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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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 | |||
{{극혐}} | |||
{{개쓰레기}} | |||
{{문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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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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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 과학에 투자 안 하고 좆도 쓸데없는 성리학(문과)에만 투자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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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망한 시즌}} | {{심플/망한 시즌}} | ||
{{대한역사}} | {{대한역사}} | ||
== 개요 == | == 개요 == | ||
{{국가 정보 | 국기 =조선의 국기.png | 추가사진 =한반도 지도.png| 국가명 = 조선국<br>대조선국| 영어국가명 = 朝鮮國 / Kingdom of Choson<br>大朝鮮國 / Kingdom of Great Choson |글씨색상코드 = #FFFFFF | 배경색상코드 = #306ab2 | 수도 = [[서울특별시|한양]] |대륙 = [[아시아]] | 면적 = |인구 = 약 17,000,000(1907년)| 지도자 =| GDP =| 언어 =중세 한국어(~16세기)<br/>근대 한국어(16~19세기)<br/>현대 한국어(19세기~현대)| 인종 =[[한민족]] | 종교 = [[유교]]([[성리학]]) | 공식 홈페이지 = }} | {{국가 정보 | 국기 =조선의 국기.png | 추가사진 =한반도 지도.png| 국가명 = 조선국<br>대조선국| 영어국가명 = 朝鮮國 / Kingdom of Choson<br>大朝鮮國 / Kingdom of Great Choson |글씨색상코드 = #FFFFFF | 배경색상코드 = #306ab2 | 수도 = [[서울특별시|한양]] |대륙 = [[아시아]] | 면적 = |인구 = 약 17,000,000(1907년)| 지도자 =| GDP =| 언어 =중세 한국어(~16세기)<br/>근대 한국어(16~19세기)<br/>현대 한국어(19세기~현대)| 인종 =[[한민족]] | 종교 = [[유교]]([[성리학]]) | 공식 홈페이지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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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 기간: 그레고리력 서력기원 1392년 8월 13일~1910년 8월 29일<ref>대한제국의 존속 기간까지 포함. 총 518년 16일 동안 존속했다. 대한제국을 제외하면 1897년 10월 11일이 끝으로 총 505년.</ref> | 존속 기간: 그레고리력 서력기원 1392년 8월 13일~1910년 8월 29일<ref>대한제국의 존속 기간까지 포함. 총 518년 16일 동안 존속했다. 대한제국을 제외하면 1897년 10월 11일이 끝으로 총 505년.</ref> | ||
서기 (그레고리력) 1392년 8월 13일 혹은 (율리우스력) 8월 5일 (음력 7월 17일), | 서기 (그레고리력) 1392년 8월 13일 혹은 (율리우스력) 8월 5일 (음력 7월 17일), [[이성계]]가 [[고려 왕조]]를 무너트리고 세운 나라로 왕은 곤룡포(4개의 용, 붉은색)를 입었다. 다만 위 사진에서 보듯이 이성계는 특이하게 푸른색 용포를 입었다. | ||
같은 경우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체재의 일본이 '명의 속국'임을 인정 받으면서 명 황제에게서 조선의 곤룡포와 동일한 곤룡포를 하사 받았다. 사진은 KBS에서 방영한 '임진왜란 1592'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연기한 김응수 씨가 곤룡포를 입은 모습이다. | 같은 경우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체재의 일본이 '명의 속국'임을 인정 받으면서 명 황제에게서 조선의 곤룡포와 동일한 곤룡포를 하사 받았다. 사진은 KBS에서 방영한 '임진왜란 1592'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연기한 김응수 씨가 곤룡포를 입은 모습이다. | ||
조선 초기 정도를 빼면, | 조선 초기 정도를 빼면, 일제시대, 북한과 함께 한반도 역사 최악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으며 외국에서도 중국에게 무분별한 사대와 힘이 없고 변방의 국가로 취급된 이미지로 그 취급이 좋지 않다. 구한말에는 영국이나 미국도 개병신으로 보게되었음. 고종이 일제에게 먹히기 직전 타이밍에 미국에게 도움 요청했는데 국제정세는 실리에 움직여서 미국도 일본편에 섬. 참고로 조선이 일본보다 강했다는건 1450년 까지의 이야기지 [[임진왜란]]으로부터 100년 전에도 일본이 더 강했을듯하다. | ||
그런 개병신 같은 나라였는데 2000년대 들어서 사극을 빙자한 판타지물때문에 이미지가 세탁되어서 한국사의 황금기인 마냥 재포장되었다 ㅅㅂ... 아니 미국처럼 남의 나라 사람을 노예로 쓴게 아닌 자국민을 노비로 부리는 이상한 나라인거에 이상함을 느껴야되지 않나? | 그런 개병신 같은 나라였는데 2000년대 들어서 사극을 빙자한 판타지물때문에 이미지가 세탁되어서 한국사의 황금기인 마냥 재포장되었다 ㅅㅂ... 아니 미국처럼 남의 나라 사람을 노예로 쓴게 아닌 자국민을 노비로 부리는 이상한 나라인거에 이상함을 느껴야되지 않나? | ||
생각해보면 의외로 조선이 현대 대한민국과 크게 연관성이 있지는 않다. 오히려 나라를 못 지키고 원숭이 제국에게 박살 나는 바람에 나라가 두 동강이 나고 후손들은 나라를 지키려고 군복무를 필수 하게 되었다.<ref>우선 남북 분단의 원인은 논란이 크다. 조선이 망하지 않고 계속 존재했다면 남북의 분단은 없었을 수도 있지만 징병제가 도입되지 않았을지는 모른다. 사실 어떤 나라든지 자국을 지키기 위한 군대가 필요한 법이고 조선 또한 군대가 존재했기에 병사를 모집하는 제도 자체는 징병이든 모병이든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징병제가 지금처럼 빡세진 건 북한이 가장 큰 원인이다.</ref> | 생각해보면 의외로 조선이 현대 대한민국과 크게 연관성이 있지는 않다. 오히려 나라를 못 지키고 원숭이 제국에게 박살 나는 바람에 나라가 두 동강이 나고 후손들은 나라를 지키려고 군복무를 필수 하게 되었다.<ref>우선 남북 분단의 원인은 논란이 크다. 조선이 망하지 않고 계속 존재했다면 남북의 분단은 없었을 수도 있지만 징병제가 도입되지 않았을지는 모른다. 사실 어떤 나라든지 자국을 지키기 위한 군대가 필요한 법이고 조선 또한 군대가 존재했기에 병사를 모집하는 제도 자체는 징병이든 모병이든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징병제가 지금처럼 빡세진 건 북한이 가장 큰 원인이다.</ref> | ||
주위 대부분이 이씨 조선도 공식 명칭 취급하지만 한국만 이씨 조선을 멸칭으로 취급한다. 그러므로 한국말 잘 하면서 리씨 조선이라 하는 인간 신고해보자. 운 좋으면 [[절대시계]] 받을 수도 있다. | |||
== 세계가 보는 조선의 이미지 == | == 세계가 보는 조선의 이미지 == | ||
파일:중국속국.jpg | [[파일:200405191203252100 1.jpg]] | ||
[[파일:중국속국.jpg]] | |||
파일:2ca5d12680c7c9.jpeg | [[파일:2ca5d12680c7c9.jpeg]] | ||
파일:수정된last2된.jpg | [[파일:수정된last2된.jpg]] | ||
파일:서울대 이영훈 낙성대경제연구소.png | [[파일:서울대 이영훈 낙성대경제연구소.png]] | ||
파일:K-455.jpg | [[파일:K-455.jpg]] | ||
파일:fae21ba98c18ae9f39d9a260609de545.jpg | [[파일:fae21ba98c18ae9f39d9a260609de545.jpg]] | ||
파일:115A894D4E81F19B14F4D5.jpg | [[파일:115A894D4E81F19B14F4D5.jpg]] | ||
파일:DdqlKeZVwAAQ rz.jpg | [[파일:DdqlKeZVwAAQ rz.jpg]] | ||
파일:국뽕 현상.jpg | [[파일:국뽕 현상.jp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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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정치/제도 같은 사회요소에 대한 긍정평가는 어쩌면 전무한 수준일지도 모른다. | 외교/정치/제도 같은 사회요소에 대한 긍정평가는 어쩌면 전무한 수준일지도 모른다. | ||
애초에 서양놈들이 보는 황인종 이미지는 | 애초에 서양놈들이 보는 황인종 이미지는 | ||
* 일본 : 예전부터 강한 국가였고 시민의식도 탑클래스 | |||
ㄴ여기서 예전의 기준이 뭐냐? | |||
ㄴ 서양은 근세나 근대 기준으로 인지도를 알아보기때문에 여기서 예전의 기준이라면 뭐겠냐 | |||
* 한국 : 최근에 뜨기 시작한 국가인데 가끔식 북한이랑 헷갈림 | * 한국 : 최근에 뜨기 시작한 국가인데 가끔식 북한이랑 헷갈림 | ||
* 중국 : 황인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여러모로 황인종 이미지 말아쳐먹음 | * 중국 : 황인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여러모로 황인종 이미지 말아쳐먹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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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조선시대 때문이다. | 바로 조선시대 때문이다. | ||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 조선 역사는 최악의 콤플렉스로 손꼽히며 세계사적인 시각, 객관적 역사관에서 바라봤을 때 국내 사학자들이 가장 정신승리, 짜집기, 왜곡 등을 즐겨하는 파트이기도 하다. 세계사 시각, 특히 서구학계 관점, 애초에 전 세계에서 국내 사학계를 빼면 조선의 대한 시각과 이미지는 |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 조선 역사는 최악의 콤플렉스로 손꼽히며 세계사적인 시각, 객관적 역사관에서 바라봤을 때 국내 사학자들이 가장 정신승리, 짜집기, 왜곡 등을 즐겨하는 파트이기도 하다. 세계사 시각, 특히 서구학계 관점, 애초에 전 세계에서 국내 사학계를 빼면 조선의 대한 시각과 이미지는 중국의 클랜국이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유투브나 구글에 'Vassal Of Qing'을 치면 조선이 나오는 것을 손쉽게 볼 수 있고, 미국인들이나 서양인들의 역사 유튜브 영상에서 조선을 청의 속국으로 표시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Ui_1OxzKUdc&t=4s] 뿐만 아니라 식민사관이 만들어지게 제공한 나라이기도 하며, 온갖 한국에 병신 같은 이미지는 모두 미개한 조선에서 나왔다고 보면 된다. | ||
하지만 안 그런 영상이나 지도도 있다.구글에서 Qing dynasty를 쳐보면 청나라와 조선을 별개의 나라로 취급한 지도도 몇 개 발견할 수 있음. 아니 애초에 미국인이나 서양인이 그렇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도 안 하고 무조건 옳은 거임? 그들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봄? 외국인이 똥을 메주라고 하면 그대로 믿을 양반일세? | 하지만 안 그런 영상이나 지도도 있다.구글에서 Qing dynasty를 쳐보면 청나라와 조선을 별개의 나라로 취급한 지도도 몇 개 발견할 수 있음. 아니 애초에 미국인이나 서양인이 그렇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도 안 하고 무조건 옳은 거임? 그들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봄? 외국인이 똥을 메주라고 하면 그대로 믿을 양반일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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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국뽕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선사에 대한 미화, 왜곡이 끊임없이 지속되었지만 미디어, 핸드폰 발달로 조선이 얼마나 좆병신인지 알게 된 국민들의 사고관에 큰 영향력을 주지 못했다. 그러자 요즘엔 조선을 띄우기 위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전시대 역사인 고려를 까면서(동족상잔) 조선에 대한 이미지를 복구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 1980년대부터 국뽕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선사에 대한 미화, 왜곡이 끊임없이 지속되었지만 미디어, 핸드폰 발달로 조선이 얼마나 좆병신인지 알게 된 국민들의 사고관에 큰 영향력을 주지 못했다. 그러자 요즘엔 조선을 띄우기 위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전시대 역사인 고려를 까면서(동족상잔) 조선에 대한 이미지를 복구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 ||
