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 두 판 사이의 차이

K-위키
새 문서: {{문무새}}{{갓쌍도}} == 개요 == 경상남도 창녕군에 있는 한국최대 내륙습지. 창녕군 이방면 안리, 옥천리, 유어면 세진리, 대대리,...
 
10번째 줄: 10번째 줄:


== 연혁 ==
== 연혁 ==
=== 좆간등장이전 ===


원래 [[낙동강]]유역은 [[빙하기]]땐 존나 큼직한 골짜기였다. 물론 빙하다녹고 해수면이 상승한 뒤로는 모두 바닷속에 갇혔지만. 이 깊은 낙동강 골짜기가 [[고령군]] 고령교부터 시작되었다보니 바닷물이 고령근처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우포늪지역은 낙동강유역 골짜기의 일부에 속했기에 당연히 바다였다.  
원래 [[낙동강]]유역은 [[빙하기]]땐 존나 큼직한 골짜기였다. 물론 빙하다녹고 해수면이 상승한 뒤로는 모두 바닷속에 갇혔지만. 이 깊은 낙동강 골짜기가 [[고령군]] 고령교부터 시작되었다보니 바닷물이 고령근처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우포늪지역은 낙동강유역 골짜기의 일부에 속했기에 당연히 바다였다.  
15번째 줄: 16번째 줄:
낙동강이 수천년간 산에서 내려온 퇴적물들을 강변에 존나게 뿌려대는 것을 반복함에 따라 바닥의 높이가 해수면을 넘어서자 그 바닥에 강이 흐르게 되었고, 그 강양쪽에는 모래, 흙이 쌓여 넓은 자연제방과 충적평야를 형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화왕산에서 발원한 토평천의 물을 받는 우포늪은 토평천이 운반하는 퇴적물의 양이 ㅎㅌㅊ라서 낙동강본류가 뿌린 퇴적물에 갇히는 꼴이 되었고, 이후 [[홍수]]로 낙동강물이 조올라게 불어나 물갈이가 일어나지 않는한 거의 배수가 안되는 고인물이 됨에 따라 물이 고인 늪으로 변했다.  
낙동강이 수천년간 산에서 내려온 퇴적물들을 강변에 존나게 뿌려대는 것을 반복함에 따라 바닥의 높이가 해수면을 넘어서자 그 바닥에 강이 흐르게 되었고, 그 강양쪽에는 모래, 흙이 쌓여 넓은 자연제방과 충적평야를 형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화왕산에서 발원한 토평천의 물을 받는 우포늪은 토평천이 운반하는 퇴적물의 양이 ㅎㅌㅊ라서 낙동강본류가 뿌린 퇴적물에 갇히는 꼴이 되었고, 이후 [[홍수]]로 낙동강물이 조올라게 불어나 물갈이가 일어나지 않는한 거의 배수가 안되는 고인물이 됨에 따라 물이 고인 늪으로 변했다.  


제대로된 문헌기록은 조선후기인 1810년 3월 [[노주학]]이라는 사람이 화왕산을 방문하는중에 우포늪을 본 소감을 적은 <화왕산유람기>에 첫등장했다.
=== 좆간등장이후 ===
 
제대로된 문헌기록은 조선후기인 1810년 3월 [[노주학]]이라는 사람이 화왕산을 방문하는중에 우포늪을 본 소감을 적은 <화왕산유람기>에 첫등장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창녕현조에 등장하는 연못, 하천목록<ref>이름과 짤막한 설명만 나오지 디테일한 묘사는 없었다.</ref>, [[대동여지도]]와 현재 지도를 비교한 결과 조선초중기에는 누구택(樓仇澤)이라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토평천은 물슬천(勿瑟川), 언젠가 개간으로 없어진 대합면의 용호를 용장택(龍壯澤)이라 불렸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지포(梨旨浦)가 무엇인지는 해답을 찾는데 실패. 근데 지역주민들은 우포늪은 소벌, 목포늪은 나무벌, 사지포는 모래벌로 불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였던 1918년 소벌, 나무벌, 모래벌은 각각 우포, 목포, 사지포로 개명되었고 1933년 천연기념물 15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이때 우포늪 동쪽 대대제방을 축조하고 그인근지역을 개간함에 따라 30%로 쪼그라 들었다. 근데 물난리 막으라는 제방이 [[직무유기]]해서 헛고생한게 됬다.
 
