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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친 놈들 이거 쓴 새끼들이 전두환 드립치다 빨아제끼는 일베랑 다를게 뭐냐? === | | === 미친 놈들 이거 쓴 새끼들이 전두환 드립치다 빨아제끼는 일베랑 다를게 뭐냐? === |
| {{팩트살인}}
| | 완전히 다르다. 이것만 알아두자. 김재규는 독재자를 죽였고, 전두환은 민주주의를 원하는 시민들을 죽였다. 이 차이를 좀더 중립적으로 보고싶다면 루마니아 국민들을 죽인 차우셰스쿠와 차우셰스쿠를 죽인 루마니아 국민들 중 누가 옳고 누가 나쁜새끼인지 생각해보면 된다. |
| {{요약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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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히 다르다. 의외로 넷 상에서 자주 보이는 반응인데, 이런 반응을 접할 때마다 역시 사람은 역사를 배우면서 동시에 역사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도덕적으로 보일 수 있는지, 다른 이들과 충돌하지 않을 수 있는지 그 승인된 해석의 방법 또한 동시에 배운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주장하거나, 애써 진지하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도덕적이다'라고 학습받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정적인 동기에서 물러서서 바라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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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는 전두환과 일베의 경우처럼 인터넷에서의 문화요소로 사용되다가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37년 전, 거의 40년 전의 김재규 구명운동을 하던 사람들에게서부터 시작해서, 5공이 끝나고 유신에서 5공으로의 이행과정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갑론을박이 있을 때에도 이어졌고, 또 최근 민주화의 직접적인 논공행상의 대상인 양대 거물 김대중 김영삼이 모두 서거한 후 비로소 중립적인 시점으로 과거를 돌아볼 수 있게 된 역사학계가 꾸준하게 연구 주제로 삼아 재평가를 시도해왔기 때문에 형성된 학구적 층위에서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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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 작성된 사료들을 주갤럼 야붕이 고붕이들이 직접 발품뛰어서 찾았겠냐? 이 사안은, 대중이 인터넷에서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더라도, 한 50년 정도 꾸준하게 이 논쟁이 계속되고 대중적인 층위에 반영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여건이 되었으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서 재평가가 이루어졌을 사안이다. 이 경우 김재규 드립 등으로 인한 대중의 관심은 원래 일어났을 일에 관심이라는 동력을 공급해서 그게 빨리 일어나게 만들었을 뿐이지, 구체적인 재평가론의 내용 자체에는 전혀 기여한 바도 없고 손댄 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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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살펴보면, 학계 전체의 김재규에 대한 반응이 퍼진 건 아직 근혜가 집권하기 전이어서 그렇게까지 김재규 드립을 사용하지도 않았던 2010년경부터다. 그리고 2013년 즈음 해서, 10.26을 최소한 신군부가 획정하고 강요한 '찬탈'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건 옳지 못하다는 컨센서스가 성립된다. 10.26이 민주화에 아예 기여한 바가 없다는 극단적인 기존의 해석에 대해서 문제제기가 이루어진 것도 이 때고. 그리고 이 때부터 학계가 사회 일각에서 꾸준히 전개되고 있던 김재규 복권 운동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김재규를 복권하고자 하는 입장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적극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하나하나 검증하고, 당시 상황에 대한 재구성과 현재의 역사관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고찰 등등을 전부 시도한다. 상기된 자료들은 다 이때부터 찬찬히 쌓인 물건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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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9606] 봐라. 이미 극 진보 언론인 프레시안에서, 용공분자로 몰린 적 까지 있는 서중석의 입에서조차 김재규의 자유민주주의적 신념과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한 노력이 10.26의 배경에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심지어 최태민 문제를 거론하면서 김재규를 재평가하고 박근혜의 치부를 꼬집기도 한다. 2016년 7월 31일의 기사, 그러니까 최순실 게이트 터지기 전 한참 전의 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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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만 봐도 재규어 드립과 관련 없이 이미 역사학계가 김재규의 재조명과 복권을 어느 정도 끝내 놓은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ref> 이렇게 김재규의 개인적 동기가 투명했을 수도 있고, 찬탈범이라는 프레임에는 허점이 많다는 지적과 분석은 이미 1993년에도 있다.