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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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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주로 중국에서 사용한 국가의 이름
동북아시아 주로 중국에서 사용한 국가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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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와 진나라의 압박에 시달리며 찐따로 전락했다가 전국 통일을 결심한 시황제의 진나라에게 첫빠따로 얻어맞고 멸망한다.
초나라와 진나라의 압박에 시달리며 찐따로 전락했다가 전국 통일을 결심한 시황제의 진나라에게 첫빠따로 얻어맞고 멸망한다.


군장비의 질이 높기로 이름 높았지만 나라가 작다보니 그걸 운용할 병력차이를 극복못하고 전국 7웅중 가장 약한나라로 평가한다.
군장비의 질이 높기로 이름 높았지만 나라가 작다보니 그걸 운용할 병력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데다 나라가 온통 평야라 방어도 어려워서 전국 7웅중 가장 약한나라로 평가한다.


[[진 소양왕]] 이 죽었을 때는 당시 왕(환혜왕)이 직접 상복을 입고 가서 절하는 추태를 보였고,  
[[진 소양왕]] 이 죽었을 때는 당시 왕(환혜왕)이 직접 상복을 입고 가서 절하는 추태를 보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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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民國. 이 나라는 위의 대한제국에서 나라의 이름을 따왔다.
大韓民國. 이 나라는 위의 대한제국에서 나라의 이름을 따왔다.


본디 임정내에서 여운형을 위시로한 소수파는 나라를 좆본에 들어다바친 대한제국을 좆같이 보았기 때문에 조선으로 하자고 했고
본디 임정내에서 여운형을 위시로한 소수파는 나라를 좆본에게 먹혀 13년 단명한 나라를 좆같게 보았기에


이것이 해방직후 이땅에 들어섰던 미승인국 국호를 조선인민공화국으로 정한 까닭이며 이는 이후 북조센의 정식국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해방직후 이땅에 들어섰던 미승인국 국호를 조선인민공화국으로 정한 까닭이며 이는 이후 북조센의 정식국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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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김구를 위시로한 임정 다수파는 아따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장께? 라면서 구 황실 우대까지 박아버렸다.
허나 김구를 위시로한 임정 다수파는 아따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장께? 라면서 구 황실 우대까지 박아버렸다.


이점에서는 임정을 아예 인정하지 안고 머한민국을 수립하면서 구황실 우대를 말소시킨 닥터 싱먼 리의 혜안에 부랄을 치지 아니할수 없다.
이점에서는 머한민국을 수립하면서 구황실 우대를 말소시킨 닥터 싱먼 리의 혜안에 부랄을 치지 아니할수 없다.
 
ㄴ 전에 누가 싱먼 리가 임정을 부정한다는 개소리해서 지운다
 
진짜로 임정을 부정한 인물은 싱먼 리가 아니라 [[김일성]]이다. 김일성은 나라의 정체성이나 국가관 같은 거 일절 없고 욕심만 그득해서 남북 단일 정부 수립을 거절한 것이다.
 
이 때문에 [[김구]]와 [[이승만]]은 의견이 엇갈렸는데 이승만은 김일성 새끼 암만 설득해도 안되니 포기하면 편해 였지만 김구는 어떻게든 김일성을 설득하려 발악했다.
 
싱먼 리는 김일성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포기했을 뿐 임정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중국의 고머 통일왕조 한漢=
=중국의 고머 통일왕조 한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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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5" style="color:#FFE400;background-color:#C90000" "text-align: center;" | 중국 역사의 흐름
! colspan="5" style="color:#FFE400;background-color:#C90000" "text-align: center;" | 중국 역사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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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xt-align: center;" | [[진나라 #춘추전국시대를 종식시킨 국가|진(秦)나라]]<br>(B.C. 221 - B.C.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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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xt-align: center;" | 한나라<br>(B.C. 202 - 280)<br><font size = 1.5>전한 (B.C. 202 - A.D. 8)<br>[[신나라|신]] (8 - 23)<br>후한 (23 -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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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xt-align: center;" | [[삼국(지)시대|삼국 시대]]<br>(220 - 280)<br><font size = 1.5>[[위나라|위]] (220 - 265)<br>[[촉나라|촉]] (221 - 263)<br>[[오나라|오]] (229 - 280)
| "text-align: center;" | [[삼국(지)시대|삼국 시대]]<br>(220 - 280)<br><font size = 1.5>[[위나라|위]] (220 - 265)<br>[[촉나라|촉]] (221 - 263)<br>[[오나라|오]] (229 -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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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역사}}
{{중국의 역사}}
{{제국}}
{{빛과 어둠}}
{{돈밝힘}}


