할정도로 지독한 냄새가 도시전체를 뒤덮었기에 조선으로 장사를 하러오거나 선교를 하러 온 외국인들도 차라리 코를 없애버리고 싶다고 한탄할정도. 상'하수도가 정비되지 못해서 그냥 맑은 물 만있으면 마셨고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 복통에 대한 잦은 기록들이 조선 특유의 과식과 한양의 식수원 오염이 원인이라고 추정된다.
 
거기다가 더럽게 씻지도 않고 머리에 이가 있으면 오히려 장수의 상징이라면서 자랑거리로 삼았다.  


그리고 계획적으로 도시가 발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건설되어 건물과 건물은 규칙성도 없었고 건물끼리 가까이 붙어있어 화제가 나면 일대가 쑥대밭이 돼버렸다. 한양에서 조그만한 화재만 나도 왕이 수시로 보고를 받고 명령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계획적으로 도시가 발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건설되어 건물과 건물은 규칙성도 없었고 건물끼리 가까이 붙어있어 화제가 나면 일대가 쑥대밭이 돼버렸다. 한양에서 조그만한 화재만 나도 왕이 수시로 보고를 받고 명령을 했다고 한다.
784번째 줄: 766번째 줄:


=== 지나친 기술 천시 풍조 ===
=== 지나친 기술 천시 풍조 ===
삼국시대보다 못한 경제적 인프라가 있다. [http://whytimes.kr/news/view.php?idx=389&mcode=m57vrxf 칼럼] 진짜 '암흑시대'라는 말을 중세 유럽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추가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깊게 통찰해 볼 필요가 있다.
삼국시대보다 못한 경제적 인프라가 있다. [http://whytimes.kr/news/view.php?idx=389&mcode=m57vrxf 칼럼] 이 병신 칼럼은 백자가 더 높은 온도에 구원서 청자보다 만들기 힘들다는 것도 모르고 쓴거니 무시하자. 진짜 '암흑시대'라는 말을 중세 유럽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추가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깊게 통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유명한 사>농>공>상의 조선 풍조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새끼들에겐 뒤진 공자 새끼 말씀이 제일 중요했고, 그 다음으로는 지들 배때지에 밥 넣어줄 농민들이 중요했고, 기술자는 필요할때만 찾는 쌍것들에 불과했다. 이러한 조선의 풍조는 발전이 정체되어 세계 제일의 극빈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그 유명한 사>농>공>상의 조선 풍조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새끼들에겐 뒤진 공자 새끼 말씀이 제일 중요했고, 그 다음으로는 지들 배때지에 밥 넣어줄 농민들이 중요했고, 기술자는 필요할때만 찾는 쌍것들에 불과했다. 이러한 조선의 풍조는 발전이 정체되어 세계 제일의 극빈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842번째 줄: 824번째 줄:
솔직히 500년동안 발전은 커녕 퇴보와 개병신짓만을 일삼았는데 다른 나라에 식민지가 돼버리지 않는 게 이상한거다
솔직히 500년동안 발전은 커녕 퇴보와 개병신짓만을 일삼았는데 다른 나라에 식민지가 돼버리지 않는 게 이상한거다


설령 일본제국이 아니었더라도 청나라나 러시아 식민지가 될 가능성 높았다.
ㄴ 이게 맞다 천몇백년전에 죽은 사람의 가르침이나 받아서 쓰고 있었고 명나라 후빨만한 아주 좆병신 국가다.
 
설령 일본제국이 아니었더라도 청나라나 러시아 식민지가 될 가능성 높았다. 만약 이랬으면 중국의 일부가 되거나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과학 기술 ==
== 과학 기술 ==
930번째 줄: 914번째 줄:


== 군대 ==
== 군대 ==
{{전투종족}}
:극극초기, 태조 이성계-문종
:단종-연산군 이전 사실 세조 때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
{{약함}}
:연산군 이후
'''진짜 개병신이다.'''
시조인 태조 이성계는 한반도 역사상 이순신과 더불어 개사기 천재 지휘관이다.  어느 정도냐면.. 전통적인 기병강국 몽골을 기병으로 격파했고, 평지에서 여진족 기병 수만을 격파하고, 산에서 농성하는 쪽바리들을 상대로 기병으로 상대하고 활로 무쌍난무 펼치고, 이미 20대 때 10만 홍건적을 격퇴하는데 공을 세운다.
시조인 태조 이성계는 한반도 역사상 이순신과 더불어 개사기 천재 지휘관이다.  어느 정도냐면.. 전통적인 기병강국 몽골을 기병으로 격파했고, 평지에서 여진족 기병 수만을 격파하고, 산에서 농성하는 쪽바리들을 상대로 기병으로 상대하고 활로 무쌍난무 펼치고, 이미 20대 때 10만 홍건적을 격퇴하는데 공을 세운다.
몽골족, 여진족, 쪽바리, 짱깨 다 때려잡은 한반도 육군 역사상 최고 아웃풋을 자랑한다. 심지어 홍무제는 이성계가 군대끌고 처들어 오면 어케막냐고 신하들과 의논했을 수준이다.
몽골족, 여진족, 쪽바리, 짱깨 다 때려잡은 한반도 육군 역사상 최고 아웃풋을 자랑한다. 심지어 홍무제는 이성계가 군대끌고 처들어 오면 어케막냐고 신하들과 의논했을 수준이다.
962번째 줄: 938번째 줄:
근데 이건 학자풍이 강해져서 그렇게 된 점도 있다. 원래 과거에는 상무정신이 강하고 무사들이 설치는 나라들의 맨파워가 아주 강력했고 세계의 다른 나라들도 학자풍이 들면 군사력이 엄청 하락했다.  
근데 이건 학자풍이 강해져서 그렇게 된 점도 있다. 원래 과거에는 상무정신이 강하고 무사들이 설치는 나라들의 맨파워가 아주 강력했고 세계의 다른 나라들도 학자풍이 들면 군사력이 엄청 하락했다.  


심지어 그 로마도 상무정신이 강한 민족들하고 전쟁은 덩치와 장비빨에 비해 엄청나게 고전한다.  그 로마제국이 군사적 최전성기를 맞이한 상태에서 다키아는 아직 온전한 문명 단계에 도달하기엔 상당히 먼 상태였고 다키아의 인구도 고작 50만에 불과했지만 그런 다키아를 ㅅㅌㅊ 지휘관 + 정예병 + 대군을 동원하고도 간신히 이겼을 정도다. 처음에는 오히려 로마가 탈탈 털리고 강화 조건으로 다키아에 기술자와 군사고문, 그리고 배상금을 지불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 로마도 상무정신이 강한 민족들하고 전쟁은 덩치와 장비빨에 비해 엄청나게 고전한다.  그 로마제국이 군사적 최전성기를 맞이한 상태에서 다키아는 아직 온전한 문명 단계에 도달하기엔 상당히 먼 상태였고 다키아의 인구도 고작 50만에 불과했지만 그런 다키아를 ㅅㅌㅊ 지휘관 + 정예병 + 대군을 동원하고도 간신히 이겼을 정도다. 처음에는 오히려 로마가 탈탈 털리고 강화 조건으로 다키아에 기술자와 군사고문, 그리고 배상금을 지불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첨에 그깟 야만족 쯤이야 이때까지 처럼 툭치면 머가리 빡하고 깨지겠지 하고 갔다가 팔크스에 스쿠툼과 오른팔이 같이 잘려나가버렸다. 결국 트라야누스가 15~20 만 대군을 동원해서 줘패버림.
 
:리얼 첨에 그깟 야만족 쯤이야 이때까지 처럼 툭치면 머가리 빡하고 깨지겠지 하고 갔다가 팔크스에 스쿠툼과 오른팔이 같이 잘려나가버렸다. 결국 트라야누스가 15~20 만 대군을 동원해서 줘패버림.


조선군이 이처럼 인식이 개좆병신인 이유는 물론 외세의 침공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하고 무력하게 당하는 역사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군이 이렇게 굴욕적인 전과를 세운 이유를 요약해보자면 첫째로 전쟁을 수행하는건 무관들이다. 얘들은 말그대로 싸우고 군대를 이끄는 것에 인생을 받친 애들이라 아무리 그래도 병법을 익히고 싸움의 기본적인 이치를 아는등 군대를 지휘할 역량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글 읽고 글 쓰는게 말그대로 빠워였던 병신 조선에서는 전쟁만 일어나면 문관들이 무관의 지휘권을 거의 빼앗다시피하고 군대를 지 좆빵매처럼 휘두르다 존나 시원하게 말아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가 대표적으로 칠천량 해전과 쌍령 전투, 선비들의 빼애액질로 억울하게 파직당하고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울분을 참아가며 뒤져버린 수군을 재건하려 혈투를 벌였다. 장수들이 전쟁의 상황을 읽고 부관들과 상황을 의논하고 있을때도 씹선비 새끼들이 나라를 위한 싸움에 서둘러 나서지 않고 뭐하냐 이 매국노 새끼야라며 매도하면 무관으로썬 어쩔 도리가 없었다.  
조선군이 이처럼 인식이 개좆병신인 이유는 물론 외세의 침공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하고 무력하게 당하는 역사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군이 이렇게 굴욕적인 전과를 세운 이유를 요약해보자면 첫째로 전쟁을 수행하는건 무관들이다. 얘들은 말그대로 싸우고 군대를 이끄는 것에 인생을 받친 애들이라 아무리 그래도 병법을 익히고 싸움의 기본적인 이치를 아는등 군대를 지휘할 역량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글 읽고 글 쓰는게 말그대로 빠워였던 병신 조선에서는 전쟁만 일어나면 문관들이 무관의 지휘권을 거의 빼앗다시피하고 군대를 지 좆빵매처럼 휘두르다 존나 시원하게 말아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가 대표적으로 칠천량 해전과 쌍령 전투, 선비들의 빼애액질로 억울하게 파직당하고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울분을 참아가며 뒤져버린 수군을 재건하려 혈투를 벌였다. 장수들이 전쟁의 상황을 읽고 부관들과 상황을 의논하고 있을때도 씹선비 새끼들이 나라를 위한 싸움에 서둘러 나서지 않고 뭐하냐 이 매국노 새끼야라며 매도하면 무관으로썬 어쩔 도리가 없었다.  
973번째 줄: 947번째 줄:


=== 병역제도 ===
=== 병역제도 ===
{{쓰레기}}
병역제도는 지금의 헬조선처럼 개쓰레기였다.  
병역제도는 지금의 헬조선처럼 개쓰레기였다.  