2022년 현재 현대 대한민국은 이러한 조선이 똥 싼 이미지들을 대부분 개선하는데 성공했다. 삼성, 현대, LG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를 창출했고 IMF 선정 세계 10대 경제 대국, 파리 클럽의 회원국, G20 주요정상회의 국가, MIKTA 리더국으로서 현재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국가로서 발돋움했으며, 세계적으로도 '지역 강국' 위상을 부여 받으며 청이나 명의 속국으로 취급되던 조선과 달리 '작지만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무역에 대해 소극적이던 조선과 달리 대외무역흑자를 G7 국가 이탈리아보다 더 많이 내고 있는 나라로, 최근엔 민주주의 지수 증가, K-POP(BTS, 싸이) 같은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 발생, 성의 자유화 등으로 조선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으면서 조선은 그 반면교사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 |||
== | == 조선의 현실 == | ||
{{더러워}} | |||
{{극혐}} | {{극혐}} | ||
{{ | {{강제개행}} | ||
{{ | {{미개}} | ||
{{ | {{정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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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 시대의 불편한 진실.png| | [[파일:조선 시대의 불편한 진실.png|800px]]</div> | ||
* 쪽본이 패망하자 백성들은 임시정부와 광복군 등 독립에 힘쓴 지식인들과 군인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러나 정작 '''조선 왕족은 한국 정부로부터 입국 거부를 당했다.''' 이는 당시 백성의 여론이 조선 왕조에 대한 반감이 큰 것을 이유로, | * 쪽본이 패망하자 백성들은 임시정부와 광복군 등 독립에 힘쓴 지식인들과 군인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러나 정작 '''조선 왕족은 한국 정부로부터 입국 거부를 당했다.''' 이는 당시 백성의 여론이 조선 왕조에 대한 반감이 큰 것을 이유로, [[이승만]]이 민심을 받아들인 갓-정책이다. 다만 이후 [[박정희]]가 입국 금지를 풀었다고 한다. 그래도 임시정부 시절에는 조선 황실 우대 조항이 (일단은) 있었다고 한다. | ||
* | * [[고려]]가 만든 '작지만 강한 나라' 이미지를 전부 깎아먹었다. [[임진왜란]] 전까지 명나라는 조선하면 고구려와 고려의 이미지를 떠올렸지만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일본쪽바리에게 신 나게 얻어맞자 그때부터 '조선은 참 문약한나라구나'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피해를 따지면, 조선은 이겨도 이긴 게 아니었다. 일단 엄청난 학살과 일본으로 끌려간 포로들 때문에 인구가 급감했고 전쟁의 주된 무대가 한반도였기 때문에 땅은 황폐화 되어서 농사가 매우 힘들어졌다. 수많은 문화재도 불탔는데 고려 실록은 전부, 조선 실록은 판본 1부 빼고 전부 불탔다. 이후에 [[경신대기근]]까지 겹치면서 국력은 지구 내핵을 향해 드릴을 뚫고 있었다. 명이나 일본도 역시 피해를 입었으나 조선에 견줄 바는 아니었다. 명나라가 망한 이유는 [[만력제]]의 병신짓과 대기근 때문이지 임진왜란 때문이 아니다. | ||
* 1897년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을 세우고 대외명칭을 'Dai-han'(대한)으로 정하여 외국 선교사들을 통해 이를 널리 알리려고 했으나 듣보잡 취급 당하고 전부터 부르던 Korea로 불렀으며, 지금도 Republic of 'Korea'를 영문 국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 * [[1897년]]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을 세우고 대외명칭을 'Dai-han'(대한)으로 정하여 외국 선교사들을 통해 이를 널리 알리려고 했으나 듣보잡 취급 당하고 전부터 부르던 Korea로 불렀으며, 지금도 Republic of 'Korea'를 영문 국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 ||
* '''명이 있어야 조선이 있는 법'''...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사실 조선에 매우 어울리는 말이다. 빵셔틀로서 고통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러워한 나라라는 사실이다. | * '''[[중국몽|명이 있어야 조선이 있는 법]]'''...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사실 조선에 매우 어울리는 말이다. 빵셔틀로서 고통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러워한 나라라는 사실이다. | ||
* 제임스 팔레란 한국학 미국 학자는 조선을 '노예제 국가'로 규정하며 조선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국민을 노예로 만든 유일한 나라'''라고 평가하였다. 이 평가에 대해 국사학자 아무도 태클을 걸지 못하다가 유일하게 반박한 사람이 있는데, 뉴라이트로 유명한 '''이영훈'''이다. 다만 서구의 Slave와 조선의 노비를 같게 볼 수 있는지는 아직 논란이 좀 있다. 이 사람은 남북전쟁 당시 미국도 노예제 사회로 봤다고 한다. | * 제임스 팔레란 한국학 미국 학자는 조선을 '노예제 국가'로 규정하며 조선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국민을 노예로 만든 유일한 나라'''라고 평가하였다. 이 평가에 대해 국사학자 아무도 태클을 걸지 못하다가 유일하게 반박한 사람이 있는데, 뉴라이트로 유명한 '''이영훈'''이다. 다만 서구의 Slave와 조선의 노비를 같게 볼 수 있는지는 아직 논란이 좀 있다. 이 사람은 남북전쟁 당시 미국도 노예제 사회로 봤다고 한다. | ||
* 세계적으로도 인지도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국내 반크나 사이버외교사절단 등이 유튜브나 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홍보하고 있지만 여전히 효과는 미지근하다. 애초에 문화력이 우수한 나라였다면 17 ~ 18세기의 일본처럼 서구에서 자포네스크라도 유행시켰을 텐데, 그냥 문화가 평범하니 해외에서도 안 알아준다는 게 지배적이다. | * 세계적으로도 인지도가 전혀 없었다. 물론 고구려처럼 국력은 ㅅㅌㅊ 수준이였지만 지나치게 이전인 과거사는 몰라도 조선은 근대국가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였는데도 듣보잡 취급이다. 그래서 국내 반크나 사이버외교사절단 등이 유튜브나 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홍보하고 있지만 여전히 효과는 미지근하다. 애초에 문화력이 우수한 나라였다면 17~18세기의 일본처럼 서구에서 자포네스크라도 유행시켰을 텐데, 그냥 문화가 평범하니 해외에서도 안 알아준다는 게 지배적이다. | ||
* 사실 조선 왕조가 일본으로부터 나라만 지켰어도 군대 갈 확률이 적었을 거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징병제는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일본 경제재건의 아버지 김일성 씹새끼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 * 사실 조선 왕조가 일본으로부터 나라만 지켰어도 군대 갈 확률이 적었을 거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징병제는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일본 경제재건의 아버지 김일성 씹새끼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 ||
* 보통 군사력이 약하면 | * 보통 군사력이 약하면 문화적으로 발달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대표적인 게 [[송나라]]) 조선은 [[한글]] 말고 문화적으로 융성했던 게 한 가지도 없었다. 『일동장유서』에서 조선 사신단이 일본의 수치 사용을 보고 조선은 수치를 다루는 방법조차 모른다며 한탄하였으며, 위생의 개념이 없어 목욕을 하지 않았고 길거리에 용변을 보는데 거리낌이 없었으며, 실제로 일제에 먹혔을 당시와 일제 패망 직후 해방 당시에도 문맹률이 90%에 달할 정도로 백성들은 글자를 몰랐다. 오직 양반만이 글자를 쓸 수 있고 양반만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그것을 본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만들어준 글자가 바로 [[한글]]이다. | ||
* 조선 시대 옹호자들을 보면 이들이 마조히스트가 아닌가 의문을 품게 된다. 신 나게 두들겨 처맞고 문화력도 융성하지 못했으며, 세계적으로도 변방으로 취급된 나라가 뭐가 좋아서 빠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꼭 마조히스트적인 면만 있어서 빠는 것만은 아닌데, 국내에 전주 이씨나 여흥 민씨, 안동 김씨 같은 조선 시대 이름 있는 명문세가 후손(이마저도 매관매직이지만)이 수백만에 이르기 때문에, '''자기 조상뽕'''에 맞아 빠는 경우도 많다. 족보 자랑 하는 놈들은 죄다 자기 족보 말고 자랑할 게 하나도 없는 병신들이니 그러려니 해라. | * 조선 시대 옹호자들을 보면 이들이 마조히스트가 아닌가 의문을 품게 된다. 신 나게 두들겨 처맞고 문화력도 융성하지 못했으며, 세계적으로도 변방으로 취급된 나라가 뭐가 좋아서 빠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꼭 마조히스트적인 면만 있어서 빠는 것만은 아닌데, 국내에 전주 이씨나 여흥 민씨, 안동 김씨 같은 조선 시대 이름 있는 명문세가 후손(이마저도 매관매직이지만)이 수백만에 이르기 때문에, '''자기 조상뽕'''에 맞아 빠는 경우도 많다. 족보 자랑 하는 놈들은 죄다 자기 족보 말고 자랑할 게 하나도 없는 병신들이니 그러려니 해라. | ||
* 보통 국까 카테고리는 역센징 일뽕만이 들락거리는데, 조선 왕조 카테고리는 역센징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일반인도 '''병신 같은 나라'''라고 기여하고 가는 유일한 문서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북한|휴전선 이북의 모 불법단체]]조차도 조선이란 이름을 계승했다고 자뻑하면서도 조선시대를 극혐하며 맹비난을 퍼붓는다 그래서 북괴에서 조선시대를 가르칠 땐 이조(李朝)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근데 어차피 지금 지들의 모습도 조선시대 그 이하이자 하위호환인 모습인데 결국 누워서 침뱉기 아닌가? | * 보통 국까 카테고리는 역센징 일뽕만이 들락거리는데, 조선 왕조 카테고리는 역센징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일반인도 '''병신 같은 나라'''라고 기여하고 가는 유일한 문서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북한|휴전선 이북의 모 불법단체]]조차도 조선이란 이름을 계승했다고 자뻑하면서도 조선시대를 극혐하며 맹비난을 퍼붓는다 그래서 북괴에서 조선시대를 가르칠 땐 이조(李朝)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근데 어차피 지금 지들의 모습도 조선시대 그 이하이자 하위호환인 모습인데 결국 누워서 침뱉기 아닌가? | ||
* 한국 여성들이 제일 극혐하는 역사다. 대다수의 조선 혐오 증상은 한국 여성들에게서 발원되며, 대표적으로 성리학의 산물인 '''남존여비''', '''현모양처''', '''사농공상''', '''군인 푸대접'''(문과 중시, 무과 천시) 등이 대표적이다. 시집 가면 시어머니가 갈구는 풍습도 조선 남존여비-현모양처 단계를 타면서 깊숙이 뿌리내린 악습이다. 반면에 한국 여성들이 제일 호감으로 여기는 역사는 [[고려]]다. 아휴 진짜... 요즘 일부 여자들 무고 무섭다. 아니... 세모자 사건이나 서정범 교수 무고 사건을 보면 벌써 1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씨발 정말 전국적으로 [[남녀칠세부동석]]이라도 시행해야 하나? | * 한국 여성들이 제일 극혐하는 역사다. 대다수의 조선 혐오 증상은 한국 여성들에게서 발원되며, 대표적으로 성리학의 산물인 '''남존여비''', '''현모양처''', '''사농공상''', '''군인 푸대접'''(문과 중시, 무과 천시) 등이 대표적이다. 시집 가면 시어머니가 갈구는 풍습도 조선 남존여비-현모양처 단계를 타면서 깊숙이 뿌리내린 악습이다. 반면에 한국 여성들이 제일 호감으로 여기는 역사는 [[고려]]다. 아휴 진짜... 요즘 일부 여자들 무고 무섭다. 아니... 세모자 사건이나 서정범 교수 무고 사건을 보면 벌써 1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씨발 정말 전국적으로 [[남녀칠세부동석]]이라도 시행해야 하나? | ||
* 웬만하면 모든 한국 역사를 날조해서 [[미국]]으로 만들어버리는 [[환빠]]들도 혐오하는 나라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최근 환빠들은 조선이 아예 반도에 있지 않고 아메리카에 있었다는 '아메리카대조선'이라는 설을 퍼뜨리고 있다. | * 웬만하면 모든 한국 역사를 날조해서 [[미국]]으로 만들어버리는 [[환빠]]들도 혐오하는 나라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최근 환빠들은 조선이 아예 반도에 있지 않고 아메리카에 있었다는 '아메리카대조선'이라는 설을 퍼뜨리고 있다. | ||
