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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자비롭게(?) 묻는답시고 죽여서 묻는 경우도 많긴 했는데, 엎어치나 메치나 지랄은 지랄. | 좀 자비롭게(?) 묻는답시고 죽여서 묻는 경우도 많긴 했는데, 엎어치나 메치나 지랄은 지랄. | ||
ㄴ 정말 자비롭게 묻는 방법은 얕게 파서 허접하게 묻어주는 것이다. 지들이 흙을 파내서 탈출하기 편하게 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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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절 세계 각지에서 볼수 있는 풍습이지만 특히 [[똥양]]에서 크게 발달했다. | [[청동기]] 시절 세계 각지에서 볼수 있는 풍습이지만 특히 [[똥양]]에서 크게 발달했다. | ||
2019년 5월 20일 (월) 17:5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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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장례 방식.
개요
권력층이 죽었을 때, 권력층이 소유했던 물건들을 비롯하여 노비와, 아내(정실은 거르고 주로 첩 들을 묻었다고 한다) 등을 무덤에 함께 생매장하는 미개한 관습을 뜻한다.
좀 자비롭게(?) 묻는답시고 죽여서 묻는 경우도 많긴 했는데, 엎어치나 메치나 지랄은 지랄.
ㄴ 정말 자비롭게 묻는 방법은 얕게 파서 허접하게 묻어주는 것이다. 지들이 흙을 파내서 탈출하기 편하게 말이다.
ㄴ 오오~ 이 시대의 참천재!
청동기 시절 세계 각지에서 볼수 있는 풍습이지만 특히 똥양에서 크게 발달했다.
이 미개한 제도의 원인이야 여러가지겠지만 경제적인 원인을 따지자면, 생산력이 안습이던 시절에 한 지배자가 죽으면 그 지배자에게 붙어있던 군입을 없애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추측되기도 한다.
더불어 이전 권력자의 측근들을 한방에 싸그리 숙청하는 추가적인 이득을 볼 수 있었으니, 이딴 미개한 제도가 오랫동안 존속한 것이겠지.
하지만 생산력이 증대되고, 그에 따라 노동력의 수요가 많아짐에 따라서 점차적으로 이 관습은 사라지게 되었다.
한반도의 경우 가야가 최후까지 이 미개한 관습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더불어 한반도의 순장풍습은 좀 묘한 부분이 있는데, 다른 문화권에서는 주로 권력자의 하급자를 함께 껴묻은 것에 비해서, 한반도의 경우 같은 지배층이 같이 껴묻어진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주로 부여, 가야, 신라의 풍습이 이랬는데, 이 때문에 이들이 같은 문화권을 공유했을 것이라는 어찌보면 당연한 추측을 할 수 있다.
웃긴건 헬조선에서 없어진 순장은 짱깨들은 계속 가지고 있어서 조선시대에도 뒷담화를 했을정도라고 한다
중국의 경우는 중간에 한번 없어졌지만 똥송한 거란 여진 몽고의 영향으로 다시 부활했다가 청나라 중기 넘어가면서 없어졌다
삼국지에도 몇 번 나온다. 조조의 무덤에서는 40살 정도의 여자와 20살 정도의 여자의 유골이 같이 발견되었으며 진무가 장료에게 사살당하자 손권은 진무의 애첩을 죽여 진무와 같이 안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