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산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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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부리와 함께 보처보 전투에 참전한 사람들로 [[개마고원]]에서 지하 독립운동 단체를 만든 사람들이다. 남침에 적극 찬성했던 전범들이다.[[8월 종파사건]]때 혹부리의 똘마니역할을 하면서 [[연안파]], [[소련파]], [[남로당|남로당파]]들을 벌집핏자로 만드는데 공헌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혹부리의 막장 우상화에는 철저히 반대했으며, '''[[정약용]]''' 슨상님을 빨아주면서 북괴를 실학의 나라로 바꾸려고 했다. 그래서 이놈들은 파보면 파볼수록 '''북한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사람들'''이라는 말밖에 안나오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남한에서 재평가를 받으면서 자기가 죽여버린 [[연안파]]와 [[소련파]]와 함께 열심히 빨리는 중이다.
==얘들의 머리통에 들어있던 것과 그에 대한 디키러들의 평가==
{{재평가}}{{혜자}}
*경공업 육성: 혹불성은 빨리 중공업만 졸라게 양성해서 적화통일을 빨리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들은 적화통일을 빨리 이루기 보다는 중공업은 이제 발전할 만큼 발전했으니, 경공업을 육성시켜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괴를 비롯해서 공산국가들의 삶의 질이 개병신인것에는 경공업이 씹창났던 공산권 경제구조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아두자. 뭐 어차피 저거 개방했다면 바로 갓한민국의 경공업에게 쳐발렸을것 같지만.
*군비축소: 실제로 북괴는 군비가 너무 많아서 뭘하기가 힘들었다. 이는 김일성도 인정한 부분이었는데, 한 미국기자 앞에서 지입으로 군비에 날라가는 돈이 너무 많아서 뭘 하고 싶어도 할수 가 없다고 증언했다. 국가총예산에서 군비 6%만 넘어도 나라경제 씹창난다고 말한 일본의 모 경제학자의 말과 당시 공산권 국가들은 대부분 군비가 국가 총예산의 10%수준이었음을 생각해 봐라. 참고로 지금 북괴는 국가 총예산을 핵개발과 열병식으로 3분지 2이상을 날려먹는다는 자료가 있다.
*시장경제 부분도입: 북한의 기업에서 좆도 쓸데없이 높은 자리에 짱박혀서 꼰대질만 쳐하고 돈만 뜯어먹는 당 일꾼을 조져버린다거나, 인턴수준으로 권위를 떨구고 지배인(쉽게 말해서 전문 경영인)의 권한을 강화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시 기업이 존나 빅-동싼거 아니면 정부는 기업에 개입하는것은 삼가야 한다. 이게 북한 경제를 살리는 신의 한수였을 것인데, 북쪽 사람들이 장사하나는 기가막히게 잘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제대로 축적된 경영지식과 상인의 유전자가 합쳐지면 무슨 경제성장인들 안하겠는가.
*실학수용: 이들이 김정일과 김일성에게 꼬투리잡힌 이유가 유교탈레반이라는 이유였다. 이들은 실학에 매우 관심이 많았고, [[정약용]]슨상님의 정치철학을 통해 북괴를 살리려 했다. 특히 갑산파의 리더이던 박금철은 자기 똘마니들에게 목민심서를 정독시켰다. 이거 성공했다면 한반도 북부는 지금 북괴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남한 기준으로만 봐도 제법 살만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몰락==
혹부리와 함께 보천보 전투에 참가했던 사람들로, [[개마고원]]에서 지하 독립운동 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했던 사람들로 [[소련군정]]수립이후 북괴에서 [[혹부리우스]] 직할의 [[빨치산파]]와 함께 김일성파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나 50년대 8월 종파사건과 천리마 운동이후 5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빨치산파와 갈라지기 시작했는데 60년대 초중반부터 빨치산파와 확실히 대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혹부리의 후계자자리를 놓고 [[뽀그리우스|조카]]와 경쟁하던 혹부리 동생 [[김영주]]의 충성을 위한 제물로 싸그리다 숙청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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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span style="color:black">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든 <font size=3>'''[[독재|헬]][[김정은|북]][[주체사상|괴]][[군국주의|의]] [[전체주의|수]][[우덜리즘|많]][[아오지 탄광|은]] [[세뇌|자]][[스탈린주의|랑]][[가난충|거]][[핵|리]][[장성택|들]][[탈북|!]][[북한도발|!]]'''
<font size=2>이러한 헬북괴의 암울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북괴]]들에게 전세계와 우주가 경이로움을 느낍니다.<br>
[[김일성|]][[김정일|런]] [[김정은|것]][[조선로동당|들]]과 살아가는 [[노예|당신]]에게 [[탈북]]을 권합니.....[[정치범수용소|당신들 누구야!]] [[읍읍]]!<span>
|왼쪽 그림 = 헬북괴.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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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은 결국 1967년 리더인 박금철이 뒈짓하면서 몰락한다. 이후 북괴혹부리를 막을 세력은 사라졌다.
그러나 [[6.25 전쟁|남침]]에 동조한 전범 + [[8월 종파사건]]시기 북괴내 반공주의자, [[연안파]], [[소련파]]와 그 가족들을 족친 인간도살자 새끼라는 심각한 결점을 가지고 있으며 은근히 졸렬한 인성을 가진 것이 아닌가 보이는 행적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만약 얘들이 정권잡았으면==
그래도 혹부리직할의 빨치산파보다 상대적으로 유능하고 현실경제에 대한 감각을 어느정도 남아있었기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에서 재평가를 받는 중이다.  
{{유토피아}}
*1960년대와 1970년대: 이놈들은 [[니키타 흐루쇼프]]처럼 완전히 세력을 물갈이를 해서 집권을 한 세력이기에, 자기들의 권력 쟁취의 정당성을 위해서 빨치산파의 '''개인숭배''' 부터 비판했을 것이다.(이때는 박금철 찬양영화를 찍은 이효순은 뒈짖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 연좌제와 같이 극단적이고 비효율적이고 병신같은 통제를 연좌제폐지등으로 상당부분 풀어줬을 것이다. 그리고 군비 축소와 시장경제요소 부분도입을 요구했기에, 그들의 요구처럼 군비를 축소하여 북한군의 막장스런 복무기간이 감소하거나, 아예 북한군 규모가 일부 휴전선 군대와 북중국경지대 군대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축소되었을 것이고, 경제에 대한 당의 간섭을 최소화하여 7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되는 중국의 개혁개방노선에 적극 합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됬을 것이다. 또한 북한을 정약용의 실학에 따라 운영을 하려 했기 때문에 부정부패가 어느정도 해결되고 진짜 인민을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쁨조]]나 건설사단들은 북한의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함께 개방을 한다면 반드시 맞딱드릴 '''남한'''의 경공업과 중국의 경공업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중국은 인구빨로 가격을 조져버리고, 남한은 1950년대부터 경공업에서 알아주는 나라였기 때문에 경쟁력 하락으로 인해 경기가 침체됬을 것이고, 실학처럼 한다고 약해진 사상의 통제로 인해 1980년대부터 북한 내부에서 반정부시위가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냉전이 진짜 종결되는 1987년 남한의 6월 항쟁에 자극을 받아 북한내에서 대규모 반공 민주화 운동이 일어날 것이다(실제로 [[태영호]]의 증언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에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반정부 성향의 대학생들이 지하에서 조직을 만든게 발각되기도 했다.)
==정책노선==
그리고 진짜 이때 [[천안문 사태]]로 중국이 신경을 못쓰는 틈을 타고 1991년 독일 통일에 자극을 받아 남북한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통일에 대한 제대로된 논의를 하면서 민주화된 남북한이 계속 통일 논의를 하게 될 것이다.
{{적절}}
*1990년대: 이때 남북한이 통일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1991년이후로 러시아가 좆망하고 [[천안문 사태]]를 겨우 진압한 마당에 [[파룬궁 탄압]]으로 발생한 중국의 인권운동을 생각해본다면 중국은 북한에 제대로 신경을 못쓰고 있는 상황이며, 남한내부에서는 통일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진짜 1990년대가 정말 아까운 시간이다. 김돼지가 1960년대에 정리되고 70~80년대에 남북교류가 제대로 되다가 1990년대 통일이 됬다면 이나라가 최소한 지옥이 되지는 않았을 것인데.......
사실 이들의 정책들은 60년대 중후반 북괴에서 먹물좀 먹은 인텔리들이 경제개혁을 위해 줄기차게 요구했던 것들을 주워서 요구한 것에 가까웠고 이들이 숙청당한뒤엔 혹부리가 가볍게 쌩까버렸다.  
 
