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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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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헬본]] 우익들은 주인니뮤도 못 알아볼 정도로 멍청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헬본]] 우익들은 주인니뮤도 못 알아볼 정도로 멍청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헬본인들이 그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게 백제가 자신들의 주인이 아니라 거꾸로 자신들이 한반도 남부의 주인이었다는 임나일본부설이지만 개구라인걸로 이미 결론났다.


우습게도 당시 헬본인들은 [[일본서기]]에서 보듯 백제에 조오온나 집착했다. 대체 왜 이런 집착을 하는지 모를 정도다.
우습게도 당시 헬본인들은 [[일본서기]]에서 보듯 백제에 조오온나 집착했다. 대체 왜 이런 집착을 하는지 모를 정도다.

2020년 1월 15일 (수) 14:10 판

만약 당신이 본진있는 국가 절반을 뺏들어간 가짜부여새끼들, 틈만나면 쳐들어온 5시 새끼들, 짱꼴라랑 같이 공멸해서 먹혔지만 한때 우리에게 꼰대질을 했던 연맹왕국틀딱들, 지말 안듣고 맨날 혼자살았던 마한잔당 홍어새끼들, 소백산맥넘어서까지 무역하고 싶다고 쳐들어온 철빡이새끼들, 슨상주제에 투잡뛰면서 역대 백제왕릉이랑 문화재 신나게 도굴하고 GTA한 쌍놈새끼, 지들 주제도 모르고 상기한 나라의 부활을 꿈꾸는 애미애비도 몰라보는 왜놈새끼들, 신라하고 편먹어서 쳐들어온 짱깨새끼들와 그 짱개새끼로부터 호출받고 심심풀이로 쳐들어온 유목민 전문 킬러 새끼, 뜬끔없이 지네역사로 편입시킨 좆짱퀴벌레새끼들(이)거나 본진있는 국가 절반을 뺏들어간 가짜부여새끼들, 틈만나면 쳐들어온 5시 새끼들, 짱꼴라랑 같이 공멸해서 먹혔지만 한때 우리에게 꼰대질을 했던 연맹왕국틀딱들, 지말 안듣고 맨날 혼자살았던 마한잔당 홍어새끼들, 소백산맥넘어서까지 무역하고 싶다고 쳐들어온 철빡이새끼들, 슨상주제에 투잡뛰면서 역대 백제왕릉이랑 문화재 신나게 도굴하고 GTA한 쌍놈새끼, 지들 주제도 모르고 상기한 나라의 부활을 꿈꾸는 애미애비도 몰라보는 왜놈새끼들, 신라하고 편먹어서 쳐들어온 짱깨새끼들와 그 짱개새끼로부터 호출받고 심심풀이로 쳐들어온 유목민 전문 킬러 새끼, 뜬끔없이 지네역사로 편입시킨 좆짱퀴벌레새끼들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문서에서 탈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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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 카와이하다능... 쿰척쿰척

틀:다이스키

파일:삼국 시대 지도 2.png
백제
百濟 / Baekje
기본 정보
수도 위례성, 웅진, 사비
추가 정보
언어 고대 백제어(고대 한국어)
한국사의 시대구분
청동기시대
단군조선 · 기자조선 · 위만조선
· 주호 · 우산
원삼국 시대
부여 · 옥저 · 동예 · 고구려 · 주호 · 우산· 낙랑군
마한 · 변한 · 진한
삼국시대
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 · 탐라 · 우산
두막루
남북국시대
발해 · 신라 · 탐라 · 소고구려 · 소백제 · 보덕국

후삼국시대
신라 · 발해
태봉 · 후백제 (반란세력)
통일왕조 시대
고려 · 조선 ·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대한광복군 정부 ·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군정기
미군정 · 소련군정
분단시대
대한민국 · (자유조선)
북괴 (반란세력)

개요

먼 옛날에 부여고구려에서 남하한 집단이 한강 일대에 정착해서 마한의 여러 연맹왕국들 가운데 하나로 출발해서 점점 발전해서 한반도 서남부 일대를 다스렸던 나라이자 일본의 조상이다.

성왕 때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군)로 천도하면서 남부여(南扶餘)라는 국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백제의 왕들은 부여(扶餘)라는 성씨를 붙였다고 한다. 아마 자기들의 조상이 북쪽의 부여 출신이라서 부여를 계승한다고 국호를 잠시 그렇게 변경하고 부여(扶餘)씨라는 성씨를 썼던 것 같다.

