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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계]]에는 평양, 진주와 더불어 미녀의 고장으로 유명했다고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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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군|정주]]의 경우 과거합격자가 서울을 제외하고 제일 많았다고 한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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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의 경우 과거합격자가 서울을 제외하고 제일 많았다고 한다. 왜?
고대유물이 한반도에서 가장 보기힘든 곳으로 유명하다. [[의주군]]의 미송리식토기나 [[전국시대]] 짱깨동전인 [[명도전]]외에는 정말 발견된 게 없다.


== 역사 ==
== 역사 ==
의주, 삭주를 중심으로 한 평안북도 서부 지역은 고려 성종 대에 서희가 거란에게 반환받은 강동 6주로부터 시작되었다. 강계 등의 평안북도 동부는 한동안 여진족의 영토였으나 공민왕, 세종대왕의 영토 확장으로 인해 우리 땅이 되었다. 그러다가 북한의 건국 이후 평안북도 서부는 평안북도로, 평안북도 동부는 자강도로 신설되었다. 자강도라는 말은 '''자'''성과 '''강'''계의 첫글자에서 따 온 것.
 
평안북도 서부 압록강 하구 해안지역은 [[진개]]가 [[고조선]]을 요양에서 평양으로 쫓아낸 뒤부터 요동, 평양을 잇는 중간지점으로서 발전했지만 동부 압록강 중류내륙은 후일 [[고구려]]를 세우는 예, 맥등의 [[한민족]]의 조상뻘되는 원주민들이 중국과 가끔씩 교류를 하거나 지들끼리 살면서 먹고살았다.
 
[[한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킨뒤 서부지역은 [[요동군]] 서안평현의 관할지가 되었고 동부는 [[낙랑군]] 패수현, 낙선정등으로 추정되는 [[희천군]]을 제외한 전역은 현도군이 되었다가 기원전 75년에 토착민들의 부락이 되었다. 이후 [[고구려]]가 등장하면서 동부지역은 고구려가 차지하게 되었고 서부는 해안으로 진출하려는 고구려와 낙랑과의 연결고리를 지키려는 요동간의 피튀기는 케찹파티가 심심하면 벌어졌다. 311년 [[미천왕]]이 서안평을 점령하면서 평안북도전역은 한민족의 영역으로 편입되었고 이는 [[발해]]대도 유지되었다.
 
하지만 발해가 [[요나라]]에게 망한뒤로 그지역에서 살던 한민족은 요동반도, [[고려]]가 있던 [[평안남도]]지역으로 이주했다. 의주, 삭주를 중심으로 한 평안북도 서부 지역은 고려 성종 대에 서희가 거란에게 반환받은 강동 6주를 통해 한민족의 영역으로 재편입되었지만 강계 등의 평안북도 동부는 요나라 녹주의 관할로 있다가 [[여진족]]의 땅이 되었다. 이후 동부지역은 공민왕, 세종대왕의 영토 확장으로 인해 다시 우리 땅이 되었다. 그러다가 북괴정부수립이후 평안북도 서부는 평안북도로, 평안북도 동부는 자강도로 신설되었다. 자강도라는 말은 '''자'''성과 '''강'''계의 첫글자에서 따 온 것.

2019년 2월 11일 (월) 17:1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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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평안도행정구역

평안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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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 ·밑줄: 도청소재지
대한민국 기준 평안북도 행정구역

개요

이북 5도 중의 하나. 줄여서 '평북'.

상세

유명 도시로는 의주, 강계 등이 있다. 의주는 한국으로 들어오는 길목으로도 역할했다. 즉 외국의 침공로로도 쓰였던 것. 강계에는 평양, 진주와 더불어 미녀의 고장으로 유명했다고 하다.

함경도 다음으로 위너가 많았던 고장.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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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의 경우 과거합격자가 서울을 제외하고 제일 많았다고 한다. 왜?

고대유물이 한반도에서 가장 보기힘든 곳으로 유명하다. 의주군의 미송리식토기나 전국시대 짱깨동전인 명도전외에는 정말 발견된 게 없다.

역사

평안북도 서부 압록강 하구 해안지역은 진개고조선을 요양에서 평양으로 쫓아낸 뒤부터 요동, 평양을 잇는 중간지점으로서 발전했지만 동부 압록강 중류내륙은 후일 고구려를 세우는 예, 맥등의 한민족의 조상뻘되는 원주민들이 중국과 가끔씩 교류를 하거나 지들끼리 살면서 먹고살았다.

한무제고조선을 멸망시킨뒤 서부지역은 요동군 서안평현의 관할지가 되었고 동부는 낙랑군 패수현, 낙선정등으로 추정되는 희천군을 제외한 전역은 현도군이 되었다가 기원전 75년에 토착민들의 부락이 되었다. 이후 고구려가 등장하면서 동부지역은 고구려가 차지하게 되었고 서부는 해안으로 진출하려는 고구려와 낙랑과의 연결고리를 지키려는 요동간의 피튀기는 케찹파티가 심심하면 벌어졌다. 311년 미천왕이 서안평을 점령하면서 평안북도전역은 한민족의 영역으로 편입되었고 이는 발해대도 유지되었다.

하지만 발해가 요나라에게 망한뒤로 그지역에서 살던 한민족은 요동반도, 고려가 있던 평안남도지역으로 이주했다. 의주, 삭주를 중심으로 한 평안북도 서부 지역은 고려 성종 대에 서희가 거란에게 반환받은 강동 6주를 통해 한민족의 영역으로 재편입되었지만 강계 등의 평안북도 동부는 요나라 녹주의 관할로 있다가 여진족의 땅이 되었다. 이후 동부지역은 공민왕, 세종대왕의 영토 확장으로 인해 다시 우리 땅이 되었다. 그러다가 북괴정부수립이후 평안북도 서부는 평안북도로, 평안북도 동부는 자강도로 신설되었다. 자강도라는 말은 성과 계의 첫글자에서 따 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