#경공업육성 : 본래 휴전직후 북한전역이 [[머머리]]가 되었는데 경공업은 무슨하면서 반대했지만 50년대후반까지 중공업 인프라가 어째어째 복구가 되자 내실을 다지고 인민의 생활수준을 올려야 한다며 경공업육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혹부리새끼는 갑산파, 그리고 경공업육성을 요구한 똑똑이들을 모두 갈아버리고 인민의 생활수준이 [[고난의 행군|아프리카랑 맞다이 뜨는 수준으로 떨어진지]] 20여년이 지난 [[꿀꾸리우스]]치세에서야 본격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병신들.
#경제활동에서 당의 권한 축소 : 전현직 빨갱이국가들 대부분의 기업들은 기업내부에 당위워회설치를 요구받고 그들의 간섭을 심하게 받아 기업운영에 엄청난 애로사항이 꽂히게 되었고 때문에 북괴포함 수많은 빨갱이국가의 똑똑이들이 이러한 당위원회의 권한을 줄이고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하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쏘오련]], [[동유럽]]같이 그으래도 빨갱이들이 말은 들어주는데서는 어느정도 정책에 반영이 되었지만 북괴는 그런거 없었고 [[고난의 행군]]으로 쳐망한지 30년을 바라보는 지금도 북괴 기업소에서 당일꾼의 꼰대질은 악명이 자자한 수준이라고 한다.  
#군비축소 : 60년대초부터 북괴 혹부리우스는 군비를 빠르게 확장시켜 군수경제를 민간경제에서 분리시키고 그곳에 모든 국가예산을 몰빵시키는 정책을 실시했다. 수십조단위의 예산을 그냥 빨아먹는 블랙홀인 군사비에 모든걸 때려부으니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내실이 개판되는건 당연지사.
#실학수용(!) : 갑산파가 숙청당하는데 직접적인 원인이 된 정책이다. 이들은 [[정약용]]슨상의 목민심서를 읽고 이를 본받아서 북괴경제를 벌크업시켜라라고 자기파에 속하는 각지 중견간부들에게 읽혔다. 결국 이게 발목이 잡혀서 숙청당하고 만다.  