전성기 때 백제는 수준이 높은 문화를 일구었고 당시 왜(일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영향을 끼친건 맞는데 사실 국뽕들이 말하는 것처럼 젤나가와 프로토스의 관계 그런건 아니였다. 일본의 문화하면 생각나는 일본도나 오요로이 그리고 기모노 등등 우리나라보다는 걍 중국 영향이 크다.

ㄴ 그래도 백제하고 왜는 일반적 동맹을 넘어서 혈맹이었다. 일본 왜왕이 백제 옷을 입자 백성들이 좋아하더라라는 기록까지 있는걸 보면 보통 관계는 아닌듯

ㄴ 일본도는 열도 북방에 아이누족들한테 영향을 받은건데?? 무슨 중국한테 영향을 받아ㅋㅋ씹ㅋㅋㅋㅋ

ㄴ 씨발 오오요로이가 짱개한테 영향을 받았다고?? 별 개소리를 다들어보네 독자적인 쪽바리 문화다 병신아 ㅉ

ㄴ 기모노는 중국 영향이 아니라 저기 북방 유목민족 호복이 원조다. 빡통새키야 중국의 한푸랑 구별해라

역사

초기

삼국사기에 따르면 주몽의 아내 소서노의 아들들인 비류와 온조 형제가 남하해서 비류는 미추홀(인천)에 온조는 위례성(경기도 하남시 혹은 서울 송파구)에 십제(十濟)라는 나라를 세웠는데 미추홀에 나라를 세운 비류보다 위례성에 도읍을 세운 온조가 결국 더 성공하게 되고 결국 비류의 백성들은 온조에게 투항했고 온조는 비류의 백성들을 받아들이고 국호를 십제(十濟)에서 백제(百濟)로 바꿨다는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발전과 전성기

점차 영토를 넓히고 중원과 활발하게 교류한 백제는 고이왕 때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율령을 반포했고 관등제를 정비했다.

백제는 점차 마한의 여러 소국들을 점령하면서 발전했다. 결국 근초고왕 시기에는 마한의 모든 지역들을 점령했다고 한다.[1] 그렇게 백제는 경기도, 강원도 일부, 황해도 일부, 충청도, 전라도[2]를 다스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의 여러 기록들을 근거로 당시 백제가 요서(요하 서부)와 산동반도를 경략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현재 학계는 거의 경략설보다 공략설을 밀어주는 것 같다.

때마침 근초고왕이라는 희대의 성군을 만나 삼한을 장악하려는 대업을 이루는 듯 싶었으나...

ㄴ삼한 장악은 개뿔 가야랑 신라는 핫바지냐? 마한->백제, 변한->가야, 진한->신라라는 공식도 모르는 역알못같은데 근초고왕이 당시 한반도깡패는 맞지만 백제는 삼한 중 마한밖에 장악못했다. 그마저도 요즘 학계에서는 마한의 잔당이 6세기까지 있었다는 설도 있다.

ㄴ 삼한 장악이 헛소리라고 볼 수 있는 근거로 삼국사기만 펼쳐봐도 나온다. 독산성(현재경기도오산시) 성주가 성을 통째로 신라에 바치고 투항하니, 근초고왕이 빡돌아서 신라에게 그 성 다시 내놓으삼. 이라고 문서 보내니 내물왕이 좆까. 이랬다. 삼한 장악은 무슨.. 근초고왕 덕분에 백제가 강국으로 섰지만, 어디까지나 한계는 명확했다. 오히려 신라 입장에선 의자왕이 근초고왕보다 백배는 더 무서웠을 듯.

최전성기

백제인들이 한강유역과 전라도 곡창지대까지 경작하기 시작하자 중국 동쪽동네 최고의 갑부나라가 되었다.

남조와의 해상무역을 통해 중국발 선진문물이 쏟아져들어오자 문화수준이 완숙기에 접어들었다.

백제인들은 이때 '엣헴 옛날 부여도 문명국가였지만 지금 우리의 성공에 비할바냐! 이제 부여는 북부여이고 우리가 정통부여(남부여)다 어흠!'

거리며 아직 미개하던 고구려와 말갈, 거지천국 신라나, 나라라고 쳐주기도 민망한 왜국 및 기타등등 동쪽세계에서 중국 다음 가는 문명수준이 높은 '문명국가'라고 자부하였다.

