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대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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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장군이 현명했다 | 원래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장군이 현명했다 | ||
화약을 충분히 마련하고 해자를 깊이 판 후 의연히 대처했다. 경상우병사가 패한 후 달려와 성문을 열어 달라고 했지만 지휘권 혼란을 우려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게 얼마나 현명한 판단이었는지는 2차 진주성 전투때 고만고만한 지휘관들의 분열이 있었던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 |||
전투 마지막에 시체 속에서 쏜 왜군의 조총탄에 김시민 장군이 전사했지만 조선군이 크게 승리한다. | |||
이게 1차 대첩인데...문제는 이긴건 좋은데 두번째에서 좆털린다 | 이게 1차 대첩인데...문제는 이긴건 좋은데 두번째에서 좆털린다 | ||
2015년 10월 1일 (목) 16:11 판
대한민국의 승리!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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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갓민 장군이 이끄신 대첩으로 3대첩 중 하나로 기억되었다
원래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장군이 현명했다
화약을 충분히 마련하고 해자를 깊이 판 후 의연히 대처했다. 경상우병사가 패한 후 달려와 성문을 열어 달라고 했지만 지휘권 혼란을 우려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게 얼마나 현명한 판단이었는지는 2차 진주성 전투때 고만고만한 지휘관들의 분열이 있었던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전투 마지막에 시체 속에서 쏜 왜군의 조총탄에 김시민 장군이 전사했지만 조선군이 크게 승리한다.
이게 1차 대첩인데...문제는 이긴건 좋은데 두번째에서 좆털린다
2차 전투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1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를 갚으라는 명을 내려 조선땅에 있던 10만 왜군이 한번에 몰려와 진주성을 공격했다.
1차 때보다 오래 버텼지만 숫적 열세를 감당 할 수 없어 성이 함락당하고 양민 7만명이 학살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