* [[일본]], [[대만]], [[중화인민공화국]] 등 인접 국가 모두가 만만한 약소국으로 보고 있다. 한 나라도 아니고 여러 나라가 다 병신으로 본다면 그것은 상대가 우릴 비하하려 왜곡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업보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짱깨 새끼들은 청나라 시절 생각하면서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도 있다고 봐야한다. | * [[일본]], [[대만]], [[중화인민공화국]] 등 인접 국가 모두가 만만한 약소국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1800년대 이후에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도 조선을 만만하게 봤다. 한 나라도 아니고 여러 나라가 다 병신으로 본다면 그것은 상대가 우릴 비하하려 왜곡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업보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짱깨 새끼들은 청나라 시절 생각하면서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도 있다고 봐야한다. | ||
* 매년 미스코리아 같은 대회를 창설해 전국 8도에서 가장 이쁜 여자들을 뽑아 명나라에 처녀로 조공했다. 다만 처녀 조공은 세종 시기에 폐지되었다고 함. 세종이 너무한거 아니냐고 존나게 싹싹 빌어서 폐지함 ㅇㅇ | * 매년 미스코리아 같은 대회를 창설해 전국 8도에서 가장 이쁜 여자들을 뽑아 명나라에 처녀로 조공했다. 다만 처녀 조공은 세종 시기에 폐지되었다고 함. 세종이 너무한거 아니냐고 존나게 싹싹 빌어서 폐지함 ㅇㅇ | ||
* '''국가가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서 백성이 나라를 지킨 유일한 나라'''다. 대표적인 게 임진왜란이다. [[고종]]은 아예 생판 다른 나라인 러시아 공사관으로 튀는 [[아관파천|기행]]을 보여줘서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에게 빅-웃음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 * '''국가가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서 백성이 나라를 지킨 유일한 나라'''다. 대표적인 게 임진왜란이다. [[고종]]은 아예 생판 다른 나라인 러시아 공사관으로 튀는 [[아관파천|기행]]을 보여줘서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에게 빅-웃음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 ||
* '''국가가 다른 나라 군대를 불러서 자국민을 학살한 유일한 나라'''다. (1894년 9월) 제2차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고종은 이를 제압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에 지원을 요청했다. 제1차 농민 봉기 (동년 3월) 때 전주성을 동학농민군에게 점령당했던 트라우마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10년 전 갑신정변 때 맺었던 톈진조약 핑계로 청군과 같이 한반도에 들어왔고 수많은 의병을 학살했다. 어찌 보면 청일전쟁의 실질적인 원흉이 바로 고좆이다. | * '''국가가 다른 나라 군대를 불러서 자국민을 학살한 유일한 나라'''다. (1894년 9월) 제2차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고종은 이를 제압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에 지원을 요청했다. 제1차 농민 봉기 (동년 3월) 때 전주성을 동학농민군에게 점령당했던 트라우마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10년 전 갑신정변 때 맺었던 톈진조약 핑계로 청군과 같이 한반도에 들어왔고 수많은 의병을 학살했다. 어찌 보면 청일전쟁의 실질적인 원흉이 바로 고좆이다. | ||
* '''국가가 자국민의 절반을 노비로 부린 유일한 나라'''다. 전 국민의 40%가 노비였다. 40% 노비의 대다수는 전쟁 포로가 아니고 자국민이었다. 다만 정석 노비로 부리면 세금 낼 놈들이 없어지니까, 봉급도 주고 땅도 빌려주는 일종의 노동자 개념으로 부렸다. 몰론 [[공무원|공노비]] 한정으로 [[좆소기업|사노비]]는 그냥 노예 그 자체였을 뿐이다. | * '''국가가 자국민의 절반을 노비로 부린 유일한 나라'''다. 전 국민의 40%가 노비였다. 40% 노비의 대다수는 전쟁 포로가 아니고 자국민이었다. 다만 정석 노비로 부리면 세금 낼 놈들이 없어지니까, 봉급도 주고 땅도 빌려주는 일종의 노동자 개념으로 부렸다. 몰론 [[공무원|공노비]] 한정으로 [[좆소기업|사노비]]는 그냥 노예 그 자체였을 뿐이다. | ||
* 부민고소금지법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백성들이 왕에게 상소문을 올리지 못하게 하였다. 오늘날로 치면 멀쩡하게 돌아가던 청와대 국민청원을 뜬금없이 섭종해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 * 부민고소금지법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백성들이 왕에게 상소문을 올리지 못하게 하였다. 오늘날로 치면 멀쩡하게 돌아가던 청와대 국민청원을 뜬금없이 섭종해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 ||
* 자국 역사 왜곡에 가장 앞장선 나라다. 정통성을 위해 고려사를 일정 부분 훼손 시도했는데, 세종과 정조가 이것을 금하여 그나마 〈고려사절요〉 같은 사서가 남게 되었다. 또한 발해를 '북적' 취급해서 고구려와 조선을 별개의 역사로 봤을 뿐만 아니라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기자조선'을 정통성으로 보았다. 현대 우리가 '단군조선'을 정통성으로 보는 것은 환빠 역사학자들이 그나마 조선의 악습 사관을 개선한 유일한 공으로(유일하게 환빠를 좋게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선은 '소중화 사상'을 외치며 중국인과 혈육적으로도 내선일체하려고 노력하였다. | * 자국 역사 왜곡에 가장 앞장선 나라다. 정통성을 위해 고려사를 일정 부분 훼손 시도했는데, 세종과 정조가 이것을 금하여 그나마 〈고려사절요〉 같은 사서가 남게 되었다. 또한 발해를 '북적' 취급해서 고구려와 조선을 별개의 역사로 봤을 뿐만 아니라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기자조선'을 정통성으로 보았다. 현대 우리가 '단군조선'을 정통성으로 보는 것은 환빠 역사학자들이 그나마 조선의 악습 사관을 개선한 유일한 공으로(유일하게 환빠를 좋게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선은 '소중화 사상'을 외치며 중국인과 혈육적으로도 내선일체하려고 노력하였다. | ||
* 짱개, 쪽본 놈들도 조선이란 단어가 욕인 걸 아는지 서로 '서조선'(물론 여기서 말하는 조선은 북한이긴 하지만 어쨌든 짱깨국 내에서는 공산당 비판을 대놓고 하다가는 공안이 마라탕을 배달하러 오므로 잘 사는 것만 빼면 북한이랑 다를 게 없다고 돌려까는 의미로 쓰인다), '동조선' 거리면서 자국을 깎아내리는데 조선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 * 짱개, 쪽본 놈들도 조선이란 단어가 욕인 걸 아는지 서로 '서조선'(물론 여기서 말하는 조선은 북한이긴 하지만 어쨌든 짱깨국 내에서는 공산당 비판을 대놓고 하다가는 공안이 마라탕을 배달하러 오므로 잘 사는 것만 빼면 북한이랑 다를 게 없다고 돌려까는 의미로 쓰인다), '동조선' 거리면서 자국을 깎아내리는데 조선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 ||
* [[헬조선]] 단어의 아버지이다. 사실 헬조선이라는 것은 현대 대한민국의 단점이 조선 시대의 그 비참한 역사와 동질감을 형성한다고 생각하는 시각에서 온 비하 용어로, 결국은 조선의 병신 이미지를 한국 사회에 덮어씌우는 것이다. | * [[헬조선]] 단어의 아버지이다. 사실 헬조선이라는 것은 현대 대한민국의 단점이 조선 시대의 그 비참한 역사와 동질감을 형성한다고 생각하는 시각에서 온 비하 용어로, 결국은 조선의 병신 이미지를 한국 사회에 덮어씌우는 것이다. 물론 헬조선 이론에 일제강점기가 큰 영향을 주긴 했지만 일제강점기는 막타였고 1800년대 이후부터 내부에서 썩어간 나라가 조선이였다고 말해도 틀린건 아니다. | ||
* 나라가 너무 썩어문드러져 망해가던 시기인 개화기때 이것저것 개혁을 시도하려했으나 왕 자체가 유교탈레반 꼰대 틀딱이었고 뭐 좀 하려고하면 늘 왕의 헛기침 한방에 엎어져버렸다. 그나마 왕을 견제할 수 있었던 [[양반]]새끼들도 뭐 좀 하려고 들면 [[유교]]에 반하는 행위 운운하면서 단체로 반대했었다.<ref>실제로 한국사에서 종종 양반층이 단체로 왕한테 개기던 적이 몇 번 있었을 정도로 양반도 무시 못 할 권력계층이었다. 당장 그 유명한 안동 김씨가문도 이씨왕조한테 개길수 있을만큼 힘이 강했다.</ref> 반면에 당시 일본은 지금처럼 왕이 내각에다 통치권한을 신하들에게 위임하고 아무것도 안 했기 때문에 일본의 상징으로서 남아 있다. 그래서 개혁이 쉽게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개화파]]들을 [[친일파]]로 흑화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그 후 [[한일합방]]이 일어났다. | * 나라가 너무 썩어문드러져 망해가던 시기인 개화기때 이것저것 개혁을 시도하려했으나 왕 자체가 유교탈레반 꼰대 틀딱이었고 뭐 좀 하려고하면 늘 왕의 헛기침 한방에 엎어져버렸다. 그나마 왕을 견제할 수 있었던 [[양반]]새끼들도 뭐 좀 하려고 들면 [[유교]]에 반하는 행위 운운하면서 단체로 반대했었다.<ref>실제로 한국사에서 종종 양반층이 단체로 왕한테 개기던 적이 몇 번 있었을 정도로 양반도 무시 못 할 권력계층이었다. 당장 그 유명한 안동 김씨가문도 이씨왕조한테 개길수 있을만큼 힘이 강했다.</ref> 반면에 당시 일본은 지금처럼 왕이 내각에다 통치권한을 신하들에게 위임하고 아무것도 안 했기 때문에 일본의 상징으로서 남아 있다. 그래서 개혁이 쉽게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개화파]]들을 [[친일파]]로 흑화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그 후 [[한일합방]]이 일어났다. | ||
* 조선 말기에는 신분을 사고 파는 일까지 일어났다. 양반이 스스로 양반 직위를 포기해서 백성에게 매매하는거다 당연 백성은 나도 양반좀 되어보자며 좋다고 사들였다 이런 일은 나라가 망했을때 부자들이 빨리 현금화하기 위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개족보가 이때 나왔고 현시대에 뼈대있는 양반가문이라고 자뻑하는 가족들은 이때 양반 족보를 산게 아닌지 의심해봐야된다. | |||
* 한민족 역사속의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영토 전체가 외세의 '''직접통치로''' 넘어간 나라다. 고려시대에도 원 간섭기였지 언어를 지키려는 세력이 탄압받고 고려의 부유층이 원나라의 말단 공무원의 눈치를 보는 수준은 아니였다. 한민족 전성기라면 나름 전성기인 삼국시대 역시나 신라의 통수질로 만주땅 잃었지만 당나라와 당당히 싸워서 이기고 통일신라까지는 일본이 함부로 깝치지 못했다. | |||
== | === 어쩌다가 나라가 병신이 되었는가? === | ||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나라의 근간을 잘못 잡은 탓이 크다. 조선은 성리학을(조선 건국 당시에는 성리학이 최신학문이었다) 국가 이념으로 삼고, 유교 이상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인 국가였다. 그래서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는 것을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삼았고, 대대로 세금을 굉장히 적게 걷는 편이었다. 엥? 좋은 거 아니야?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국가가 제대로 안 돌아갈 정도로 세금을 안 걷으니까 문제지. 세금을 너무 적게 걷으니까 왕 앞마당인 서울은 몰라도 지방쪽에는 예산이 당연히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지방 지주인 향리층의 부정부패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백성들의 부담이 커지는 역효과를 낳게 되었다. |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나라의 근간을 잘못 잡은 탓이 크다. 조선은 성리학을(조선 건국 당시에는 성리학이 최신학문이었다) 국가 이념으로 삼고, 유교 이상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인 국가였다. 그래서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는 것을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삼았고, 대대로 세금을 굉장히 적게 걷는 편이었다. 엥? 좋은 거 아니야?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국가가 제대로 안 돌아갈 정도로 세금을 안 걷으니까 문제지. 세금을 너무 적게 걷으니까 왕 앞마당인 서울은 몰라도 지방쪽에는 예산이 당연히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지방 지주인 향리층의 부정부패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백성들의 부담이 커지는 역효과를 낳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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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거지인데다가 폐쇄적인 사회였다는 것=국가 전체가 수백년간 고인물로 남아있었다는 점이 조선의 병신성을 99% 설명할 수 있다. | 결국 거지인데다가 폐쇄적인 사회였다는 것=국가 전체가 수백년간 고인물로 남아있었다는 점이 조선의 병신성을 99% 설명할 수 있다. | ||