중국인들도 사람사는 해동국가라면 부여나 백제 미만잡으로 여겼던 때였다.

이후 그리고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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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한다, 병신아."

고구려의 반격과 나제동맹을 맺었던 신라의 수차례에 걸친 치졸한 배신으로 점차 쇠약해졌다.

ㄴ나제동맹 붕괴원인은 신라가 한강유역을 먹은거지만 먼저공격한건 백제 성왕 ㄷㄷ 통수치고 맞았다고 우기는 클라스

ㄴ이놈 역사문사마다 돌아다니면서 성왕 선빵론 주장하고 돌아다니는데 관련된 사료는 존재하지않는다. 애초에 신라야 중국과의 직접 교역때문에 통수치고 한강하류 먹은게 맞지만 백제가 한강상류를 먼저 선빵칠 이유가 없다. 이 통궈놈은 통궈의 지역기반인 신라의 통수친 역사가 어지간히 부끄럽긴한가본데 제발 역사날조는 좀 하지 말자.

ㄴ백제가 선빵칠 이유가 없다는 개병신논리 ㅉㅉ 교수한테 가서 그 소리해봐라 그렇게치면 신라는 고구려랑 일본이 적대관계인데 미쳣다고 거기서 포위당해서 뒤지게 통수를 치냐

ㄴ아니 시발 관련된 사료가 없다니깐 그러네ㅋㅋ 개병신논리는 무슨 역으로 해석하면 신라가 고구려, 백제, 왜에 포위당할걸 생각하면 신라의 백제통수도 논리적일수 있다는건 아예 생각못하나봐?

ㄴ뭐? '관련된 사료가 없다니깐 그러네 ㅋ ㅋ' 라고??? 정신나간 통궈새끼야 사학은 재판정과 마찬가지로 증거제일주의인데 지금 그걸 말이라고 씨부리며 쪼개고있냐? 어휴 하여간 가축 지능의 통궈새끼들은 사람의 상식이 안 통한다.

ㄴ타겟 잘못 잡았다.

교수드립은 무슨ㅋㅋㅋ 시발 역사학자한테 성왕선빵론주장하면 졸라 무식하단소리 듣는다 미친놈아

신라가 백제 통수쳐서 한강하류 장악하고 그것때메 성왕이 뒷목잡고 쓰러졌다가 왜,가야랑 같이 반격하지만 관산성전투에서 패하고 사망한게 정설이다. 금관가야도 이 당시 신라랑 혼인동맹구축하고 있었는데 신라가 나제동맹 통수로 시원하게 깨뜨리는거 보고 백제로 다시 돌아섰고, 아니 성왕선빵론주장할려면 근거나 좀 갖고 나불대라. 진흥왕순수비모르냐? 도대체가 현재교육과정에서 나제동맹의 파기원인이 진흥왕의 통수인걸로 가르치고 있는데 어디서 역사배우고 지껄이는지 참ㅋㅋ 네이버백과에서 나제동맹 검색만해봐도 알수있는걸 우기네ㅋㅋ 통궈야 제발 역사날조는 하지말자 아니면 하다못해 좀 알아보고나 글 좀 싸질러라. 맨날 홍어통수라고 해내는 통궈 입장에서 창피하긴한가본데 어디서 약을 파냐

ㄴ이상한건 신라가 한강하류 먹은 뒤에 성왕 딸이 신라로 시집갔던데 이건 어캐설명하냐? 참고로, 삼국사기는 물론이고 심지어 백제에 우호적인 일본서기까지 백제가 스스로 한강하류를 버렸다는 식으로 서술되있음

여기서 어떤 신라뽕 새끼가 성왕이 통수쳤다고 지 좆대로 역사왜곡하고 다닌다.[1]

ㄴ 다 필요없고 통수드립이 무슨 의미가 있냐. 그 시절에는 삼국간에 동일한 민족의식이란 것조차 존재하지 않았고, 그저 국익을 위해서 한 것이며 실제로도 신의 한 수 였으니까.

ㄴ 캬 민족의식 없으면 국익 위해서 동맹 통수쳐도 된다 이거요? 통수드립이랑 삼국간에 동족의식이 없다는 거랑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인데. 히틀러만도 못한 새끼 ㅋㅋ 히틀러는 최소한 동맹한테는 의리를 지켰다

ㄴㄴ 삼한 장악 같은 개드립치고 있네.

