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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북한 '''내부 기준'''으로 금수저다. 실제로 상위 5%만 평양에 거주할수있음 | ㄴ 북한 '''내부 기준'''으로 금수저다. 실제로 상위 5%만 평양에 거주할수있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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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고조선과 고구려의 수도였고 묘청의 난 때 대위국이 수도로 삼았다. 대한제국 때는 황제국이 여러 수도를 두어야 한다는 원리에 따라 제2수도로서 발전될 예정이었다. 근데 지금은 [[북괴]]크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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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8년 [[당나라]]에게 털리고 나서는 완전히 초토화되어서 918년 [[고려]]가 재건할 때까지는 6.25때 석기시대로 돌아갔을 때처럼 허허벌판이 되었다. 근데 하도 인구가 딸려서 [[연백군|염주, 배주]], [[황주군|황주]], [[해주시|해주]], [[봉산군|봉주]]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켜서 서경으로 승격시켰다. 960년 서도로 불리고 근방인 [[중화군]], [[강동군]], [[강서군]] 근처에 서경기를 설치했다. | 668년 [[당나라]]에게 털리고 나서는 완전히 초토화되어서 918년 [[고려]]가 재건할 때까지는 6.25때 석기시대로 돌아갔을 때처럼 허허벌판이 되었다. 근데 하도 인구가 딸려서 [[연백군|염주, 배주]], [[황주군|황주]], [[해주시|해주]], [[봉산군|봉주]]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켜서 서경으로 승격시켰다. 960년 서도로 불리고 근방인 [[중화군]], [[강동군]], [[강서군]] 근처에 서경기를 설치했다. | ||
하지만 [[묘청]] 새끼가 반란을 일으켜서 준반역향 취급을 받으면서 서경기는 작살이 났고 강동현, 삼등현, 강서현, 순안현, 중화현의 6개 현이 설치되었다. | [[11세기]]까지만 해도 고려의 명목상 목표는 옛 [[고구려]]를 부흥시키는 것이었고 그것이 실제로는 불가능할지라도 국가 분위기 자체가 북부 지향적이었기에 결코 고구려의 고도 평양에 대한 대우를 개차반으로 할 수는 없었다. | ||
하지만 [[12세기]]에 들어와서 [[묘청]] 새끼가 반란을 일으켜서 준반역향 취급을 받으면서 서경기는 작살이 났고 고려의 '고구려 부흥'이라는 목표도 흑역사가 되었으며 강동현, 삼등현, 강서현, 순안현, 중화현의 6개 현이 설치되었다. | |||
조선 시대에는 인흥부, 지안부, 예안부, 의흥부의 4부가 설치되었다. 이때도 반역향 취급을 받았는데,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제2도시 취급을 받았다. | 조선 시대에는 인흥부, 지안부, 예안부, 의흥부의 4부가 설치되었다. 이때도 반역향 취급을 받았는데,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제2도시 취급을 받았다. | ||
[[대한제국]] 시기에는 동양의 황제국으로서 한성뿐만 아닌 여러 수도를 두어야 했기에 한성 다음가는 도시인 평양에 궁궐을 지으려 했으나, 대한제국 자체가 13년만에 일본 제국의 일부가 되며 실패. | |||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식으로 '헤이죠'라고 불리다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소련군이 점령하면서 소련군정의 본부가 들어섰다. | |||
그 다음은 알다시피 [[북괴]] 소굴이 되었고 [[한국전쟁]] 때 국군이 잠시나마 점령했지만 다시 북괴군에게 빼앗기고 현재에 이른다. | |||
== 현재의 평양 == | == 현재의 평양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