== 정통성 == | |||
혁명파 사대부들은 썩을대로 썩은 고려를 엎고 세운 나라이므로, 그 자체로서 조선의 건국이 정통성을 가진다고 보았지만, 사실 이는 혁명파 사대부 일부를 뺀 나머지 세력에게는 한낱 개소리일 뿐이었다. 성리학적 명분론에 입각해보아도 조선의 건국은 정통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 |||
근데 사실 조선 양반들은 대체로 죄다 고려 중앙 귀족 출신이라 그게 그거였다.(물론 지들한테 대항하는 귀족들은 다 조짐.) | |||
따라서 조선은 건국 초에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고려 왕족의 잔당들을 탄압했고, 고려왕조 내내 지방에서 그 세를 유지하던 호족(향리)세력을 철저히 억압했다. | |||
그뿐만 아니라 건국하자마자 역사의 흐름속에서 조선건국의 정당성을 세우고자 <고려국사>, <고려사>, <고려사절요>, <삼국사절요> 등을 저술하였다. | |||
잠시만,생각을 해보자 왜 한 정권 또는 체제를 논할때 민생이 아니라 민족적 대의명분이나 자존심 등이 훨씬 더 우선순위에 놓이는거지? 이게 신자유주의자들이나 국뽕과 무엇이 다르지? | |||
우선 조선은 이성계가 유혈정변을 통해 세운 체제(regime)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의 정통성이 송두리째 부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
유혈정변 수준이 아니라 레알 [[왕씨 대학살|고려 왕씨들이 흘린 피의 대축제]]로 세워진 폭압적인 나라다. | |||
그러나 헬고려 귀족들에겐 비귀족 천것들은 파리 목숨이나 마찬가지였으며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몽골군에 맞서던 백성들을 송길유와 같은 고려 귀족들은 세금을 바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살강간파티를 벌였으며 심지어 너무 무자비하게 끌고 간 나머지 가다 9할이 죽기도 했다. | |||
그러나 헬고려 귀족들에겐 비귀족 천것들은 파리 목숨이나 마찬가지였으며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몽골군에 맞서던 백성들을 송길유와 같은 고려 귀족들은 세금을 바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살강간파티를 벌였으며 심지어 너무 무자비하게 끌고 간 나머지 가다 9할이 죽기도 했다. | |||
대부분의 국가들이 그렇게 생성되었다. 오히려 여말선초의 경우는 피를 많이 흘리지 않은 축에 속한다 | 대부분의 국가들이 그렇게 생성되었다. 오히려 여말선초의 경우는 피를 많이 흘리지 않은 축에 속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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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녀제도와 명나라의 조선인 후궁들 == | == 공녀제도와 명나라의 조선인 후궁들 == | ||
참고자료: '''명나라 황제들이 맞이한 조선인 후궁들''' | |||
이 글은 중국의 지식공유 사이트, 커뮤니티에 게재된 ' 명나라 황제는 모두 몇 명의 조선 아내를 맞아들였을까?'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한중 양국민의 과거 역사 인식에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을 번역했다./ 편집자 주 | |||
대장금이 있던 조선시대, 중국과 조선 사이에는 한가족 같이 지내는 일이 많았다. 명나라 영락(永樂), 선덕(宣德)황제 시대에는 각각 8명의 조선 후궁이 있었다. 시녀, 여사(女史, 후궁을 섬기며 기록과 문서를 맡아보던 여관)로 있던 조선 여성은 영락황제 시절 22명, 선덕황제 시절 16명, 청나라로 넘어가기 전 10명, 순치(順治)황제 시절 16명이 각각 있었으며 노래와 춤을 전문으로 하는 예술인, 주방장만하더라도 선덕황제 때에만 100명이 넘었다. | |||
이 같은 여성은 조국의 언어, 음식, 복장, 가무, 지방 특색과 풍습 등 문화풍속을 중국 궁정에 그대로 들여 와 두 민족의 문화적 교류를 촉진시켰으며 양국 정부와 인민의 우호관계를 증진시키는 중요한 역사적 역할을 했다. | |||
명나라 영락황제, 선덕황제는 각자 여러 명의 조선 후궁을 거느렸으며 일부는 1482년 이후까지 살았다. 정덕(正德) 후기, 명 무종(武宗)은 조선에 가서 후궁을 선발해 조선 전체가 순식간에 불안에 빠지기도 했으며 청나라가 세워지기 전 섭정왕인 도르곤은 조선 여인을 첩으로 맞아들이기도 했다. | |||
명나라 영락황제, 선덕황제는 각자 여러 명의 조선 후궁을 거느렸으며 일부는 1482년 이후까지 살았다. 정덕(正德) 후기, 명 무종(武宗)은 조선에 가서 후궁을 선발해 조선 전체가 순식간에 불안에 빠지기도 했으며 청나라가 세워지기 전 섭정왕인 도르곤은 조선 여인을 첩으로 맞아들이기도 했다. | |||
이 같은 사실은 중국 사서에도 적지 않게 기록돼 있지만 당시 조선에서 한자로 기록된 ‘조선이조실록(朝鮮李朝實錄)’, ‘고려사(高麗史)’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기록돼 있다. 황제의 말이 통속적인 말 그대로 기록돼 있어 중국의 사서가 다듬은 것과는 다르다. 이 같은 일이 있기 전인 원나라 말기, 원순제(元順帝)의 황후 기씨도 고려인이었으며 원나라 태자 아이유시리다라도 기황후에게서 태어났다. | 이 같은 사실은 중국 사서에도 적지 않게 기록돼 있지만 당시 조선에서 한자로 기록된 ‘조선이조실록(朝鮮李朝實錄)’, ‘고려사(高麗史)’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기록돼 있다. 황제의 말이 통속적인 말 그대로 기록돼 있어 중국의 사서가 다듬은 것과는 다르다. 이 같은 일이 있기 전인 원나라 말기, 원순제(元順帝)의 황후 기씨도 고려인이었으며 원나라 태자 아이유시리다라도 기황후에게서 태어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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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의 후궁은 언어, 음식, 패션, 가무, 지방 특색과 풍습 등 조국의 문화풍속을 중국 궁정으로 들여와 양국 민족의 문화교류를 촉진시켰으며 양국 정부와 인민의 우호관계를 증진시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의 후궁은 언어, 음식, 패션, 가무, 지방 특색과 풍습 등 조국의 문화풍속을 중국 궁정으로 들여와 양국 민족의 문화교류를 촉진시켰으며 양국 정부와 인민의 우호관계를 증진시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 ||
=== 성리학과 조선의 제도 === | === 성리학과 조선의 제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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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기 == | == 말기 == | ||
{{지옥그자체}} | {{지옥그자체|심플}} | ||
인세지옥이자 인페르노 조센 | '''인세지옥이자 인페르노 조센''' | ||
본격적으로 헬조선이 망해가던 시기 | 본격적으로 헬조선이 망해가던 시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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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귀족의 나라 고려를 비판하며 까대던 이새끼들도 막상 족벌주의와 지역차별이 존나게 심했다. 영남, 호남, 호서로 불리던 세 지역은 지방치고는 대대로 조선의 지배층들을 많이 배출하였는데, 함정 카드로 이쉑들 뿌리가 최소 고려 시절부터 헤처먹던 새끼들이다. 이 지역들은 곡창 지대를 가지고 있거나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받던 곳들이 있어서 옛날부터 은근 탐을 내던 새끼들이 많았다. 그리고 거기에 가서 진짜 헤처먹고 그 부를 조정과 지들 출신 집안에 보내는 새끼들 많았다. 평안도, 함경도 같은 북부도 존나게 차별을 받았지만 여기서도 이성계 라인을 탔던 출신이면 잘 나갔다. 어떻게 보면 홍경래 같은 새끼들이 개빡쳐서 지랄했던 것도 이해가 될 정도이다. 참고로 조선 조정에서는 이런 불만론자들에게 니들 지방 출신도 기용하는데, 뭐가 불만이야! 역적패당들아!라고 했으나 까보면 지들이랑 상관이 없었기에 좆도 먹히지 않았다. 조선시대 학자인 윤기도 그딴 꼬라지를 좆같이 여겼다. 이새끼에 의하면 당시 조선은 집안이 후지면 답이 없었다. 반대로 집안이 좋으면 어떻게든 기회가 생겼다. 참고로 음서제로 유명한 고려는 이것보다 더 심하긴 했다. 무신들이 빡쳐서 높으신 문신들 쳐죽인 게 이해가 될 정도이다. 집안이 더 좋으면 좆밥 관직이여도 지보다 높은 관직을 가진 하찮은 출신 놈한테 심지어 명령을 내리거나 멸시하는 하극상마저 가능한했던 게 고려이다. 조선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무신들도 그런 형태를 참고 참다가 무신 노인네한테 한 하극상에 빡쳐서 반란 일으켰다. 저 하극상 사건은 지금으로 치면 60대 중장(3스타)에게 30대 5급 사무관이 뺨아리를 갈겨서다. 물론 무신들도 막상 지들이 정권을 잡니 천출들을 좋아하진 않았다. | 로얄귀족의 나라 고려를 비판하며 까대던 이새끼들도 막상 족벌주의와 지역차별이 존나게 심했다. 영남, 호남, 호서로 불리던 세 지역은 지방치고는 대대로 조선의 지배층들을 많이 배출하였는데, 함정 카드로 이쉑들 뿌리가 최소 고려 시절부터 헤처먹던 새끼들이다. 이 지역들은 곡창 지대를 가지고 있거나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받던 곳들이 있어서 옛날부터 은근 탐을 내던 새끼들이 많았다. 그리고 거기에 가서 진짜 헤처먹고 그 부를 조정과 지들 출신 집안에 보내는 새끼들 많았다. 평안도, 함경도 같은 북부도 존나게 차별을 받았지만 여기서도 이성계 라인을 탔던 출신이면 잘 나갔다. 어떻게 보면 홍경래 같은 새끼들이 개빡쳐서 지랄했던 것도 이해가 될 정도이다. 참고로 조선 조정에서는 이런 불만론자들에게 니들 지방 출신도 기용하는데, 뭐가 불만이야! 역적패당들아!라고 했으나 까보면 지들이랑 상관이 없었기에 좆도 먹히지 않았다. 조선시대 학자인 윤기도 그딴 꼬라지를 좆같이 여겼다. 이새끼에 의하면 당시 조선은 집안이 후지면 답이 없었다. 반대로 집안이 좋으면 어떻게든 기회가 생겼다. 참고로 음서제로 유명한 고려는 이것보다 더 심하긴 했다. 무신들이 빡쳐서 높으신 문신들 쳐죽인 게 이해가 될 정도이다. 집안이 더 좋으면 좆밥 관직이여도 지보다 높은 관직을 가진 하찮은 출신 놈한테 심지어 명령을 내리거나 멸시하는 하극상마저 가능한했던 게 고려이다. 조선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무신들도 그런 형태를 참고 참다가 무신 노인네한테 한 하극상에 빡쳐서 반란 일으켰다. 저 하극상 사건은 지금으로 치면 60대 중장(3스타)에게 30대 5급 사무관이 뺨아리를 갈겨서다. 물론 무신들도 막상 지들이 정권을 잡니 천출들을 좋아하진 않았다. | ||
== | == [[명나라]]와의 관계 == | ||
[[파일:순이.jpg]] | <div align=center>[[파일:순이.jpg]]</div> | ||
한마디로 명백한 [[명나라]]의 속국이다. [[조선왕조실록]] 보면 그냥 스스로 처음부터 외번을 자청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야, 우덜이 요동 실효지배 시도하다 버리고 떠난 관청이랑 백성들 있는데 거기서 왕 할래?" 괜히 제안한 거 아니다. | |||
그나마 독립국으로 인정은 해줬다는게 다행이다. 사실 이점은 청나라때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 그나마 독립국으로 인정은 해줬다는게 다행이다. 사실 이점은 청나라때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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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 초 === | === 건국 초 === | ||
{{의외}} | {{의외}} | ||
[[홍무제]]는 생전에 "조선군 20만명만 요동에 쳐 기들어와도 우린 헬게이트 오픈임 ㅇㅇ"이랬다고 한다. | |||
물론 당시 명나라가 조선보다 동원력이 월등히 앞썼고 오랜 전란이 겨우 끝났다고 해도 정예병력만 20만이기 때문에 엄살처럼 보일수도 있겠으나 아직 후방에는 | 물론 당시 명나라가 조선보다 동원력이 월등히 앞썼고 오랜 전란이 겨우 끝났다고 해도 정예병력만 20만이기 때문에 엄살처럼 보일수도 있겠으나 아직 후방에는 [[북원]]세력이 도사리고 있었고 그나마도 [[원나라]] 잔존세력과의 대치때문에 병력이 분산되어 있었다. | ||
이때문에 홍무제는 조선을 견제하고 있었고 태조시기에는 조선도 처돌았는지 명나라의 몽니에 어깃장을 부린다. 대표적인 게 정도전이다. | 이때문에 홍무제는 조선을 견제하고 있었고 태조시기에는 조선도 처돌았는지 명나라의 몽니에 어깃장을 부린다. 대표적인 게 정도전이다. | ||
[[정도전]]의 요동정벌 계획 및 여진족 귀순문제를 둘러싼 마찰로 인해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또한 정도전이 말 안듣고 계속 개지랄하니까 여러번 정도전을 명에 보낼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 |||
