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두 판 사이의 차이

K-위키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사용자 26명의 중간 판 34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이육사(李陸史, 1904년 4월 4일 ~ 1944년 1월 16일). [[대한민국]]의 저항시인. 호 육사(陸史). 본명 원록(源祿) 또는 원삼(源三), 개명은 활(活). 5월 18일(음 4.4)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당시 원촌동) 881번지에서 진성 이씨 이가호(李家鎬, 퇴계 [[이황]]의 13대손)와 허형(許)의 딸인 허길(許吉) 사이에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원록(源祿), 두 번째 이름이 원삼(源三), 자는 태경(台卿). [[http://www.264.or.kr/|연보]]
{{고인드립}}
{{멋있음}}
{{간지폭풍}}
{{감동}}
{{참문학가}}
{{인성갑}}
{{불쌍함}}
{{빛}}
{{영웅}}
{{천재}}
{{성인}}
{{상남자}}
{{사랑해요}}
{{애국지사}}


어린 시절 조부에게서 소학을 배우는 등, 한학을 공부하다가 조부가 별세하던 무렵 보문의숙(도산공립보통학교로 바뀜)에서 수학하기 시작하였다. 이 경험으로 그는 훗날의 창작 활동에서 한학의 흔적을 보인다.[* <청포도>에서 마지막 연에서 '아이야'라는 구절과 같은 것.] 1927년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 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인 '''264'''를 따서 호를 ‘이육사’라고 지었다. 이육사의 이름은 여기에서 시작된 셈.[* 하지만 이건 어떤 강사가 이육사의 호를 잘 외우게 하려고 학생들에게 "이렇게 외워!"라고 알려줬다는 설도 있다. 즉 확실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수인번호가 264번이어서 ‘이육사’라고 지었다는 얘기도 있다.] 출옥한 후 다시 베이징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하여 수학 [[루쉰]][[魯迅]] 등과 사귀면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30년 1월 3일 이활이라는 이름으로 첫 시(詩) <말>을 [[조선일보]]에 발표한다. 1933년 귀국하여, 육사라는 필명으로 시 《황혼(黃昏)》을 《신조선(新朝鮮)》에 발표하여 시단에 데뷔했다. 신문사·잡지사를 전전하면서 시작 외에 논문·시나리오까지 손을 댔고, [[루쉰]]의 소설 《고향(故鄕)》을 번역하였다. 1937년 [[윤곤강]](尹崑崗) ·[[김광균]](金光均)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子午線)》을 발간, 그 무렵 유명한 《청포도(靑葡萄)》를 비롯하여 《교목(喬木)》 《절정(絶頂)》 《광야(曠野)》 등을 발표했다. 1943년 [[베이징]]으로 건너갔다가 어머니와 큰형의 소상을 위해 5월에 귀국했다가 이 해 6월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교도소에서 옥사하였다. 둘째동생 이원창이 그의 유해를 수습하여 서울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했고, 1960년 [[안동시]]에 이장됐다. 1968년에는 [[안동시]]에 그의 시비가 건립됐다. 2004년에 이육사 문학관이 세워졌고, [[안동시]]에서는 안동 강변도로를 "이육사로"로 개칭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한국의 독립투사들 하나이자 시로 널리 알려진 문학가.


그의 경력이 독립운동에 매진한 것으로(옥살이만 17번) 채워진 덕분인지 그는 [[윤동주]]와 함께 [[저항시인]]으로서 평가받게 되었으며 실제로 1943년부터는 한글 사용에 대해 탄압을 가해오자 한시만 쓰는 식으로 붓을 꺾지 않으면서도 저항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그의 시를 평가하자면 윤동주가 부끄러움과 반성, 기독교적 희생을 주로 다루고 있다면 이육사는 남성적이면서도 목가적인, 그리고 극한에 서서도 굴하지 않는 의지를 표출하였다고 할 수 있다.
본명은 이활, 이후로 항렬따라 이원록, 이원삼으로 바꾼다. 널리 알려진 이름인 이육사는 그의 수감번호가 264번이어서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갔던 수많은 문인들 중 가장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애국, 독립 운동을 한 애국지사라고 할 수 있다. '''40여년의 인생동안 옥살이만 17번'''을 했다는 사실이 애국심과 민족의식으로 점철된 그의 삶을 대변한다. 일제 강점기에 변절을 했던 문인들이 독립 이후 온갖 문화 권력을 누리며 살아간 것을 생각하면.....
퇴계 이황의 14대손이었으며 젊은시절 일찌기 형제들과 의열단에 가입을 했으며 다방면으로 독립운동을 했다.