1,010번째 줄: 983번째 줄:


조선시대 찰갑 유물이 부산에서 발굴된 게 있는데 물론, 병사용이 아니라 장교용이란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의 헬조선 전방부대도 돈 없다고 방탄쪼끼 안 입히는데 오리지널 헬조선이라고 뭔 돈이 있어서 일일히 다 갑옷 입히겠냐? 그나마 수도에서 임금 지키는 새끼들이랑 북방에서 여진족 막는 새끼들이나 입혔겠지
조선시대 찰갑 유물이 부산에서 발굴된 게 있는데 물론, 병사용이 아니라 장교용이란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의 헬조선 전방부대도 돈 없다고 방탄쪼끼 안 입히는데 오리지널 헬조선이라고 뭔 돈이 있어서 일일히 다 갑옷 입히겠냐? 그나마 수도에서 임금 지키는 새끼들이랑 북방에서 여진족 막는 새끼들이나 입혔겠지


=== 갑주 ===
=== 갑주 ===
1,038번째 줄: 1,010번째 줄:
이성계가 기병으로 흥해서 그런지 기병비율은 높은 편이었다. 문제는 시간이 가면서 궁기병사랑으로 인해 차징따위 안하는 병신 기병이 되었고 게다가 부정부패로 인해 군마용으로 쓸 말이 고관대작 말로 돌아가고 막상 군마는 쓰레기말. 그나마도 장부상이랑 실제 말 숫자도 다름. 총체적 난국. 그리고 과거나 군 인사체계가 활쏘기 중심으로 돌아가고 전면전에서 여진족과의 국지전으로 전장이 바뀌면서 정작 중요한 충격기병은 줄어들고 거의다 궁기병이었다.
이성계가 기병으로 흥해서 그런지 기병비율은 높은 편이었다. 문제는 시간이 가면서 궁기병사랑으로 인해 차징따위 안하는 병신 기병이 되었고 게다가 부정부패로 인해 군마용으로 쓸 말이 고관대작 말로 돌아가고 막상 군마는 쓰레기말. 그나마도 장부상이랑 실제 말 숫자도 다름. 총체적 난국. 그리고 과거나 군 인사체계가 활쏘기 중심으로 돌아가고 전면전에서 여진족과의 국지전으로 전장이 바뀌면서 정작 중요한 충격기병은 줄어들고 거의다 궁기병이었다.


임란때 신립이 존나 후덜덜하게 털림. 그런데 이때는 기병을 보조할 보병상황이 진짜 씹창급이고 더이상 퇴각할수도 없는상황이였기에 신립에 대한 변명은 조금이라도 있다.
임란 때 타타르 기병을 카피해서 편곤기병을 만들어 일본 보병들 대가리 따고 다녔다. 그러나 그나마 천명 언저리 되던거 이괄의 난때 없어지고 병자호란때도 편곤기병이 있었으나 김자점의 방관과 평안도 일부세력의 투항으로 만주 기병에게 털린다. 병자호란 관련 항목마다 그 놈의 홍이포 홍이포 노래를 부르는 병신이 여기도 똥을 싸질러 놔서 지우고 한마디 하는데, 병자호란에서 조선한테 홍이포는 큰 의미 없었다. 강화도나 화성에 홍이포 모형이 있는 거 보고 실제로도 홍이포를 썼을 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화약 생산량이 딸려서 천자총통도 잘 안 쓴 조선이다. 화약을 몇 배로 처먹는 홍이포를 썼겠냐? 조선이 홍이포를 제작했다는 확실한 기록은 영조 때 2문 밖에 없다. 그 외에도 홍이포로 추정되는 대포를 보유한 기록이 좀 보이지만 다 합쳐봐야 20문도 안 되고 대부분 서양배에서 노획한 걸로 추정된다. 전투에서 조선군이 홍이포를 썼다는 기록은 전무하다. 조선 후기의 주력대포는 소형 불랑기와 현자총통이었고 그래서 나중에 서양 군함이 왔을 때 생채기 밖에 못 냈지.


:그렇다고 새재를버리냐 시발 신립은 그냥 돌격대장급을 지휘관으로 앉혀놓은거다
정리하자면, 조선군은 홍이포를 거의 운용 안 한 거나 다름 없었다. 애초에 이 홍이포라고 기록에 남은 거도 홍이포의 구체적인 개념을 당대 조선인들이 잘 몰라서 잘못 적거나 엉뚱한 걸 홍이포라고 했다. 실제로 홍이포가 아닌 불랑기가 주력이어서 숙종 대 돈대들 잔뜩 구축할 때도 불랑기만 주구장창 가져다 놨다. 한마디로 윗새끼가 싸지른 표현 중 조선군이 홍이포를 썼단 건 명백히 구라다. 홍이포를 쓴 게 아니니까. 그리고 남한산성에 식량 준비를 못했다고 하는 것도 졸라게 웃긴게 원래는 식량을 성 안에 들여 놓으려고 했다. 근데 담당 지방관이 야 백성들이 존나게 힘들어 하네. 그냥 평시엔 성 밖 창고에 놓고 일 터지면 안으로 옮기지 이래서 기껏 식량 준비해 놓고 못써먹은 거다. 한마디로 윗대가리보다 뭐든지 불평불만만 조온나게 처 늘어놓고 아무것도 안하고 맨날 나라탓, 사회탓 하는 헬조센인들 특유의 기질을 조상들부터가 가지고 있어서 생긴 참극이다. 윗대가리도 문제지만 아랫것들도 좆병신 천지라고 한다. 그리고 그 후손인 헬조센인들도 마찬가지라 이 꼬라지인 거다.


임란 때 타타르 기병을 카피해서 편곤기병을 만들어 일본 보병들 대가리 따고 다녔다. 그러나 그나마 천명 언저리 되던거 이괄의 난때 없어지고 병자호란때도 편곤기병이 있었으나 김자점의 방관과 평안도 일부세력의 투항으로 만주 기병에게 털린다. 병자호란 관련 항목마다 그 놈의 홍이포 홍이포 노래를 부르는 병신이 여기도 똥을 싸질러 놔서 지우고 한마디 하는데, 병자호란에서 홍이포는 큰 역할을 못 했고 남한산성 공격에도 별 도움이 못 되었다. 오히려 만주기병의 역할이 훨씬 컸다.  
=== 궁병 ===
국궁은 휴대성 및 사거리와 살상력이 꽤 뛰어나다고 하는데, 장점은 거기까지이다. 제작비가 엄청났고 습한 좆반도에선 유지하기도 힘들었으며, 비오는 날엔 사용하기도 힘들었다. 전쟁에서의 실용성 면에서는 만들기도 쉽고 유지하기도 쉬운 만주족의 활이 오히려 더 나았으며, 이는 조선시대 실학자 및 일부 군바리들도 인정하는 것이었다.


:기병이 성타고 올라가냐 병신아
미친 국뽕들은 총은 비오면 쓸 수 없으니 조상님들도 어쩔 수 없이 활 쓴거라고 개소리를 하지만 비오면 국궁도 아교가 다 풀어져서 못 쓴다.


::누가 기병이 성타고 올라 갔다고 써놨냐? 만주기병의 역할이 컸다는 말은 주변의 근왕군이 구원병으로 온 번번히 격파해대서 역할이 컸다는거고 븅신아. 하여간 이 새끼 쉐도우 복싱 한번 오질나게 하네.
편전이라는 무기가 있는데 아주 개쩌는 독창적인 발명품까진 아니고, 비잔틴제국이나 터키 새끼들도 비슷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터키라든가 비잔틴제국의 스타일이 아니다. 일례로 편전, 통아의 2배, 1/2가 맞다


[[병자호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남한산성은 홍이포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병신 인조가 식량을 준비하지 못 해서 털렸다. 니가 안 빨아줘도 홍이포는 충분히 대단한 병기니 없는 사실까지 과장해가며 빨지 마라.
이 편전이라는 무기도 사거리를 위해 관통력을 희생한 무기다. 편전의 기원이라는 썰 중 하나가 여몽전쟁때 화살 부족하니 화살을 반으로 잘라서 2개로 만들어 썼던게 기원이라는 썰이 있을 정도로 일반 화살보다 작다. 화살 크기가 작으면 당연히 관통력도 낮아진다.


 
사실 조총 성애자였던 조선군은 후기로 가면 갈수록 궁병보다는 조총수를 존나게 양성하게 된다. 숙련도가 낮은 지방군인 속오군의 경우 배우기 힘든 활을 장비시키는 것보다는 단시간에 배우기 용이한 조총수로
기병이야기하는데 홍이포 얘기꺼내는 찐따새끼봐라 ㅉㅉ 좇센의 주적은 임란이전까지 , 이후에도 엳진족이었으므로 궁기병이 주력이라고 깔건 못된다. 창기병이 없다는건 심히 병신같다만 평야도 아니고 생산성도 ㅈ도없는 쥐좇만한 땅에서 서유럽 스케일의 기병대를 바라는게 노양심아니냐 ㅉㅉ
양성하는것이 더 합리적이었고 광해군때 명을 도운답시고 보낸 1만 5천명도 다수가 조총수였다. 숙종 때 충청도 지방 군적부를 보더라도 1300명중 70퍼센트 이상이 조총수였다. 문제는 숙종 시기면 16세기 후반- 17세기 초반인데 이 시기 갓양은 아르쿼부스 따위가 아닌 플린트 락을 쓰고 있었다. 총검도 이 시기 개발했다.
 
조선한테 홍이포는 큰 의미 없었다. 강화도나 화성에 홍이포 모형이 있는 거 보고 실제로도 홍이포를 썼을 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화약 생산량이 딸려서 천자총통도 잘 안 쓴 조선이다. 화약을 몇 배로 처먹는 홍이포를 썼겠냐? 조선이 홍이포를 제작했다는 확실한 기록은 영조 때 2문 밖에 없다. 그 외에도 홍이포로 추정되는 대포를 보유한 기록이 좀 보이지만 다 합쳐봐야 20문도 안 되고 대부분 서양배에서 노획한 걸로 추정된다. 전투에서 조선군이 홍이포를 썼다는 기록은 전무하다. 조선 후기의 주력대포는 소형 불랑기와 현자총통이었고 그래서 나중에 서양 군함이 왔을 때 생채기 밖에 못 냈지.
 
위에 홍이포 병신이 싸지른 걸 보니 짜증나서 정리하자면, 조선군은 바로 윗글마냥 홍이포를 거의 운용 안 한 거나 다름 없었다. 애초에 이 홍이포라고 기록에 남은 거도 홍이포의 구체적인 개념을 당대 조선인들이 잘 몰라서 잘못 적거나 엉뚱한 걸 홍이포라고 했다. 실제로 홍이포가 아닌 불랑기가 주력이어서 숙종 대 돈대들 잔뜩 구축할 때도 불랑기만 주구장창 가져다 놨다. 한마디로 윗새끼가 싸지른 표현 중 조선군이 홍이포를 썼단 건 명백히 구라다. 홍이포를 쓴 게 아니니까. 그리고 남한산성에 식량 준비를 못했다고 하는 것도 졸라게 웃긴게 원래는 식량을 성 안에 들여 놓으려고 했다. 근데 담당 지방관이 야 백성들이 존나게 힘들어 하네. 그냥 평시엔 성 밖 창고에 놓고 일 터지면 안으로 옮기지 이래서 기껏 식량 준비해 놓고 못써먹은 거다. 한마디로 윗대가리보다 뭐든지 불평불만만 조온나게 처 늘어놓고 아무것도 안하고 맨날 나라탓, 사회탓 하는 헬조센인들 특유의 기질을 조상들부터가 가지고 있어서 생긴 참극이다. 윗대가리도 문제지만 아랫것들도 좆병신 천지라고 한다. 그리고 그 후손인 헬조센인들도 마찬가지라 이 꼬라지인 거다.
 
