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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인들에게는 사기와 삼국지로 유명하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접하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아닌 정사 삼국지가 24사에 해당한다. | | 일반인들에게는 사기와 삼국지로 유명하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접하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아닌 정사 삼국지가 24사에 해당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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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역대 국가 개수가 아주 많은 것에 비해 정사 역사서가 아주 적은 것은 [[문화대혁명]]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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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 | | ==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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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사기와 정사삼국지는 아주 쉽게 접할 수 있으니 관심 있으면 읽어보자. | | 일단 사기와 정사삼국지는 아주 쉽게 접할 수 있으니 관심 있으면 읽어보자. |
| ==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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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사기(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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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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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후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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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정사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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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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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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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제의 역사를 다루는데, 남제의 황족이던 소씨가 역사편찬자라 약간의 지랄과 구라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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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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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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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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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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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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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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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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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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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당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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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당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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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오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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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오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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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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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나라가 망하고 수도였던 임안이 불태워질때 송나라 사료들도 같이 저세상 갈 뻔했는데 한 관원이 역사를 없애선 안된다고 간청하여 간신히 살아남은 송나라 1차사료를 가지고 만든 정사서. 하여간 1차 사료는 존나게 풍부했기 때문에 역대의 정사 중에선 분량으로는 청사고 빼곤 다른 정사들 씹어먹는다. 본기(本紀) 47권, 지(志) 162권, 표(表) 32권, 열전(列傳) 255권으로 합 4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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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당서와 신당서를 합해도 송사가 71권으로 더 많고 가장 후대의 책인 명사도 332권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청사고가 500권이 넘어서 25사 전체로 보면 청사가 분량이 가장 많긴한데 밑에서 보면 알겠지만 청사고를 바탕으로 출판한 청사 중화민국판이나 중공판이나 둘 다 개씹노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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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지(志) 162권은 전체 중에서 3분의 1를 차지할 정도로 방대한데, 송나라의 사회, 문화, 제도, 경제 등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열전(列傳) 225권에는 인물만 약 2,000명이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내용이 방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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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요사, 금사처럼 댕청한 몽골놈들이 만든 사서라 한계도 존재하는데 송나라 실록을 그냥 복사 붙여넣기 해버려서 전후 문맥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한 부분이 허다하다. 