(10.26과 김재규의 진실,천호영,MAL. 1993-11 :134-141) 이 때 이미 김재규가 중앙정보부장으로서 온건책을 펼치면서 공포정치를 주장하던 박정희한테 무능하다고 쓴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의 발굴이나, 김재규의 진술에서 자신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있었다고 제시하는 증거물들에 대한 초보적인 검증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김재규가 최소한 유신에는 회의적이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 때부터 현재까지 이런 시각에서 끊임없이 사료 발굴, 검증, 편찬 등등이 이뤄지고 있었다. 지금 김재규 재평가론이 이렇게 크게 터질 수 있었던건 이렇게 부단히 이어졌던 학계의 연구 결과가 집약된 성과이기도 하다고 보는게 더 맞는 분석일 거 같은데. 아마 그 이전까지 민주회복이 안 돼서 자유로운 의견 공개가 안 되서 그렇지 직후부터 들끓었을 거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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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대중들의 관심이 쏠려서 이 움직임에 또다시 대중이 호응을 보이는, 조약돌이 수면에 파문을 넓히듯이 정상적인 전파 경로를 거치게 되어 이 담론이 이렇게 크게 형성되게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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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들 입장에서는 그냥 최순실 게이트 터지고 폭발적으로 일어난 것처럼 보이겠지만, 37년 전부터 김재규 구명운동하다 전두환한테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했던 사람들에게는 거의 40년에 걸친 명예회복 운동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거라는 뜻. 상기된 연구 같은게 있었으니까 그알이 최태민-김재규 문제를 최순실 게이트 터지자마자 바로 흡수해서 대중에게 재전파하고 그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고, 그런 움직임이 있었으니까 대중이 반응한 거잖아. 즉 이건 사실 어떤 사건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 파급되는 정상적인 과정이다. 김재규 드립은 그 과정을 보조하는 역할을 했을 뿐인 거고. 한국 사회가 너무 교과서 중심의 역사에 익숙해져 있어서 나타나는 반응이라고 보는데, 카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잖아? 원래 역사가 대중들과 호흡하는 나라들에서 이런 새로운 해석을 대중에게 파급시키고 묻혀 있던 연구를 밝히는 건 이런 현재의 정치의 이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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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전두환과 일베의 경우에는, 그러한 문화적 소비가 부여한 전두환에 대해서 더 알아보겠다는 동기 그리고 재평가해보겠다는 의도는 모두 학구적인 층위에 도달했을 때 어떠한 방법으로도 정당화가 안돼서 전부 좌절됐다. 뉴라이트 등 너무 신빙성 떨어지는 소리만 지껄여대서 어용단체 취급받는 계열의 몇몇 사람들이 아니면 그 움직임에 학계가 호응해주지도 않았고, 결국 갈팡질팡하다가 전두환 재평가에 대한 어떠한 역사적 프레임도 창출해내지 못한 채 그나마 먹혀들던 유신에 대한 프레임인 '경제화와 독재의 공과 과' 정도를 재소비하려 들다가 또 실패하고, 결국 이 모든 실패 끝에 엄밀하게 부정된 5.18 폭동론이나 들고와서 떠들다가 법의 심판을 받은 거다. 만약 저 움직임이 종래에 이미 전두환을 재평가하려고 했던 어떠한 설득력 있고 학술적으로 부정하기 힘든 새로운 연구와 만났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었을텐데, 학구적인 층위에서 그건 말이 안된다고 이미 확정이 끝난 상태였고 그런 연구따위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진지하게 해석될 만한 가치가 없었던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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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 글이 길고 복잡하고 이해가 안간다면 이것만 알아두자. 김재규는 독재자를 죽였고, 전두환은 민주주의를 원하는 시민들을 죽였다. 이 차이를 좀더 중립적으로 보고싶다면 루마니아 국민들을 죽인 차우셰스쿠와 차우셰스쿠를 죽인 루마니아 국민들 중 누가 옳고 누가 나쁜새끼인지 생각해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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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제란== | | ==박제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