=== 궁병 ===
국궁은 휴대성 및 사거리와 살상력이 꽤 뛰어나다고 하는데, 장점은 거기까지이다. 제작비가 엄청났고 습한 좆반도에선 유지하기도 힘들었으며, 비오는 날엔 사용하기도 힘들었다. 전쟁에서의 실용성 면에서는 만들기도 쉽고 유지하기도 쉬운 만주족의 활이 오히려 더 나았으며, 이는 조선시대 실학자 및 일부 군바리들도 인정하는 것이었다.
 
미친 국뽕들은 총은 비오면 쓸 수 없으니 조상님들도 어쩔 수 없이 활 쓴거라고 개소리를 하지만 비오면 국궁도 아교가 다 풀어져서 못 쓴다.
 
편전이라는 무기가 있는데 아주 개쩌는 독창적인 발명품까진 아니고, 비잔틴제국이나 터키 새끼들도 비슷한 걸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터키라든가 비잔틴제국의 스타일이 아니다. 일례로 편전, 통아의 2배, 1/2가 맞다
 
이 편전이라는 무기도 사거리를 위해 관통력을 희생한 무기다. 편전의 기원이라는 썰 중 하나가 여몽전쟁때 화살 부족하니 화살을 반으로 잘라서 2개로 만들어 썼던게 기원이라는 썰이 있을 정도로 일반 화살보다 작다. 화살 크기가 작으면 당연히 관통력도 낮아진다.
 
사실 조총 성애자였던 조선군은 후기로 가면 갈수록 궁병보다는 조총수를 존나게 양성하게 된다. 숙련도가 낮은 지방군인 속오군의 경우 배우기 힘든 활을 장비시키는 것보다는 단시간에 배우기 용이한 조총수로
양성하는것이 더 합리적이었고 광해군때 명을 도운답시고 보낸 1만 5천명도 다수가 조총수였다. 숙종 때 충청도 지방 군적부를 보더라도 1300명중 70퍼센트 이상이 조총수였다.
 
:문제는 숙종 시기면 16세기 후반- 17세기 초반인데 이 시기 갓양은 아르쿼부스 따위가 아닌 플린트 락을 쓰고 있었다. 총검도 이 시기 개발하고
 
::실제로 플린트락이 들어오긴 했다. 근데 전쟁이 자주있던것도 아니고 나름 식민지뽕 빨던 영국애들도 부싯돌 비싸다고 나뭇조각 올려놓고 연습하던 플린트락 써먹기엔 너무 비싸서 도입 안했다고 하더라
 
ㄴ라고 국뽕들이 개소리 변명을 처늘어놓는데 그냥 기술력 자체가 안됐다. 방아쇠 당기면서 화약덮개 얼고 격발하고 되돌아오는 이중동작 수행하려면 당연히 조총보다 탄성좋은 야금술의 스프링강에 머스킷에는 안전장치도 있었다 이거 만들 기계제작능력 자체가 없었다


=== 총병 ===
=== 총병 ===
1,086번째 줄: 1,035번째 줄:
[[송시열]]같은 경우엔 여자도 총으로 무장하자고 주장함. [[나선정벌]]때 노획한 러시아제 수석총과 벨테브레이나 하멜이 참여해 만든 수석총으로 업그레이드할까 생각하다가 너무 비싸다고 그냥 조총 계속 썼다.
[[송시열]]같은 경우엔 여자도 총으로 무장하자고 주장함. [[나선정벌]]때 노획한 러시아제 수석총과 벨테브레이나 하멜이 참여해 만든 수석총으로 업그레이드할까 생각하다가 너무 비싸다고 그냥 조총 계속 썼다.


:조선도 수석총으로 업그레이드 해보고자 했다. 그런데 막상 복제한 수석총이 성능도 그저 그렇고 불발율도 높은데다 비싸기만 오지게 비싸서 결국 조총을 개량하는 방향으로 선회한것임. 조선이 개량하고 또 개량한 조총은 18C까지만 해도 서구 국가들이 쓰던 머스킷과 성능이 그다지 많이 차이 안났다. 단순히 비싸서 안쓴건 아니다.  
:조선도 수석총으로 업그레이드 해보고자 했다. 그런데 막상 복제한 수석총이 성능도 그저 그렇고 불발율도 높은데다 비싸기만 오지게 비싸서 결국 조총을 개량하는 방향으로 선회한것임. 조선이 개량하고 또 개량한 조총은 18C까지만 해도 서구 국가들이 쓰던 머스킷과 성능이 그다지 많이 차이 안났다. 단순히 비싸서 안쓴건 아니다. 수석식으로 얻어지는 운용편의성 자체가 조총보다 훨 좋음
 
ㄴ수석식으로 얻어지는 운용편의성 자체가 조총보다 훨 좋음


그나마도 세도정치기 들어선 아예 관리를 안해서 창고안에 녹슨 총들이 넘쳐흘렀다는 실록의 기사가 인상깊다.
그나마도 세도정치기 들어선 아예 관리를 안해서 창고안에 녹슨 총들이 넘쳐흘렀다는 실록의 기사가 인상깊다.
1,097번째 줄: 1,044번째 줄:


=== 포병 ===
=== 포병 ===
가끔 국뽕 새끼들이 조선의 화약무기나 원거리 무기는 뛰어났지 않냐고 그러는데,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네덜란드애들이 대포를 팔아도 안 싸먹은 쪽바리나 미개한 여진족에 비해선 말이다.
문제는 그 미개한 여진족이 홍이포 맛을 보더니 그걸 끌고와서 남한산성을 신나게 포격했다.
:병자호란 관련 항목마다 그 놈의 갓유럽 홍이포 존나 찬양해 대는데, 홍이포 자체는 남한산성에 별 타격을 못 줬다. 애초에 걔네들 돈도 없고 기동전 한거라 대포도 몇문 들고 오지도 않았구만.
천자총통으로 홍이포 대포병했다는 개소리가 있길래 지웠다. 진짜면 출처 표기 바람.
:지나가던 사람인데 대포병 얘기는 연려실기술에 있긴 있다. 근데 실록엔 없다. 동일한 날짜에 포탄이 날아오고 남문이 공격당했다는 이야기는 있는데 이걸 천자총통으로 갈겼는지는 모른다. 근데 연려실기술이 당대 기록이 아닌 걸 생각하면...???
대포들은 원시적인 사석포 기준으로는 꽤 뛰어났다.  신기전같은 로켓무기는 중국이 그 원조인데, 조선도 꽤 잘 만든 거 같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는 익히 알고 있는
대포들은 원시적인 사석포 기준으로는 꽤 뛰어났다.  신기전같은 로켓무기는 중국이 그 원조인데, 조선도 꽤 잘 만든 거 같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는 익히 알고 있는


신기전보다는.. 화살대신 총통을 넣은 걸 사용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무기는 이미 서양에서 있었는데 Revolt라고 한다.
신기전은 신호용으로 주로 사용했고 총통넣은 건 변이중화차라고 행주산성 관련 기록에 나온다. 리볼트가 이미 있었던 건 아니고 리볼트는 효율이 애미뒤져서 금방 버려졌고 화차가 여러 면에서 조금 더 나았지만 그래도 화약 애미뒤지게 많이 처먹는 건 똑같아서 총통만큼 대규모 운용은 못함.
 
:신기전은 신호용으로 주로 사용했고 총통넣은 건 변이중화차라고 행주산성 관련 기록에 나오긴 한다. 리볼트가 이미 있었던 건 아니고 리볼트는 효율이 애미뒤져서 금방 버려졌고 화차가 여러 면에서 조금 더 나았지만 그래도 화약 애미뒤지게 많이 처먹는 건 똑같아서 총통만큼 대규모 운용은 못함.


이건 고려말에 화포 도입해서 세조때 화통도감 없어지고 사실상 200년간 개발중단된거라 나름 선전한거 아닌가 싶다.
이건 고려말에 화포 도입해서 세조때 화통도감 없어지고 사실상 200년간 개발중단된거라 나름 선전한거 아닌가 싶다.
1,494번째 줄: 1,429번째 줄:
국력을 단순한 인구수와 생산력으로만 판단하면 1550년 이전에도 일본이 조선보다 더 유리했을 확률이 높다.
국력을 단순한 인구수와 생산력으로만 판단하면 1550년 이전에도 일본이 조선보다 더 유리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조선 초기에 왜구 정벌에 적극적이였고 왜구가 초기에는 중국 대륙과 한반도의 눈치를 봤다는 점에서 생산력과 인구수는 우위였지만 고차원적인 과학 기술이나 문화 측면에서는 조선 초기 까지는 일본이 약간 밀렸다고 볼수 있다.  
하지만 조선 초기에 왜구 정벌에 적극적이였고 왜구가 초기에는 중국 대륙과 한반도의 눈치를 봤다는 점에서 생산력과 인구수는 우위였지만 고차원적인 과학 기술이나 문화 측면에서는 조선 초기까지는 일본이 약간 밀렸다고 볼 수 있다.  


굳이 비유하면 "173cm 군필장년 vs 180cm 학생일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ㄴ 근데 조선 이전의 고려말기에도 정식군대가 아닌 유사군대 왜구들한테 개털리지 않았노


에도시대에 일본의 권력을 쥐었던 도쿠가와 막부는 천하보청제도, 참근교대제도를 통해 상공업을 크게 발전시켰고 도로의 정비도 촉진하였다(그 과정은 위의 책에 잘 나와있음). 그것은 곧 서민생활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에도시대에 일본의 권력을 쥐었던 도쿠가와 막부는 천하보청제도, 참근교대제도를 통해 상공업을 크게 발전시켰고 도로의 정비도 촉진하였다(그 과정은 위의 책에 잘 나와있음). 그것은 곧 서민생활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난학에 대한 대중들의 높은 학습의지가 더해져 이후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 1700년대부터 여기저기에 이름있는 난학자들이 세운 '주쿠'(학원이라고 보면 된다)들이 생겨나 난학이 널리 퍼졌다. 도쿠가와 막부는 대중들이 난학을 배우는 것을 꺼려했지만 그것은 난학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 지식을 막부가 독점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난학에 대한 대중들의 높은 학습의지가 더해져 이후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 1700년대부터 여기저기에 이름있는 난학자들이 세운 '주쿠'(학원이라고 보면 된다)들이 생겨나 난학이 널리 퍼졌다. 도쿠가와 막부는 대중들이 난학을 배우는 것을 은근 꺼렸지만 그것은 난학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 지식을 막부가 독점하고 싶어서 그랬다.
 
