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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년 8월 21일 ~ 1846년 9월 16일(향년 만 25세)
[[파일: 김대건 안드레아.jpg]]
 
[[1821년]] 8월 21일 ~ [[1846년]] 9월 16일(향년 만 25세)


한국최초의 천주교 신부.
한국최초의 천주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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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좋게도 그가 사형당하기 2일전에 프랑스 선교사가 사형당했고 프랑스 상선들이 이에 항의하러 조선에 들어오는 일이 발생했다. 조선은 대놓고 개기면 [[아편전쟁|무슨꼴이 날진 알고 있어서]] 프랑스와의 협상을 결정했고 김대건을 협상대표로 올려놓는다. 본인도 여기서 협상 성공하면 조선내 천주교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져서 천주교 탄압이 덜해질거라 판단하고 협상에 임하기로 했다.
운좋게도 그가 사형당하기 2일전에 프랑스 선교사가 사형당했고 프랑스 상선들이 이에 항의하러 조선에 들어오는 일이 발생했다. 조선은 대놓고 개기면 [[아편전쟁|무슨꼴이 날진 알고 있어서]] 프랑스와의 협상을 결정했고 김대건을 협상대표로 올려놓는다. 본인도 여기서 협상 성공하면 조선내 천주교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져서 천주교 탄압이 덜해질거라 판단하고 협상에 임하기로 했다.


하지만 프랑스내부 혼란때문인지<ref>김대건이 순교한지 2년이 지난 1848년에 프랑스 머튽이던 [[루이 필리프 1세]]가 죽창맞고 쫓겨났다.</ref> 짱깨때문인지는 몰라도 프랑스 바게트새끼들이 종이쪼가리 한장 던져주고 탈주. 거기다 끝까지 배교를 거부해서 결국 사형을 ㅅ
하지만 프랑스내부 혼란때문인지<ref>김대건이 순교한지 2년이 지난 1848년에 프랑스 머튽이던 [[루이 필리프]]가 죽창맞고 쫓겨났다.</ref> 짱깨때문인지 같이 딸려온 무장상선들이 암초에 침몰해서인지는 몰라도 프랑스 함대들이 종이쪼가리 한장 던져주고 탈주하는 사태가 벌어져서 협상은 취소되고 만다. 거기다 끝까지 배교를 거부해서 결국 순교했다.
당하고 만다.
 
이후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로 부터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 부터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그 중 13세의 나이에 교수형으로 순교한 최연소 순교자인 유대철 베드로도 포함)들과 같이 시성이 되어 성인이 되었다. 이 때부터 세례명으로 '대건안드레아'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태어난 생가는 성지(솔뫼성지)로 조성되었고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들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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