동생인 [[이원조]]는 좌파 문인으로 활약하다 해방 후에 [[북한]] 정권에서 고위직을 한다. 물론 [[박헌영]]과 더불어 숙청되는데, 여러 이설이 있지만 1955년경에 정치범 수용소에서 옥사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육사도 해방 이후까지 살았으면 말로가 편치 않을 듯. 이육사 생전에 작품집이 발간된 적은 없었고, 이원조가 광복 후 1946년에 형의 작품집을 발간한다.
일본을 왕래하며 근대화된 일본의 모습에서 독립운동의 방향을 고민하기도 했다. 아마 핀트가 어긋났으면 친일파로 전직했을듯 하다


대표 시로는 <황혼>, <[[절정]]>, <[[광야]]>, <[[청포도]]>, <꽃>이 있다. [[의열단]]에 가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의열단의 작전을 수행하면서 무려 17번이나 수감생활을 했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수여되었다.
대부분 그의 시는 이렇게 감빵에서 홀로 지내게 된일이 많았기 때문에 쓰여질수 있었다.


[[도산서원]] 근처에 있는 [[http://www.264.or.kr/|이육사문학관]]에 가면 이육사의 딸인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1527&yy=2008|이옥비 씨]](1941년~)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운이 좋아야 한다. 문학관 뒤편에 사신다. 2013년 11월 3일 [[안동대학교]] 선비캠프에서 도산서원 방문 뒤인 다음날 이육사문학관 관람과 더불어 이분을 만나서 인생 및 이육사의 딸이라는 위치 등등 여러 이야기를 강연하셨다.~~정작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절반이 잠잔 게 문제지만(...)~~ 2007년부터 이육사문학관에 오셔서 살기 시작하셨다고.
광복을 앞둔 1944년 1월 북경의 감옥에서 순국한다.


1980년대 TV 문학관 KBS 특집극 저항 문인 시리즈 3부작[* 1부는 이상화 편으로 백윤식이 열연했고 2부는 윤동주 편으로 송승환이 열연했다]에서 방영된바 있다.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을 열연한 김흥기 씨의 투사적인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
이육사랑 매일 비교되는 윤동주가 골방에 틀어박혀 자기 내면이나 꽁냥꽁냥 탐구하고있을때


2011년, 8.15를 맞이하여 이 분을 소재로 한 특집극이 방영되었다. 제목은 "[[절정]]". 주연은 [[김동완|이 분]]~~김동산~~. 배우들의 호연과 세련된 연출로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갓육사는 보기만해도 고추가 달린놈이라면 눈물이 흐를만한 갓ㅡ시를 썼다.


2012년, [[MBC|어떤 회사]]에서 분에 대한 뮤지컬을 제작했는데, 드라마와는 달리 매우 질이 낮아 흥행에 실패하였다. 이곳에서 제작했던 알라딘은 회당 4천 9백만 원이 들었고 뮤지컬 이육사는 회당 1억이 넘게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이육사 시인이 알라딘에게 밀리다니.-- 알고보니 [[MBC|어떤 회사]]의 사장님과 오누이 하는 어떤 분이 입찰 한 달 전에 회사를 설립하고 그분이 혼자서 회사대표, 예술 총감독, 여자주인공을 다해 드셨다고 하더라..... 그리고 노조에 의해 공개된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고인드립]]급의 장면 그리고 여자 주인공의 [[괴랄 한]] 가창력, 말도 안 되는 개그와 내용으로 이육사 시인을 폄훼했다고 폭풍 까이고 있다. 또한 [[MBC|그 회사]]의 파업과 함께 좋지 않은 방향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어 안타까운 실정이다.
중고딩 교과서에는 윤동주보다는 안나온다. 광야라는 시가 유명하다.
 
== 시 목록 ==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절창이로다........이 만큼 가슴을 뜨겁게 하고 이 만큼 눈물을 나오게 만드는 시가 또 있겠는가.ㅏ람
 
리듬도 없이 그냥 종이에 쓰인 글자를 보는데도 마치 웅장한 음악이 머릿속에서 자동재생되듯이 재생된다.
 
지금 눈나리고부턴 절정. 이부분 보고 소름이 안돋은 사람이 없을것임
 
저기서 초인은 [[커티스 르메이|이분]], [[해리 S. 트루먼|이분]]을 뜯하고 초인이 탄 백마는 [[B-29|이걸]]뜻한다는 말이 있다.
 
ㄹㅇ 중학생 때 이 시 처음 읽고 느낀 전율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이분을 김남주 시인과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까닭이다.
 
 
 
[절정]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같은 제목의 드라마도 있다. 상당한 수작으로 평가받으니 잉여한 잉여들은 찾아 보는것도 좋다.
서현진의 조금이나마 젋었을 적 모습도 감상할 수 있다.
 
== 수능에서의 이육사 ==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단골로 나오며, 수능에서도 나온다.
 
시들이 하나같이 우직하고 주제가 독립에 대한 열망이어서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내도 풀기 쉽다.
 
그런데 문제 내는 교수들이 이육사 빠돌이라 문제로는 항상 나온다.

2023년 9월 3일 (일) 19:37 기준 최신판

K-위키는 사회정서상 용납할 수 없는 고인드립을 지양합니다. 또한, 고인드립으로 인한 법적 책임은 작성자 본인에게 있음을 강조합니다.

너무 멋있어서 쓰러질 당신을 위해 띵복을 액션빔.

