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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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 |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 | ||
{{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 5단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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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 {{참교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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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전쟁통에 증권을 멸실하는 등 증권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전통적인 지주 계층이 폭망했다. 봉건적 계급제가 무너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당장 전쟁이 나서 필요한 건 자기 생명을 유지할 식량과 옷가지인데 증권 종이는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소 팔고 논 팔아' 자식 공부 시키고 도시로 떠나는 농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러한 환경의 혜택을 본 집안의 장남들이 고등학교, 대학으로 진학하여 4.19 혁명의 주역이 된다. |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전쟁통에 증권을 멸실하는 등 증권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전통적인 지주 계층이 폭망했다. 봉건적 계급제가 무너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당장 전쟁이 나서 필요한 건 자기 생명을 유지할 식량과 옷가지인데 증권 종이는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소 팔고 논 팔아' 자식 공부 시키고 도시로 떠나는 농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러한 환경의 혜택을 본 집안의 장남들이 고등학교, 대학으로 진학하여 4.19 혁명의 주역이 된다. | ||
==상세== | |||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942075] 4.19 혁명 유공자 중 한 사람인 안동일 변호사는 [[김재규]]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4.19 참여자들이 박정희에 동조했다는 것은 그저 단면일 뿐이고 다른 면은 박정희 반대에 동조하거나 찬성하기도 했고 안동일 변호사가 그 예다. |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942075] 4.19 혁명 유공자 중 한 사람인 안동일 변호사는 [[김재규]]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4.19 참여자들이 박정희에 동조했다는 것은 그저 단면일 뿐이고 다른 면은 박정희 반대에 동조하거나 찬성하기도 했고 안동일 변호사가 그 예다. | ||
정작 북한은 | 남한이 유상몰수 유상분배 정책 시행하는 동안 정작 북한은 무상으로 몰수하고 분배 하나도 안 했다. 덕분에 혹부리우스에게 땅 뺏긴 이북의 지주들은 시팔조팔 하면서 전쟁 기간 중에 남쪽으로 내려왔다. | ||
몇몇 급식충들과 역알못 새끼들이 착각하는 게, 3.15 부정선거는 대통령 선거의 부정 선거가 아니라 부통령 선거의 부정선거였다. 당시 이승만은 조병옥이 위장 수술 받고서 사망하는 바람에 단독 후보 출마로 이미 당선됐고 자유당에서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앉히기 위해 각종 수법을 동원해 부정선거를 치른 것이다. | 몇몇 급식충들과 역알못 새끼들이 착각하는 게, 3.15 부정선거는 대통령 선거의 부정 선거가 아니라 부통령 선거의 부정선거였다. 당시 이승만은 조병옥이 위장 수술 받고서 사망하는 바람에 단독 후보 출마로 이미 당선됐고 자유당에서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앉히기 위해 각종 수법을 동원해 부정선거를 치른 것이다. | ||
이승만이 부정 선거가 일어난 걸 몰랐다는 이야기도 있고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3.15 부정선거를 계획한 게 자유당이라는 건 맞는 말이다. | 이승만이 부정 선거가 일어난 걸 몰랐다는 이야기도 있고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3.15 부정선거를 계획한 게 자유당이라는 건 맞는 말이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각종 시위는 있어왔지만 헬조선답게 그런 일 없고 두들겨 패잡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왔다.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기 전까지는 그랬다. | ||
물론 이에 반대하는 각종 시위는 있어왔지만 헬조선답게 그런 일 없고 두들겨 패잡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왔다.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기 전까지는 그랬다. | |||
