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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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하지만 그렇다고 식근론이 옳다는 얘기가 아니다. 사이먼 쿠즈네츠 이론을 반영하면 식민지 병탄 이전과 이후의 소득 수준 차이가 거의 없었고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식근론은 틀린 말이다. 그러나 이 사진의 의의는 그만큼 외국인들이 보기에도 조선이 당시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했으며 다른 국가들에게 손가락질 받을만한 것들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고구려 시대부터 이어져 온 한국의 정상적인 역사 평가를 죄다 갉아먹은 근원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바이다. 한국의 근대화는 이승만 정부부터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일단 이영훈 교수도 자신의 저서인 대한민국 이야기에서 일제 시대를 비판하기도 했음.</ref> | |||
{{인용문|임금이 경기 감사 유엄(柳儼)을 소견(召見)하였다. 이때에 심양 문안사(瀋陽問安使)의 행차가 있었는데, 경외(京外)에서 어수선하여 뜬소문이 크게 떠도니, 임금이 몹시 근심하여 도성을 지키는 것과 강도(江都)에 들어가는 것의 편의 여부를 유엄에게 물었다. 이에 유엄이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는 외적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무슨 말인가?" 하자, 유엄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는 약소 국가입니다. 몽고(蒙古)가 공격해 오면 청인(淸人)의 경우와 같이 접대(接待)해야 하고, 비록 서달(西韃)이 공격해 온다 하더라도 또한 이와 같이 할 뿐입니다." 하였다. 이에 임금이 아무 대답 없이 주서를 돌아다보며 이르기를, "이런 말들은 모두 기록할 필요가 없다." 하였다. 사신은 말한다. "우리 나라는 참으로 약소 국가이다. 그러나 유엄의 대답한 말은 어찌 이다지도 무례(無禮)하단 말인가? 식자(識者)로 하여금 한심하게 여길 만하니, 임금의 대답이 없었던 것도 마땅한 일이다."|영조실록 58권}} | {{인용문|임금이 경기 감사 유엄(柳儼)을 소견(召見)하였다. 이때에 심양 문안사(瀋陽問安使)의 행차가 있었는데, 경외(京外)에서 어수선하여 뜬소문이 크게 떠도니, 임금이 몹시 근심하여 도성을 지키는 것과 강도(江都)에 들어가는 것의 편의 여부를 유엄에게 물었다. 이에 유엄이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는 외적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무슨 말인가?" 하자, 유엄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는 약소 국가입니다. 몽고(蒙古)가 공격해 오면 청인(淸人)의 경우와 같이 접대(接待)해야 하고, 비록 서달(西韃)이 공격해 온다 하더라도 또한 이와 같이 할 뿐입니다." 하였다. 이에 임금이 아무 대답 없이 주서를 돌아다보며 이르기를, "이런 말들은 모두 기록할 필요가 없다." 하였다. 사신은 말한다. "우리 나라는 참으로 약소 국가이다. 그러나 유엄의 대답한 말은 어찌 이다지도 무례(無禮)하단 말인가? 식자(識者)로 하여금 한심하게 여길 만하니, 임금의 대답이 없었던 것도 마땅한 일이다."|영조실록 58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