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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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성인}}{{심플/영웅}}{{갓얀도}}{{빛}}{{열사}}{{어르신}}{{노익장}}ㄴ 틀딱이라고 하면 안 된다.
{{심플/성인}}{{심플/영웅}}{{빛}}{{열사}}{{어르신}}{{노익장}}
{{인용문|단두대 위에 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겠는가|강우규 의사 절명시}}
{{인용문|단두대 위에 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겠는가|강우규 의사 절명시}}
ㄴ캬 개간지


1855년 7월 14일~1920년 11월 29일
[[1855년]] [[7월 14일]]~[[1920년]] [[11월 29일]]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박사모 틀딱들과 차원이 다른 갓플란트 어르신.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9월 2일, 3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였던 [[사이토 마코토]]가 탑승한 마차에 폭탄을 투탄하여 저격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현장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피신하여 의거 계획을 다시 세웠으나 매국노 순사 김태석에게 잡혀 그해 66세를 일기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되었다. 사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1920년]] [[9월 2일]], 3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였던 [[사이토 마코토]]가 탑승한 마차에 폭탄을 투탄하여 저격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현장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피신하여 의거 계획을 다시 세웠으나 매국노 순사 김태석에게 잡혀 그해 66세를 일기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되었다. 사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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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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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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