{{인용|임금이 황제의 명령에 따라 이성, 강계 등지에 와서 의탁한 여진의 인물을 찾아 돌려보내기를 청하였다. 임금이 좌우에 이르기를 "황제는 군사가 많고 .... 작은 나라를 자주 책망하면서 강제로 청구함이 한량이 없었다. 지금 또 나에게 죄가 아닌것을 책망하면서 군대를 일으키겠다고 위협하니, 이것이 어린아이에게 공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였다. | {{인용|임금이 황제의 명령에 따라 이성, 강계 등지에 와서 의탁한 여진의 인물을 찾아 돌려보내기를 청하였다. 임금이 좌우에 이르기를 "황제는 군사가 많고 .... 작은 나라를 자주 책망하면서 강제로 청구함이 한량이 없었다. 지금 또 나에게 죄가 아닌것을 책망하면서 군대를 일으키겠다고 위협하니, 이것이 어린아이에게 공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였다.| 태조실록}} | ||
원래 명나라 주원장은 여진족 기병을 기반으로 삼은 이성계를 경계하고 있었다. | 원래 명나라 주원장은 여진족 기병을 기반으로 삼은 이성계를 경계하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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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통틀어 왕이 나라경영을 뒷전으로 배우고 사상학문에 몰빵하는 나라는 조선이란 나라밖에 없었다. 현대 헬조선 학자들은 대단한거라고 자위하지만 대기업 회장이 경영학, 경제학 안배우고 성경책이나 도덕책 보고있는 꼴이나 마찬가진걸 뭐가 대단하다는 건지? | 세계사를 통틀어 왕이 나라경영을 뒷전으로 배우고 사상학문에 몰빵하는 나라는 조선이란 나라밖에 없었다. 현대 헬조선 학자들은 대단한거라고 자위하지만 대기업 회장이 경영학, 경제학 안배우고 성경책이나 도덕책 보고있는 꼴이나 마찬가진걸 뭐가 대단하다는 건지? | ||
ㄴ 웃긴건 그 지랄을 했어도 철학 수준마저도 서양에 털렸다 | |||
하지만 조선에서도 청나라를 통해 학문분화는 후기에나 시작되지 그마저도 같은 유학내의 분파 개념이라고 생각해야 하며, 그들이 집권을 못함으로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 하지만 조선에서도 청나라를 통해 학문분화는 후기에나 시작되지 그마저도 같은 유학내의 분파 개념이라고 생각해야 하며, 그들이 집권을 못함으로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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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놈들은 죄다 자국민 노예로 삼았다. 자국민 노예 해방자란 헛소리가 있는 칭키즈칸도 막상 자국민 부족 학살하고 보골로 삼았다. 황금씨족들조차 청나라 때 만주족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들한테 개기는 자국민 노예들 죽이는데 관심이 있었지. | :귀족 놈들은 죄다 자국민 노예로 삼았다. 자국민 노예 해방자란 헛소리가 있는 칭키즈칸도 막상 자국민 부족 학살하고 보골로 삼았다. 황금씨족들조차 청나라 때 만주족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들한테 개기는 자국민 노예들 죽이는데 관심이 있었지. | ||
조선 성종 때 신자치(愼自治)의 여종 겁탈사건이 실록에 기록돼 있다. 참봉 신자치의 집에 외모가 뛰어난 도리(道里)라는 계집종이 있었다. 어느 날 참봉은 부인 몰래 도리를 겁탈을 하게 된다. 그러나 종의 몸으로 상전의 노리개가 됐다고 해서 당시로서는 문제가 될 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신자치의 아내가 알게됐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 조선 성종 때 신자치(愼自治)의 여종 겁탈사건이 실록에 기록돼 있다. 참봉 신자치의 집에 외모가 뛰어난 도리(道里)라는 계집종이 있었다. 어느 날 참봉은 부인 몰래 도리를 겁탈을 하게 된다. 그러나 종의 몸으로 상전의 노리개가 됐다고 해서 당시로서는 문제가 될 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신자치의 아내가 알게됐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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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교과서로만 공부하면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인데 노비의 비율이 무지막지하게 높아진 때가 조선왕조이다. | 국뽕교과서로만 공부하면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인데 노비의 비율이 무지막지하게 높아진 때가 조선왕조이다. | ||
미국인 한국역사학자 제임스 팔레 교수는 '같은 민족을 노예로 삼는 나라는 조선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미국인 한국역사학자 제임스 팔레 교수는 '같은 민족을 노예로 삼는 나라는 조선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
삼국시대나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노비 인구가 전체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퍼센트를 넘지 않았는데 세종이 신하들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노비종모법을 통과시키면서 노비의 불법증식이 시작되며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노비인구는 전체의 40퍼센트 가까이까지 치솟는다. 더구나 노비는 양반을 고발할 수 없게 만들었다. 신문고를 두드려도 소용없다. | 삼국시대나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노비 인구가 전체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퍼센트를 넘지 않았는데 세종이 신하들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노비종모법을 통과시키면서 노비의 불법증식이 시작되며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노비인구는 전체의 40퍼센트 가까이까지 치솟는다. 더구나 노비는 양반을 고발할 수 없게 만들었다. 신문고를 두드려도 소용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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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조선 중,후기들어서 실학자들이 주장한게 "도로 정비해서 수레좀 씁시다"였을 정도다 대표적으로 급식시절 초중고에서 배우는 실학자 박지원의그 유명한 허생전 자체가 조선은 도로가 없어 유통이 이루어지지않음으로 말미암은 열악한 시장상황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 오죽하면 조선 중,후기들어서 실학자들이 주장한게 "도로 정비해서 수레좀 씁시다"였을 정도다 대표적으로 급식시절 초중고에서 배우는 실학자 박지원의그 유명한 허생전 자체가 조선은 도로가 없어 유통이 이루어지지않음으로 말미암은 열악한 시장상황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 ||
가끔 조선 쉴드치는 국뽕들이 좆선은 해운에 의존하여 도로 안지었다고 쉴드 존나 치는데 시발 무슨 강이 한반도 내륙마다 | 가끔 조선 쉴드치는 국뽕들이 좆선은 해운에 의존하여 도로 안지었다고 쉴드 존나 치는데 시발 무슨 강이 한반도 내륙마다 베네치아마냥 연결되어 있으면 모를까 개헛소리니 들을가치조차 없다. | ||
다만 이는 근대 이전 국가에서 전형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로마를 언급하는데 로마 이후 유럽에서는 로마와 같은 포장도로를 발달 시키지 못했고 도로 대다수가 질척한 흙길이었다 | 다만 이는 근대 이전 국가에서 전형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로마를 언급하는데 로마 이후 유럽에서는 로마와 같은 포장도로를 발달 시키지 못했고 도로 대다수가 질척한 흙길이었다. 다만 조선이 국가적으로 도로를 닦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도로를 닦는 것과 같은 일로 인력을 동원하는 건 민폐라고 생각했으리라 추측한다. | ||
:삼면이 바다 그거는 ㄹㅇ 존나 어처구니 없는게 씨발 이탈리아도 반도지만 얘네는 워낙 씹사기니 넘어가더라도 바다 낀 나라가 한둘이 아니거늘 그 어느 나라도 조선만큼 도로가 후진 나라는 없었다. 전국 방방곡곡의 도로를 석재로 포장하는건 근대 이전에 로마만이 해냈던 일이기는 한데, 로마처럼 아예 싹 다 포장하는 미친 짓만 안했을 뿐이지 최소한의 관리들은 했다. 동시대 청나라와 비교하는 북학파들의 글만봐도 조선은 전근대 국가 중에서도 특별히 도로가 병신임이 다 나온다. | :삼면이 바다 그거는 ㄹㅇ 존나 어처구니 없는게 씨발 이탈리아도 반도지만 얘네는 워낙 씹사기니 넘어가더라도 바다 낀 나라가 한둘이 아니거늘 그 어느 나라도 조선만큼 도로가 후진 나라는 없었다. 전국 방방곡곡의 도로를 석재로 포장하는건 근대 이전에 로마만이 해냈던 일이기는 한데, 로마처럼 아예 싹 다 포장하는 미친 짓만 안했을 뿐이지 최소한의 관리들은 했다. 동시대 청나라와 비교하는 북학파들의 글만봐도 조선은 전근대 국가 중에서도 특별히 도로가 병신임이 다 나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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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가장 큰 도시는 역시 수도인 한양이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세종대에 인구가 10만이었고 임란 이후에 4만, 조선 후기에 20만이었다고 한다. 한성부과 관할하는 한성 밖 10여리 정도의 인구까지 포함하면 30만명 정도의 인구가 살았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지명 뒤에 '-포', '-진'이 붙은 곳이 한성 주변 인구밀집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노량진, 마포등이 그 예이다. | 조선의 가장 큰 도시는 역시 수도인 한양이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세종대에 인구가 10만이었고 임란 이후에 4만, 조선 후기에 20만이었다고 한다. 한성부과 관할하는 한성 밖 10여리 정도의 인구까지 포함하면 30만명 정도의 인구가 살았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지명 뒤에 '-포', '-진'이 붙은 곳이 한성 주변 인구밀집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노량진, 마포등이 그 예이다. | ||
앞서 말했듯이 조선후기 도시의 인구집중화 현상으로 위생,환경 문제가 크게 발생한다. 한양의 식수은 토양의 오염으로 염분도가 상승했고 길거리는 오물과 똥이 방치되고 벌레가 들끓었다. 상'하수도가 정비되지 못해서 그냥 맑은 물 만있으면 마셨고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 복통에 대한 잦은 기록들이 조선 특유의 과식과 한양의 식수원 오염이 원인이라고 추정된다. | 앞서 말했듯이 조선후기 도시의 인구집중화 현상으로 위생,환경 문제가 크게 발생한다. 한양의 식수은 토양의 오염으로 염분도가 상승했고 길거리는 오물과 똥이 방치되고 벌레가 들끓었다. 특히 여름되면 어떤 말로 표현도 못할정도로 지독한 냄새가 도시전체를 뒤덮었기에 조선으로 장사를 하러오거나 선교를 하러 온 외국인들도 차라리 코를 없애버리고 싶다고 한탄할정도. 상'하수도가 정비되지 못해서 그냥 맑은 물 만있으면 마셨고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 복통에 대한 잦은 기록들이 조선 특유의 과식과 한양의 식수원 오염이 원인이라고 추정된다. | ||
거기다가 더럽게 씻지도 않고 머리에 이가 있으면 오히려 장수의 상징이라면서 자랑거리로 삼았다. | |||
그리고 계획적으로 도시가 발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건설되어 건물과 건물은 규칙성도 없었고 건물끼리 가까이 붙어있어 화제가 나면 일대가 쑥대밭이 돼버렸다. 한양에서 조그만한 화재만 나도 왕이 수시로 보고를 받고 명령을 했다고 한다. | 그리고 계획적으로 도시가 발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건설되어 건물과 건물은 규칙성도 없었고 건물끼리 가까이 붙어있어 화제가 나면 일대가 쑥대밭이 돼버렸다. 한양에서 조그만한 화재만 나도 왕이 수시로 보고를 받고 명령을 했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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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친 기술 천시 풍조 === | === 지나친 기술 천시 풍조 === | ||
삼국시대보다 못한 경제적 인프라가 있다. [http://whytimes.kr/news/view.php?idx=389&mcode=m57vrxf 칼럼] 진짜 '암흑시대'라는 말을 중세 유럽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추가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깊게 통찰해 볼 필요가 있다. | 삼국시대보다 못한 경제적 인프라가 있다. [http://whytimes.kr/news/view.php?idx=389&mcode=m57vrxf 칼럼] 이 병신 칼럼은 백자가 더 높은 온도에 구원서 청자보다 만들기 힘들다는 것도 모르고 쓴거니 무시하자. 진짜 '암흑시대'라는 말을 중세 유럽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추가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깊게 통찰해 볼 필요가 있다. | ||