확실한 것은 일본의 성장력이 1600년대부터 터지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br>국력이 역전된 시기가 정확히 언제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br/>


확실한 것은 일본의 성장력이 1600년대부터 터지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국력이 역전된 시기가 정확히 언제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역전의 시기가 빠르고 느리고를 떠나서 일본은 '근대화' 라는 숙제를 풀어나갔으며 조선은 해당 숙제를 풀어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1890~1960년대 까지는 일본에게 삼일한 수준으로 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역전 시기가 빠르고 느리고를 떠나서 일본은 '근대화' 라는 숙제를 풀어나갔으며 조선은 해당 숙제를 풀어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1890~2000년 까지는 일본에게 삼일한 수준으로 당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북괴가 남한에게 국력이 따라잡히는 과정이랑 비교해봐도 상당히 유사하다. 우선, 일제의 만주지역 짱깨들을 겨냥해서 군수공장을 북괴에게 몰아준 탓인지 북괴가 1948년에 창설된 직후에는 남한보다 더 잘 살았고 전후복구도 더 빨랐다. 그렇게 1955~1970년까지 남한에게 형님 노릇을 하며 살다가 1973년부터 급격히 남한의 포텐이 터져서 1980년이 지났을때는 이미 어느정도 따라잡혔고 격차도 커져가고 있었다. 그래도 1990년 이전까지는 군사력만큼은 남한에게 밀리지 않고 대등하거나 이상이였지만 그것도 결국 소련이 폭망한 이후에는 좆망해서 현재 재기불능인 봉건제 왕국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한반도라고 해서 곡창지대 또는 군사적 요새가 없었던건 아니다.
== 역대 국왕 ==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에는 곡창지대가 분명히 존재했지만 왜구가 자주 침략하는 지역도 그곳이였다. 그리고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산지를 육군기지로 활용하고 조수간만 차이로 인해서 침입이 까다로운 서해안 일대를 해군기지로 활용했다면 적어도 일방적인 수준으로 쳐맞을 일은 없었을듯. 쉽게 말하자면 왜구가 자주 침략하는 지역이 하필이면 곡창지대였으니까 곡창지대를 방어하면서 왜구가 북쪽으로 전진하지 못하도록 근처에 있는 산악지대를 육군기지로 사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견이다.
{{조선 국왕}}


== 역대 국왕 ==
이 문단은 [http://librewiki.net/wiki/%EC%A1%B0%EC%84%A0 리브레위키 - 조선 문서] 에서 포크됨.
이 문단은 [http://librewiki.net/wiki/%EC%A1%B0%EC%84%A0 리브레위키 - 조선 문서] 에서 포크됨.


1,578번째 줄: 1,515번째 줄:
(혼, 광해군, 생몰 1575~1641, 재위 1608.2.~1623.3.)
(혼, 광해군, 생몰 1575~1641, 재위 1608.2.~1623.3.)


제 16대 인조
제 16대 능양군
(종, 능양군, 생몰 1595~1649, 재위 1623.3.~1649.5.)
(종, 능양군, 생몰 1595~1649, 재위 1623.3.~1649.5.)


1,632번째 줄: 1,569번째 줄:
제 34대 [[박정희|박종]](정희, 생몰 1917~1979, 재위 1961.5.~1979.10.)
제 34대 [[박정희|박종]](정희, 생몰 1917~1979, 재위 1961.5.~1979.10.)


제 35대 [[전두환|전종]](두환, 생몰 1931~, 재위 1979.12.~1988.2.)
제 35대 [[전두환|전종]](두환, 생몰 1931~2021, 재위 1979.12.~1988.2.)
 
추존 1대 [[김일성|태조]] 혹부리우스(일성, 생몰 1912~1994, 재위 1948.9.~1994.7.)
 
추존 2대 [[김정일|핵종]] 뽀그리우스(정일, 생몰 1941~2011, 재위 1994.7.~2011.12.)
 
추존 3대 [[김정은|돈종]] 꿀꾸리우스(정은, 생몰 1984~, 재위 2011.12.~)


== 기타 ==
== 기타 ==
1,653번째 줄: 1,596번째 줄:
=== [[대한제국]] 황실 복원 ===
=== [[대한제국]] 황실 복원 ===
{{본심|조선왕조|한국의 개돼지들}}
{{본심|조선왕조|한국의 개돼지들}}
{{지랄}}
{{링크금지}}
{{링크금지}}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
1,661번째 줄: 1,605번째 줄: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헌법에서부터 금지행위라고 했으므로 절대로 내뱉어서는 안된다.
헌법에서부터 금지행위라고 했으므로 절대로 내뱉어서는 안된다. 정치권에서도 당을 불문하고 장난으로도 하지 않으며 허경영이 전에 대통령제 폐지하고 군주제로 바꿔서 자신이 황제가 되겠다는식의 말을 한적이 있으나 조선왕조를 돌려놓겠다는 병신같은 개소리는 지껄인적 없다.
 


이런 병신 같은 조선 왕조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먼 헬브리튼 왕실 뽕이라도 맞았는지 간간히 대한제국 황실 복원이라는 애기가 간간히 흘러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병신 같은 조선 왕조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먼 헬브리튼 왕실 뽕이라도 맞았는지 간간히 대한제국 황실 복원이라는 애기가 간간히 흘러나오는 경우가 있다.


대한제국은 조선 왕조의 직계 후속으로 취급되는 게 보통이라서 복원 얘기가 나올 때는 보통 대한제국 황실이라고 얘기한다. 왕보다는 황제가 좀 더 있어 보이기 때문에 구 대한제국 후손들이 이걸 노리고 대한제국 황실이라고 칭하는 것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노예를 자처하는 새끼들이 제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미 [[일제강점기]] 시기 때 근왕파가 깡그리 몰살당한 것을 생각하면 의아하겠지만 현대 엔터테이먼트([[만화]]나 [[드라마]])의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가 제기하고 있어서 문제가 된다. 혹은 무개념 전주 이씨들이 특권 내놔라 이기야! 하며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대한제국은 조선 왕조의 직계 후속으로 취급되는 게 보통이라서 복원 얘기가 나올 때는 보통 대한제국 황실이라고 얘기한다. 왕보다는 황제가 좀 더 있어 보이기 때문에 구 대한제국 후손들이 이걸 노리고 대한제국 황실이라고 칭하는 것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노예를 자처하는 새끼들이 제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미 [[일제강점기]] 시기 때 근왕파가 깡그리 몰살당한 것을 생각하면 의아하겠지만 현대 엔터테이먼트([[만화]]나 [[드라마]])의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가 제기하고 있어서 문제가 된다. 혹은 [[이석|무개념 전주 이씨]]들이 특권 내놔라 이기야! 하며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진작에 초대 머통령 저승만에 의해서 나가리 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저승만이지만 저승만의 몇 안 되는 업적들 중 한 가지다.
물론 진작에 초대 머통령 저승만에 의해서 나가리 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저승만이지만 저승만의 몇 안 되는 업적들 중 한 가지다. 이후 박정희때 해제되었다가 전두환이 집권하여 다시 탄압을 받자 전부 일본으로 튀었다.


딱히 [[이승만]]이 아니더라도 이씨 왕가라고 해서 일본이 나라 뺏은 다음, 대한제국 황실을 왕족(이왕가)으로 대해주면서 일본 천황가와 통혼을 강요했기 때문에 왕족 전원 모두 친일파로 갈아탔다. 일례로 이 문단 만들게 한 이석도 일본 천황계 피가 흐르고 있는 일본인이다.
딱히 [[이승만]]이 아니더라도 이씨 왕가라고 해서 일본이 나라 뺏은 다음, 대한제국 황실을 왕족(이왕가)으로 대해주면서 일본 천황가와 통혼을 강요했기 때문에 왕족 전원 모두 친일파로 갈아탔다. 일례로 이 문단 만들게 한 이석도 일본 천황계 피가 흐르고 있는 일본인이다.


거기다 왕족 간의 결혼으로 구 대한제국 황실에게 일왕가의 피가 섞여 들어갔기 때문에 만약 복고했다면 독립하고도 일본 왕족을 왕으로 모셔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을 수도 있다. 조선 복고가 아닌 일제강점기 복고라는 말이다.
거기다 왕족 간의 결혼으로 구 대한제국 황실에게 일본 천황가의 피가 섞여 들어갔기 때문에 만약 복고했다면 독립하고도 일본 왕족을 왕으로 모셔야 하는 개같은 상황이 펼쳐졌을 수도 있다. 조선 복고가 아닌 일제강점기 복고라는 말이다.


한국만 왕족 입국 금지를 했다라는 이상한 소리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고 당시 이탈리아, 러시아, 스페인, 터키 등이 하던 왕족 추방 및 입국 금지를 싱먼리가 따라했을 뿐이다. 오히려 한국은 입국 제한을 박정희 때에 풀어서 금방 해제된 편이고 이탈리아나 터키는 2000년대 들어서야 왕족의 입국 금지가 해제되었다. 터키의 경우 1974년 해제했다고는 하나 2004년까지는 암묵적으로 왕족의 입국이 제한되어 2004년이 되어서야 오스만 왕족 후손들이 터키에 들어왔다.
한국만 왕족 입국 금지를 했다라는 이상한 소리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고 당시 이탈리아, 러시아, 스페인, 터키 등이 하던 왕족 추방 및 입국 금지를 싱먼리가 따라했을 뿐이다. 오히려 한국은 입국 제한을 박정희 때에 풀어서 금방 해제된 편이고 이탈리아나 터키는 2000년대 들어서야 왕족의 입국 금지가 해제되었다. 터키의 경우 1974년 해제했다고는 하나 2004년까지는 암묵적으로 왕족의 입국이 제한되어 2004년이 되어서야 오스만 왕족 후손들이 터키에 들어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한제국 황실 복원은 머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내란죄다. 절대 거짓말 아닌 진실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한제국 황실 복원은 머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내란죄다. 절대 거짓말 아닌 진실이다.
 
유신 4공시절에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로 수정된적이 있으나 1항은 헌법제정 이후 단한번도 수정된적 없다.


