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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드립허용}} | | {{고인드립애매}} |
| {{고인 2}} | | {{고인|2021|2|15}} |
| {{썩는중}} | | {{빛과어둠}} |
| {{어둠}}
| |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이다. |
| {{붉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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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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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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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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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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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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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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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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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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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백기완 과거 '87년,'92년 머통령한다고 지랄떨때 선거보좌관이 여성운동원 성추행했다고 꼬리자르기로 끝냈다가 30년만에 백기완 본인도 여성운동원 조물딱거렸다고 미투 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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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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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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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기완(白基琓, [[1932년]] [[2월 29일]] ~ [[2021년]] [[2월 15일]])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이다. 하필이면 아내 이름이 [[김정숙]]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작사가로도 유명한데, 정확히는 백기완의 시를 황석영이 조금 손본 것이다.
| | [[1932년]] [[2월 29일]]생. 생일파티는 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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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애 ==
| | 하필이면 아내 이름이 [[김정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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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
| |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도운 죄로 일제 시대에 집이 몰락했다. |
|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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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라}}
| | [[김구]]와 인연이 있다. 중학교 학비를 김구가 대주기도 했다. |
| 백기완은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도운 죄로 일제 시대에 집이 몰락했다. 또 [[김구]]와도 인연이 있으며, 중학교 학비를 김구가 대주기도 했다고 백기완이 말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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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성|혹부리새끼]] 가 솔방울 을 집으니까 수류탄 되었다 수준의 삼류꽁트수준이다
| | 6.25 때 소년병으로 참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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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년대부터 재야운동에 뛰어들었으나 여러 번 투옥되었다. 이때 고문도 많이 당했으나 장수한 거 보면 좀 신기하긴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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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화 이후 2번이나 대선에 출마했으나 삼김·노태우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바람에 낙선했다. 그 외에도 진보성향 급진주의자라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힘들었던 점도 있다. |
| | {{실망}} |
| | 본인이 NL계열은 아니지만 리석기 석방을 촉구한 적도 있어서 실망을 안겨준 적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운동을 했던 김지하 작가는 90년대에 좌파들에게 배신당하고 우경화된 것을 보면 사람의 삶은 참 모르는 일인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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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부터 재야운동에 뛰어들었으나 여러 번 투옥되었다. 이때 고문도 많이 당했으나 장수한 거 보면 좀 신기하긴 하다.
| | 순우리말주의자이다. 그가 주장한 순우리말 중에는 억지도 많았으나 달동네, 새내기, 동아리처럼 실제로 우리 삶에 정착한 단어들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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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 이후 2번이나 대선에 출마했으나 삼김·[[노태우]]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바람에 낙선했다. 그 외에도 진보성향 급진주의자라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힘들었던 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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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부터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했고 [[2021년]] [[2월 15일]]에 사망했다. | | [[2018년]]부터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했고 [[2021년]] [[2월 15일]]에 사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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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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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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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이 NL계열은 아니지만 리석기 석방을 촉구한 적도 있어서 실망을 안겨준 적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운동을 했던 김지하 작가는 90년대에 좌파들에게 배신당하고 우경화된 것을 보면 사람의 삶은 참 모르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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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보면 존나 무서운 놈이기도 한데, 해산된 빨갱이 정당 [[통합진보당]]의 대표 [[이정희]]가 석고대죄할 정도의 좌익 진영 수장급 인물이다.<ref>{{뉴스 인용 |제목=사죄의 절 하는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7315094 |날짜=2014-12-22 |출판사=연합뉴스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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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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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고민 중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허리를 뚝 잘랐다는 거, 그 자체가 침략이라는 거예요. 우리 한반도에서 전쟁을 도발했다는 그게 침략이란 거지. 그 침략한 게 누구야. 미국이다 이거야. 그래서 미국을 몰아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조금 세월이 가보니까 몰아내는 거 갖고는 안 되겠어. 우리나라에서 쫓겨나면 딴 데 가서 또 남의 나라의 허리를 뚝 자르고 침략전쟁을 도발할 테니까. 그래서 미국 놈들을 이 땅별(지구)에서 아주 없애야겠다 했어요. 그런데 미국을(나라 자체를) 없애느냐? 아니라 이거야. 