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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거 문과들이 매일 고통받으며 쓰고 있는 것이다. 글은 역사를 기록하기도 하고 창작에 있어서 스토리를 구성하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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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 |||
== 개요 == | |||
흰 [[종이]] 위의 검은 것. | |||
중요한 정보를 남기기위해 끄적거리지만 대부분 쓸모없는 것을 끄적거리는 것. | |||
== 설명 == | |||
[[중딩]] 때 쓰는거라곤 [[방학숙제]] [[독후감]]이랑 [[국어]] [[수행평가]] 뿐이었는데 고딩이 되자마자 받게되는 또 다른 시련. | |||
초고를 쓰면 정말 완벽하게 잘 썼는데 다시 검토하면 항상 틀린다. | |||
그리고 검토하고 수정하고 제출하면 또 비문이 보이는 오셀로 [[플래시게임]] 같은 새끼 | |||
'글'자부터 아재 냄새가 난다지만 글이야 말로 우리의 이성이자, 우리 그 자체이다. | |||
문맹율도 가뜩이나 낮은 나라에 글이란 하나의 사치에 불과하게 되어버렸다. | |||
그러니 글맹이 되지말고 [[도서관]]에 가서 책이나 좀 읽어라. | |||
문돌이들이 매일 고통받으며 쓰고 있는 것이다. | |||
글은 역사를 기록하기도 하고 창작에서 스토리를 구성하기도 하며 하물며 지금도 내 생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기록이다. | |||
쓰기 쉽고 아름다운 모국어 한글을 만들어준 갓[[세종]]에 경배. | |||
디시위키답지 않은 말이지만 결국 글의 최종목표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 |||
== 글에 대한 명언 == | == 글에 대한 명언 == | ||
각자의 작품은 그것이 문학이든 음악이든 회화든 건축이든 또는 다른 무엇이든, 항상 | 각자의 작품은 그것이 문학이든 음악이든 회화든 건축이든 또는 다른 무엇이든, 항상 자신을 나타낸다. -새뮤얼 버틀러 | ||
의도를 꽃처럼 화려한 찬양의 어휘 뒤에 숨기는 사람은 추한 얼굴을 화장으로 숨기려는 여자와 마찬가지다. -칼릴 지브란 | 의도를 꽃처럼 화려한 찬양의 어휘 뒤에 숨기는 사람은 추한 얼굴을 화장으로 숨기려는 여자와 마찬가지다. -칼릴 지브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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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論評)이 곧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거트루드 스타인 | 논평(論評)이 곧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거트루드 스타인 | ||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글로 옮겨 써야만 한다. -데리다 |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글로 옮겨 써야만 한다. -데리다<ref>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의 핵심 명언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ref> | ||
반항, 완벽성, 추상성 이 세 가지를 나는 문학에서 좋아한다. 그리고 문학에서 싫어하는 세가지는 모방, 왜곡, 복합성이다. -칼릴 지브란 | |||
번역은 여자와 비슷한 데가 있다. 아름다우면 충실하지 않고 충실하면 아름답지 않다. -벤 제룬 | |||
우리를 흔들고 동요시키는 것이 인생이며, 우리를 안정시키고 확립시키는 것이 문학이다. -개러드 | |||
== 왜 쉽게 써야 하는가? == | |||
{{인용문|(타인을 설득해서 공감하자고 쓰는 글일 텐데 왜 굳이 어려운 용어를 쓰는 걸까?)<br>'''남을 설득할 생각이 없는 것.''' 진정으로 소통하고 싶다면 쉬운 글로 표현할 것.<br>어떤 사람이 어렵게 쓰냐면, '''사기 치려는 사람'''<br>-[[윾시민]]}} | |||
물론 ㄹㅇ [[전문가]]들끼리 쉽게 이야기하려면 어려운 용어를 쓸 수 밖에 없겠지만, 대중을 목표로 한다면 최대한 쉬운 글과 쉬운 표현, 가벼운 문장을 사용하고 글의 길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좋다. | |||
특히 [[헬조선]] [[개돼지]]들은 [[3줄요약]]을 외치는 것이 생활화되어있지 않은가? | |||
{{각주}} | |||
2023년 3월 20일 (월) 23:12 기준 최신판
| 이 문서는 문과가 작성했거나, 또는 문과에 대해 다룹니다. 무슨 생각으로 작성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흰 종이 위의 검은 것.
중요한 정보를 남기기위해 끄적거리지만 대부분 쓸모없는 것을 끄적거리는 것.
중딩 때 쓰는거라곤 방학숙제 독후감이랑 국어 수행평가 뿐이었는데 고딩이 되자마자 받게되는 또 다른 시련.
초고를 쓰면 정말 완벽하게 잘 썼는데 다시 검토하면 항상 틀린다.
그리고 검토하고 수정하고 제출하면 또 비문이 보이는 오셀로 플래시게임 같은 새끼
'글'자부터 아재 냄새가 난다지만 글이야 말로 우리의 이성이자, 우리 그 자체이다.
문맹율도 가뜩이나 낮은 나라에 글이란 하나의 사치에 불과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니 글맹이 되지말고 도서관에 가서 책이나 좀 읽어라.
문돌이들이 매일 고통받으며 쓰고 있는 것이다.
글은 역사를 기록하기도 하고 창작에서 스토리를 구성하기도 하며 하물며 지금도 내 생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기록이다.
쓰기 쉽고 아름다운 모국어 한글을 만들어준 갓세종에 경배.
디시위키답지 않은 말이지만 결국 글의 최종목표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각자의 작품은 그것이 문학이든 음악이든 회화든 건축이든 또는 다른 무엇이든, 항상 자신을 나타낸다. -새뮤얼 버틀러
의도를 꽃처럼 화려한 찬양의 어휘 뒤에 숨기는 사람은 추한 얼굴을 화장으로 숨기려는 여자와 마찬가지다. -칼릴 지브란
글이란 지금 그곳에 없는 사람의 말이다. -프로이드
논평(論評)이 곧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거트루드 스타인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글로 옮겨 써야만 한다. -데리다[1]
반항, 완벽성, 추상성 이 세 가지를 나는 문학에서 좋아한다. 그리고 문학에서 싫어하는 세가지는 모방, 왜곡, 복합성이다. -칼릴 지브란
번역은 여자와 비슷한 데가 있다. 아름다우면 충실하지 않고 충실하면 아름답지 않다. -벤 제룬
우리를 흔들고 동요시키는 것이 인생이며, 우리를 안정시키고 확립시키는 것이 문학이다. -개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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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설득해서 공감하자고 쓰는 글일 텐데 왜 굳이 어려운 용어를 쓰는 걸까?) |
” |
물론 ㄹㅇ 전문가들끼리 쉽게 이야기하려면 어려운 용어를 쓸 수 밖에 없겠지만, 대중을 목표로 한다면 최대한 쉬운 글과 쉬운 표현, 가벼운 문장을 사용하고 글의 길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좋다.
특히 헬조선 개돼지들은 3줄요약을 외치는 것이 생활화되어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