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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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선 초기에 왜구 정벌에 적극적이였고 왜구가 초기에는 중국 대륙과 한반도의 눈치를 봤다는 점에서 생산력과 인구수는 우위였지만 고차원적인 과학 기술이나 문화 측면에서는 조선 초기 까지는 일본이 약간 밀렸다고 볼수 있다.  
하지만 조선 초기에 왜구 정벌에 적극적이였고 왜구가 초기에는 중국 대륙과 한반도의 눈치를 봤다는 점에서 생산력과 인구수는 우위였지만 고차원적인 과학 기술이나 문화 측면에서는 조선 초기 까지는 일본이 약간 밀렸다고 볼수 있다.  


굳이 비유하면 "173cm 군필장년 vs 180cm 학생일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짜피 좆센까지 안가도 고려말 시절때부터 [[왜구]]한테 [[개성|후장]]빼고 다 털렸다.


에도시대에 일본의 권력을 쥐었던 도쿠가와 막부는 천하보청제도, 참근교대제도를 통해 상공업을 크게 발전시켰고 도로의 정비도 촉진하였다(그 과정은 위의 책에 잘 나와있음). 그것은 곧 서민생활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에도시대에 일본의 권력을 쥐었던 도쿠가와 막부는 천하보청제도, 참근교대제도를 통해 상공업을 크게 발전시켰고 도로의 정비도 촉진하였다(그 과정은 위의 책에 잘 나와있음). 그것은 곧 서민생활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ㄴ 마비키 풍습이나 통신사 기록보면 글쎄올시다 소리가 나올꺼다. 인구나 생산량은 높았던거 맞는데 민생측면에선 할말없어야 정상이다. 통신사들 감탄한것도 막부나 지방영주들 꽤나 무리한거기도 하고


여기에 난학에 대한 대중들의 높은 학습의지가 더해져 이후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 1700년대부터 여기저기에 이름있는 난학자들이 세운 '주쿠'(학원이라고 보면 된다)들이 생겨나 난학이 널리 퍼졌다. 도쿠가와 막부는 대중들이 난학을 배우는 것을 꺼려했지만 그것은 난학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 지식을 막부가 독점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난학에 대한 대중들의 높은 학습의지가 더해져 이후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 1700년대부터 여기저기에 이름있는 난학자들이 세운 '주쿠'(학원이라고 보면 된다)들이 생겨나 난학이 널리 퍼졌다. 도쿠가와 막부는 대중들이 난학을 배우는 것을 꺼려했지만 그것은 난학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 지식을 막부가 독점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