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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 {{참교육}} | ||
:ㄴ통수 친 슨상에 대한 땡삼이의 참교육+[[12.12 군사반란]], [[5.17 내란]], [[5.18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던 [[하나회]] 세력을 숙청. | |||
{{반공}} | |||
{{보수주의}} | |||
{{신의한수}} | {{신의한수}} | ||
{{ | {{빛과어둠}} | ||
==개요== | ==개요== | ||
13대 대선에서 [[김대중]]([[평화민주당]])에게 통수를 얼얼하게 맛본 [[김영삼]]([[통일민주당]])이 [[노태우]]([[민주정의당]])의 제안을 받아들여 [[김종필]]([[신민주공화당]])과 함께 | {{인용문|전라도 민심은 내가 당신과 손 잡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김대중|노태우가 내민 손을 뿌리치며}} | ||
13대 대선에서 [[김대중]]([[평화민주당]])에게 통수를 얼얼하게 맛본 [[김영삼]]([[통일민주당]])이 [[노태우]]([[민주정의당]])의 제안을 받아들여 [[김종필]]([[신민주공화당]])과 함께 합체하고 [[자유민주당]](後 [[신한국당]])을 창당한 사건. 지금으로 치면 [[더불어민주당|1]]과 [[정의당|3]]과 [[열린민주당|5]]가 합당한 것과 같다. 다만 이념만으로 보자면 [[국민의힘|2]]+[[국민의당|4]]가 더 적합함. | |||
강원 경북의 민주정의당, 경남의 통일민주당, 충청의 신민주공화당, 여야 간 보합세의 수도권 표심이 모두 모인 셈이었으니 정국이 非호남VS호남 구도가 되었다. | |||
==배경== | ==배경== | ||
왜 이런 일이 |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 하면 어차피 [[민주정의당|민정당]]은 [[6월 항쟁]]으로 인해 정치 생명이 끝난 것이었다. 그게 4자 필승론으로 인해 잠깐 연장된 거고, 결국 끝장날 거니까 [[노태우]]가 최대한 목숨줄 연장해보겠다고 [[신민주공화당|야]][[통일민주당|당]]에게 목숨을 구걸한 것이다. 노태우는 김대중한테도 합당 제의를 하기는 했다고 한다. | ||
==당시 시나리오== | |||
===민정+평민+민주+공화=== | |||
박철언이 여기에 내각제도 끼얹자고 처음 주장했는데 평화민주당의 반대로 안 됐다. 이때 평민당에서 이걸 받아들였다면 21세기까지 일본처럼 일당 독점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 |||
===민정+공화vs평민+민주=== | |||
공화당계 정당끼리 합치고 [[민주당계 정당]]끼리 합쳐서 양당 체제를 만들려고 했었다. 근데 이러면 안 봐도 군사정권 정당이 불리해서 금세 묻혔다. | |||
===민정+평민vs민주vs공화=== | |||
노태우의 군바리 색채를 지우려고 제안됐으나 김대중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 |||
===민정vs평민vs민주+공화=== | |||
김대중에게 밀렸던 김영삼은 김종필과 연대해서 3당 체제를 만드려 했으나 재보선에서 매수 혐의로 실패했다. | |||
===민정+민주+공화vs평민=== | |||
이대로 됐다. | |||
==과정== | ==과정== | ||
당시 제1야당 총재인 [[김대중]]은 재차 4자 필승론을 생각하며 KAL 폭파사건이 또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내가 확실히 조진다며 일단 노태우의 제안을 거절했다. | 당시 제1야당 총재인 [[김대중]]은 재차 4자 필승론을 생각하며 KAL 폭파사건이 또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내가 확실히 조진다며 일단 노태우의 제안을 거절했다. | ||
그래서 노태우는 이러다 다 죽게 생겼다며 | 그래서 노태우는 이러다 다 죽게 생겼다며 두 번째로 [[김영삼]]에게 제안을 걸자 김영삼은 얼른 받아들인다. | ||
그리고 신민주공화당도 내각제 개헌을 | 그리고 신민주공화당도 내각제 개헌을 약속 받으면서 합당. | ||
당시 김영삼이 배신한 거라며 당내에서도 말이 많았는데 그때 반대해서 명성치가 | 당시 김영삼이 배신한 거라며 당내에서도 말이 많았는데 그때 반대해서 명성치가 오른 게 [[노무현]]이다.(이렇게 떨어져 나간 것이 이른바 꼬마 민주당) | ||
어쨌든 | 어쨌든 이 합당 조치로 [[민자당]]이 탄생했고 이걸로 신군부 애들은 더 이상 권력의 정점은 못 올라도 목숨 줄은 보전하게 되었구나 생각했지만... | ||
==결과== | ==결과== | ||
[[김영삼]]은 대통령이 되자 12.12 군사반란의 책임을 묻고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웠다. 거기에 결정타로 | [[김영삼]]은 대통령이 되자 12.12 군사반란의 책임을 묻고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웠다. 거기에 결정타로 두 번 다시 군사반란을 못 일으키게 하려고 [[하나회]]를 군에서 광속같이 제거. | ||
장영자 같은 년이 또 나오지 않기 위해 [[금융실명제]]를 도입해 신군부 세력을 정치판에서 완전히 쫓아낸다. | |||
요약하면 김대중 병신 땡삼이 한 수 둠 | |||
우리 노짱은 그것도 모르고 맨날 땡삼 선생 욕하던가? 진짜 몇 수 뒤를 내본 거냐 | |||
==의의== | ==의의== | ||
3당 합당이라는 과정이야 지저분했지만 결국 김영삼은 민주화를 완전히 성공시킨 거다. | 3당 합당이라는 과정이야 지저분했지만 결국 김영삼은 민주화를 완전히 성공시킨 거다. | ||
ㄴ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리다. YS의 민주계가 신한국당 만든 때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후가 문제다. | |||
김영삼은 박근혜를 지지했다. 상도동계 민주산악회 후신 민주동지회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박근혜후보를 지지했다. 통일민주당출신 유성환전직의원도 박근혜후보를 지지했다 다만 민주계 막내뻘인 김영춘은 열린우리당 가서 지금은 민주당 거물이 됐고, 정병국은 지속적으로 YS와의 으리를 중시하면서 자기 성향 유지하다가 바른미래당 차렸다. | |||
멍청한 애들은 조선총독부 폭파로 지지율이 미친듯이 높았다고 하지만 실제 김영삼의 지지율은 신군부 세력을 벼락같이 조진 데에서 나온 거다. | |||
하지만 [[IMF|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 |||
==꿀잼== | |||
{{꿀잼}} | |||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 |||
[[김종필|때린 놈의 친척]]이랑 [[노태우|때린 놈 따까리]]랑 [[김영삼|맞은 놈]]이 [[손에 손잡고]] [[김대중|같이 맞은 놈]]을 패러 가는 웃지 못할 촌극이다. | |||
그 결과는 맞은 놈이 때린 놈의 따까리를 몰아내버렸다. [[자유민주연합|때린 놈의 친척은 나가버렸다.]] | |||
그리고 맞은 놈이 퇴임하고 나서 [[박근혜|때린 놈의 딸년]]이 등장하더니 [[이명박|맞은 놈이 데려온 놈]]과 죽도록 싸우다 둘 다 사이좋게 망했다... | |||
근데 그러다가 [[친이|데려온 놈의 잔존 따까리들]]이 [[윤석열|때린 놈의 딸년을 베어버린 칼잡이 하나]]를 데려와서 부활하는데 성공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