그리고 전주 이씨는 고려 왕씨처럼 모조리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도 모자를 판에 목숨이나 유지해준 것을 고마워하면서 지내도 모자랄 텐데 이런 지랄은 지 명줄만 짧아지는 행위다.
그리고 전주 이씨는 고려 왕씨처럼 모조리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도 모자를 판에 목숨이나 유지해준 것을 고마워하면서 지내도 모자랄 텐데 이런 지랄은 지 명줄만 짧아지는 행위다.
1,682번째 줄: 1,627번째 줄:
설령 복원한다고 해도 황실이라면 품위 유지비 등의 명목으로 황실 전용으로 쓸 자금이 들어갈 텐데 지금 머한민국에서 이런 걸 눈뜨고 감수할 인간이 얼마나 있을까? 다만 만약 천문학적인 확률로 대한제국 황실을 복원했다고 가정하면, 구 대한제국 황실의 재산을 전량 압수했던 국가에서 일부 혹은 전부 돌려줄 수도 있다. 물론 결론은 쓸데없는 일이다.
설령 복원한다고 해도 황실이라면 품위 유지비 등의 명목으로 황실 전용으로 쓸 자금이 들어갈 텐데 지금 머한민국에서 이런 걸 눈뜨고 감수할 인간이 얼마나 있을까? 다만 만약 천문학적인 확률로 대한제국 황실을 복원했다고 가정하면, 구 대한제국 황실의 재산을 전량 압수했던 국가에서 일부 혹은 전부 돌려줄 수도 있다. 물론 결론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우린 황실 복원을 씨부리는 전주 이씨를 보면 전부 죽창으로 찔러 죽여 조선 왕조의 잔재를 말끔히 지워버리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예를 들어 북괴는 전주 이씨 왕족들을 50년대에 싸그리 사형시켜버렸다.
그러니까 우린 황실 복원을 씨부리는 전주 이씨를 보면 전부 죽창으로 찔러 죽여 조선 왕조의 잔재를 말끔히 지워버리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예를 들어서 북괴는 전주 이씨 왕족들을 1950년대에 싸그리 사형시켜버렸다.
 
전주 이씨 왕조는 일제가 왕족(이왕가)으로 대접해줘서 의친왕같이 예외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친일파로 갈아타고 왕족 간의 결혼으로 일왕가 피까지 섞여들어가서 품종개량 실패작이다. 군인으로 입대한 몇 명은 일본군 출신으로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서 아시아 제국주의 확장에 빼박 못하게 손을 담갔으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안 해서 감싸줄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상하게 친일파 논란에서 이씨 왕가는 어쩔 수 없는 현실적 문제였다고 실드 쳐주는 자들이 많은데 친일인명사전 등의 기준으로 봐도 생계형 친일이 아닌 명백한 악질 친일 행위를 한 전주 이씨는 개화기때에도 가장 많았다.([[이광수 (문학인)|이광수]]가 유명한 전주 이씨 친일파다.) 영국 왕실은 엘리자베스 2세부터 2차 세계대전 때 군에 입대해서 나치와 싸웠다. 전주 이씨는 임진왜란 때, 6.25전쟁 때 국민 버리고 도망갔다. 이승만은 북한에서 점심 먹을 수 있다고 해놓고 자기만 도망가고 국민들 도망 못 가게 한강다리 끊었는데 이건 스탈린도 안 하는 짓이다. 스탈린은 나치가 침략했을 때 도망 안 가고 모스크바에서 국민들과 결사 항전을 지휘했던 사람이다. 비교 불가다.
 
ㄴ 런닝맨 한 건 ㅇㅈ하지만, 실질적으로 대전차 무기가 전무한 상태에서 탱크를 막기란 불가능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잡히면 남한산성의 인조 꼴 나기 쉽기 때문에(후방으로 튀지 못하고, 국군은 제한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 부산에 미군이 도착하기 전에 대한민국은 끝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전쟁 전 한강 다리 폭파 자체는 육본과 미 군사 고문의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한강 다리 폭파 전체를 까기보단 통제와 예보 없이 너무 일찍 터뜨려 시민들이 있을 때 조기 폭파한 게 까일 부분이다.


전주 이씨 왕조는 일제가 왕족(이왕가)으로 대접해줘서 대부분 친일파로 갈아타고 왕족 간의 결혼으로 일왕가 피까지 섞여들어가서 품종개량 실패작이다. 군인으로 입대한 몇 명은 일본군 출신으로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서 아시아 제국주의 확장에 빼박 못하게 손을 담갔으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안 해서 감싸줄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상하게 친일파 논란에서 이씨 왕가는 어쩔 수 없는 현실적 문제였다고 실드 쳐주는 자들이 많은데 친일인명사전 등의 기준으로 봐도 명백한 악질 친일 행위를 한 전주 이씨는 개화기때에도 가장 많았다.([[이광수 (문학인)|이광수]]가 유명한 전주 이씨 친일파다.) 영국 왕실은 엘리자베스 2세부터 2차 세계대전 때 군에 입대해서 나치와 싸웠다. 전주 이씨는 임진왜란 때, 6.25전쟁 때 국민 버리고 도망갔다. 이승만은 북한에서 점심 먹을 수 있다고 해놓고 자기만 도망가고 국민들 도망 못 가게 한강다리 끊었는데 이건 스탈린도 안 하는 짓이다. 스탈린은 나치가 침략했을 때 도망 안 가고 모스크바에서 국민들과 결사 항전을 지휘했던 사람이다. 비교 불가다.
ㄴ 그 이승만도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평화선 선포로 깝치는 쪽본과 북괴를 참교육 하는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공부 잘한다고 무조건 착하고 정치력 높은건 아니지만 이승만은 일가 대대로 높은 자리를(인조반정 같은 쿠데타도 있었지만 어쨌든 전주이씨 일가에 해당하는건 맞음.) 물려받은 조선 왕조와는 다르게 미국 유학파 엘리트다.  


:런닝맨 한 건 ㅇㅈ하지만, 실질적으로 대전차 무기가 전무한 상태에서 탱크를 막기란 불가능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잡히면 남한산성의 인조 꼴 나기 쉽기 때문에(후방으로 튀지 못하고, 국군은 제한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 부산에 미군이 도착하기 전에 대한민국은 끝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전쟁 전 한강 다리 폭파 자체는 육본과 미 군사 고문의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한강 다리 폭파 전체를 까기보단 통제와 예보 없이 너무 일찍 터뜨려 시민들이 있을 때 조기 폭파한 게 까일 부분이다.
'''결론을 말해주자면 이들은 우리나라의 독립에도 기여한것이 없고 공산화 저지에도 기여한게 없으며 산업화나 민주화에도 기여한게 전혀 없는 암적인 존재다.'''


이 병신 짓거리는 가장 최근에 드라마 궁이 방영되며 황실 복원론이 인기를 끌때 이해원이라는 왠 옹주를 데려다가 이분이 대한제국 30대 여제시다! 이지랄 하다가 정말 일말의 관심도 없이 묻혔다. 사실 이거 엄밀히 따지면 법적으로 다 잡아넣을 수 있는 행위다. 정부가 보기엔 걍 전주이씨 종친회장을 좀 요란하게 뽑나보다 해서 넘어갔을수도? 참고로 그 할머니 2020년 2월에 101살 나이로 죽어서 복원 시도는 그렇게 영원히 끝이 났다.
이 병신 짓거리는 가장 최근에 드라마 궁이 방영되며 황실 복원론이 인기를 끌때 이해원이라는 왠 옹주를 데려다가 이분이 대한제국 30대 여제시다! 이지랄 하다가 정말 일말의 관심도 없이 묻혔다. 사실 이거 엄밀히 따지면 법적으로 다 잡아넣을 수 있는 행위다. 정부가 보기엔 걍 전주이씨 종친회장을 좀 요란하게 뽑나보다 해서 넘어갔을수도? 참고로 그 할머니 2020년 2월에 101살 나이로 죽어서 복원 시도는 그렇게 영원히 끝이 났다.


한편 대한제국 황실 최고 웃어른이라는 의친왕 10남 이석은 무명 가수로 입에 풀칠하면서 살다가 가끔씩 종편 방송에 등판해서 황실 복원론을 주구장창 아가리로 내뱉고 다닌다. 진짜 전주 이씨 새끼들은 고려 왕씨처럼 안된걸 다행으로 여기고 찌그러져 살아야지 저딴 병신이 웃어른이랍시고 방송 나와서 아가리터는걸 아무 말도 못하고 지켜보는거 보면 ㅋㅋㅋㅋ 뭐 어차피 1941년생이라서 팔순넘어서 요즘 골골하던데 과연 언제까지 갈지... 이석의 경우 그냥 관종에 가깝기에 크게 신경안써도 된다.
한편 대한제국 황실 최고 웃어른이라는 의친왕 10남 이석은 무명 가수로 입에 풀칠하면서 살다가 가끔씩 종편 방송에 등판해서 황실 복원론을 아가리로 내뱉고 다닌다. 진짜로 전주 이씨 새끼들은 레닌한테 죽창 맞은 러시아 왕족 엔딩 안 난걸 감사해야지 막말로 6.25 전쟁 났을때 북괴가 이겼으면(당연히 북괴도 개막장이다.) 백두돼지혈통한테 서열정리 당했을 애들이 말이 많음. 어쨌든 이석은 1941년생 80대 이상의 고령이라서 현재로썬 임팩트는 거의 없음.


황실복원 홈페이지라는 이상한 사이트가 있지만 이곳은 위에 적은 이석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정체불명의 사이트로 방통위에 의하면 국내 주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며 정확히는 북괴의 [[우리민족끼리]]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국정원이 24시간 감시하고 있는곳이니까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황실복원 홈페이지라는 이상한 사이트가 있지만 이곳은 위에 적은 이석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정체불명의 사이트로 방통위에 의하면 국내 주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며 정확히는 북괴의 [[우리민족끼리]]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국정원이 24시간 감시하고 있는곳이니까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 평가 ==
== 평가 ==
{{극혐}}
'''초기과 말기의 평가는 다르겠지만 수천년의 역사상 가장 개병신 같았던 시절 그 자체'''
{{병림픽}}
 
''' 진짜 개 좆병신이었던건 팩트'''


정말 알면 알수록, 아니 세상에 이런 씹 찐따 같은 나라가 있었구나 라는 사실에 한 번 충격을 먹었고, 그 씹 찐따 같은 나라가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역사였다는 사실에 두 번 충격을 먹었다.
정말 알면 알수록, 아니 세상에 21세기의 지역강국 대한민국의 과거가 에콰도르, 볼리비아, 알바니아, 도미니카 공화국에 필적하는 씹찐따 같은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에 한 번 충격을 먹었고, 그 씹찐따 같은 나라가 한때 바로 내가 현재 사는 나라의 과거였다는 사실에 두 번 충격을 먹었다.
 
진짜 존나게 비루하고 애잔한 나라 조선.


