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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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가장 큰 도시는 역시 수도인 한양이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세종대에 인구가 10만이었고 임란 이후에 4만, 조선 후기에 20만이었다고 한다. 한성부과 관할하는 한성 밖 10여리 정도의 인구까지 포함하면 30만명 정도의 인구가 살았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지명 뒤에 '-포', '-진'이 붙은 곳이 한성 주변 인구밀집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노량진, 마포등이 그 예이다.
조선의 가장 큰 도시는 역시 수도인 한양이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세종대에 인구가 10만이었고 임란 이후에 4만, 조선 후기에 20만이었다고 한다. 한성부과 관할하는 한성 밖 10여리 정도의 인구까지 포함하면 30만명 정도의 인구가 살았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지명 뒤에 '-포', '-진'이 붙은 곳이 한성 주변 인구밀집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노량진, 마포등이 그 예이다.


앞서 말했듯이 조선후기 도시의 인구집중화 현상으로 위생,환경 문제가 크게 발생한다. 한양의 식수은 토양의 오염으로 염분도가 상승했고 길거리는 오물과 똥이 방치되고 벌레가 들끓었다. 특히 여름되면 어떤 말로 표현도 못할정도로 지독한 냄새가 도시전체를 뒤덮었기에 조선으로 장사를 하러오거나 선교를 하러 온 외국인들도 차라리 코를 없애버리고 싶다고 한탄할정도. 상'하수도가 정비되지 못해서 그냥 맑은 물 만있으면 마셨고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 복통에 대한 잦은 기록들이 조선 특유의 과식과 한양의 식수원 오염이 원인이라고 추정된다.
앞서 말했듯이 조선후기 도시의 인구집중화 현상으로 위생,환경 문제가 크게 발생한다. 한양의 식수은 토양의 오염으로 염분도가 상승했고 길거리는 오물과 똥이 방치되고 벌레가 들끓었다. 특히 여름되면 어떤 말로 표현도 못할정도로 지독한 냄새가 도시전체를 뒤덮었기에 조선으로 장사를 하러오거나 선교를 하러 온 외국인들도 차라리 코를 없애버리고 싶다고 한탄할정도. 상'하수도가 정비되지 못해서 그냥 맑은 물 만있으면 마셨고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 복통에 대한 잦은 기록들이 조선 특유의 과식과 한양의 식수원 오염이 원인이라고 추정된다.
 
거기다가 더럽게 씻지도 않고 머리에 이가 있으면 오히려 장수의 상징이라면서 자랑거리로 삼았다.  


그리고 계획적으로 도시가 발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건설되어 건물과 건물은 규칙성도 없었고 건물끼리 가까이 붙어있어 화제가 나면 일대가 쑥대밭이 돼버렸다. 한양에서 조그만한 화재만 나도 왕이 수시로 보고를 받고 명령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계획적으로 도시가 발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건설되어 건물과 건물은 규칙성도 없었고 건물끼리 가까이 붙어있어 화제가 나면 일대가 쑥대밭이 돼버렸다. 한양에서 조그만한 화재만 나도 왕이 수시로 보고를 받고 명령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