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립: 두 판 사이의 차이

K-위키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1번째 줄:
겉으로는 명장이나 실속은 없는 속빈 강정 공갈빵이다.
일단 명장은 명장 맞다.


기병 하나만 잘하지 나머지 능력은 없다.  
기병 하나만 다룰줄 알지 다른건 그냥 평타수준.
 
그러나 평화속에서 병신이 되어있던 당시의 헬조선에서
 
기병이나마 명장급으로 다뤄줬던 신립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큰 유산이었다.


니탕개의 난을 기병으로 진압했을 때는 선조가 직접 신립에게 곤룡포를 입혀줄 정도로 극진한 대우를 받기까지 했다.
니탕개의 난을 기병으로 진압했을 때는 선조가 직접 신립에게 곤룡포를 입혀줄 정도로 극진한 대우를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류성룡]]이 대조총전술에 대한 연구를 하라고 신립에게 숙제를 내줬으나 신립은 류성룡을 비웃었다.
자기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존나 강해서 [[류성룡]]이 대조총전술에 대한 연구를 하라고 신립에게 숙제를 내줬으나 신립은 류성룡을 비웃었다.
 
물론 어느정도 이해가 가기는 한다. 지금으로 치자면 책상공무원이 국방부장관한테 전술에 대해 논한 수준이니깐.


임진왜란이 터지자 이일이 쳐발리고 그 후속타로 파병되었다.  
임진왜란이 터진뒤 이일이 도요토미 군에 의해 개털리자 그 후속타로 파병되었다.  


이 때 신립의 절친인 선조가 자신의 명검인 상방검까지 쥐어주며 신립에게 잘 무찌르고 와달라고 당부했다.
이 때 신립의 절친인 선조가 자신의 명검인 상방검까지 쥐어주며 신립에게 잘 무찌르고 와달라고 당부했다.
13번째 줄: 19번째 줄:
하지만 신립은 충주에 도착하자 새재가 아닌 탄금대로 내려가서 싸웠다. 결국 모두가 사이좋게 벌집핏자가 되었다.
하지만 신립은 충주에 도착하자 새재가 아닌 탄금대로 내려가서 싸웠다. 결국 모두가 사이좋게 벌집핏자가 되었다.


김여물과는 2대에 걸쳐 친구지간이었는데 여기서는 신립이 주장, 김여물이 부장이었으나 능양반정때는 김류(김여물의 아들)가 주장, 신경진(신립의 아들)이 부장이었다.
그 탓에 근현대 학자들 사이에서 개병신 쓰레기 공갈명장 취급 받았으나
 
하나하나 따져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가기는 함.
 
일단 가장 잘 다루는 병과가 기병인데다가 기병이 주력인 북방에서 싸웠던지라 일본군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
 
둘째로 새재에서 싸우려고 하면 왜군이 딴 지방으로 돌아가서 한양을 ㅁㅈㅎ 시키면 그만이었고.
 
셋째로 조총의 위력을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외로 김여물과는 2대에 걸쳐 친구지간이었는데 여기서는 신립이 주장, 김여물이 부장이었으나 능양반정때는 김류(김여물의 아들)가 주장, 신경진(신립의 아들)이 부장이었다.


[[분류:임진왜란]]
[[분류:임진왜란]]

2015년 9월 19일 (토) 23:45 판

일단 명장은 명장 맞다.

기병 하나만 다룰줄 알지 다른건 그냥 평타수준.

그러나 평화속에서 병신이 되어있던 당시의 헬조선에서

기병이나마 명장급으로 다뤄줬던 신립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큰 유산이었다.

니탕개의 난을 기병으로 진압했을 때는 선조가 직접 신립에게 곤룡포를 입혀줄 정도로 극진한 대우를 받기까지 했다.

자기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존나 강해서 류성룡이 대조총전술에 대한 연구를 하라고 신립에게 숙제를 내줬으나 신립은 류성룡을 비웃었다.

물론 어느정도 이해가 가기는 한다. 지금으로 치자면 책상공무원이 국방부장관한테 전술에 대해 논한 수준이니깐.

임진왜란이 터진뒤 이일이 도요토미 군에 의해 개털리자 그 후속타로 파병되었다.

이 때 신립의 절친인 선조가 자신의 명검인 상방검까지 쥐어주며 신립에게 잘 무찌르고 와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신립은 충주에 도착하자 새재가 아닌 탄금대로 내려가서 싸웠다. 결국 모두가 사이좋게 벌집핏자가 되었다.

그 탓에 근현대 학자들 사이에서 개병신 쓰레기 공갈명장 취급 받았으나

하나하나 따져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가기는 함.

일단 가장 잘 다루는 병과가 기병인데다가 기병이 주력인 북방에서 싸웠던지라 일본군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

둘째로 새재에서 싸우려고 하면 왜군이 딴 지방으로 돌아가서 한양을 ㅁㅈㅎ 시키면 그만이었고.

셋째로 조총의 위력을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외로 김여물과는 2대에 걸쳐 친구지간이었는데 여기서는 신립이 주장, 김여물이 부장이었으나 능양반정때는 김류(김여물의 아들)가 주장, 신경진(신립의 아들)이 부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