ㄴ7세기 초반에 마한 변한 다 먹고 진한 레이드뛰다 멸망함. 당나라만 없었어도 충분히 가능했음

ㄴ이때 신라가 말 키우는 노비한테 칼 줘서 백제왕 목 따고 신라왕궁 북청계단밑에 묻은 까닭에 300년뒤 백제호족 견훤한테 경주대약탈, 왕비개통 당하고 광대에게 병장기 줘서 막으라던 코미디 파티충 신라왕은 자결하였으며 즉석에서 다음 신라왕이 지정돼 버리는 수모를 격었다. 물론 통수머가리답게 고려의 1만대군을 기다리고 있다가 결사대 보낸 견훤한테 정의구현 당한 것이니 더 비참하다.

그리고 끝내는 나당연합군에 불타 사라져 버렸다. 그 과정에서 사생아 좆본이 탄생하였다.

솔직히 백제는 처음 수도였던 한강 지역을 털린 이후로 걍 듣보잡 최약체 국가였다.

ㄴ 백제가 좆라에게 역전당한 건 법흥왕과 진흥왕 때밖에 없다 구라치지 말자 씹새야

ㄴ선덕여왕 때 악의가 아닐까싶은 삽질로 영토 절반 넘게 급속운지해서 그렇다. 김유신없었으면 망했을 뻔했다. 신라 입장에선 실로 삼국통일기반을 망친 삼국지 유연보다 무능한 개역적인데 한반도에서 최초로 여왕에 오른 탓에 까방권이 있다.

이때부터 수도 이전을 잊을 만하면 한다. 한강->웅진->사비성->익산까지 함

ㄴ익산으로 천도 시도하려고 미륵사까지 지어본 건 맞지만 사비의 기득권 세력의 반대에 부딪혀서 결국 무산되었다. 고로 백제 최후의 수도는 사비성 의자왕이 사비에서 털렸는데 익산일 리가 만무하지

사실상 헬조선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데 한강 털리고 급하게 수도를 남쪽으로 이전하고 나서부터

왕권이 병신되고, 귀족들의 힘이 너무 쌔져서 왕들이 항상 왕권 강화를 하기 위해 전쟁도 하고 건물도 짓고 그 지랄난 것이다.

ㄴ 동성왕 무령왕 성왕 다 왕권 약했나 보지?

한강을 뺏긴 이후로는 근초고왕 때 빼면 대부분은 고구려한테 줘팸이나 당했고 고구려 장수왕때는 백제왕이 무릎꿇고 우리는 고구려의 속국입니다. 이러고 싹싹 빌어서 겨우 나라를 보존한다.

ㄴ 근초고왕 이후에 한강 뺐겼다 연표부터 외우고 와라

ㄴ 뭔 개소린가 했네

그 이후로 고구려의 내부혼란을 틈타 120년의 동맹을 자랑하는 신라와 연합해 한강 땅을 되찾는가 했지만 통수의 달인 신라한테 120년 묵은 뒤통수를 시원하게 쳐맞고 한강은 신라가 쳐먹음.

이때 성왕이 지 딸을 신라 왕한테 시집까지 보내면서 위장전술을 통해 군대를 모으고 왜놈들을 용병으로 구입해 또 다시 전쟁을 일으킨다.

당시 선봉대가 성왕의 아들이었는데 초반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냄. 이때 성왕이 미쳐가지고 전쟁을 이긴 줄 알았는지 장관급 부하들과 함께 50명의 조촐한 무리로 아들한테 가다가 매복당한 신라군한테 끔살당함.

그리고 성왕의 목은 신라 궁궐 계단 밑에 묻혀서 신라 공무원들이 항상 지나가면서 밟고 다님.

이후로 크고 작은 전투로 땅을 찔끔찔금 넓히기는 하지만 이미 너무 커버린 신라한테 녹아 없어진다.