[[8.15 광복]]이후 1962년 [[고니]] 도래지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1973년 고니는 안오고 같은 연도에 시작된 [[새마을 운동]]때문에 개간은 해야겠고 해서 우포늪과 그일대 호수근처의 늪지 대부분이 농경지로 변했다. 이후 환경단체하고 농민들하고 졸라 싸우다가 결국 위에 나온대로 1997년부터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정하고 일부 사유지를 인정해주는등 적당히 쇼부 잘한걸로 끝났다.

2019년 4월 12일 (금) 23:42 판

문서가 물에 젖었습니다.
살면서 문명에 기여한 거라고는 과학의 날에 만든 물로켓밖에 없으면서
허구한 날 개소리나 하면서 좆부심으로 무장한 몇몇 문무새 이과 새끼들이 다녀갔습니다.
물 묻은 손으로 문서를 만지는 바람에 문서가 젖었습니다. 아는 게 없으면 병신이란 걸 기억합시다.

틀:갓쌍도

개요

경상남도 창녕군에 있는 한국최대 내륙습지. 창녕군 이방면 안리, 옥천리, 유어면 세진리, 대대리, 대합면 주매리의 경계지역에 있다. 센타까보면 중심인 우포늪외에 쪽지벌, 산밖벌, 사지포, 목포늪이라는 다른 습지들이 바로근처에 존재한다.

가시연꽃, 노랑어리연꽃, 마름, 자라풀, 갈대등 식물 800여종, 큰기러기, 큰고니, 물꿩등 조류 200여종, 참붕어, 뱀장어, 잉어등 어류 28종, 수달, 고라니등 포유류 17종, 남생이파충류 7종, 무당개구리양서류 5종, 논우렁이등 패류 5종등 1천여종이 넘는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을정도로 생명부양력이 높은 생태계가 형성되어있다.

1997년 7월 26일 생태 + 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1998년 3월 2일 랍사르 협약습지로 등록, 1999년 2월 8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2011년 1월 13일 천연기념물 524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연혁

좆간등장이전

원래 낙동강유역은 빙하기땐 존나 큼직한 골짜기였다. 물론 빙하다녹고 해수면이 상승한 뒤로는 모두 바닷속에 갇혔지만. 이 깊은 낙동강 골짜기가 고령군 고령교부터 시작되었다보니 바닷물이 고령근처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우포늪지역은 낙동강유역 골짜기의 일부에 속했기에 당연히 바다였다.

낙동강이 수천년간 산에서 내려온 퇴적물들을 강변에 존나게 뿌려대는 것을 반복함에 따라 바닥의 높이가 해수면을 넘어서자 그 바닥에 강이 흐르게 되었고, 그 강양쪽에는 모래, 흙이 쌓여 넓은 자연제방과 충적평야를 형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화왕산에서 발원한 토평천의 물을 받는 우포늪은 토평천이 운반하는 퇴적물의 양이 ㅎㅌㅊ라서 낙동강본류가 뿌린 퇴적물에 갇히는 꼴이 되었고, 이후 홍수로 낙동강물이 조올라게 불어나 물갈이가 일어나지 않는한 거의 배수가 안되는 고인물이 됨에 따라 물이 고인 늪으로 변했다.

좆간등장이후

제대로된 문헌기록은 조선후기인 1810년 3월 노주학이라는 사람이 화왕산을 방문하는중에 우포늪을 본 소감을 적은 <화왕산유람기>에 첫등장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창녕현조에 등장하는 연못, 하천목록[1], 대동여지도와 현재 지도를 비교한 결과 조선초중기에는 누구택(樓仇澤)이라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토평천은 물슬천(勿瑟川), 언젠가 개간으로 없어진 대합면의 용호를 용장택(龍壯澤)이라 불렸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지포(梨旨浦)가 무엇인지는 해답을 찾는데 실패. 근데 지역주민들은 우포늪은 소벌, 목포늪은 나무벌, 사지포는 모래벌로 불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였던 1918년 소벌, 나무벌, 모래벌은 각각 우포, 목포, 사지포로 개명되었고 1933년 천연기념물 15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이때 우포늪 동쪽 대대제방을 축조하고 그인근지역을 개간함에 따라 30%로 쪼그라 들었다. 근데 물난리 막으라는 제방이 직무유기해서 헛고생한게 됬다.

8.15 광복이후 1962년 고니 도래지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1973년 고니는 안오고 같은 연도에 시작된 새마을 운동때문에 개간은 해야겠고 해서 우포늪과 그일대 호수근처의 늪지 대부분이 농경지로 변했다. 이후 환경단체하고 농민들하고 졸라 싸우다가 결국 위에 나온대로 1997년부터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정하고 일부 사유지를 인정해주는등 적당히 쇼부 잘한걸로 끝났다.

  1. 이름과 짤막한 설명만 나오지 디테일한 묘사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