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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
| | #넘겨주기 [[진주 대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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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갓갓민.jp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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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갓민 장군이 이끄신 대첩으로 3대첩 중 하나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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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장군이 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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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약을 충분히 마련하고 해자를 깊이 판 후 의연히 대처했다. 경상우병사가 패한 후 달려와 성문을 열어 달라고 했지만 지휘권 혼란을 우려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게 얼마나 현명한 판단이었는지는 2차 진주성 전투때 고만고만한 지휘관들의 분열이 있었던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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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 마지막에 시체 속에서 쏜 왜군의 조총탄에 김시민 장군이 전사했지만 조선군이 크게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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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1차 대첩인데...문제는 이긴건 좋은데 두번째에서 좆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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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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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땅에 있던 10만 왜군이 한번에 몰려와 진주성을 공격했다. (참고로 침공군 거의 전병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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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당시 관의군 다합해 수비군은 수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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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1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를 갚으라는 명을 내려 일본측에서 무슨일이 있어도 무너트리라는 명령이니 알아서 철수해라 라고 공격의도를 대놓고 보일정도로 각오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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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참여한 의병장들은 이미 여기가 죽을자리라는걸 알고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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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정도였다면 2차 진주성 최강네임드인 황진은 원래 밖에서 도와주려 했는대 성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어서 들어갔고 떠나기전 곽제우가 황진에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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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름 내임드인 정기룡도 진주성으로와서 "힘내" 하고 갔다. 그러니까 여기온분들은 죽을자리 찾아 온 상남자들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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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때보다 오래 버텼지만 숫적 열세를 감당 할 수 없어 성이 함락당하고 양민 7만명이 학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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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이 너무 많아 내분이 있었다는 주장은 말이 안되는대 의견일치가 안된적도 없었고. 다들 죽을 힘을 다해 싸웠지만 서예원이 경비를 재대로 안해서 성벽이 무너진거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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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초에 수천으로 10만 대군을 그것도 질적으로 차이나는 상황에서 막아내려는것 자체가 절망적인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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