==멤버==
==멤버==
[[파일:갑산파 머장.JPG]]
*박금철: 리더. 숙청 직전에는 조선노동당에서 서열 4위였다. 좀 못생겼다.
*박금철: 리더. 숙청 직전에는 조선노동당에서 서열 4위였다. 이렇게 생긴 아저씨이다. 좀 못생겼다.
*김도만: 갑산파의 경제 정책은 이 친구의 머리에서 나왔다.
*김도만: 갑산파의 경제정책은 이친구 머리에서 나왔다.
*이효순: 김정일의 고도간첩. 이놈이 박금철 찬양 영화인 <일편단심>을 만들어서 갑산파가 김정일에게 꼬투리를 잡히는 원흉을 만든 개씹새끼다.
*이효순: 김정일의 고도간첩. 이놈이 박금철 찬양영화인 <일편단심>을 만들어 갑산파가 김정일에게 꼬투리를 잡히는 원흉을 만든 개씹쌔기이다.
* 북한 각 지방의 중견간부 '''3분의 2''': 이들이 목민심서를 정독했다. 북한에 그래도 남아있던 인재들이었다.
*그외 북한 각지방 중견간부 '''3분의 2''': 이들이 목민심서를 정독했다. 북한에 그래도 남아있던 인재들이었음.


==결론==
==결론==
결론은 [[김일성]] [[김정일]] 애미애비쳐[[뒤지다|뒈진]] 개 씨X 좆같은 새끼이다.
결론은 [[김일성]] [[김정일]] 애미애비쳐[[뒤지다|뒈진]] 개 씨X 좆같은 새끼이다.