이 나라는 위의 한나라들과 달리 한수 한漢자를 쓴다.
이 나라는 위의 한나라들과 달리 한수 한(漢)자를 쓴다.
==소개==
==소개==
{{국가 정보 | 추가사진 = Han_Dynasty_206_BC_–_220.PNG | 국가명 = 漢 | 영어국가명 = Han | 수도 = 남정(BCE 206~BCE 202)<br>장안(BCE 202~8)<br>낙양 (25 ~ 190)<br>장안 (190 ~ 196)<br>허도 (196 ~ 220)| 대륙 = [[아시아]] | 면적 = 6,000,000 km²(B.C. 50)<br>6,500,000 km²(A.D. 100)| 인구 =57,671,400 명(A.D. 2)| 지도자 = [[황제]] | GDP =| 언어 = 상고 중국어 | 인종 = [[한족]]| 종교 = [[유교]], [[태평도]], [[오두미교]], [[불교]] }}
400년이라는 긴 통치기간 덕분에 [[중국]]이라는 나라의 [[아이덴티티]]를 담당하고 있는 나라이다. 사실 역머 통일왕조중 가장 긴 통치기간을 자랑한다.
400년이라는 긴 통치기간 덕분에 [[중국]]이라는 나라의 [[아이덴티티]]를 담당하고 있는 나라이다. 사실 역머 통일왕조중 가장 긴 통치기간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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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본문==
사실상 하나의 중국을 가능하게 한 나라다. 그전까지의 중국은 지역에 따라 언어, 문자, 단위가 다 제각각이었으며, 따라서 수많은 여러 국가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러한 차이점은 사람들의 생각에도 강하게 뿌리내려져 있었으므로, 서로간에도 민족적 동질 의식보다는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일 뿐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전한과 후한에 이르며 장장 400여년간 같은 나라 사람으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는 하나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상 하나의 중국을 가능하게 한 나라다. 그전까지의 중국은 지역에 따라 언어, 문자, 단위가 다 제각각이었으며, 따라서 수많은 여러 국가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러한 차이점은 사람들의 생각에도 강하게 뿌리내려져 있었으므로, 서로간에도 민족적 동질 의식보다는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일 뿐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전한과 후한에 이르며 장장 400여년간 같은 나라 사람으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는 하나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거 가지고 수천년간 설칠줄은 몰랐지
:단 이 인식은 [[진시황]]의 [[진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편이 옳다
:단 이 인식은 [[진시황]]의 [[진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편이 옳다
::근데 진나라 치세가 워낙 짧고 그 단시 사람들이게 안좋은 기억만 남아서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는 견해도 있다.
::근데 진나라 치세가 워낙 짧고 그 단시 사람들이게 안좋은 기억만 남아서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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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현제도가 정비된 것도 이 시기이다. 역시 시작은 이사의 건의에 따라 진나라가 먼저 시행했지만 법가사상에 의한 폭정으로 순식간에 망해버려서... 이후 진나라를 멸망시킨 항우는 천하를 다시 제후들이 나누어 통치하는 봉건제를 부활시켰지만, 반대로 유방은 장량의 건의에 따라 천하를 분열케하는 봉건제 대신 군국제(郡國制)를 실시하였다. 역이기는 이때 봉건제를 주장하다가, 장량에게 논파당하고 유방에게 욕을 얻어 먹는다. 이후 오초칠국의 난과 무제 시기를 걸쳐 중국 전체에 군현제가 대부분 확립되었다. 이 군현제는 이후 장장 2000년간 중국 통치 시스템의 기본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중국은 유럽 등의 타지역과는 비교될 수 없을만큼 빠른 시기에 광대한 지역에 중앙 집권의 영향력을 완전히 확립할 수 있었다.
군현제도가 정비된 것도 이 시기이다. 역시 시작은 이사의 건의에 따라 진나라가 먼저 시행했지만 법가사상에 의한 폭정으로 순식간에 망해버려서... 이후 진나라를 멸망시킨 항우는 천하를 다시 제후들이 나누어 통치하는 봉건제를 부활시켰지만, 반대로 유방은 장량의 건의에 따라 천하를 분열케하는 봉건제 대신 군국제(郡國制)를 실시하였다. 역이기는 이때 봉건제를 주장하다가, 장량에게 논파당하고 유방에게 욕을 얻어 먹는다. 이후 오초칠국의 난과 무제 시기를 걸쳐 중국 전체에 군현제가 대부분 확립되었다. 이 군현제는 이후 장장 2000년간 중국 통치 시스템의 기본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중국은 유럽 등의 타지역과는 비교될 수 없을만큼 빠른 시기에 광대한 지역에 중앙 집권의 영향력을 완전히 확립할 수 있었다.