ㄴ 그 찔끔찔끔이 의자왕 때 642년 대야성 포함 40여개 성 함락, 645년 7개 성 함락, 648년 10여개 성 함락, 649년 다시 7개 성 함락, 655년 30여개 성 함락이었다. 크기로 따지면 잃어버린 백제 영토+ 구 가야연맹 영토+신라 본토 4분의 1 정도의 땅을 먹었는데 이게 찔끔찔끔이면 진흥왕 나가 뒤져야겠네. 참고로 광개토대왕이 일생 동안 함락한 성의 수가 고작 64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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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그성은 대부분 좆만한 토성들이다. 당시 지도보면 알겠지만 낙동강도 못넘고 있다. 대야성은 김품석이 부하들 마누라 건들이다 빡친 부하들이 문 열어서 함락된 거지 실력으로 먹은 것도 아니다..그마저도 도로 김유신에게 빼앗김. 게다가 가장 중요한 한강 지역은 빼앗지도 못했다. 신라는 전선이 3개고 백제는 신라에 몰빵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신라가 당나라와 동맹해서 백제에 똑같이 전선한개 추가시켜주니 멸망요 ㅅㄱ

ㄴ좆만한 토성은 무슨...역알못은 역사왜곡하지 말고 자라

걍 얘네는 한강 털린 이후로 쭉 병신짓만 하다 사라진 국가다. 문화가 발전하긴 했지만 그 외는 걍 병신짓의 반복임. 바둑에 미쳐서 땡중스파이한테 놀아난 개로왕도 그렇고.

ㄴ 두 유 노 무령왕?

ㄴ무왕은?역알못이 지랄하네.실제 역사적으로 보면 동성왕,성왕,의자왕도 백제 중흥을 위해 노력했단다.최후가 비참해서 그렇지.실제로 성왕이 관산성에서 전사하지 않고 제 명에 죽었으면 삼국 통일은 백제가 했을 개연성이 굉장히 높다.

당시 짱개들한테 조공도 보내면서 후장을 핧아보지만 수나라가 생기기 전까지는 짱개들이 고구려랑 더 친해서 정작 나라가 터지고 있을때 도움도 못 받음. 북위한테 "고구려는 애미가없기때문에 조만간 너거들의 통수를 세게 칠 거다 그러니까 고구려를 좀 조져달라"라고 국서까지 보냈는데 북위에서 좆까라고 해 그 이후로 북위랑 빠이빠이했다.

사실상 하는 꼬라지만 보면 전반적으로 조선 하위호환.

ㄴ 백제 무시하지마라 그래도 신라 멸망 직전까지 몰았다. 문제는 거기서 짱께새끼들이 개입했다는 거지

ㄴ신라가 여라동맹 맺었으면 대신 백제가 신라 코스프레하고 물자,병력보급했을거다.삼국사기 의자왕편 참조해

한강이 수도였던 역사라서 너무 한강에만 집착한 거 같은데 걍 포기하고 당시 약체였던 신라와 가야를 처먹었으면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병신같이 신라랑 백년을 넘게 동맹을 맺다 시원하게 뒤통수를 쳐맞았을 때 이미 백제는 망할 나라 였다.

ㄴ 지랄 당연히 약한 신라와 동맹을 맺어서 강한 고구려를 쳐야지 외교의 기본도 모르는 새끼야

ㄴ 제로섬 게임 모르냐?

그리고 아라가야(안라국)은 가야 아니냐? 가야를 신라만 먹은 줄 아는듯

ㄴ 애초에 백제 신라 고구려 서로 한민족이라는 의식도 없고 서로 말만 통하는 다른나라 사람 취급이었다

사실 신라한테 통수 맞고 성왕까지 모가지 당하면서 휘청거리긴 했지만 그이후왕 ~ 의자왕까지 끊임없이 신라를 갈구면서 많은 영토를 확보했다. 사실상 의자왕 멸망할 때까지도 백제 역사상으로나 당시 신라랑 비교해서도 꽤 막강한 국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당시 당나라가 애1미뒤지게 쌔서 문제였음. 그당시 당나라는 현대의 쌀국뺨치는 국력을 가지고 있었음.

백제 입장에서 생각해보니까 존나 좆같네 시발. 통수친 새끼들 복수하려고 자지 뜯을려 했는데 신라 시발새끼들이 짱깨새끼 불러와서 내자지 떼감 시이발~

쉽게 말해 2머전때 유럽 줘패던 독궈가 쌀국에게 나가떨어진 것과 같은 느낌이다.

한민족이라는 의식은 통일신라 때부터 생겨났다고 봐야 한다.