그 유명한 사>농>공>상의 조선 풍조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새끼들에겐 뒤진 공자 새끼 말씀이 제일 중요했고, 그 다음으로는 지들 배때지에 밥 넣어줄 농민들이 중요했고, 기술자는 필요할때만 찾는 쌍것들에 불과했다. 이러한 조선의 풍조는 발전이 정체되어 세계 제일의 극빈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 그 유명한 사>농>공>상의 조선 풍조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새끼들에겐 뒤진 공자 새끼 말씀이 제일 중요했고, 그 다음으로는 지들 배때지에 밥 넣어줄 농민들이 중요했고, 기술자는 필요할때만 찾는 쌍것들에 불과했다. 이러한 조선의 풍조는 발전이 정체되어 세계 제일의 극빈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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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500년동안 발전은 커녕 퇴보와 개병신짓만을 일삼았는데 다른 나라에 식민지가 돼버리지 않는 게 이상한거다 | 솔직히 500년동안 발전은 커녕 퇴보와 개병신짓만을 일삼았는데 다른 나라에 식민지가 돼버리지 않는 게 이상한거다 | ||
설령 일본제국이 아니었더라도 청나라나 러시아 식민지가 될 가능성 높았다. | ㄴ 이게 맞다 천몇백년전에 죽은 사람의 가르침이나 받아서 쓰고 있었고 명나라 후빨만한 아주 좆병신 국가다. | ||
설령 일본제국이 아니었더라도 청나라나 러시아 식민지가 될 가능성 높았다. 만약 이랬으면 중국의 일부가 되거나 조선 소비에트 공화국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
== 과학 기술 == | == 과학 기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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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 | == 군대 == | ||
시조인 태조 이성계는 한반도 역사상 이순신과 더불어 개사기 천재 지휘관이다. 어느 정도냐면.. 전통적인 기병강국 몽골을 기병으로 격파했고, 평지에서 여진족 기병 수만을 격파하고, 산에서 농성하는 쪽바리들을 상대로 기병으로 상대하고 활로 무쌍난무 펼치고, 이미 20대 때 10만 홍건적을 격퇴하는데 공을 세운다. | 시조인 태조 이성계는 한반도 역사상 이순신과 더불어 개사기 천재 지휘관이다. 어느 정도냐면.. 전통적인 기병강국 몽골을 기병으로 격파했고, 평지에서 여진족 기병 수만을 격파하고, 산에서 농성하는 쪽바리들을 상대로 기병으로 상대하고 활로 무쌍난무 펼치고, 이미 20대 때 10만 홍건적을 격퇴하는데 공을 세운다. | ||
몽골족, 여진족, 쪽바리, 짱깨 다 때려잡은 한반도 육군 역사상 최고 아웃풋을 자랑한다. 심지어 홍무제는 이성계가 군대끌고 처들어 오면 어케막냐고 신하들과 의논했을 수준이다. | 몽골족, 여진족, 쪽바리, 짱깨 다 때려잡은 한반도 육군 역사상 최고 아웃풋을 자랑한다. 심지어 홍무제는 이성계가 군대끌고 처들어 오면 어케막냐고 신하들과 의논했을 수준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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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건 학자풍이 강해져서 그렇게 된 점도 있다. 원래 과거에는 상무정신이 강하고 무사들이 설치는 나라들의 맨파워가 아주 강력했고 세계의 다른 나라들도 학자풍이 들면 군사력이 엄청 하락했다. | 근데 이건 학자풍이 강해져서 그렇게 된 점도 있다. 원래 과거에는 상무정신이 강하고 무사들이 설치는 나라들의 맨파워가 아주 강력했고 세계의 다른 나라들도 학자풍이 들면 군사력이 엄청 하락했다. | ||
심지어 그 로마도 상무정신이 강한 민족들하고 전쟁은 덩치와 장비빨에 비해 엄청나게 고전한다. 그 로마제국이 군사적 최전성기를 맞이한 상태에서 다키아는 아직 온전한 문명 단계에 도달하기엔 상당히 먼 상태였고 다키아의 인구도 고작 50만에 불과했지만 그런 다키아를 ㅅㅌㅊ 지휘관 + 정예병 + 대군을 동원하고도 간신히 이겼을 정도다. 처음에는 오히려 로마가 탈탈 털리고 강화 조건으로 다키아에 기술자와 군사고문, 그리고 배상금을 지불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 심지어 그 로마도 상무정신이 강한 민족들하고 전쟁은 덩치와 장비빨에 비해 엄청나게 고전한다. 그 로마제국이 군사적 최전성기를 맞이한 상태에서 다키아는 아직 온전한 문명 단계에 도달하기엔 상당히 먼 상태였고 다키아의 인구도 고작 50만에 불과했지만 그런 다키아를 ㅅㅌㅊ 지휘관 + 정예병 + 대군을 동원하고도 간신히 이겼을 정도다. 처음에는 오히려 로마가 탈탈 털리고 강화 조건으로 다키아에 기술자와 군사고문, 그리고 배상금을 지불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첨에 그깟 야만족 쯤이야 이때까지 처럼 툭치면 머가리 빡하고 깨지겠지 하고 갔다가 팔크스에 스쿠툼과 오른팔이 같이 잘려나가버렸다. 결국 트라야누스가 15~20 만 대군을 동원해서 줘패버림. | ||
조선군이 이처럼 인식이 개좆병신인 이유는 물론 외세의 침공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하고 무력하게 당하는 역사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군이 이렇게 굴욕적인 전과를 세운 이유를 요약해보자면 첫째로 전쟁을 수행하는건 무관들이다. 얘들은 말그대로 싸우고 군대를 이끄는 것에 인생을 받친 애들이라 아무리 그래도 병법을 익히고 싸움의 기본적인 이치를 아는등 군대를 지휘할 역량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글 읽고 글 쓰는게 말그대로 빠워였던 병신 조선에서는 전쟁만 일어나면 문관들이 무관의 지휘권을 거의 빼앗다시피하고 군대를 지 좆빵매처럼 휘두르다 존나 시원하게 말아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가 대표적으로 칠천량 해전과 쌍령 전투, 선비들의 빼애액질로 억울하게 파직당하고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울분을 참아가며 뒤져버린 수군을 재건하려 혈투를 벌였다. 장수들이 전쟁의 상황을 읽고 부관들과 상황을 의논하고 있을때도 씹선비 새끼들이 나라를 위한 싸움에 서둘러 나서지 않고 뭐하냐 이 매국노 새끼야라며 매도하면 무관으로썬 어쩔 도리가 없었다. | 조선군이 이처럼 인식이 개좆병신인 이유는 물론 외세의 침공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하고 무력하게 당하는 역사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군이 이렇게 굴욕적인 전과를 세운 이유를 요약해보자면 첫째로 전쟁을 수행하는건 무관들이다. 얘들은 말그대로 싸우고 군대를 이끄는 것에 인생을 받친 애들이라 아무리 그래도 병법을 익히고 싸움의 기본적인 이치를 아는등 군대를 지휘할 역량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글 읽고 글 쓰는게 말그대로 빠워였던 병신 조선에서는 전쟁만 일어나면 문관들이 무관의 지휘권을 거의 빼앗다시피하고 군대를 지 좆빵매처럼 휘두르다 존나 시원하게 말아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가 대표적으로 칠천량 해전과 쌍령 전투, 선비들의 빼애액질로 억울하게 파직당하고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울분을 참아가며 뒤져버린 수군을 재건하려 혈투를 벌였다. 장수들이 전쟁의 상황을 읽고 부관들과 상황을 의논하고 있을때도 씹선비 새끼들이 나라를 위한 싸움에 서둘러 나서지 않고 뭐하냐 이 매국노 새끼야라며 매도하면 무관으로썬 어쩔 도리가 없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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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역제도 === | === 병역제도 === | ||
병역제도는 지금의 헬조선처럼 개쓰레기였다. | 병역제도는 지금의 헬조선처럼 개쓰레기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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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찰갑 유물이 부산에서 발굴된 게 있는데 물론, 병사용이 아니라 장교용이란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의 헬조선 전방부대도 돈 없다고 방탄쪼끼 안 입히는데 오리지널 헬조선이라고 뭔 돈이 있어서 일일히 다 갑옷 입히겠냐? 그나마 수도에서 임금 지키는 새끼들이랑 북방에서 여진족 막는 새끼들이나 입혔겠지 | 조선시대 찰갑 유물이 부산에서 발굴된 게 있는데 물론, 병사용이 아니라 장교용이란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의 헬조선 전방부대도 돈 없다고 방탄쪼끼 안 입히는데 오리지널 헬조선이라고 뭔 돈이 있어서 일일히 다 갑옷 입히겠냐? 그나마 수도에서 임금 지키는 새끼들이랑 북방에서 여진족 막는 새끼들이나 입혔겠지 | ||
=== 갑주 === | === 갑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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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기병으로 흥해서 그런지 기병비율은 높은 편이었다. 문제는 시간이 가면서 궁기병사랑으로 인해 차징따위 안하는 병신 기병이 되었고 게다가 부정부패로 인해 군마용으로 쓸 말이 고관대작 말로 돌아가고 막상 군마는 쓰레기말. 그나마도 장부상이랑 실제 말 숫자도 다름. 총체적 난국. 그리고 과거나 군 인사체계가 활쏘기 중심으로 돌아가고 전면전에서 여진족과의 국지전으로 전장이 바뀌면서 정작 중요한 충격기병은 줄어들고 거의다 궁기병이었다. | 이성계가 기병으로 흥해서 그런지 기병비율은 높은 편이었다. 문제는 시간이 가면서 궁기병사랑으로 인해 차징따위 안하는 병신 기병이 되었고 게다가 부정부패로 인해 군마용으로 쓸 말이 고관대작 말로 돌아가고 막상 군마는 쓰레기말. 그나마도 장부상이랑 실제 말 숫자도 다름. 총체적 난국. 그리고 과거나 군 인사체계가 활쏘기 중심으로 돌아가고 전면전에서 여진족과의 국지전으로 전장이 바뀌면서 정작 중요한 충격기병은 줄어들고 거의다 궁기병이었다. | ||
임란 때 타타르 기병을 카피해서 편곤기병을 만들어 일본 보병들 대가리 따고 다녔다. 그러나 그나마 천명 언저리 되던거 이괄의 난때 없어지고 병자호란때도 편곤기병이 있었으나 김자점의 방관과 평안도 일부세력의 투항으로 만주 기병에게 털린다. 병자호란 관련 항목마다 그 놈의 홍이포 홍이포 노래를 부르는 병신이 여기도 똥을 싸질러 놔서 지우고 한마디 하는데, 병자호란에서 조선한테 홍이포는 큰 의미 없었다. 강화도나 화성에 홍이포 모형이 있는 거 보고 실제로도 홍이포를 썼을 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화약 생산량이 딸려서 천자총통도 잘 안 쓴 조선이다. 화약을 몇 배로 처먹는 홍이포를 썼겠냐? 조선이 홍이포를 제작했다는 확실한 기록은 영조 때 2문 밖에 없다. 그 외에도 홍이포로 추정되는 대포를 보유한 기록이 좀 보이지만 다 합쳐봐야 20문도 안 되고 대부분 서양배에서 노획한 걸로 추정된다. 전투에서 조선군이 홍이포를 썼다는 기록은 전무하다. 조선 후기의 주력대포는 소형 불랑기와 현자총통이었고 그래서 나중에 서양 군함이 왔을 때 생채기 밖에 못 냈지. | |||
정리하자면, 조선군은 홍이포를 거의 운용 안 한 거나 다름 없었다. 애초에 이 홍이포라고 기록에 남은 거도 홍이포의 구체적인 개념을 당대 조선인들이 잘 몰라서 잘못 적거나 엉뚱한 걸 홍이포라고 했다. 실제로 홍이포가 아닌 불랑기가 주력이어서 숙종 대 돈대들 잔뜩 구축할 때도 불랑기만 주구장창 가져다 놨다. 한마디로 윗새끼가 싸지른 표현 중 조선군이 홍이포를 썼단 건 명백히 구라다. 홍이포를 쓴 게 아니니까. 그리고 남한산성에 식량 준비를 못했다고 하는 것도 졸라게 웃긴게 원래는 식량을 성 안에 들여 놓으려고 했다. 근데 담당 지방관이 야 백성들이 존나게 힘들어 하네. 그냥 평시엔 성 밖 창고에 놓고 일 터지면 안으로 옮기지 이래서 기껏 식량 준비해 놓고 못써먹은 거다. 한마디로 윗대가리보다 뭐든지 불평불만만 조온나게 처 늘어놓고 아무것도 안하고 맨날 나라탓, 사회탓 하는 헬조센인들 특유의 기질을 조상들부터가 가지고 있어서 생긴 참극이다. 윗대가리도 문제지만 아랫것들도 좆병신 천지라고 한다. 그리고 그 후손인 헬조센인들도 마찬가지라 이 꼬라지인 거다. | |||
=== 궁병 === | |||
국궁은 휴대성 및 사거리와 살상력이 꽤 뛰어나다고 하는데, 장점은 거기까지이다. 제작비가 엄청났고 습한 좆반도에선 유지하기도 힘들었으며, 비오는 날엔 사용하기도 힘들었다. 전쟁에서의 실용성 면에서는 만들기도 쉽고 유지하기도 쉬운 만주족의 활이 오히려 더 나았으며, 이는 조선시대 실학자 및 일부 군바리들도 인정하는 것이었다. | |||
미친 국뽕들은 총은 비오면 쓸 수 없으니 조상님들도 어쩔 수 없이 활 쓴거라고 개소리를 하지만 비오면 국궁도 아교가 다 풀어져서 못 쓴다. | |||
편전이라는 무기가 있는데 아주 개쩌는 독창적인 발명품까진 아니고, 비잔틴제국이나 터키 새끼들도 비슷한 걸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터키라든가 비잔틴제국의 스타일이 아니다. 일례로 편전, 통아의 2배, 1/2가 맞다 | |||
이 편전이라는 무기도 사거리를 위해 관통력을 희생한 무기다. 편전의 기원이라는 썰 중 하나가 여몽전쟁때 화살 부족하니 화살을 반으로 잘라서 2개로 만들어 썼던게 기원이라는 썰이 있을 정도로 일반 화살보다 작다. 화살 크기가 작으면 당연히 관통력도 낮아진다. | |||
