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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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하들에게 세자를 갈구라고 시킴
* 신하들에게 세자를 갈구라고 시킴
(하필 이때 신하들에게 물러나라고 호통을 치고 촛대가 넘어져 낙선당에 화재가 일어나 더 화냈다고)





2017년 2월 4일 (토) 20:1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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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식 학대갈굼의 대표적인 피해자.

생각할 사 슬플 도 자를 써서 사도세자라 하라.

원래부터 좀 유약한 면은 있었으나 그래도 나름 똑똑하고 할거 다 할 줄 아는 왕자였다. 그러나 청소년기부터 헬조선 군주 특유의 유교탈레반식 꼬투리 잡기와 갈굼을 당한 끝에 끝내 정신 이상을 일으키고 만다.

이때 영조가 어떻게 세자를 갈궜는지 보면

  • 아무거나 질문한 뒤 말꼬투리 잡아 갈구기
  • 아들이 문안인사 올때마다 옷차림 갖고 개갈굼.
  • 안 끼어들테니 대리청정 해봐라 해놓고 5분도 못 참고 끼어들어 (모든 문무백관 앞에서) 갈구기
  • 세자가 눈병 걸려서 이를 스승에게 얘기하자 이 새끼가 공부 안 하려고 꾀병 부린다며 불러다 갈구기
  • 대리청정 좆도 못 한다고 한겨울에 돌바닥에서 열흘동안 석고대죄 시키고 갈구기.

ㄴ 참고로 이때 18살이였다. 하필 한겨울에 홍역이 돌아 사도세자를 포함한 왕족 몇몇이 홍역에 걸렸는데(당시 홍역은 위험한 병이였다) 홍역에 걸린 상태에서 석고대죄를 3일 동안 했다. 퍄퍄

  • 세자의 생일날 불러놓고 신하들 앞에서 갈구기(심지어 연례행사였음)
  • 했던 질문 또 하고 대답이 그대로면 반성 안 했다고 갈구고 다른 대답을 하면 구라 친다고 갈구기
  • 친모가 몸져눕자 문병을 온 세자에게 공부도 안 하고 감히 어딜 왔냐며 갈구기.
  • 저지르지도 않은 사고를 쳤다고 우기며 거짓 자백 받아놓고 갈구기
  • 보다못한 세자의 유모가 세자를 변호하자 세자가 이를 물리쳤는데, 감히 자기 앞에서 아랫사람을 갈궜다며 갈구기
  • 신하들에게 세자를 갈구라고 시킴

(하필 이때 신하들에게 물러나라고 호통을 치고 촛대가 넘어져 낙선당에 화재가 일어나 더 화냈다고)


사도세자는 이걸 14년동안 당했다.


뭔가 기시감이 느껴진다면 너도 훌륭한 헬조선의 일원이 됐다는 뜻이다. 축하한다.


결국 이렇게 아버지한테 존나 시달리다 정신병에 걸려 궁밖으로 뛰쳐나가 기생끼고 놀러다니다 결국 궁녀를 죽이고 그 뒤에도 백명 단위의 학살극을 벌이게 된다. 그렇게 미쳐 날뛰다 결국 폭발한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었다.

이렇게 미쳐버린 이유가 영조 때문이라 동정이 안 가는건 아닌데 그렇다고 사람들 죽이고 다닌게 무마되는건 아니다. 근데 아들 정조가 아빠가 북벌을 준비하고 있었다는둥 띄워주는건 이해해도 노론메이슨 사관 가진 인간들이 사극등으로 띄워주는건 당췌...불쌍하긴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능력까지 붙여서 빨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좋은 왕이 될수도 있었다.만약 영조가 어렸을때부터 갈구지 않고 좋은 교육환경에서 자라났다면 적어도 미치지는 않고 평타는 치는 왕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얘 친아들이 지능으로는 희대의 먼치킨 정조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잠재력 하나는 진짜 쩌는 인간이었는데...애비가 병신 만들어서 그렇지.

참 이런 걸 보면 경종에게 그렇게 개같이 갈구던 지 애비 버릇을 그대로 물려받은 영조가 대단하다.

역사상식이 부족한 노답을들 위해 스피드왜건짓을 하자면 영화 '사도'에서 유아인이 맡은역으로 아버지역을 맡은 송강호영조다. 근데 그 송강호는 변호인에서...


당신 누구야? 읍읍!!

작성자가 어디론가 사라진 문서입니다.

아이고, 썬글라스 님들, 아직 암소리도 안꺼냈는데 왜 그래요?

후에 정조가 사도세자→장헌세자→장조로 추존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사람들조차 사도세자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