ㄴ후삼국시대에 고구려,백제 고스란히 부활해서(후고구려,후백제는 근대 국사학자들이 구분할 목적을 가지고 지은것이다)신라통수를 정의구현한 것 보면 그닥

ㄴㄴ 그렇게 따지면 고려시대에도 백제,신라 부흥운동 일어났었다. 실패로 끝났을 뿐이지. 뭐 그래도 어쨌거나 요새 학자들은 고려 초기까지도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정체성보다는, 각 지방의 지역적 정체성이 더 강했다고 보는 추세기는 하다.(우리뿐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다 이랬다. 예를들어 독일만 해도 독일민족주의는 19세기에나 완성되었다) 다만 신라가 불교 등을 통해 한민족이라는 역사공동체 완성에 대한 불씨를 당겨놓았다는 의의는 인정받고 있다.

부흥 운동

해당 항목 참조

사회

종족

주로 왕족들은 부여고구려에서 남하한 이주민들의 후손들, 대부분의 백성들은 마한인이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고대사에 종족을 따지는 짓은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ㄴ 아니 민족이라고 적어야 하는거 아니 종족 씨발 ㅋㅋ

인구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멸망 시기 76만호가 거주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일부 학계에서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76만호는 과장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할 때 당나라고구려에서 끌고 간 평양성의 중산층 이상의 인구가 20만인데 비해 백제 사비에서는 백성들 12,087명과 의자왕과 병사 88명과 왕자 3명과 태자 2명을 끌고 갔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고구려평양성이 백제의 사비보다 인구가 많았으니 오히려 고구려가 백제보다 인구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수도의 밀집도만으로 한 나라의 인구를 섣불리 파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왜냐하면 농본국가 시절에는 오히려 도시보다 농촌의 인구가 많았으니까.

언어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자료가 너무 부족해서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백제에서는 귀족들은 왕을 어라하라고 불렀고 일반 백성들은 건길지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근거로 백제의 귀족들과 일반 백성들의 언어는 달랐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조선의 신하들이 왕을 주상전하라고 불렀고 일반 백성들은 임금님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근거로 조선은 귀족들과 일반 백성들의 언어가 달랐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나? 그리고 북쪽에서 한강 일대로 내려간 왕족들이나 귀족들은 비율이 매우 낮았고 일반 백성들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기 때문에 결국 귀족들도 일반 백성들이 쓰는 언어로 말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 기록을 보면 백제와 고구려는 언어가 같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광개토왕비문에 나온 백제인 목록을 보면 예맥인이 30%, 삼한인이 70%로 4세기 후반 백제 인구의 대부분을 삼한인이 차지하고 있다.

더군다나 광개토왕비문에는 백제 지역의 삼한인과 예맥인이 고구려인과 의사 소통은 문제가 없는데 법이나 풍속을 잘 몰라 이들을 지도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뉘양스의 글이 적혀있다.

정치

백제는 22부의 관서가 분화되었는데 크게 내관 12부와 외관 10부로 나뉘어 있었다.

경제

현재 학계는 기본적으로 농본국가였을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백제가 기본적으로 차지했던 땅이 워낙 농사 짓기에 좋은 땅이라서 고구려에 비해 영토는 작았지만 경제력은 무시할 수 없을 수준이었을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왠지 존나 불쌍한 나라

삼국 중에서 제일 존재감이 없고 좀 안습이다. 적국에게 잡혀서 모가지 잘린 왕이 두명이나 된다. 그 것도 고구려.신라에게 쌍쌍으로 왕이 대가리가 날라갔다. ㅈㅈ (개로왕 성왕).

ㄴ 잡혀죽진 않았지만 암살당한왕도 꽤 많다.

ㄴ백제가 먼저 근초고왕고국원왕을 죽여서 선빵을 쳤다. 그래서 광개토대왕이랑 장수왕이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심심할때마다 백제 털러 다닌거고

개로왕 아버지 비유왕도 삼국사기 기록 보면 신하들에 살해당해 시체가 들판에 버려져 개로왕이 신하들 눈치를 보느라 아버지의 시체를 제대로 매장도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왕권이 최악을 달리던 국가였다. 귀족들의 권한이 너무 쎄서 백제왕 중 제 수명을 누린 왕이 전체 왕 중 절반밖에 안 된다. 얘들 죽은 기록 읽어보면 고구려빠나 신라빠가 읽어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개로왕은 아차산성에서 고구려로 도망간 부하들에게 잡힌 후 침 3발과 조롱을 존나 신나게 받다가 모가지를 써걱꺼걱 썰린다. 성왕같은 경우는 관산성에서 열심히 싸우는 아들새끼(위덕왕) 보러가는데 40여명의 병사만 이끌고 갔다가 신라군에게 모가지를 써걱써걱 썰린다. 결론은 백제는 전성기 이후 고구려랑 신라에게 신나게 줘터짐 ㅇㅇ 반란이나 암살로 죽은 왕도 가장 많다. 망하기도 삼국 중에 제일 먼저 망했다. 의자왕은 낙양 북망산에 묻혔는데 옆에 갇히 묻힌 새끼들이 오나라 병신 손호랑 진나라 병신 진숙보였다.