또한, 사료의 고증 문제도 심각한 편. 전반적으로 중복된 내용이 많으며 문맥이 혼동되어 앞뒤가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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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고려사]]가 비슷한시기 송사+원사 분량을 합친것보다 내용이 많다. 송원(960년~1368년)보다 고려(918년~1392년)의 역사가 조금 길어서 생기는 현상이긴 하지만 명색이 인구수나 영토로 따지면 대륙의 통일왕조라는 나라의 역사들과 이런 조그마한 불반도의 역사 분량이 대등할 정도였다는 것은 그만큼 고려시대부터 한민족의 기록문화가 발전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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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적으로 고려사가 조선이 편찬한 것이긴 해도 베이스는 고려실록이다. 그만큼 고려왕조가 기록을 잘 해 두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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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발 같은 시기를 다루는 [[자치통감]]이 편년체로만 294권인데 명색이 기전체 정사라는 삼국사기가 천년동안 고작 50권 분량(그것도 3권은 김유신 열전으로만 때움)였다는걸 생각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것도 고려사는 수많은 외침으로 사료를 깡그리 날린게 꽤 있었는데도 이 정도 분량이라는 것은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본다 솔직히. 물론 조선시대부터는 그깟 중국하면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로 다 씹어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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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사, 금사, 요사, 원사는 의외로 쉽게 번역을 볼 수 있는데 '''치평요람'''이라고 갓세종이 만든 중국+한국사서 섞은 물건이 번역이 있다. 거기서 속자치통감장편, 속자치통감강목 같은 물건이랑 송사랑 섞여서 송나라 역사를 간추려서 편년체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애당초 군왕이 편하게 보라고 만들어놓은 중국 중세사를 다루는 서책이라 송사 대용으로 이보다 적절한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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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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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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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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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사, 신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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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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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나라]]때 이선장이 1368년~1369년 8월까지쓰고, 검정좀해서 1370년 7월에 완성한 사서인데, 당시가 원나라가 망한지 얼마 안되었던 지라 사관들이 원나라에 쌓인게 존나게 많았기에 악담이란 악담은 다 적어놨다. 그래서 신뢰성이 쓰레기였기에, [[중화민국]]시기에 커사오민이란 사람이 다시 썼다. 근데 원조판을 만들때 쓴 1차사료 다사라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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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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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과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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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나라]] 강희제시기부터 옹정제시기까지 장정옥을 필두로해 만든 [[명나라]]의 역사를 다룬 책. 남명에 대한 기록이 빠지는 등이 기록이 좀 부실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명나라에 대한 원한이나 향수같은건 쫙 빠지고 [[강희제]]와 [[옹정제]]가 신뢰성을 존나게 중요시했기에, 고증하나는 존나게 잘 되있다고 한다. 무엇인가, <고려사>와 유사한 뒷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서이다. 중국에서는 이십오사중에서는 [[사기]]보다도 더 ㅅㅌㅊ로 취급이 된다. 청나라의 저명한 역사가인 조익이 자기 책에서 이렇게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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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문|근대의 여러 역사서 가운데 『명사』와 같이 같이 완벽한 것은 없었다. 대개 60여 년을 경과한 다음에 일을 끝냈으니, 예로부터 역사 편찬에 이처럼 시일이 오래 걸리고 깊이 공들인 적은 없었다. 또 강희 연간에 편찬되어 전 왕조와 시간적으로 멀지 않으므로 사적(事迹)의 근원과 결말이 진실을 많이 담고 있고, 또 수십 년 걸려 참고하고 정정했으며, 첨가하거나 삭제하고 분리하거나 합쳤음으로 사실은 더욱 상세해지고 문장은 더욱 간결해졌다. 또 시비(是非)가 오랜 후에 확정되어 집필자가 그 사이에 은폐함이 없어 더욱 근거 있고 신빙성 있게 되었다 |『이십이사차기(二十二史箚記)』 권31 「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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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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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림픽}}{{역사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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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이후의 중국사의 특성상, 세개의 판본이 존재한다. [[중화인민공화국|공산짱깨]]와 [[중화민국(괴뢰국)|수꼴짱깨]]가 서로 지들이 청나라를 이은 중국의 적통이다라며 병림픽을 한 증거로 꼽히며, 이러한 병림픽으로 인해 따로 독자적인 청사를 만들었다. 