왜 조선이 욕으로 쓰이는지 생각해 봐라. 조선은 자타공인 한민족 최악의 흑역사다.
왜 조선이 욕으로 쓰이는지 생각해 봐라. 조선은 자타공인 한민족 최악의 흑역사다.


난 역알못이지만 여긴 디시니까 이 문서 쓴것도 주워들은걸로 과장해서 까거나, 쪽팔린거 미화하면서 정신승리 하는 새끼들이 대부분이겠지. 그래도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한국 역사가 그다지 자랑스러운 역사는 아닌 것 같음. 
ㄴ 솔찍히 왜구들 참교육하고 다니던 신흥무인세력이랑 훈구가 권력을 잡던 전기는 그나마 정상적인데, 후기는 사림새끼들 꼰대짓 개오졌고 이게 탁상행정의 시초임.
그런데 그런건 솔직히 알바아니라고 생각함. 일본이 고대에는 여기보다 못했더라도 지금은 한국보다 국력도 강하고 더 잘살잖아. 마찬가지로 스페인이 예전에 존나 강했으면 뭐함. 지금은 좆밥이던 조선보다 약하고 못사는데.
조선시대가 병신같다고 해도 지금 한국은 국력 전세계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지역강국에 공식적으로 선진국임. 좆같은 면도 많다고 하지만 사실 외국 공통인것도 많고 앞으로 우리 세대가 해결해 나가면 되는거다. 우리보다 잘살고 강한 나라들도 있지만 전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잖아.
조선이 병신같은 나라라고 해도 억지로 미화하지 말고 그냥 흑역사라고 생각하면 됨.
 
 
{{개소리}}
'''다만 고려보단 훨씬 진보한 국가이며 자산분배 면에서는 현대국가들 보다 나은 편(웃음) '''
 
자산 지니계수 말한거다. 자산지니계수는 현대 대한민국이나 다른 일부 선진국도 그렇게 나옴. 거기다가 그것도 노비들 포함한거다. 자영농 비율이 높았기 때문에 노비들을 그렇게 억압하고 착취했어도 고려보단 나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그래 전국민이 평등하게 거지새끼니 정말 평등한 국가 맞다. 님 혹시 레닌 좋아함?
 
::이 생활수준이라는 것은 상대평가를 해야지.
조선 전기 당시 일반 민중들의 생활수준은 우리나 일본이나 동남아나 혹은 중앙아시아 중국이 큰 차이가 없었음. 오히려 전란이 없었던 조선 백성들이 더 인간답게 살았을지도.
노비인구가 50%를 넘었던 적은 없던 걸로 안다. 가장 많았을때가 44%정도이다.
양반. 중인들의 주요자산인 토지자산이 상당히 균등하게  (상대적으로 일본 중국 유럽 등 동시대 국가들과 비교하였을 때) 분배되었으므로 자산지니계수가 낮게 나온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왕토사상과 조선 개국시의 토지개혁의 성과이다. 또한 양반들도 일부 권신들 (한명회 윤원형 등)을 제외하면 오늘날 재벌들이 누리는 수준의 부를 축적하지는 못했다.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와 국가권력이 자본을 억압하는 모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 그래 맞아 지배계급의 착취대상을 소작농에서 노비 노동력으로 바꿨고, 그래서 전국민이 40퍼 이상을 노비로 전락시켰제 ㅋ
 
그게 인구의 절대다수인 농민 양인까지도 다수의 지주에게 착취당하던 고려보다는 나았다는 거다. 조금씩 진보하는 거다 역사는.
 
국가권력이 자본 억압해서 상업 나가리된 건 알고? 하이고오 동시기에 갓양에들은 절대왕정에 중상주의 정책으로 식민지 만들고 다녔는데
 
자본 억압하는 새끼들이 순전히 신분빨이었는데 이걸 현대와 비교할 수 있나? 그 시기 갓양 부르주아들은 혁명으로 신분제를 타파시켰다.
 
:어디까지나 전기조선 즉 중종반정 이전의 조선을 논한 것이다. 그리고 자본을 억압하는 관료집단의 절대다수는 철저하게 과거시험을 통해 선발되었다.
 
고려왕조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하여 좋은 나라를 만들어보고자 했으나, 대다수의 무능한 왕들과 거지 같은 사회체계로 인해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 망해버린 나라이다.
 
사실상 유능한 놈들도 마인드가 좆병신 쓰레기였던 나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민좆 지배자가 자민족을 그토록 천시하고 자민족들끼리 천시하게 만든 미치광이들의 국가는 전근대 세계공용인데 대체 뭘 줏어보고 이런 개소리를;;
 
심지어 주변국들도 이러는 나라들이 하나도 없었다는 개소리 오지네 급식충새끼, 근대국민국가가 뭘 의미하는지는 아냐? 븅신 저뇌아. ㅉㅉ
: 타문화에서도 농노, 흑인노예 등은 있었는데 최소 고려 조선처럼 그걸 어찌보면 행정적 능력으로 법제화해서 자민족 일부를 대대손손 노비화하고 이걸 체계화 + 구성원들이 탁월한 수완으로 인센티브에 반응해서 일천즉천, 노비종모법이라는 법의 헛점을 이용해 노비수를 불린 국가는 드묾. 중국도 역사마다 다르지만 노비는 타민족이나 범죄자로 구성되어있고 대부분의 왕조에서 1대에서 끝났다. 일본은 부락민 등 천민은 소유물이 아니었고 가신 등은 서양 집사 하녀와 주인 관계 같은 관계이었음. 고대 로마나 그리스에서 노예는 타민족이 대부분이었다. 이건 아무래도 전쟁이 드물었던 역사, 해금정책과 관련이 있다고 봄. 고려 초나 신라까지만해도 이렇지 않았음.
 
조선왕조를 보고 있자면 한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데 정치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 수가 있다.
 
당대 세계에서 가장 문명적으로 비루하고 보잘것 없던 나라이다.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는 안 보이노??.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애들도 조선이 화폐도 못 굴리는 시대에 화폐가지고 잘만 상행위했는데 너무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무시하는거 아니냐? 너 커피 원산지가 아프리카인건 아냐? 그거 아프리카 장사꾼이 팔아먹어서 퍼진거야. 플랜테이션은 그 나중의 일이다. 국뽕놈들은 이래서 문제다.
 
:::심지어 베트남보다도 못했다. 오늘날에는 베트남 하면 비루먹은 개새끼 정도로 여기지만 근대화 시기 보면 베트남의 근대화 역량은 좆선왕조에 비해 그야말로 넘사벽이다. 고종이 양무호 호구잡히고 빌빌 거릴때 베트남은 제대로 된 증기군함 십수척씩 사서 굴렸다.
 
::::아프리카 줄루 왕국도 아산들와나 전투에서 영국군 발랐음.
 
훈민정음을 빼면 한국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나라이다. 오죽하면 현대 한국인이 조선인이란 말을 욕으로 여기는 주요원인이다. 하필 북한 병신들의 정식국호가 조선이라 시너지효과를 일으킨다.
 
왜 헬고려 헬신라라는 말 안 쓰고 헬조선이라고 하는지 생각해봐라. 이놈들이 원흉 맞다.
 
고구려는 전성기 당시 당대 세계 열손가락 안에 드는 미친 국력을 자랑했고, 신라는 전성기에 장사하러온 페르시아놈들이 눌러 살정도로 살기 좋은 나라이다. 고려는 국제무역도 하고 진짜 동북아균형자 노릇도 해봤지만 조선은 대체 전성기란게 있나? 사실 노비 비율이 50% 먹은 적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압살한다. 무슨 소리냐고? 니 노예 후손임. 그것도 자민좆 지배자가 인증한 X발. 참고로 좆선뽕들 개소리 집어치우고 존나 파리 목숨이었다.
 
조선 초기에 문자 발명하고 토지분배한건 안 보이노?
그리고 상대적 국력이 약해진 것은 그냥 조선이 존재하던 시기가 서세동점이 시작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미친 국력은 나발이고 당시 국가라고 할만한 게 매우 적었던 까닭이 크다. 당장 고대 서기 400년대에 제대로 된 국가라고 할만한 데는 전세계를 몽땅 뒤져도 20개가 안되는데 심지어
중국 오호십육국을 죄다 뭉뚱그려 중국으로 볼 경우 진짜 10개가 안된다. 그중에서 10위 안에 든다는게 미친 국력이라고 할만한가? 지금 나라수가 200개를 넘는건 좆병신 국가라도 함부로 멸망시키거나
하지 않기 때문이지 옛날같았음 짐바브웨나 시리아 소말리아 같은 파탄국가새끼들은 알아서 정리당했을 것이라서 나라 수가 매우 적었을 것이다.
당장 북미 남미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는 죄다 부족사회로 나라는 단 1개도 없었고, 유럽은 [[로마]] 단 1개 국가만 존재했으며, 중동에는 파르티아-페르시아 교체기였다.
중국은 씨발 오호십육국시대로 어마무지한 국력을 지네끼리 쪼개먹고 있었기에 개개의 힘이 약했던거고, 군사적으로만 따져도 오호십육국중 최약체 애들 2,3개만 연합했더라도 고구려 정돈 우습게 털어먹었을
것이다. 아 물론 경제력으로는 어느 국가던지 고구려를 가볍게 능가했다.
 
국력이 뭔지 모르냐? 군사력만 우월하다고 국력이 높으면 북한의 국력은 세계 30위권 이내이다. 몽골 새끼들이 금나라 이겼다고 몽골이 금나라보다 국력이 우월하냐? 국력의 바탕은 경제력과 인구다. 이게 베이스고 추가로 군사력이 들어가는거지 언감생신 통일왕조 수나라의 국력은 인구만 따져도 10배를 가볍게 넘어가고 경제력은 100배를 아득히 처 넘었다.
오호십육국때도 고구려보다 국력 높은애들은 많았음. ㅂㅅ아
 
미친 고구려 빠는 새끼들은 진짜 어디든지 있네 씨발 6백년 내내 짱깨 왕조한테 개기다가 처 맞고 또 개기다가 처 맞은 새끼들이 무슨 미친국력
 
 
그리고 수문제가 쩌리? 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에 어린 황제의 외척이 쩌리인 병신나라가 있었구낰ㅋㅋㅋㅋㅋㅋㅋㅋ 수문제 애비인 양충하고 수문제 아내 독고가라 애비인 독고신이 서위 북주 실력자였고 양충은 거기대장군이라는 지리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고 금수저 문 양견이 애비 벼슬인 수국공 대장군 가지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북주 정제 애미인 천원대황후가 양견이 딸 난평공주였다.
 
게다가 선제 병신새끼가 주색에 빠져 정치를 양견한테 위임했는데 솔까 이정도 조건이면 디시 엠창새끼들 아무나 불러와도 황제 될수 있다.
 