미국의 독점자본주의, 그것의 정치적 결체인 '''미 제국주의'''를, 사람이 사는 이 땅별에서 없애야겠다는 것이 젊은 날의 내 기본적인 과제였어요. |백기완 |3=경향신문<ref>{{뉴스 인용 |제목=[백기완]미 제국주의, 가진자와 평생을 싸우다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32&aid=0002247532 |날짜=2012-08-27 |출판사=경향신문 }}</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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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도 [[미국]]이 우리나라를 침략했다며 미국을 적극 배제(排擠)해야 한다는 등 매우 강경한 [[반미 (정치)|반미]]였다. 그런데 평생 반미 외치다 숨진 좌익 인사의 마지막 차(운구차)는 미국 차 링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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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외에도 백기완 본인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2020년 2월 11일, 여성 시인 최영미가 1987년 대통령 선거 때 백기완 후보 캠프에서 활동할 당시 보고 겪었던 성추문을 폭로하며 안 좋은 쪽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때 최 시인은 “그때 당한 성추행은 말도 못 한다”며 “선거철에 합숙하며 24시간을 일한다. 한 방에 스무명씩 겹쳐서 자는데 굉장히 불쾌하게 옷 속에 손이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또 “나에게뿐만 아니라 그 단체 안에서 심각한 성폭력이 있었다”며 “학생 출신 외에 노동자 출신 등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그때 다 봤고 회의를 느꼈다”고 털어놨다.<ref>{{뉴스 인용 |제목=최영미 “1987년 백기완 캠프서 당한 성추행, 말도 못 한다”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5&aid=0001287391 |날짜=2020-02-12 |출판사=국민일보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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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냐하면 백기완이 진보성향이기 때문에 캠프에 운동권 출신들을 모았기 때문이다. 운동권 출신들 더듬어만지기 잘 하는 거 니들도 알잖냐. 운동권의 '강간 문화'는 90년대부터 쭉 폭로되어왔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다. 페미새끼들이 주장하는 강간 문화설 말고 [[운동권]]의 강간 문화는 실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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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듬어만진당에 성범죄자가 많은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386 세대의 좌파성향과 성욕이 합쳐져 민주화(?)라는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 성추행 쯤의 사소한 일은 넘어가도 되지 않겠냐는 왜곡된 운동권식 성욕 합리화가 등장한 것이 그 원인이다.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너의 성기부터 민주화시키겠다는 위험한 발상을 운동권이 기본으로 장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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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운동권 새끼들은 나이를 먹고도 [[새천년 NHK 사건]] 같은 일들을 터뜨리니 좆동권들이 파릇파릇했던 80년대에는 더 일상적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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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장례식에 온 '그 새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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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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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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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문죄앙, 중증 반미주의자 백기완 빈소 참소.jpg|50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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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문죄앙, 중증 반미주의자 백기완 빈소 참소 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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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방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문죄앙답다. 그 와중에 마스크 또 괴상하게 쓴 것 같은데? [[백선엽]] 때는 빈소도 안 찾았던 새끼가 이걸로 논란 일자 적와대 통해서 하는 별명이 “(그때는) 조화를 보내 조의를 표했고 비서실장 등이 조문을 갔다. 그 안에 모든 의미가 담겨있다”???<ref>{{뉴스 인용 |제목=文대통령, 백기완 빈소 조문…”백선엽 별세와 너무 다르다” 목소리 |url=https://www.chosun.com/politics/blue_house/2021/02/17/6OHHJG5GORA65GNVTV63Q7I45M/ |날짜=2021-02-17 |출판사=조선일보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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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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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로남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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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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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모순적인 건 설날 때는 5인 이상 집합금지로 가족들끼리도 못 모이게 해 놓고서는 이번 백기완 빈소에는 조문객들로 바글거렸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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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덜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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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백기완 운구차.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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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모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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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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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백기완 운구차 2.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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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씨이발 ㅋㅋㅋㅋㅋㅋㅋㅋ 대놓고 멕이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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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2월 19일은 백기완의 영결식을 하겠답시고 대학로→서울광장 차로 일부를 통제했으며, 노제(路祭)에는 자기들은 우한 폐렴 안 걸리니 300명 인원이 모여 2개 차로를 이동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오늘 백기완 영결식…대학로→서울광장 차로 일부 통제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12212035 |날짜=2021-02-19 |출판사=연합뉴스 }}</ref><ref>{{뉴스 인용 |제목=이동하는 고 백기완 선생 운구행렬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3&aid=0010352953 |날짜=2021-02-19 |출판사=뉴시스 }}</ref><ref>{{뉴스 인용 |제목=‘불쌈꾼’ 백기완 선생 서울대병원서 발인…조문객 수백명 애도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81&aid=0003164995 |날짜=2021-02-19 |출판사=서울신문 }}</ref> 백선엽 때는 서울시 지들이 지랄을 하면서 직접 백선엽 추모소를 철거해 버리더니 이건 그냥 내버려 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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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는 서울 중구의 시청 앞 서울광장에 1000여 군중이 모였다. 경찰이 차량을 통제한 가운데 500여 명의 운구 행렬이 뒤따랐다. 