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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친다 하트!
압록강 이북의 만주지방에 흐르는 랴오허강(요하강) 동부의 지역을 가리킨다.
불타버릴만큼 히ㅡ트!
요동지역은 고대부터 중세 이전까지 한(韓)민족의 영역이었다.
새긴다! 혈 액 의 비ㅡ트!


선 라이트 옐ㅡ로ㅡ
고조선의 영역에도 요동지역은 포함되었으며
고조선 멸망이후 부여에서 내려온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졸본, 국내성 일대 역시 요동지방이다.
고구려 초기에 중국의 연나라에게 요동지방을 잠시 상실하였으나, 이후 재수복 하였다.


오ㅡ 바ㅡ 도라이부ㅡ!!!!!!!!!!!!!!!!!!!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황제 대조영은 발해의 도읍을 동모산 일대(현 헤이룽장성 무단장 일대)에 정했지만
고구려의 얼이 담긴 요동지역을 탈환하여 발해의 영역에 포함시킨다.


발해마저도 멸망한 후
한민족은 만주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한다
한민족의 영역은 한반도 내부의 고려로 축소되며 요동지역은 이민족들에게 넘어간다.
그러나 몽골제국 원나라가 고려를 통치하던 시절 잠시나마 요동지역을 점령했으나
원의 몰락이후 요동지역의 주도권은 명나라에게 넘어간다


이후 요동지역은
명이 계속 통치를 하던 도중, 명이 쇠퇴하자
마침 여진 3부(건주, 해서, 야인)를 통일시킨 만주족의 왕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는
후금을 건국한 후 요동지역을 점거하여 요동지역의 심양 일대를 후금의 수도로 삼는다.
이후 더욱 강성해진 후금은 마침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를 건국하며 요동은 청나라의 영역이 된다.


[[국뽕]]들이 헉헉대는 정신적 이상향.
시간은 더욱 더 흐르고


뭐 가끔 현대에 정신줄 놓은 새끼는 이에 대한 반감으로 요동에 하악대는 건 일제시대 만선사관의 영향이라 하지만


조선시대 [[정약용]]도 자기 저서에 요동땅 먹으면 힘들긴 한데 먹으면 존나 간지나는 대국이 될 수 있는 바탕이 되니 멋있엉 이라고 써놓고 그 전 인물들도 요동은 우리 세력권 아닌가 라는 저술이 꽤 많이 보이는 걸로 보아 요동성애자는 그 역사가 유구한 걸로 보인다.


실제 역사에서도 요동처먹은 애들이 중국애들과의 헤게모니 다툼에서 주도권을 많이 잡긴 했으니 탐나는 땅이긴 하다.
19세기 말


물론 현대엔 공격했다간 중국의 무차별 핵투하가 기다리고 있을테니 꿈도 꾸지 마라.
청나라는 점점 쇠퇴를 거듭한다.
반대로 점차 강성해지던 일본제국은 마침내 청나라와의 전쟁을 일으킨다.
청일전쟁의 결과는 일본제국의 승리로 끝났고
그 결과 일본제국은 전리품으로 청나라의 요동 반도를 가져간다.
(하지만 얼마 못가 삼국간섭으로 다시 반환했다)
 
그러던 중
만주에서의 러시아 제국의 입지가 점차 커지며 19세기 말~20세기 초 요동지방은 잠시 러시아 제국에게 넘어가기도 한다.
 
1920년대에는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조선을 벗어나 요동지방으로 와서 터를 잡고 생활하며 독립운동을 준비하곤 했다.
 
1931년 일제는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식민지배하며 만주국을 건국하였다.
그로 인해 요동지역은 만주국의 일부로서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게 된다.
 
1945년 8월
유럽전선에서 나치를 몰락시킨 소련군은
폭풍작전을 개시하여 만주로 남하하여 일본군을 처부수기 시작한다.
그 때 요동은 소련군에게 일시적으로 점령되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둥의 공산당군이 승리하였고
요동 및 만주지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가 된다.
 
 
 
 
 
 
 
현재 요동지방은 중국의 둥베이(동북)지방에 위치한 랴오닝성 일대에 속하며
요동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는 선양(심양)이다.
또한 요동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다롄(대련)은 북방의 홍콩이라 불리우며, 중국의 4대 항구도시 중 한 곳이다.
선양과 다롄 및 요동지방에는 현재 조선족들이 상당히 거주하고 있다.

2016년 1월 8일 (금) 13:42 판

압록강 이북의 만주지방에 흐르는 랴오허강(요하강) 동부의 지역을 가리킨다. 요동지역은 고대부터 중세 이전까지 한(韓)민족의 영역이었다.

고조선의 영역에도 요동지역은 포함되었으며 고조선 멸망이후 부여에서 내려온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졸본, 국내성 일대 역시 요동지방이다. 고구려 초기에 중국의 연나라에게 요동지방을 잠시 상실하였으나, 이후 재수복 하였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황제 대조영은 발해의 도읍을 동모산 일대(현 헤이룽장성 무단장 일대)에 정했지만 고구려의 얼이 담긴 요동지역을 탈환하여 발해의 영역에 포함시킨다.

발해마저도 멸망한 후 한민족은 만주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한다 한민족의 영역은 한반도 내부의 고려로 축소되며 요동지역은 이민족들에게 넘어간다. 그러나 몽골제국 원나라가 고려를 통치하던 시절 잠시나마 요동지역을 점령했으나 원의 몰락이후 요동지역의 주도권은 명나라에게 넘어간다

이후 요동지역은 명이 계속 통치를 하던 도중, 명이 쇠퇴하자 마침 여진 3부(건주, 해서, 야인)를 통일시킨 만주족의 왕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는 후금을 건국한 후 요동지역을 점거하여 요동지역의 심양 일대를 후금의 수도로 삼는다. 이후 더욱 강성해진 후금은 마침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를 건국하며 요동은 청나라의 영역이 된다.

시간은 더욱 더 흐르고


19세기 말

청나라는 점점 쇠퇴를 거듭한다. 반대로 점차 강성해지던 일본제국은 마침내 청나라와의 전쟁을 일으킨다. 청일전쟁의 결과는 일본제국의 승리로 끝났고 그 결과 일본제국은 전리품으로 청나라의 요동 반도를 가져간다. (하지만 얼마 못가 삼국간섭으로 다시 반환했다)

그러던 중 만주에서의 러시아 제국의 입지가 점차 커지며 19세기 말~20세기 초 요동지방은 잠시 러시아 제국에게 넘어가기도 한다.

1920년대에는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조선을 벗어나 요동지방으로 와서 터를 잡고 생활하며 독립운동을 준비하곤 했다.

1931년 일제는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식민지배하며 만주국을 건국하였다. 그로 인해 요동지역은 만주국의 일부로서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게 된다.

1945년 8월 유럽전선에서 나치를 몰락시킨 소련군은 폭풍작전을 개시하여 만주로 남하하여 일본군을 처부수기 시작한다. 그 때 요동은 소련군에게 일시적으로 점령되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둥의 공산당군이 승리하였고 요동 및 만주지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가 된다.




현재 요동지방은 중국의 둥베이(동북)지방에 위치한 랴오닝성 일대에 속하며 요동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는 선양(심양)이다. 또한 요동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다롄(대련)은 북방의 홍콩이라 불리우며, 중국의 4대 항구도시 중 한 곳이다. 선양과 다롄 및 요동지방에는 현재 조선족들이 상당히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