둘다 역사왜곡이 심하다. 중화민국은 국민당까는거 거진 다 지웠고, 중화인민공화국이야 [[동북공정|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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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어 위키문헌은 깔끔하게 명사까지만 중국정사 24사로 치고 중화민국판 청사나 중공판 청사나 수록안하고 청사고만 관련문헌으로 그냥 따로 빼놨다. 이 병림픽을 보면 현명한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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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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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민국은 공화국인데, 정사를 쓴다는 것은 이전 중국 왕조를 계승했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쓸지말지가 논란이 있었으나, 그 논란이 일은지 얼마 안되서 [[원세개]]가 황제드립을 치는 바람에 논란은 바로 사라지고 편찬을 시작했다. 근데, [[원세개]]가 뒤지고, 편찬에 지원해준다는 [[장작림]]은 그말을 한지 얼마 안되서 좆본군한테 중거버리고 얼마뒤 베이징에 입성한 [[장제스]]가 이래저래 검열을 했다. 왜냐하면, [[중국 국민당]]을 '''역적'''으로 서술했기 때문. 본기 25권, 지142권, 표 53권, 열전 316권인데, 장제스가 손을 댄 것은 '관내본', 만주국에서 쓰인 것은 '관외본'이라고 한다. 제대로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청사고'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모두 관내본을 기본베이스로 하여 청사를 다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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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민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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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에 장제스의 명령에 따라 자기 국민당이 중국 적통이라고 선전한답시고 신해혁명이나 중국 국민당의 흑역사가 안보인다. 그러나섬짱깨랍시고 대만에서 명의 부흥을 꾀한 정씨왕조의 '정성공재기(鄭成功載記)'나 청에 저항한 명의 유신들을 다룬 ‘명유신열전(明遺臣列傳), 남명(南明) 정권을 다룬 '남명기(南明紀)', [[태평천국운동]]에 대해 다루는 홍수전 열전, 그외에 청나라에 저항한 반체제 운동가들에 대해 다룬 <혁명당열전>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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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인민공화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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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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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과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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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식 역사관을 통하여 2002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2016년 1월 1일 초고가 완성됬다고 한다. 원래 2012년~2013년에 완성되서 공개될꺼라고 해서 이때 이 책에 대한 기사가 나왔는데, [[동북공정|지금 이놈들이 하는 짓을 보면]] 주작질을 존나게 많이 할 건 안봐도 비디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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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타 == | | == 기타 == |
| 이상하게 중국정사는 사찬사서가 국가공인 정사보다 퀄리티가 잘 나올때가 많다. 당장 전사대서인 사기, 한서, 후한서, 정사 삼국지 부터가 그렇거니와 송서만해도 역대 정사 가운데 쌍상타취이지 않는가. 자치통감도 국가의 지원을 받은 준 정사서 취급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정쟁에서 밀려난 [[사마광]] 패밀리의 사찬사서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 | 이상하게 중국정사는 사찬사서가 국가공인 정사보다 퀄리티가 잘 나올때가 많다. 당장 전사대서인 사기, 한서, 후한서, 정사 삼국지 부터가 그렇거니와 송서만해도 역대 정사 가운데 쌍상타취이지 않는가. 자치통감도 국가의 지원을 받은 준 정사서 취급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정쟁에서 밀려난 [[사마광]] 패밀리의 사찬사서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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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위에 중화민국판이나 중공판이나 청사가 씹창나는거 봐라, 기본적으로 이 새끼들은 전왕조인 청나라를 부정하면서 들고일어선 세력들의 후예이기 때문에 청나라에 대해서 자기네들 유리한 쪽으로 정사를 쓰는게 보이는 거다. 중화민국판에 섬짱개라고 정성공재기 넣고 남명 내용넣고, 국민당 혁명당 열전 넣고 이렇지 않은가. 중공판 청사야 뭐 안봐도 비디오인 개씹창 공산주의 사관 청사일것은 말할것고 없고... | | 당장 위에 중화민국판이나 중공판이나 청사가 씹창나는거 봐라, 기본적으로 이 새끼들은 전왕조인 청나라를 부정하면서 들고일어선 세력들의 후예이기 때문에 청나라에 대해서 자기네들 유리한 쪽으로 정사를 쓰는게 보이는 거다. 중화민국판에 섬짱개라고 정성공재기 넣고 남명 내용넣고, 국민당 혁명당 열전 넣고 이렇지 않은가. 중공판 청사야 뭐 안봐도 비디오인 개씹창 공산주의 사관 청사일것은 말할것고 없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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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니까 요약하자면 정사는 국가에서 쓰는 것이므로 당연히 정치 논리가 끼어들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막말로 [[국정교과서]]가 왜 욕먹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
중국 역사상 공인되어 온 24개의 역사책을 의미한다.
사마천의 사기 대부터 시작하여 청나라 시기 편찬된 명사까지를 일컫는다.
일반인들에게는 사기와 삼국지로 유명하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접하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아닌 정사 삼국지가 24사에 해당한다.
본디 삼국 시대에는 사기, 한서, 동관한기를 통틀어 전삼사라고 불렸는데 당나라 때 동관한기가 후한서로 대체되고 정사삼국지가 추가되며 전사사로 불렸다.