밑밥을 설명한다면 이렇다. 우선 대구 [[2.28 민주운동]]이 있다. 이건 대구 지역의 고딩들이 민주당의 장면 부통령 후보가 대구 내려가서 선거 유세 연설하는 걸 보지 못하게 하려고 한창 봄방학이었던 2월 28일 일요일에 임시 등교를 시키자 빡쳐서 들고 일어난 사건이다. 근데 그게 전국적으로 유행이 되어서 몇천 명이나 시위로 몰려들게 되었다. 참고로 당시 빨갱이의 선동이라고 잡혔지만 대부분 풀려난다. | 밑밥을 설명한다면 이렇다. 우선 대구 [[2.28 민주운동]]이 있다. 이건 대구 지역의 고딩들이 민주당의 장면 부통령 후보가 대구 내려가서 선거 유세 연설하는 걸 보지 못하게 하려고 한창 봄방학이었던 2월 28일 일요일에 임시 등교를 시키자 빡쳐서 들고 일어난 사건이다. 근데 그게 전국적으로 유행이 되어서 몇천 명이나 시위로 몰려들게 되었다. 참고로 당시 빨갱이의 선동이라고 잡혔지만 대부분 풀려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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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chives.kdemo.or.kr/isad/view/00700224] | [http://archives.kdemo.or.kr/isad/view/00700224] | ||
...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사오입 | ...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사오입 개헌]]을 계기로 이승만 정권에 대한 여러 불만이 1960년 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해서 모든 게 터진 거라고 볼 수 있다. | ||
따지고 보면 야당 후보가 변변치 않거나 타이밍 맞게 대선 시즌 때 족족 죽어나가서 자유당이 그렇게 대통령 | 따지고 보면 야당 후보가 변변치 않거나 타이밍 맞게 대선 시즌 때 족족 죽어나가서 자유당이 그렇게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던 거지, 그중에서 여러 변수를 빼면 과연 대선 때 순순히 이어질 지부터 의문이고. 그리고 시위대가 전체주의 집단도 아니고 사상이 다를 수도 있는 건데 그런 게 일반화 근거가 될 리가 있나? | ||
== 결과 == | == 결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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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4.19로 시민들이 데모를 해보니 자신감이 충만한 건지 재미가 들린 건지 전국에선 1960년 4월 26일에 4.19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을 부르짖으며 끊임없이 데모가 일어났다. 심지어 데모하지 말자고 데모를 할 정도였고 이는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좋은 계기가 된다. 물론 이에 대해 박정희가 자기 집권을 정당화하려고 부풀렸다는 주장도 있다. 당장 1960년 5월부터 장면이 경호원도 없이 농촌 순시 돌고 했는데도 별다른 일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1960년 3, 4월에는 무정부 상태에 빠져있었던 건 맞는 말이다. 이건 아래에서 설명한다. | 근데 4.19로 시민들이 데모를 해보니 자신감이 충만한 건지 재미가 들린 건지 전국에선 1960년 4월 26일에 4.19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을 부르짖으며 끊임없이 데모가 일어났다. 심지어 데모하지 말자고 데모를 할 정도였고 이는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좋은 계기가 된다. 물론 이에 대해 박정희가 자기 집권을 정당화하려고 부풀렸다는 주장도 있다. 당장 1960년 5월부터 장면이 경호원도 없이 농촌 순시 돌고 했는데도 별다른 일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1960년 3, 4월에는 무정부 상태에 빠져있었던 건 맞는 말이다. 이건 아래에서 설명한다. | ||
그리고 이승만의 반공 정책이 무너지자 시민들 사이에서 평화적으로 통일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이 그 운동을 주도한 대표적 단체다. 그들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외치며 남북학생회담을 준비하는 등 급진적인 민족주의의 시초가 된다. 이들은 [[NL ( | 그리고 이승만의 반공 정책이 무너지자 시민들 사이에서 평화적으로 통일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이 그 운동을 주도한 대표적 단체다. 그들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외치며 남북학생회담을 준비하는 등 급진적인 민족주의의 시초가 된다. 이들은 [[NL(헬조선 운동권)|NL]]의 조상이 되어서 나중에 [[통합진보당]]이라는 거대한 똥의 조상님이 되고 현재의 [[종북]] 세력의 시초다. 이 조직은 1961년 초에는 [[김일성]]을 찬양하고, [[북괴]]에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해서 당시 장면, [[윤보선]]을 포함한 국내의 모든 주민들에게 커다란 공포를 가져다 주었고 이 꼴을 보고 박정희가 부들부들해서 군사정변을 일으켜서 이들을 전부 체포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북괴로 도망치거나(이들은 후일 처형되었다고 한다.) 일부는 지하화하여서 완전히 소탕하지는 못한다. | ||
4.19 당시에는 일부 정체불명의 무장한 범죄자들이 교도소를 습격하고 군대를 습격해서 국경 지역을 제외한 일부 지역은 무정부 상태가 된 적이 있다. 그래서 당시 사적 제재가 빈번했는데 그 일화로 경상남도 지역에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국군의 [[보도연맹]]의 일환으로 발생한 거창 양민 학살로 희생 당할 당시 일부 극소수의 생존자들이 자신들에게 그런 짓을 하게 한 그 마을의 면장을 4.19가 한창이던 | 4.19 당시에는 일부 정체불명의 무장한 범죄자들이 교도소를 습격하고 군대를 습격해서 국경 지역을 제외한 일부 지역은 무정부 상태가 된 적이 있다. 그래서 당시 사적 제재가 빈번했는데 그 일화로 경상남도 지역에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국군의 [[보도연맹]]의 일환으로 발생한 거창 양민 학살로 희생 당할 당시 일부 극소수의 생존자들이 자신들에게 그런 짓을 하게 한 그 마을의 면장을 4.19가 한창이던 때 산 채로 불태워 죽였다든지 등 일종의 [[비질란테]]가 많이 일어났다. 이러한 무의미한 비질란테 역시 박정희가 정권 잡는 도구로 쓰이게 된다. 그래서 1960년 4월의 국내 기록은 현재 많이 유실된 상태이다. | ||
== 관련 문학 == | == 관련 문학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