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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영은 속말말갈족 추장이거나 고구려 유민 혹은 고구려 장수였던 대중상의 아들이며, 발해 제국의 창업 군주이자 제 1대 황제 "고왕"이다. | |||
대조영은 "신당서" 기준으로 고구려가 멸망하고, 당나라 영주 땅에 억류되어있던 아버지 대중상, 말갈족 추장 걸사비우와 함께 696년 거란족이 당나라에게 반란을 일으키자 영주 땅에 살던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탈출하여 북방의 동쪽으로 이동 하였다. | |||
이 후 697년에 거란국이 멸망하고 당나라는 대중상에게는 "진국공"을 걸사비우에게는 "허국공을 하사하여 회유 하려고 하였으나 받기를 거부하자 당나라는 거란족 출신 "이해고"를 등용한 다음 측천 황제는 이해고를 시켜셔 고구려 유민을 추격하게 하였는데, 추격 과정에서 이버지 대중상과 걸사비우가 전사하자 대조영이 남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천문령 근처에서 이해고가 이끄는 추격군을 대파 하였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천문령 대첩"이다. | |||
대조영은 천문령 대첩 이 후 698년 동모산에서 나라를 건국하고, 스스로가 황제에 올라 첫 국호를 "진"이라고 선포하고, 발해국 기반이 될 "천통 법전"을 만들었다. | |||
이 후에는 대조영이 세운 나라는 스스로가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국이라고 칭하였는데, 일본과 외교를 할때 쓰인 문서에 나온다고 하며, 발해라는 말은 당나라가 발해를 힘으로 뺏지를 못 하자 나라로 인정 해주고, 발해에 하사한 국호명이다. | |||
위에 쓴 내용은 신당서나 백과 사전을 근거로 둔 것이며, 창업 군주인 "고왕"의 기록이 굉장히 부실하게 남아있어 여태까지 대조영에 얽힌 이야기들이 허구가 많을 것이라고 본다고 한다. | |||
2016년 7월 29일 (금) 04:08 판
대조영은 잘 대조영?
앞으로 대조영 뒤로 대조영
대조영은 속말말갈족 추장이거나 고구려 유민 혹은 고구려 장수였던 대중상의 아들이며, 발해 제국의 창업 군주이자 제 1대 황제 "고왕"이다.
대조영은 "신당서" 기준으로 고구려가 멸망하고, 당나라 영주 땅에 억류되어있던 아버지 대중상, 말갈족 추장 걸사비우와 함께 696년 거란족이 당나라에게 반란을 일으키자 영주 땅에 살던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탈출하여 북방의 동쪽으로 이동 하였다.
이 후 697년에 거란국이 멸망하고 당나라는 대중상에게는 "진국공"을 걸사비우에게는 "허국공을 하사하여 회유 하려고 하였으나 받기를 거부하자 당나라는 거란족 출신 "이해고"를 등용한 다음 측천 황제는 이해고를 시켜셔 고구려 유민을 추격하게 하였는데, 추격 과정에서 이버지 대중상과 걸사비우가 전사하자 대조영이 남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천문령 근처에서 이해고가 이끄는 추격군을 대파 하였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천문령 대첩"이다.
대조영은 천문령 대첩 이 후 698년 동모산에서 나라를 건국하고, 스스로가 황제에 올라 첫 국호를 "진"이라고 선포하고, 발해국 기반이 될 "천통 법전"을 만들었다.
이 후에는 대조영이 세운 나라는 스스로가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국이라고 칭하였는데, 일본과 외교를 할때 쓰인 문서에 나온다고 하며, 발해라는 말은 당나라가 발해를 힘으로 뺏지를 못 하자 나라로 인정 해주고, 발해에 하사한 국호명이다.
위에 쓴 내용은 신당서나 백과 사전을 근거로 둔 것이며, 창업 군주인 "고왕"의 기록이 굉장히 부실하게 남아있어 여태까지 대조영에 얽힌 이야기들이 허구가 많을 것이라고 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