원나라 때는 18개로 늘어나 십팔사략이라고도 불렸으며 이후 원, 요, 금, 명사와 구당서, 구오대사가 추가되어 24사로 고착되었다.
현재 24사 외에도 동관한기와 신원서, 중화민국 시기 편찬된 청사(고)가 존재한다. 청사고는 1949년 이후 중국이 두 개로 갈라지면서 두 나라에 다른 버전으로 존재하기에 중공이 빨리 패망하고 중화민국 정부가 들어서야 청사로 정식 편찬이 가능할 듯 싶은 상황이다. 그러면 이 문서 제목도 25사가 될 듯.
현재 한국에서 완역된 시리즈는 사기, 한서, 후한서, 정사 삼국지, 요사, 금사 뿐이다.
일단 사기와 정사삼국지는 아주 쉽게 접할 수 있으니 관심 있으면 읽어보자.
이상하게 중국정사는 사찬사서가 국가공인 정사보다 퀄리티가 잘 나올때가 많다. 당장 전사대서인 사기, 한서, 후한서, 정사 삼국지 부터가 그렇거니와 송서만해도 역대 정사 가운데 쌍상타취이지 않는가. 자치통감도 국가의 지원을 받은 준 정사서 취급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정쟁에서 밀려난 사마광 패밀리의 사찬사서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사찬사서는 개인의 주관이 들어가긴 하지만 나름대로 사명의식을 가지고 쓰다보니 그렇다. 당장 고자가 되는 아픔을 겪으면서까지 사기를 쓴 사마천이나 아버지, 아들, 딸이 연이어서 쓴 한서라든지...노답이라는 진수마저도 제갈량집을 지으면서 '시발 제가 죽을죄를 짓기 했는데 그래도 제갈량이 ㅆㅅㅌㅊ인걸 어쩌겠습니까!'라고 상소를 올리기도 했고...물론 그렇다해도 왕조의 눈치를 안 볼 수는 없지만 역사가 개인의 소신이 들어갈 여지가 많다.
반면 국가 공인 전왕조의 사서를 쓰다보면 당연히 전왕조가 왜 망할만 했고 우리 왕조가 왜 전왕조를 대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강하기 어필하면서 쓰게되기 마련이다. 아니면 지들이 그 나라를 공격해 멸망시켜서 사료가 유실되거나...이러다보니 그냥 전왕조 깎아내리느냐고 대충 쓰거나 몇년만에 날림으로 대충 때우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아예 국가에서부터 사서편찬 할 역사가 선정을 잘못해서 진서처럼 전문 역사가가 아니라 문학인들만 잔뜩 모아 역사적인 고증은 조또 안하고 글 내용만 이쁘게 꾸며서 만든 책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또 전 왕조가 원망을 많이 산 이민족 왕조라면 더더욱 깎아내리고 욕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대표적으로 그래서 씹창난게 원사고. 반면 명사 같은 경우엔 청나라가 명나라의 복수를 한다는 명분으로 베이징에 들어온 것이고 만력제가 명나라를 말아먹은게 너무나 명명백백해서 굳이 깎을 필요가 없었으며 느긋하게 편찬할 시간도 많아서 국가공인 정사임에도 좋은 평가를 받는것이다.
당장 위에 중화민국판이나 중공판이나 청사가 씹창나는거 봐라, 기본적으로 이 새끼들은 전왕조인 청나라를 부정하면서 들고일어선 세력들의 후예이기 때문에 청나라에 대해서 자기네들 유리한 쪽으로 정사를 쓰는게 보이는 거다. 중화민국판에 섬짱개라고 정성공재기 넣고 남명 내용넣고, 국민당 혁명당 열전 넣고 이렇지 않은가. 중공판 청사야 뭐 안봐도 비디오인 개씹창 공산주의 사관 청사일것은 말할것고 없고...
그니까 요약하자면 정사는 국가에서 쓰는 것이므로 당연히 정치 논리가 끼어들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막말로 국정교과서가 왜 욕먹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