북주가 아무리 병신이라고 해도 주요 영토 쪽쪽 빨려서 남조 최약체라 불리우는 진나라가 진숙릉이란 머저리 새끼가 반란 일으키고 황제인 진숙보는 여색에 빠져서 국정 애첩한테 맡기고 심지어 수나라 군대 막으려고 출정한 장군 아내랑 간통해서 장군이 화병으로 뒤져서 진나라 주력군이 싹 다 와해될 정도로 막장이었는데 1년 해먹고 뒤진 선제랑 비교 가능하냐?
 
수나라 말아먹은 대운하도 이새끼가 시작했고 신하들도 북주 애들이 대부분이라 북주 황성인 우문씨 장군 우문술이 수양제 때까지 해먹었고 우중문도 북주 시조 우문태가 중용한 인물인데 뭐가 성군이냐? 원술이랑 왕망 재평가하자 최소한 걔들은 남의 나라 도둑질은 안 했어
 
:수문제한테 비빌려면 당태종이나 강희제 정도는 대려와야 하지 않냐? 아 후계자 지명은 빼고
 
고구려가 에헴 할 일은 아님. 무리한 고구려 원정은 대략 멸망 원인의 30%정도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70%는 지나친 토목공사와 수양제의 폭정 그리고 내부 반란이다.
 
:30%면 얼마나 큰 건데
잠깐 나머지 70%는 얼마나 더 크냐? 무리한 결국 고구려 원정은 부차적인 이유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등신아.
 
그리고 야심가 새끼들이 널렸는데, 황제 새끼가 좆병신이라 고구려 원정을 하지 않았어도 망할 확률이 존나 높았다.
 
솔까말 수문제 자체도 먼치킨인데 수나라 내부 타격을 감수하고 계절을 잘 맞추어 다시 갔으면 이겼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고 또 무엇보다 수문제의 패전 이후
 
 
혹시나 2차원정 할까 싶어 고구려는 수나라 상대로 형님형님 하면서 기어야 했다.
 
부끄러운 역사 맞다. 좆선 시대에는 크게 8가지 종류의 천민들이 있었는데
1. 파리목숨 노예 노비 2. 백정각시놀이 등에 시달린 희생양 백정
3. 귀신 잡지만 각종 범죄 대상인 무당 4. 세계 최악의 기술 노예 공장
 
5. 놀 때는 스타, 끝나면 지능 낮은 짐승 광대 6. 국뽕 히키 노예 승려
 
7. 성노예 기생 8. 왜 사는지 모르는 노예 상여꾼
 
죄다 헬좆선에서 자살하는 게 나은 취급을 받으며 살았다.
사실 본격적인 노비의 역사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되는데
고려시대의 노비제도가 하도 개지옥이라 몽고제국의 부마국일 때
고려에 온 몽고인이 'X발, 미개인들아. 같은 민좆을 이렇게 만들다니 제정신이냐!'<ref>이거 씹선동임. 민족 어쩌고는 없고 아무리 그래도 노예 새끼들 인권을 너무 안 챙긴다고 해서 호통쳤다.</ref> 라고 호통 치고 노예해방개혁을 주도할 정도
그러나 당시 헬좆선 지배자들의 엄청난 반대에
 
오히려 개혁을 주도하던 몽고인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런 지배자들이 남아있던 좆선은?
좆선 시대의 노비 제도는 한민족 역사상 최악 헬좆선의 완성판이었다 
좆선 시대의 노비제도는 실질적으로 한번 노비는 영원한 노비, 노비 피가 섞이면 몇 대 후손이라도 노비
로 변하게 되고 노비가 되는 순간부터 기적이 있지 않는 한
영원히 자손 대대로 노비의 낙인행
더구나 좆선 민족성상 어처구니 없는 짓거리들도 있었는데
어느 부자의 조상이 자신의 가문에서 나온 노비의 후예라는 날조로
상대 집안 전체를 자신의 노비로 삼으려는 일들이 일어나고
이기면 대박 지면 X되기 때문에 서로 전재산을 털어
윗대가리들에게 뇌물을 바쳐 좆선 최종 지배자들에게 제대로 뇌물을 바치지 못한 놈들은 바로 노비로 전락하게 되어서
자손 대대로 상대편의 집안에 노예가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참고로 좆선은 한번 천민은 영원한 천민, 조상에 천민이 있어? 그럼 몇대를 내려오건 너는 자손 대대로 천민 세습
부부 중 남녀 하나라도 천출이면 그 자식은 천민 따위의 법을 만들고 실행했고 나중에 좀 나아져도
 
하도 X 같은 법들이 많아서 별로 나아지기는 힘들었다 더구나 타국으로 탈출하려고 시도하던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서 끔찍하게 고문함
심지어 같은 양반들끼리도 서로를 노예로 삼기 위해 헬좆선식 정치판도 성행했다
헬좆선 지배자들이 자민좆들을 노예로 만드는 솜씨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지능적이며
악랄하기로는 으뜸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방법들을 보자면
 
옛날 호적에 슬그머니 다른사람 조상의 이름을 노비로 적는 '암록'을 만든 후 송사를 일으켜 뇌물 먹이고 상대를 노비로 만드는 방법
강제적으로 노비문서에 동의하게 만드는 '압량위천'이라는 방법
 
어린 아이를 납치해서 다른 지방에 노비로 파는 인신매매
(이새끼들 수괴가 헬좆선의 지배자들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생활고에 시달리는 놈들에게 싸게싸게 빚 준다고 속이고 소작료를 8~90%로 때려서 소작료를 못내면 빚으로 만들고 계속 쌓이게 해서 채무를 갚지 못한다는 명분 아래 노비로 만드는 방법
 
등등
 
또 노예시장이 거의 국가적 규모에 노예 최저가 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그딴 미친 제도들을 만들기 전에 이런 개소리들이 나오기도 했고
'말 한필에 삼베 400필인데 노비 한구(의도적으로 입 구자를 씀, 아주 악랄한 차별)가 150필밖에 안하네염 헬좆선 지배자님들 이건 가축이 인간보다 비싼거니까 맘에 안들지 않음? 앞으로 노예들은 말값 이상으로 거래하죠?'
 
지배층들 마인드가 이따구라 세좆대왕도 마인드가 씹창이었고
 
그나마 다른 헬좆선의 지배자들에 비하면 마인드가 좀 나았던 놈에 불과했다
자민좆 지배자 공인 노예 최저가 제도가 있는 나라
헬좆선
 
아무리 고대인이라도 헬좆선 지배자들처럼 같은 민족을 법과 제도까지 동원해서 철저하게 탄압한 곳들은 없었다.
(존나 미개야만의 국가라면 또 모르겠다)
 
같은 민좆인 지배자들이 같은 민족을 노예라고 인증한 꼴이다.(헬좆선에서 집안 가지고 갑질하고 으스대는 병신 새끼들도 향토지 등에 대대로 지배자로 나오지 않으면 조상이 노예일 확률이 매우 높다.)
 
X발, 솔직히 같은 민족 절반을 노예로 만든 적이 있는 국가가 정말 정상적인 국가냐? 니들의 자랑스러운 조상들이 죄다 노예 출신이 되었다고 X발.
 
지금까지 피가 섞였을 것까지 생각하면 이 역겨운 유사국가 덕분에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조상의 뿌리가 노예인 처지가 되었다.
 
아마 자민좆들끼리도 자민좆을 노예로 여기고 자민좆 지배자들마저 자민좆 상당한 숫자가 노예임을 인증해주는 기록(국뽕들은 일부 내용만을 가져와서 왜곡하지만 내용들이 끔찍하기 짝이 없는 내용들도 널렸다.)들을 남겼으며 절대다수의 자민족 사람들 혈통에 노예 출신 조상을 선물해준 나라는 좆선이 세계에서 유일할거다
 
:참고로 사이코 혐한 새끼들도 좆선 따위를 미화한다면서 이걸 가지고 존나 비웃는다. 실드를 치려고 해도 너무 노답이라 실드가 불가능하다. 제임스 팔레교수의 노예가 30% 이상 최고 50%에 육박한다는 주장에 이영훈 교수도 X발년아, 그래도 어느 정도 사정은 나았어 흑흑 거리기만 했다. 국뽕들은 열심히 실드를 치지만 기록을 보면 사고 팔리고 물건, 가축 취급에 막장이라 사실상 망했다고 보면 된다. [http://blog.naver.com/joseon_500/220230905042] 그나마 논리적인 반박은 조선왕조시대의 兩班과 奴婢 이영훈 (서울대학교 경제학부)를 보면 할 수 있다.(여기서는 노예 비율을 30 ~ 40% 정도로 본다.)
 
미개야만족들 역사에서도 이런 사례는 본 적이 없다. 인도는 실질적으로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다른 민족이니 그렇다 쳐도
 
같은 민족으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정말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빌어먹을 유사국가가 좆선이다.
 
X발, 심지어 한족 문물을 빨면서 소중화를 자처하며 청나라에게 두들겨 맞더니 막상 노예 제도 폐지는 본받지 않더라 우덜식 헬좆선 ^오^
 
 
:근데 하류층들도 딱히 착했던 것은 아니다.‘그윽히 들으니 영남과 경기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일이 많아서, 심지어 육촌의 친척도 죽여가지고 씹어 먹는다 하기에 항상 상서롭지 못하다고 했더니, 이제 다시 들으니 서울 근처에서 전일에는 비록 한 두 되의 쌀을 가진 자라도 죽이고 빼앗는데, 근일에는 사람이 혼자 가면 쫓아 가서라도 죽여 놓고 먹는다.’ (「갑오일록」, 갑오 4월 2일)
 
 
 
노비에 대해 정리해주마 노비제도의 잔류와 노비인구의 증가는 크게 두가지에 기인한다:
1. 사회적 타협이다. 고려시기에 노비의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이유는 귀족들의 주요 착취가 노예제를 통한 착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려시기 지배계급이 물적기반을 확충하는 주요 루트는 농장, 장원
즉 토지였다. 한정된 토지로 소작농에게 지세를 받는게 한계가 있자 일전다주(一田多主)즉 지세를 받는 사람이 여럿인 상황이 나타났다. 이를 통해 적으면 토지 소출의 60~70% 많으면 90%까지 떼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이 경우 그 착취대상은 인구의 70%이상을 차지했던 소작농이었다 (권문세족 집권기 기준)
근데 이제 그 사전을 철폐하고 양반들은 관직을 가져야만 과전의 수조권을 가질 수 있다. 이마저도 죽으면 다시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 세습가능한 토지를 보유한 사람은 극소수의 왕실 인척과 개구공신들 뿐이다.
즉 토지를 통한 물적기반 확충에 한계가 분명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비제가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게 된것이다. 특히 막대한 양의 사전을 가진 귀족이 상대적으로 소수여서 전제개혁이 사대부들의 지지를 받고 향리계층은 반발하지 않았지만, 정도전이 내건 노비해방의 경우 사대부들과 향리들까지 반발해 폐지할 수가 없었다.
2. 위에서 말한 요소들이다. 양반들이 노비 증식에 열을 올린 결과. 이는 조선의 지배계급이 부를 축적하는 기반이 토지에서 노비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조선역사상 유일한 업적은 훈민정음창제밖에 없다.빨건덕지도 없다.북한처럼 신분제사회에 하층민은 굶는게 일상이요 평상시에도 거리에 굶어서 구걸하는 거지들이 넘쳐났다
:고려는 달랐냐??
 