2019년 5월 24일 (금) 17:10 기준 최신판

경고! 뤼 문서뤠서 설명하른 대상른 북괴롬덜과 밀접한 관계가 맀습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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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이 새끼는 인간을 밥 먹듯이 죽여댄 인간도살자입니다. 빨리 자리를 피하십시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이 망하는 것은 쌤통입니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온갖 나쁜 짓을 하고 다니는 개새끼들이기에, 천벌을 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따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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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2가지 측면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부리와 함께 보천보 전투에 참가했던 사람들로, 개마고원에서 지하 독립운동 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했던 사람들로 소련군정수립이후 북괴에서 혹부리우스 직할의 빨치산파와 함께 김일성파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나 50년대 8월 종파사건과 천리마 운동이후 5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빨치산파와 갈라지기 시작했는데 60년대 초중반부터 빨치산파와 확실히 대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혹부리의 후계자자리를 놓고 조카와 경쟁하던 혹부리 동생 김영주의 충성을 위한 제물로 싸그리다 숙청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남침에 동조한 전범 + 8월 종파사건시기 북괴내 반공주의자, 연안파, 소련파와 그 가족들을 족친 인간도살자 새끼라는 심각한 결점을 가지고 있으며 은근히 졸렬한 인성을 가진 것이 아닌가 보이는 행적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혹부리직할의 빨치산파보다 상대적으로 유능하고 현실경제에 대한 감각을 어느정도 남아있었기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에서 재평가를 받는 중이다.

정책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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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들의 정책들은 60년대 중후반 북괴에서 먹물좀 먹은 인텔리들이 경제개혁을 위해 줄기차게 요구했던 것들을 주워서 요구한 것에 가까웠고 이들이 숙청당한뒤엔 혹부리가 가볍게 쌩까버렸다.

  1. 경공업육성 : 본래 휴전직후 북한전역이 머머리가 되었는데 경공업은 무슨하면서 반대했지만 50년대후반까지 중공업 인프라가 어째어째 복구가 되자 내실을 다지고 인민의 생활수준을 올려야 한다며 경공업육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혹부리새끼는 갑산파, 그리고 경공업육성을 요구한 똑똑이들을 모두 갈아버리고 인민의 생활수준이 아프리카랑 맞다이 뜨는 수준으로 떨어진지 20여년이 지난 꿀꾸리우스치세에서야 본격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병신들.
  2. 경제활동에서 당의 권한 축소 : 전현직 빨갱이국가들 대부분의 기업들은 기업내부에 당위워회설치를 요구받고 그들의 간섭을 심하게 받아 기업운영에 엄청난 애로사항이 꽂히게 되었고 때문에 북괴포함 수많은 빨갱이국가의 똑똑이들이 이러한 당위원회의 권한을 줄이고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하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쏘오련, 동유럽같이 그으래도 빨갱이들이 말은 들어주는데서는 어느정도 정책에 반영이 되었지만 북괴는 그런거 없었고 고난의 행군으로 쳐망한지 30년을 바라보는 지금도 북괴 기업소에서 당일꾼의 꼰대질은 악명이 자자한 수준이라고 한다.
  3. 군비축소 : 60년대초부터 북괴 혹부리우스는 군비를 빠르게 확장시켜 군수경제를 민간경제에서 분리시키고 그곳에 모든 국가예산을 몰빵시키는 정책을 실시했다. 수십조단위의 예산을 그냥 빨아먹는 블랙홀인 군사비에 모든걸 때려부으니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내실이 개판되는건 당연지사.
  4. 실학수용(!) : 갑산파가 숙청당하는데 직접적인 원인이 된 정책이다. 이들은 정약용슨상의 목민심서를 읽고 이를 본받아서 북괴경제를 벌크업시켜라라고 자기파에 속하는 각지 중견간부들에게 읽혔다. 결국 이게 발목이 잡혀서 숙청당하고 만다.
  • 박금철: 리더. 숙청 직전에는 조선노동당에서 서열 4위였다. 좀 못생겼다.
  • 김도만: 갑산파의 경제 정책은 이 친구의 머리에서 나왔다.
  • 이효순: 김정일의 고도간첩. 이놈이 박금철 찬양 영화인 <일편단심>을 만들어서 갑산파가 김정일에게 꼬투리를 잡히는 원흉을 만든 개씹새끼다.
  • 북한 각 지방의 중견간부 3분의 2: 이들이 목민심서를 정독했다. 북한에 그래도 남아있던 인재들이었다.

결론은 김일성 김정일 애미애비쳐뒈진 개 씨X 좆같은 새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