주의! 이 문서는 존나게 간지폭풍인 것을 다룹니다!
이 문서에서 서술하고 있는 대상은 엄청난 간지를 뿜어냅니다. 이 인물에게 너무 심취하다가는 시공의 폭풍 속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이 문서는 너를 울게 만듭니다.
이 문서는 너를 울릴 수 있는 감성팔이을(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문서를 읽기 전에 눈물부터 쏟으시길 바랍니다.
아 잠깐 눈물 좀 닦고 ㅠㅠ 이 문서를 보고 광광 우럮따 8ㅅ8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참된 문학가입니다.
정부 비판하고 풍자하는것만이 문학의 전부는 아니야
자기가 김수영이라고 착각하는 문과충들에게 이 문서의 인물이 쓴 작품을 보여주세요.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매우 훌륭한 인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누구도 흉내내고 따라잡을 수 없는 인성갓입니다.
그러므로 인성드립이나 비방은 삼가도록 합시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이 존나 불쌍합니다...ㅠㅠ
광광 우럭따 8ㅅ8
주의. 이 문서는 눈부실 정도로 매우 밝습니다.
이 문서를 읽다가 부디 너의 눈이 실명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이미....... 늦은 것 같네요...이미 이 글을 보는 너는 실명이 되었습니다. 아니 이 글도 보지 못합니다......
이 문서는 영웅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지구, 혹은 특정 집단을 위기 속에서 구출한 영웅에 대해 다룹니다.
영웅을 향해 무례한 말은 삼가도록 합시다.
주의! 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인물은 존나 똑똑합니다.
이 문서는 노오오력충도 따라갈 수 없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인물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으니 호구가 되기 싫으면 뒤로가기를 누르세요.
이 문서는 성인(聖人)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그 누구도 깔 수 없는 인물을 묘사합니다.
성인을 욕보이게 하는 짓은 하지 맙시다.
이 문서는 남성미가 넘치는 상남자에 대해 다룹니다!
이 대상은 고추달린 겁쟁이 계집애가 아닌 남자다운 상-마초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 전기톱! 훌륭한 대화 수단이지!"
사랑해요~
이 문서의 작성자는 여러분을 놀라게 해준 대상을 정말 사랑스럽게 여깁니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는 사람한테 의미없이 그런 말 했다간 뺨 맞을 수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뺨 맞은 피해는 디시위키에서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 문서는 애국지사를 다룹니다.
이 문서는 국위선양을 한 애국지사를 다룹니다.
지사니뮤ㅠㅠㅠ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한국의 독립투사들 중 하나이자 시로 널리 알려진 문학가.

본명은 이활, 이후로 항렬따라 이원록, 이원삼으로 바꾼다. 널리 알려진 이름인 이육사는 그의 수감번호가 264번이어서이다.

퇴계 이황의 14대손이었으며 젊은시절 일찌기 형제들과 의열단에 가입을 했으며 다방면으로 독립운동을 했다.

일본을 왕래하며 근대화된 일본의 모습에서 독립운동의 방향을 고민하기도 했다. 아마 핀트가 어긋났으면 친일파로 전직했을듯 하다

의열단의 작전을 수행하면서 무려 17번이나 수감생활을 했다.

대부분 그의 시는 이렇게 감빵에서 홀로 지내게 된일이 많았기 때문에 쓰여질수 있었다.

광복을 앞둔 1944년 1월 북경의 감옥에서 순국한다.

이육사랑 매일 비교되는 윤동주가 골방에 틀어박혀 자기 내면이나 꽁냥꽁냥 탐구하고있을때

갓육사는 보기만해도 고추가 달린놈이라면 눈물이 흐를만한 갓ㅡ시를 썼다.

중고딩 교과서에는 윤동주보다는 안나온다. 광야라는 시가 유명하다.

시 목록

[편집 | 원본 편집]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절창이로다........이 만큼 가슴을 뜨겁게 하고 이 만큼 눈물을 나오게 만드는 시가 또 있겠는가.ㅏ람

리듬도 없이 그냥 종이에 쓰인 글자를 보는데도 마치 웅장한 음악이 머릿속에서 자동재생되듯이 재생된다.

지금 눈나리고부턴 절정. 이부분 보고 소름이 안돋은 사람이 없을것임

저기서 초인은 이분, 이분을 뜯하고 초인이 탄 백마는 이걸뜻한다는 말이 있다.

ㄹㅇ 중학생 때 이 시 처음 읽고 느낀 전율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이분을 김남주 시인과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까닭이다.


[절정]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같은 제목의 드라마도 있다. 상당한 수작으로 평가받으니 잉여한 잉여들은 찾아 보는것도 좋다. 서현진의 조금이나마 젋었을 적 모습도 감상할 수 있다.

수능에서의 이육사

[편집 | 원본 편집]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단골로 나오며, 수능에서도 나온다.

시들이 하나같이 우직하고 주제가 독립에 대한 열망이어서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내도 풀기 쉽다.

그런데 문제 내는 교수들이 이육사 빠돌이라 문제로는 항상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