그리고 .왕과 사대부들만 잘먹고 잘살았다.(조선초기에 토지 받은 자영농들 욕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노)이런 왕조를 역사로 가르치는 역사선생은 얼마나 부끄럽겠냐.마지막에 고종ㅄ이라서 일본에 식민지로 전락한거 가르치면 배우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조선 쓰레기 나라라고 생각안하면 이상한거다.500년 유지한것도 관료제를 통한 반역을 철저하게 통제 감시 탄압할수 있어서 유지한거지 왕이 나라를 잘다스려서 유지한게 아니다.
 
국뽕 좀 빨자면 조선왕조는 500년'이나' 되었다. 일본[[천황]]경우를 제외하고는 꽤 오래된 왕조이다. (바퀴벌레) 그냥 중간에 망해서 진보된 시대로 티어업하면 안되냐?
 
:역사 길다고 훌륭한 나라 아님. 그만큼 고인물에 개혁도 못하고 후진 체제가 계속 이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전세계 국가 평균수명이 백년이 되지 않는다. 왕이나 지배계층이야 왕조가 오래 가면 그만큼 자신들의 권력도 오래 가니 무조건 좋을 수밖에 없지만 피지배계층에게는 악랄한 지배층이 오래 해먹는다는 사실은 저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현재 한반도 북쪽에 있는 헬조선이 붕괴되지 않고 앞으로 몇백 년을 더 간다고 하면 상상이 쉽게 갈 것이다. 그냥 서민들 입장에서는 자기들 배부르게 해주고 행복하게 살게 해주는 왕조가 좋은 것이고 그런 왕조만이 오래 갈 자격과 정당성이 있는 것임
 
::역사만 길다고 훌륭한 나라면 통일신라 = 로마제국도 성립한다
 
 
사실 역사적 불운과 무능한 지배층이 콜라보레이션 되었을때 국가가 어떤 지경에 빠지는지 조선을 보면 알 수가 있다.
 
:한시간에 걸쳐 모든 병림픽을 다 읽고 이 형이 한마디 하겠다. 역사학자들이 못읽은 역사의 행간을 역알못들이 밝혀내는 경우가 많은데, 조선왕조도 예외가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갓세종의 치세 이면에 아버지 태종이 남겨준 역대 최고의 흑자재정에 주목한다. 조선 말기, 조정에서 서양 군함 수입을 추진한 바 있는데, 조선 팔도 금은을 다 끌어모아도 군함 한척 살 돈이 안됐다. 에도 막부를 타도한 죠슈, 사쓰마 번이 일개 지방정부 재정으로도 군함을 구입한 일본의 경제력과 비교된다 하겠다.
머가리가 똑똑하고 미개하고, 학문이 실용적이고 교조적이다..그딴거보다 훨씬 이전에, 훨씬 근본적으로, 못사는 집구석에서는 자신도 어쩔수 없이 병신이 될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명심해라.
 
:: 일본 중국에 비해 상공업 기타 생산력 측면에서 매우 뒤쳐졌다는 것이 명백한 팩트이나 그것과 거기서 파생된 요소만을 강조하고 다른 언급할만한 장점을 모두 외면하며 까기에만 열중하는 건 일제 강점시절 그들이 주입하려했던 식민사학에 경도된 비이성적 행태다. 다른 언급할만한 장점이라 하면, 중국에서 들여온 유학을 교조적으로 추종한 덕분에, 건국과 통치 이념 측면에서 여타의 국가보다 훨씬 백성을 위하는 위민 사상이 지배적이었다는 점이 있다. 이 점만으로도 충분히 기특한 (그리고 드문)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훈민정음 창제만 봐도 국가 최고 권력자가 문자 생활에서 소외된 사회 최하층을 위해 십수년 공들여 완성도 높은 문자를 만든 사건은 (세종을 단순 아웃라이어로 보고 이걸 토대로 조선을 고평가하는 것을 거부한다해도) 조선 안에서뿐만아니라 전세계 역사를 보아도 이처럼 위민 정신이 빛난 일이 드물다. 실록 편찬도 그렇다. 이건 줄이다..
이 문서 대다수 작성자들이 풍기는 전체적인 뉘앙스는 "조선이라는 국가의 좋은 점은 외부 요인 및 아웃라이어(세종?)에 의해 형성된 것에 불과하고, 나쁜 점은 조선인 인종 자체가 대대로 병신이어서 생겼다" 로 보인다. 객관적인 입장이라고 보기 어렵고, 자기발전을 위한 주관적 인식이라기보단 자기파괴적, (일본의 역사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수동적 입장으로 보이는데,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틀딱들의 국뽕을 필터없이 마시는 것만큼이나 나빠보인다.
 
어째 한국 중국 베트남 3국의 이씨 왕조들 중 업적이 초라해보인다. 당나라는 말할것 없고, 리 왕조 시기 대월국은 송나라 참교육 시켰는데, 조선은 얘네처럼 영토 확장하고 누굴 복속시킨적이 없다.
 
:변론을 조금 해주자면 복속 시킬 수 있는 애들이 주변에 없었다.중국의 명,청은 조선과 비교 할 때 넘사벽의 국력을 가졌고,일본은 섬나라다.섬나라 따먹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말안해도 다들 알거다.만약에 중국이 거대한 통일 왕조가 아닌 5호 16국 시대처럼 갈기갈기 찢겨 서로 싸우는 상태가 계속되었다면(유럽처럼) 야심있는 왕들이 등장해서 비벼대고 경쟁하며 발전할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명,청이라는 거대한 통일 왕조여서 비벼볼 엄두 조차 못됐다.이렇게 말하면 만주족은 어떻게 청나라 세웠냐고 풀발기하는 애들이 있는데,명은 내부 반란으로 망한거다. 만주족이 멸망시키기도 전에 명 정부 자체는 알아서 멸망했다. 만주족은 명이 반란의 연속으로 옛날부터 나라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오삼계가 문열어 주기전까진 산해관을 못넘었다.후금이 운빨이 좆쩔어주는 면도 있다.
 
가끔씩 다른나라 역사 들어다가 조선 재평가니 과학적으로 발전 역사 길이 어쩌구 하는 애들있는데 진짜로 열린 인간들이라면 다른나라에 대한 인식 보면 금방 견적나오니 각자 그 수준에 맞춰서 대화하고 생각을 교환하고 맞춰 나가면 된다. 하지만 보통 조선뽕맞은 애들은 교묘히 다른나라 역사로 물타서 상대주의적으로 보일뿐 우리와 비슷하게 편협한 뇌구조를 가지고 있는건 마찬가지이고 더 나아가 민족 우월성 혹은 저열성까지 따지기 때문에 아직 조선시대에 사는 애들 혀에 넘어가지 말고 천천히 주변국 역사나 혹은 주변국에 대한 다른 견해등을 물어보면 전혀 상대주의적이지 않은 조선뽕 맞은 파쇼의 뇌구조를 금방 입밖으로 낸다. 따라서 너를 교조하려는 놈이 조선뽕으로 판명이 되면 피차일반 뇌구조가 서로 편협한건 매한가지니 조선뽕 맞은 인간 말은 그냥 씹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편협한 사관을 한쪽이 사라질때 까지 서로 강변하면 된다.
 
다만 요즘 일부 여자들이 무고한 남자들에게 성폭행 누명을 씌우는 끔찍한 일들이 자꾸 벌어지자 대중들 사이에서는 조선 왕조의 반좌율(무고한 것으로 판명되면 오히려 무고범이 그만큼의 처벌을 받는 제도,예를 들어 살인 무고일 경우 무고범에게 살인죄에 해당하는 처벌을 내림)이 오히려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
 
조선 = 개병신
고구려는 조센역사도 아닌데 왜 뜬끔없이 물고뜯고있는거냐 대체
:고구려 울 역사맞는데 ㅇㅈㄹ이냐? 혹시 고구려는 중국꺼 ㅇㅈㄹ떠는 짱깨놈이냐?
 
:: 이새낀 진짜 짱깨새낀가? ㅋㅋㅋㅋㅋ 고구려가 한국사 아니라고 우기는 나라는 짱깨밖에 없는데


일단은 조선 얘기하면서 조센이라고 하는 새끼들은 거르면 된다. 답이 안나오는 일뽕새끼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 얘기하면서 조센이라고 하는 새끼들은 거르면 된다. 답이 안나오는 일뽕새끼들이기 때문이다. 그냥 구한말이 지옥이였으면 중일전쟁 이후 일제시대도 지옥이지 뭐가 더 낫다고 싸워대는 키배충도 거르자.


:
나무위키는 조선/오해 항목까지 만들면서 쉴드친다. 역덕들 사이에서도 쉴드치는 무리가 종종 있는데 기록이 가장 많이 남아서 (특히 사학전공자의 경우 밥그릇싸움) 파고들 게 많아서 그런 것도 있고, 친중반일 프로파간다 퍼트리기 딱 좋은 시대라 그렇기도 하다. 시대별로 중국, 일본과의 관계를 보면 삼국시대때는 고구려가 중국 왕조들과 자주 전쟁하다 당에 망하고, 백제도 결국 당나라에 망한다. 신라가 왜구에 시달리긴 했지만, 백제는 왜와 거의 혈맹 수준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송이 워낙 군사력이 약해서 충돌은 없었지만 대신 북방민족(거란, 여진, 몽고)과 자주 충돌하고 원나라한테는 거의 속국수준까지 갔다. 고려 말 왜구가 대대적으로 침입하지만 이 때 활약한 무장도 조선 세운 이성계라 사실상 조선 프리퀄인것도 있고 망하기 직전인데다가 명과의 관계도 요동 정벌,홍건적 보면 딱히 좋은 건 아니었다. 반면에 조선은 명에 허구한날 사대하며, 임진왜란때 명에 구원받았지만, 일본과는 임진왜란을 거쳐 식민지로 망했으니 친중반일 하는 세력 입장에서는 딱 맞는 시대였다.
== 둘러보기 ==
{{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 2단원}}
{{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 3단원}}
{{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 4단원}}
{{14세기}}
{{15세기}}
{{16세기}}
{{17세기}}
{{18세기}}
{{19세기}}
{{각주}}
{{각주}}


[[분류:국가]]
[[분류: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