이 편전이라는 무기도 사거리를 위해 관통력을 희생한 무기다. 편전의 기원이라는 썰 중 하나가 여몽전쟁때 화살 부족하니 화살을 반으로 잘라서 2개로 만들어 썼던게 기원이라는 썰이 있을 정도로 일반 화살보다 작다. 화살 크기가 작으면 당연히 관통력도 낮아진다. | |||
사실 조총 성애자였던 조선군은 후기로 가면 갈수록 궁병보다는 조총수를 존나게 양성하게 된다. 숙련도가 낮은 지방군인 속오군의 경우 배우기 힘든 활을 장비시키는 것보다는 단시간에 배우기 용이한 조총수로 | 사실 조총 성애자였던 조선군은 후기로 가면 갈수록 궁병보다는 조총수를 존나게 양성하게 된다. 숙련도가 낮은 지방군인 속오군의 경우 배우기 힘든 활을 장비시키는 것보다는 단시간에 배우기 용이한 조총수로 | ||
양성하는것이 더 합리적이었고 광해군때 명을 도운답시고 보낸 1만 5천명도 다수가 조총수였다. 숙종 때 충청도 지방 군적부를 보더라도 1300명중 70퍼센트 이상이 조총수였다. | 양성하는것이 더 합리적이었고 광해군때 명을 도운답시고 보낸 1만 5천명도 다수가 조총수였다. 숙종 때 충청도 지방 군적부를 보더라도 1300명중 70퍼센트 이상이 조총수였다. 문제는 숙종 시기면 16세기 후반- 17세기 초반인데 이 시기 갓양은 아르쿼부스 따위가 아닌 플린트 락을 쓰고 있었다. 총검도 이 시기 개발했다. | ||
=== 총병 === | === 총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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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같은 경우엔 여자도 총으로 무장하자고 주장함. [[나선정벌]]때 노획한 러시아제 수석총과 벨테브레이나 하멜이 참여해 만든 수석총으로 업그레이드할까 생각하다가 너무 비싸다고 그냥 조총 계속 썼다. | [[송시열]]같은 경우엔 여자도 총으로 무장하자고 주장함. [[나선정벌]]때 노획한 러시아제 수석총과 벨테브레이나 하멜이 참여해 만든 수석총으로 업그레이드할까 생각하다가 너무 비싸다고 그냥 조총 계속 썼다. | ||
:조선도 수석총으로 업그레이드 해보고자 했다. 그런데 막상 복제한 수석총이 성능도 그저 그렇고 불발율도 높은데다 비싸기만 오지게 비싸서 결국 조총을 개량하는 방향으로 선회한것임. 조선이 개량하고 또 개량한 조총은 18C까지만 해도 서구 국가들이 쓰던 머스킷과 성능이 그다지 많이 차이 안났다. 단순히 비싸서 안쓴건 아니다. | :조선도 수석총으로 업그레이드 해보고자 했다. 그런데 막상 복제한 수석총이 성능도 그저 그렇고 불발율도 높은데다 비싸기만 오지게 비싸서 결국 조총을 개량하는 방향으로 선회한것임. 조선이 개량하고 또 개량한 조총은 18C까지만 해도 서구 국가들이 쓰던 머스킷과 성능이 그다지 많이 차이 안났다. 단순히 비싸서 안쓴건 아니다. 수석식으로 얻어지는 운용편의성 자체가 조총보다 훨 좋음 | ||
그나마도 세도정치기 들어선 아예 관리를 안해서 창고안에 녹슨 총들이 넘쳐흘렀다는 실록의 기사가 인상깊다. | 그나마도 세도정치기 들어선 아예 관리를 안해서 창고안에 녹슨 총들이 넘쳐흘렀다는 실록의 기사가 인상깊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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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병 === | === 포병 === | ||
대포들은 원시적인 사석포 기준으로는 꽤 뛰어났다. 신기전같은 로켓무기는 중국이 그 원조인데, 조선도 꽤 잘 만든 거 같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는 익히 알고 있는 | 대포들은 원시적인 사석포 기준으로는 꽤 뛰어났다. 신기전같은 로켓무기는 중국이 그 원조인데, 조선도 꽤 잘 만든 거 같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는 익히 알고 있는 | ||
신기전은 신호용으로 주로 사용했고 총통넣은 건 변이중화차라고 행주산성 관련 기록에 나온다. 리볼트가 이미 있었던 건 아니고 리볼트는 효율이 애미뒤져서 금방 버려졌고 화차가 여러 면에서 조금 더 나았지만 그래도 화약 애미뒤지게 많이 처먹는 건 똑같아서 총통만큼 대규모 운용은 못함. | |||
이건 고려말에 화포 도입해서 세조때 화통도감 없어지고 사실상 200년간 개발중단된거라 나름 선전한거 아닌가 싶다. | 이건 고려말에 화포 도입해서 세조때 화통도감 없어지고 사실상 200년간 개발중단된거라 나름 선전한거 아닌가 싶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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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력을 단순한 인구수와 생산력으로만 판단하면 1550년 이전에도 일본이 조선보다 더 유리했을 확률이 높다. | 국력을 단순한 인구수와 생산력으로만 판단하면 1550년 이전에도 일본이 조선보다 더 유리했을 확률이 높다. | ||
하지만 조선 초기에 왜구 정벌에 적극적이였고 왜구가 초기에는 중국 대륙과 한반도의 눈치를 봤다는 점에서 생산력과 인구수는 우위였지만 고차원적인 과학 기술이나 문화 측면에서는 조선 | 하지만 조선 초기에 왜구 정벌에 적극적이였고 왜구가 초기에는 중국 대륙과 한반도의 눈치를 봤다는 점에서 생산력과 인구수는 우위였지만 고차원적인 과학 기술이나 문화 측면에서는 조선 초기까지는 일본이 약간 밀렸다고 볼 수 있다. | ||
ㄴ 근데 조선 이전의 고려말기에도 정식군대가 아닌 유사군대 왜구들한테 개털리지 않았노 | |||
에도시대에 일본의 권력을 쥐었던 도쿠가와 막부는 천하보청제도, 참근교대제도를 통해 상공업을 크게 발전시켰고 도로의 정비도 촉진하였다(그 과정은 위의 책에 잘 나와있음). 그것은 곧 서민생활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 에도시대에 일본의 권력을 쥐었던 도쿠가와 막부는 천하보청제도, 참근교대제도를 통해 상공업을 크게 발전시켰고 도로의 정비도 촉진하였다(그 과정은 위의 책에 잘 나와있음). 그것은 곧 서민생활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 ||
여기에 난학에 대한 대중들의 높은 학습의지가 더해져 이후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 1700년대부터 여기저기에 이름있는 난학자들이 세운 '주쿠'(학원이라고 보면 된다)들이 생겨나 난학이 널리 퍼졌다. 도쿠가와 막부는 대중들이 난학을 배우는 것을 | 여기에 난학에 대한 대중들의 높은 학습의지가 더해져 이후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 1700년대부터 여기저기에 이름있는 난학자들이 세운 '주쿠'(학원이라고 보면 된다)들이 생겨나 난학이 널리 퍼졌다. 도쿠가와 막부는 대중들이 난학을 배우는 것을 은근 꺼렸지만 그것은 난학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 지식을 막부가 독점하고 싶어서 그랬다. | ||
확실한 것은 일본의 성장력이 1600년대부터 터지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 |||
<br>국력이 역전된 시기가 정확히 언제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br/> | |||
하지만 역전의 시기가 빠르고 느리고를 떠나서 일본은 '근대화' 라는 숙제를 풀어나갔으며 조선은 해당 숙제를 풀어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1890~1960년대 까지는 일본에게 삼일한 수준으로 당했던 것이다. | |||
생각해보면, 북괴가 남한에게 국력이 따라잡히는 과정이랑 비교해봐도 상당히 유사하다. 우선, 일제의 만주지역 짱깨들을 겨냥해서 군수공장을 북괴에게 몰아준 탓인지 북괴가 1948년에 창설된 직후에는 남한보다 더 잘 살았고 전후복구도 더 빨랐다. 그렇게 1955~1970년까지 남한에게 형님 노릇을 하며 살다가 1973년부터 급격히 남한의 포텐이 터져서 1980년이 지났을때는 이미 어느정도 따라잡혔고 격차도 커져가고 있었다. 그래도 1990년 이전까지는 군사력만큼은 남한에게 밀리지 않고 대등하거나 이상이였지만 그것도 결국 소련이 폭망한 이후에는 좆망해서 현재 재기불능인 봉건제 왕국으로 전락했다. | |||
== 역대 국왕 == | |||
{{조선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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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광해군, 생몰 1575~1641, 재위 1608.2.~1623.3.) | (혼, 광해군, 생몰 1575~1641, 재위 1608.2.~1623.3.) | ||
제 16대 | 제 16대 능양군 | ||
(종, 능양군, 생몰 1595~1649, 재위 1623.3.~1649.5.) | (종, 능양군, 생몰 1595~1649, 재위 1623.3.~1649.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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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4대 [[박정희|박종]](정희, 생몰 1917~1979, 재위 1961.5.~1979.10.) | 제 34대 [[박정희|박종]](정희, 생몰 1917~1979, 재위 1961.5.~1979.10.) | ||
제 35대 [[전두환|전종]](두환, 생몰 1931~, 재위 1979.12.~1988.2.) | 제 35대 [[전두환|전종]](두환, 생몰 1931~2021, 재위 1979.12.~1988.2.) | ||
추존 1대 [[김일성|태조]] 혹부리우스(일성, 생몰 1912~1994, 재위 1948.9.~1994.7.) | |||
추존 2대 [[김정일|핵종]] 뽀그리우스(정일, 생몰 1941~2011, 재위 1994.7.~2011.12.) | |||
추존 3대 [[김정은|돈종]] 꿀꾸리우스(정은, 생몰 1984~, 재위 2011.12.~) | |||
== 기타 == | == 기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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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제국]] 황실 복원 === | === [[대한제국]] 황실 복원 === | ||
{{본심|조선왕조|한국의 개돼지들}} | {{본심|조선왕조|한국의 개돼지들}} | ||
{{지랄}} | |||
{{링크금지}} | {{링크금지}} | ||
{{국가보안법}} | {{국가보안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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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 ||
헌법에서부터 금지행위라고 했으므로 절대로 내뱉어서는 안된다. | 헌법에서부터 금지행위라고 했으므로 절대로 내뱉어서는 안된다. 정치권에서도 당을 불문하고 장난으로도 하지 않으며 허경영이 전에 대통령제 폐지하고 군주제로 바꿔서 자신이 황제가 되겠다는식의 말을 한적이 있으나 조선왕조를 돌려놓겠다는 병신같은 개소리는 지껄인적 없다. | ||
이런 병신 같은 조선 왕조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먼 헬브리튼 왕실 뽕이라도 맞았는지 간간히 대한제국 황실 복원이라는 애기가 간간히 흘러나오는 경우가 있다. | 이런 병신 같은 조선 왕조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먼 헬브리튼 왕실 뽕이라도 맞았는지 간간히 대한제국 황실 복원이라는 애기가 간간히 흘러나오는 경우가 있다. | ||
대한제국은 조선 왕조의 직계 후속으로 취급되는 게 보통이라서 복원 얘기가 나올 때는 보통 대한제국 황실이라고 얘기한다. 왕보다는 황제가 좀 더 있어 보이기 때문에 구 대한제국 후손들이 이걸 노리고 대한제국 황실이라고 칭하는 것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노예를 자처하는 새끼들이 제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미 [[일제강점기]] 시기 때 근왕파가 깡그리 몰살당한 것을 생각하면 의아하겠지만 현대 엔터테이먼트([[만화]]나 [[드라마]])의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가 제기하고 있어서 문제가 된다. 혹은 무개념 전주 | 대한제국은 조선 왕조의 직계 후속으로 취급되는 게 보통이라서 복원 얘기가 나올 때는 보통 대한제국 황실이라고 얘기한다. 왕보다는 황제가 좀 더 있어 보이기 때문에 구 대한제국 후손들이 이걸 노리고 대한제국 황실이라고 칭하는 것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노예를 자처하는 새끼들이 제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미 [[일제강점기]] 시기 때 근왕파가 깡그리 몰살당한 것을 생각하면 의아하겠지만 현대 엔터테이먼트([[만화]]나 [[드라마]])의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가 제기하고 있어서 문제가 된다. 혹은 [[이석|무개념 전주 이씨]]들이 특권 내놔라 이기야! 하며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 ||
물론 진작에 초대 머통령 저승만에 의해서 나가리 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저승만이지만 저승만의 몇 안 되는 업적들 중 한 가지다. | 물론 진작에 초대 머통령 저승만에 의해서 나가리 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저승만이지만 저승만의 몇 안 되는 업적들 중 한 가지다. 이후 박정희때 해제되었다가 전두환이 집권하여 다시 탄압을 받자 전부 일본으로 튀었다. | ||