또한 무제 시기의 군사 작전으로 이후 중국 주변국의 역사에 어마어마한 파장을 미쳐오기도 했다. 엄청난 힘을 자랑하던 최초의 유목 제국 흉노에 대한 미칠듯한 공세로 인해 흉노는 큰 타격을 입어 이전같은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남월은 순식간에 멸망당하고 대신 9군이 세워지게 되면서 베트남은 이후 수백, 수천년간 이어지는 중국과의 지리멸렬한 대립을 시작하게 되었다.
또한 무제 시기의 군사 작전으로 이후 중국 주변국의 역사에 어마어마한 파장을 미쳐오기도 했다. 전성기엔 유방을 백등산에서 개바르고 왕소군을 따먹으며 한나라한테 조공을 뜯어낼 정도로 강력했던 유목제국 흉노에 대한 미칠듯한 공세로 인해 흉노는 큰 타격을 입어 이전같은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남월(베트남)은 순식간에 멸망당하고 대신 9군이 세워지게 되면서 베트남은 이후 수백, 수천년간 이어지는 중국과의 지리멸렬한 대립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의 역사에도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 이는 바로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것이 전한이기 때문이다. 다만 위만조선은 이전의 남월에 비하면 한나라도 꽤나 고생을 해서 멸망시켰으니 위안을 삼아야 할까싶다. 그리고 정복한 한반도 북부에 한사군을 설치하였는데, 유민들의 저항과 고구려의 성장과 한사군 자체의 통제력 문제로 얼마 못가 통제력을 상실하고, 이때 부여와의 관계도 다소 서먹해졌다.  
한국의 역사에도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 이는 바로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것이 전한이기 때문이다. 다만 위만조선은 이전의 남월에 비하면 한나라도 꽤나 고생을 해서 멸망시켰으니 위안을 삼아야 할까싶다. 그리고 정복한 한반도 북부에 한사군을 설치하였는데, 유민들의 저항과 고구려의 성장과 한사군 자체의 통제력 문제로 얼마 못가 통제력을 상실하고, 이때 부여와의 관계도 다소 서먹해졌다. 다만 한사군 자체는 본국인 한나라가 멸망한 지 한참 뒤인 4세기 초반까지 존속했다.
다만 한사군 자체는 본국인 한나라가 멸망한 지 한참 뒤인 4세기 초반까지 존속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전한의 위업이라는게 죄다 한무제 때 이루어졌는데 이에 따른 엄청난 지출이 있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전한에게 막대한 피해로 되돌아왔다. 단 한무제 이후로 전한이 그 정도의 넘치는 포스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성급하게 다 망해간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전한의 위업이라는게 죄다 한무제 때 이루어졌는데 이에 따른 엄청난 지출이 있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전한에게 막대한 피해로 되돌아왔다. 단 한무제 이후로 전한이 그 정도의 넘치는 포스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성급하게 다 망해간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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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대혼돈을 피해가지 못했다. 전한의 6천만에 가까웠다는 인구수가 조사된 시기가 AD 2년이었는데, 광무제가 죽은 AD 57년의 인구수는 2800만이었다. 무슨 짓을 한거냐 왕망 (다만 인구 통계의 경우 호적에 모든 인구가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평시에도 유교적 정책에 의해 백성의 부담을 줄이고자 호구조사를 엄격히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고, 난세가 되면 유랑민이나 대호족의 예속민이 누락되기 일쑤였다. 그러므로 난세의 인구급감은 대규모의 아사나 학살의 문제도 있지만, 국가의 행정체계와 통제력의 붕괴로 인한 제대로된 호구 조사와 이에 따른 합당한 파악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역시나 대혼돈을 피해가지 못했다. 전한의 6천만에 가까웠다는 인구수가 조사된 시기가 AD 2년이었는데, 광무제가 죽은 AD 57년의 인구수는 2800만이었다. 무슨 짓을 한거냐 왕망 (다만 인구 통계의 경우 호적에 모든 인구가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평시에도 유교적 정책에 의해 백성의 부담을 줄이고자 호구조사를 엄격히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고, 난세가 되면 유랑민이나 대호족의 예속민이 누락되기 일쑤였다. 그러므로 난세의 인구급감은 대규모의 아사나 학살의 문제도 있지만, 국가의 행정체계와 통제력의 붕괴로 인한 제대로된 호구 조사와 이에 따른 합당한 파악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여하튼 고대 동아시아의 압도적 패권국가. 막말로 다른 나라들은 이제 나라라는 모양새을 좀 갖추어가고 있는데 이를 비유하자면 인구 6000만에 초원으로 10만 명 이상의 기병을 진격 시키는 등 말도 안되는 수준이다.
여하튼 고대 동아시아의 압도적 패권국가. 막말로 다른 똥양 국가들은 이제 나라라는 모양새을 좀 갖추어가고 있는데 인구 6000만에 전쟁시 초원으로 10만 명 이상의 기병을 진격 시키는 등 말도 안되는 수준이다.