영결식이 열린 서울광장에는 무대와 간이 의자 100여 개가 설치됐고, 광장 안팎엔 추모객 1000여 명이 몰렸다. 1~2m가량 거리를 둔 이도 있었지만, 다닥다닥 붙어있는 추모객 무리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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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영결식은 ‘평생을 민주화 운동에 헌신해온 백기완 선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시민들이 제대로 모시자’는 뜻에서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방역 측면에선 명백한 지침 위반이다. 현재의 수도권 방역 지침에 따르면, 장례식에는 99명까지만 참석이 가능하다. 서울시 김혁 총무과장도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백기완 선생) 영결식도 100인 이상 집합 금지를 준수해야 하며, 지침 준수 여부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영결식에 모인 1000여 추모객에게 ‘해산’ 혹은 ‘거리 두기 지침 준수’를 요구하는 서울시 관계자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도 현장을 지켜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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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등 주요 반정부 집회를 일제히 금지하고 시민들이 접근조차 못하게 차벽(車壁)까지 쳤던 정부가 행사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전혀 다른 대응을 한 것이다. 장례위는 서울시 불허에도 불구하고 지난 18일 “시민의 뜻”이라며 광장 분향소 설치를 강행했고 시민 조문도 받았다. 서울시는 “변상금 부과 등 법적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운영은 막지 않았다.<ref>{{뉴스 인용 |제목=내편·네편 따라 ‘방역 이중잣대’… 1000명 모인 백기완 영결식 논란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23&aid=0003597097 |날짜=2021-02-20 |출판사=조선일보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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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랄하는 거 보고도 세균맨은 또 국민들 탓하지는 않겠지? ㅆ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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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기완 영결식을 본 중앙일보 기자의 일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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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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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백기완 운구 행렬 중앙일보 기자 일침.png|55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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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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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좆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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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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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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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주장한 순우리말 중에는 억지도 많았으나 달동네, 새내기, 동아리처럼 실제로 우리 삶에 정착한 단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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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깨끗한 면만 있는 사람이 아니고 이석기 때로는 옹호와 같이 부정적 평가를 함께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는 하다만 어제 윤서인이 또 선을 넘어서 광복회 고문변호사가 고인드립 치는 선 넘는 댓글들을 전부 캡쳐해 전부 법적 대응에 나설 예정이라고 한다. 좌파고 우파고를 떠나서 고소미 먹기 싫으면 각도기들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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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그놈의 광복회 ㅋㅋㅋㅋㅋㅋ 광복회장에 좌좀 한명이 들어오더니 깨끗하고 존경받아야 할 협회가 더러워지고 좌편향 되어가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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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ㄴ 윤서인이 븅신인 것과 별개로 광복회 뿐만 아니라 다른 평범했던 조직들도 민주당 물이 묻으니까 전부 비정상적이게 좌편향되고 있는 건 사실임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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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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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을 희화화하거나 비하해야 할지 너무 고민됩니다.
디시위키에서는 용납할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용납할 수 없거나 그 반대인 경우, 또는 공과 과가 너무나도 극명하여 무조건 빨기만 할 수도, 그렇다고 까기만 할 수도 없는 인물입니다.
고인드립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게 나으니 괜히 드립 쳤다가 디시위키에서 평생 까임권을 얻거나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것에 대해서 디시위키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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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고인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의 대상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2021년 2월 15일(2021-02-15)부로 고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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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공존합니다. 그 2가지 측면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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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이다.
1932년 2월 29일생. 생일파티는 언제...
하필이면 아내 이름이 김정숙이다.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도운 죄로 일제 시대에 집이 몰락했다.
김구와 인연이 있다. 중학교 학비를 김구가 대주기도 했다.
6.25 때 소년병으로 참전했다.
60년대부터 재야운동에 뛰어들었으나 여러 번 투옥되었다. 이때 고문도 많이 당했으나 장수한 거 보면 좀 신기하긴 하다.
민주화 이후 2번이나 대선에 출마했으나 삼김·노태우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바람에 낙선했다. 그 외에도 진보성향 급진주의자라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힘들었던 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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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문서의 대상은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이 문서는 엄청난 기대를 받았지만 결과는 존나 망해서 실망스러운 것(들)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대상을 존나 기대했던 사람들은 호구들이었던 것입니다 광광 ㅠㅠ... 만약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이든 결과는 참담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Why did you say that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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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NL계열은 아니지만 리석기 석방을 촉구한 적도 있어서 실망을 안겨준 적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운동을 했던 김지하 작가는 90년대에 좌파들에게 배신당하고 우경화된 것을 보면 사람의 삶은 참 모르는 일인 듯.
순우리말주의자이다. 그가 주장한 순우리말 중에는 억지도 많았으나 달동네, 새내기, 동아리처럼 실제로 우리 삶에 정착한 단어들도 있다.
2018년부터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했고 2021년 2월 15일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