딱히 [[이승만]]이 아니더라도 이씨 왕가라고 해서 일본이 나라 뺏은 다음, 대한제국 황실을 왕족(이왕가)으로 대해주면서 일본 천황가와 통혼을 강요했기 때문에 왕족 전원 모두 친일파로 갈아탔다. 일례로 이 문단 만들게 한 이석도 일본 천황계 피가 흐르고 있는 일본인이다. | 딱히 [[이승만]]이 아니더라도 이씨 왕가라고 해서 일본이 나라 뺏은 다음, 대한제국 황실을 왕족(이왕가)으로 대해주면서 일본 천황가와 통혼을 강요했기 때문에 왕족 전원 모두 친일파로 갈아탔다. 일례로 이 문단 만들게 한 이석도 일본 천황계 피가 흐르고 있는 일본인이다. | ||
거기다 왕족 간의 결혼으로 구 대한제국 황실에게 | 거기다 왕족 간의 결혼으로 구 대한제국 황실에게 일본 천황가의 피가 섞여 들어갔기 때문에 만약 복고했다면 독립하고도 일본 왕족을 왕으로 모셔야 하는 개같은 상황이 펼쳐졌을 수도 있다. 조선 복고가 아닌 일제강점기 복고라는 말이다. | ||
한국만 왕족 입국 금지를 했다라는 이상한 소리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고 당시 이탈리아, 러시아, 스페인, 터키 등이 하던 왕족 추방 및 입국 금지를 싱먼리가 따라했을 뿐이다. 오히려 한국은 입국 제한을 박정희 때에 풀어서 금방 해제된 편이고 이탈리아나 터키는 2000년대 들어서야 왕족의 입국 금지가 해제되었다. 터키의 경우 1974년 해제했다고는 하나 2004년까지는 암묵적으로 왕족의 입국이 제한되어 2004년이 되어서야 오스만 왕족 후손들이 터키에 들어왔다. | 한국만 왕족 입국 금지를 했다라는 이상한 소리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고 당시 이탈리아, 러시아, 스페인, 터키 등이 하던 왕족 추방 및 입국 금지를 싱먼리가 따라했을 뿐이다. 오히려 한국은 입국 제한을 박정희 때에 풀어서 금방 해제된 편이고 이탈리아나 터키는 2000년대 들어서야 왕족의 입국 금지가 해제되었다. 터키의 경우 1974년 해제했다고는 하나 2004년까지는 암묵적으로 왕족의 입국이 제한되어 2004년이 되어서야 오스만 왕족 후손들이 터키에 들어왔다. | ||
결론부터 말하면 대한제국 황실 복원은 머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내란죄다. 절대 거짓말 아닌 진실이다. | 결론부터 말하면 대한제국 황실 복원은 머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내란죄다. 절대 거짓말 아닌 진실이다. | ||
유신 4공시절에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로 수정된적이 있으나 1항은 헌법제정 이후 단한번도 수정된적 없다. | |||
그리고 전주 이씨는 고려 왕씨처럼 모조리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도 모자를 판에 목숨이나 유지해준 것을 고마워하면서 지내도 모자랄 텐데 이런 지랄은 지 명줄만 짧아지는 행위다. | 그리고 전주 이씨는 고려 왕씨처럼 모조리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도 모자를 판에 목숨이나 유지해준 것을 고마워하면서 지내도 모자랄 텐데 이런 지랄은 지 명줄만 짧아지는 행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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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복원한다고 해도 황실이라면 품위 유지비 등의 명목으로 황실 전용으로 쓸 자금이 들어갈 텐데 지금 머한민국에서 이런 걸 눈뜨고 감수할 인간이 얼마나 있을까? 다만 만약 천문학적인 확률로 대한제국 황실을 복원했다고 가정하면, 구 대한제국 황실의 재산을 전량 압수했던 국가에서 일부 혹은 전부 돌려줄 수도 있다. 물론 결론은 쓸데없는 일이다. | 설령 복원한다고 해도 황실이라면 품위 유지비 등의 명목으로 황실 전용으로 쓸 자금이 들어갈 텐데 지금 머한민국에서 이런 걸 눈뜨고 감수할 인간이 얼마나 있을까? 다만 만약 천문학적인 확률로 대한제국 황실을 복원했다고 가정하면, 구 대한제국 황실의 재산을 전량 압수했던 국가에서 일부 혹은 전부 돌려줄 수도 있다. 물론 결론은 쓸데없는 일이다. | ||
그러니까 우린 황실 복원을 씨부리는 전주 이씨를 보면 전부 죽창으로 찔러 죽여 조선 왕조의 잔재를 말끔히 지워버리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예를 | 그러니까 우린 황실 복원을 씨부리는 전주 이씨를 보면 전부 죽창으로 찔러 죽여 조선 왕조의 잔재를 말끔히 지워버리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예를 들어서 북괴는 전주 이씨 왕족들을 1950년대에 싸그리 사형시켜버렸다. | ||
전주 이씨 왕조는 일제가 왕족(이왕가)으로 대접해줘서 대부분 친일파로 갈아타고 왕족 간의 결혼으로 일왕가 피까지 섞여들어가서 품종개량 실패작이다. 군인으로 입대한 몇 명은 일본군 출신으로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서 아시아 제국주의 확장에 빼박 못하게 손을 담갔으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안 해서 감싸줄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상하게 친일파 논란에서 이씨 왕가는 어쩔 수 없는 현실적 문제였다고 실드 쳐주는 자들이 많은데 친일인명사전 등의 기준으로 봐도 명백한 악질 친일 행위를 한 전주 이씨는 개화기때에도 가장 많았다.([[이광수 (문학인)|이광수]]가 유명한 전주 이씨 친일파다.) 영국 왕실은 엘리자베스 2세부터 2차 세계대전 때 군에 입대해서 나치와 싸웠다. 전주 이씨는 임진왜란 때, 6.25전쟁 때 국민 버리고 도망갔다. 이승만은 북한에서 점심 먹을 수 있다고 해놓고 자기만 도망가고 국민들 도망 못 가게 한강다리 끊었는데 이건 스탈린도 안 하는 짓이다. 스탈린은 나치가 침략했을 때 도망 안 가고 모스크바에서 국민들과 결사 항전을 지휘했던 사람이다. 비교 불가다. | 전주 이씨 왕조는 일제가 왕족(이왕가)으로 대접해줘서 의친왕같이 예외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친일파로 갈아타고 왕족 간의 결혼으로 일왕가 피까지 섞여들어가서 품종개량 실패작이다. 군인으로 입대한 몇 명은 일본군 출신으로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서 아시아 제국주의 확장에 빼박 못하게 손을 담갔으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안 해서 감싸줄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상하게 친일파 논란에서 이씨 왕가는 어쩔 수 없는 현실적 문제였다고 실드 쳐주는 자들이 많은데 친일인명사전 등의 기준으로 봐도 생계형 친일이 아닌 명백한 악질 친일 행위를 한 전주 이씨는 개화기때에도 가장 많았다.([[이광수 (문학인)|이광수]]가 유명한 전주 이씨 친일파다.) 영국 왕실은 엘리자베스 2세부터 2차 세계대전 때 군에 입대해서 나치와 싸웠다. 전주 이씨는 임진왜란 때, 6.25전쟁 때 국민 버리고 도망갔다. 이승만은 북한에서 점심 먹을 수 있다고 해놓고 자기만 도망가고 국민들 도망 못 가게 한강다리 끊었는데 이건 스탈린도 안 하는 짓이다. 스탈린은 나치가 침략했을 때 도망 안 가고 모스크바에서 국민들과 결사 항전을 지휘했던 사람이다. 비교 불가다. | ||
ㄴ 런닝맨 한 건 ㅇㅈ하지만, 실질적으로 대전차 무기가 전무한 상태에서 탱크를 막기란 불가능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잡히면 남한산성의 인조 꼴 나기 쉽기 때문에(후방으로 튀지 못하고, 국군은 제한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 부산에 미군이 도착하기 전에 대한민국은 끝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전쟁 전 한강 다리 폭파 자체는 육본과 미 군사 고문의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한강 다리 폭파 전체를 까기보단 통제와 예보 없이 너무 일찍 터뜨려 시민들이 있을 때 조기 폭파한 게 까일 부분이다. | |||
ㄴ 그 이승만도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평화선 선포로 깝치는 쪽본과 북괴를 참교육 하는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공부 잘한다고 무조건 착하고 정치력 높은건 아니지만 이승만은 일가 대대로 높은 자리를(인조반정 같은 쿠데타도 있었지만 어쨌든 전주이씨 일가에 해당하는건 맞음.) 물려받은 조선 왕조와는 다르게 미국 유학파 엘리트다. | |||
'''결론을 말해주자면 이들은 우리나라의 독립에도 기여한것이 없고 공산화 저지에도 기여한게 없으며 산업화나 민주화에도 기여한게 전혀 없는 암적인 존재다.''' | |||
이 병신 짓거리는 가장 최근에 드라마 궁이 방영되며 황실 복원론이 인기를 끌때 이해원이라는 왠 옹주를 데려다가 이분이 대한제국 30대 여제시다! 이지랄 하다가 정말 일말의 관심도 없이 묻혔다. 사실 이거 엄밀히 따지면 법적으로 다 잡아넣을 수 있는 행위다. 정부가 보기엔 걍 전주이씨 종친회장을 좀 요란하게 뽑나보다 해서 넘어갔을수도? 참고로 그 할머니 2020년 2월에 101살 나이로 죽어서 복원 시도는 그렇게 영원히 끝이 났다. | 이 병신 짓거리는 가장 최근에 드라마 궁이 방영되며 황실 복원론이 인기를 끌때 이해원이라는 왠 옹주를 데려다가 이분이 대한제국 30대 여제시다! 이지랄 하다가 정말 일말의 관심도 없이 묻혔다. 사실 이거 엄밀히 따지면 법적으로 다 잡아넣을 수 있는 행위다. 정부가 보기엔 걍 전주이씨 종친회장을 좀 요란하게 뽑나보다 해서 넘어갔을수도? 참고로 그 할머니 2020년 2월에 101살 나이로 죽어서 복원 시도는 그렇게 영원히 끝이 났다. | ||
한편 대한제국 황실 최고 웃어른이라는 의친왕 10남 이석은 무명 가수로 입에 풀칠하면서 살다가 가끔씩 종편 방송에 등판해서 황실 복원론을 | 한편 대한제국 황실 최고 웃어른이라는 의친왕 10남 이석은 무명 가수로 입에 풀칠하면서 살다가 가끔씩 종편 방송에 등판해서 황실 복원론을 아가리로 내뱉고 다닌다. 진짜로 전주 이씨 새끼들은 레닌한테 죽창 맞은 러시아 왕족 엔딩 안 난걸 감사해야지 막말로 6.25 전쟁 났을때 북괴가 이겼으면(당연히 북괴도 개막장이다.) 백두돼지혈통한테 서열정리 당했을 애들이 말이 많음. 어쨌든 이석은 1941년생 80대 이상의 고령이라서 현재로썬 임팩트는 거의 없음. | ||
황실복원 홈페이지라는 이상한 사이트가 있지만 이곳은 위에 적은 이석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정체불명의 사이트로 방통위에 의하면 국내 주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며 정확히는 북괴의 [[우리민족끼리]]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국정원이 24시간 감시하고 있는곳이니까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 황실복원 홈페이지라는 이상한 사이트가 있지만 이곳은 위에 적은 이석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정체불명의 사이트로 방통위에 의하면 국내 주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며 정확히는 북괴의 [[우리민족끼리]]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국정원이 24시간 감시하고 있는곳이니까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 ||
== 평가 == | == 평가 == | ||
'''초기과 말기의 평가는 다르겠지만 수천년의 역사상 가장 개병신 같았던 시절 그 자체''' | |||
''' | |||
정말 알면 알수록, 아니 세상에 21세기의 지역강국 대한민국의 과거가 에콰도르, 볼리비아, 알바니아, 도미니카 공화국에 필적하는 씹찐따 같은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에 한 번 충격을 먹었고, 그 씹찐따 같은 나라가 한때 바로 내가 현재 사는 나라의 과거였다는 사실에 두 번 충격을 먹었다. | |||
왜 조선이 욕으로 쓰이는지 생각해 봐라. 조선은 자타공인 한민족 최악의 흑역사다. | 왜 조선이 욕으로 쓰이는지 생각해 봐라. 조선은 자타공인 한민족 최악의 흑역사다. | ||
ㄴ 솔찍히 왜구들 참교육하고 다니던 신흥무인세력이랑 훈구가 권력을 잡던 전기는 그나마 정상적인데, 후기는 사림새끼들 꼰대짓 개오졌고 이게 탁상행정의 시초임. | |||
물론 조선 얘기하면서 조센이라고 하는 새끼들은 거르면 된다. 답이 안나오는 일뽕새끼들이기 때문이다. 그냥 구한말이 지옥이였으면 중일전쟁 이후 일제시대도 지옥이지 뭐가 더 낫다고 싸워대는 키배충도 거르자. | |||
나무위키는 조선/오해 항목까지 만들면서 쉴드친다. 역덕들 사이에서도 쉴드치는 무리가 종종 있는데 기록이 가장 많이 남아서 (특히 사학전공자의 경우 밥그릇싸움) 파고들 게 많아서 그런 것도 있고, 친중반일 프로파간다 퍼트리기 딱 좋은 시대라 그렇기도 하다. 시대별로 중국, 일본과의 관계를 보면 삼국시대때는 고구려가 중국 왕조들과 자주 전쟁하다 당에 망하고, 백제도 결국 당나라에 망한다. 신라가 왜구에 시달리긴 했지만, 백제는 왜와 거의 혈맹 수준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송이 워낙 군사력이 약해서 충돌은 없었지만 대신 북방민족(거란, 여진, 몽고)과 자주 충돌하고 원나라한테는 거의 속국수준까지 갔다. 고려 말 왜구가 대대적으로 침입하지만 이 때 활약한 무장도 조선 세운 이성계라 사실상 조선 프리퀄인것도 있고 망하기 직전인데다가 명과의 관계도 요동 정벌,홍건적 보면 딱히 좋은 건 아니었다. 반면에 조선은 명에 허구한날 사대하며, 임진왜란때 명에 구원받았지만, 일본과는 임진왜란을 거쳐 식민지로 망했으니 친중반일 하는 세력 입장에서는 딱 맞는 시대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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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 2단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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