==대표 인물 목록==
==대표 인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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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고조]]([[유방]])
*[[한고조]]([[유방]])
*[[헌제]]
*[[헌제]]
 
*[[장건]]-계속해서 침입해오는 흉노족과 맞써 싸우기 위해 서역에서 동맹을 찾으려 했고 특사로 장건을 보냈는데 비록 동맹 맺기에도 실패하고 장건 자신은 흉노족에게 2번 붙잡혀 결혼까지 당하지만 겨우 탈출하여 20년 만에 한으로 돌아온다.이때 장건이 동맹을 맺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녔던 루트들이 서방과 동방의 교역로인 실크로드가 되었다.


==유비이후 '漢'==
==유비이후 '漢'==
===촉한===
===촉한===
[[촉나라]]로 가자.
[[촉나라]]로 가자.
===유연의 한===
[[조나라#전조|전조]]로 가자.


===성한===
===성한===
서진말인 304년, 토번계 저족인 '파저족'의 족장 '이웅'이 옛 촉한지역에 세운 나라. 이미 302년 이웅이 이 부족을 키워냈고, 이웅이 나라를 세웠다.  
서진말인 304년, 토번계 저족인 '파저족'의 족장 '이웅'이 옛 촉한지역에 세운 나라. 이미 303년 이특이 정권을 잡는가 했지만 서진 공권력의 심판을 당해 토벌당했다.
 
사실 애비인 이특이 면죽에서 알박고 사천에서 씹개판치다가 <ref>진서 이특 재기를 보면 [[유연(흉노)|유원해]]재기보다도 내용이더 개판이다. 익주자사 나상이랑, 광한태수 신염이랑 졸라 개판치면서 싸운다. 결국 이특은 광한군은 쳐묵쳐묵했는데, 나상이랑 싸우다가 건평태수 손부와 나상의 협공으로 뚜들뚜들 당하고 망했다.</ref>


수도는 성도... 였으나 촉한보다는 딸린다. '''한중'''이 진나라꺼였고, 그나마 상용과 성도 인근지역을 겨우 통치하는 작은 나라였다. 그래도 이웅이 능력은 ㅆㅅㅌㅊ라 범장생이란 촉한의 명신 데리고 와서 정치 잘했는데, 왕족새끼들이 지랄하다가 이민족이 반란일으키고 결국 347년 동진이 퇴갤시켰다.
수도는 성도... 였으나 촉한보다는 딸린다. '''한중'''이 진나라꺼였고, 그나마 상용과 성도 인근지역을 겨우 통치하는 작은 나라였다. 그래도 이웅이 능력은 ㅆㅅㅌㅊ라 범장생이란 촉한의 명신 데리고 와서 정치 잘했는데, 왕족새끼들이 지랄하다가 이민족이 반란일으키고 결국 347년 동진이 퇴갤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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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군===
===반란군===
후경이 후량에서 땅크몰고 폭동일으켜서 만든 1년짜리 왕조.
후경이 후량에서 땅크몰고 폭동일으켜서 만든 1년짜리 왕조.
===후한===
당나라가 멸망하고 개막된 오대십국시기에 유지원이 개봉(카이펑)에서 세운 나라.
돌궐 사타족의 인물이다. 물론 나라는 2대 3년만에 망하고 후주가 들어섰다.
== 둘러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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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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