결론: 4세기때 좀 커지나 싶더니 얼마 안가고 구석에 쳐박혀 뒤짐 멋진 막타였다 나당연합군 이새끼들아

ㄴ국력 못키우고 왕권 못키운 자기들 잘못이다. 그리고 백제는 나당연합 욕할게 못되는게 지들은 일본이랑 손잡았음

현대 사람들의 평가

고구려처럼 땅 크기 자랑을 할 수 없고, 신라처럼 최후의 승자도 아니니 현대의 한국인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것 같다.

사람들은 백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그나마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 같다.

ㄴ 그나마도 삼천궁녀 역시 카더라라는 설이 있다. 백제 멸망 직전에 남아있었던 백성들이 3000명도 채 안됐었다고 기록되어있는데 3000이 넘는 궁녀들이 낙화암에서 투신했다는건 꺾여버린 백제의 민족의식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던데 이 역시 카더라일 가능성이 높다 카더라.

아니면 통일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 의자왕을 호로 씹새끼처럼 표현하기 위해 3000궁녀로 과장을 했었을 수도 있다는데, 승리자가 역사를 마음대로 바꾸기도 하니까...

ㄴ 신라는 개뿔. 삼천궁녀 나온건 조선 초다. 그것도 문학작품에서. 즉, 은유적 표현으로 그냥 궁녀 많았다. 라는 식으로 쓴 것 뿐. 삼국사기, 삼국유사 및 고려시대 까지 책들 다 뒤져봐라. 의자왕에게 삼천궁녀 얘기 나오나.

다만 좆본 우익 상대로 어그로 끌기에 매우 유용하다. 백제가 왜국의 상국이었으며 일본 문화는 백제 파쿠리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면 '백제왕자 인질 우끼끼'하며 피꺼솟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헬본 우익들은 주인니뮤도 못 알아볼 정도로 멍청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헬본인들이 그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게 백제가 자신들의 주인이 아니라 거꾸로 자신들이 한반도 남부의 주인이었다는 임나일본부설이지만 개구라인걸로 이미 결론났다.

우습게도 당시 헬본인들은 일본서기에서 보듯 백제에 조오온나 집착했다. 대체 왜 이런 집착을 하는지 모를 정도다.

신라가 경상도 쪽이라 그런지 백제는 전라도 쪽으로 오해하는데(영화에서도 그리 나왔고)백제 때 전라도는 남쪽 끝 변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실 전라도 자체가 부여출신 백제인들의 대규모의 남하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다.

백제의 중심지는 어디까지나 경기도였다가 충청도로 옮겨갔을뿐, 그러니 굳이 현대식으로 대입할거면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게 옳다.

ㄴ익산 미륵사지는 전라도 아니냐?

ㄴ그냥 무왕이 익산에 미륵사지 석탑을 세웠다 뿐이지 문화중심지 수도는 서울-공주-부여였는데 익산이 뭐

아웃풋

당나라 짱꼴라들이 백제를 점령하고 도시불태우기 버튼을 누르자 좆본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 배은망덕한 왜놈새끼들은 그 은혜도 모르고 일제강점기에 백제문화재랑 백제왕릉들을 신나게 털어갔다.

왕사


각주

  1. 그런데 오히려 근초고왕 이후 무령왕 때 마한을 점령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근초고왕 때 마한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하지만 근초고왕이 마한을 완전히 점령했지만 이후에 백제가 크게 타격을 입고 왕권이 위축되면서 마한이 다시 분열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2. 앞서 말했듯이 무령왕 때 마한을 점령했다는 기록이 있고 호남 지역에서 독자적인 유물들이나 유적들이 출토되는 것을 근거로 근초고왕 때에는 전라도 지역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근초고왕이 전라도를 포함한 마한을 완전히 점령했지만 이후에 백제가 크게 타격을 입고 왕권이 위축되면서 마한이 다시 분열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