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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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죽창을 꽂은 건 좋은데 고삐가 갑자기 풀려서 그런지 병신짓도 많이 함 | ㄴ죽창을 꽂은 건 좋은데 고삐가 갑자기 풀려서 그런지 병신짓도 많이 함 | ||
'''유럽이 아시아를 추월하게 된 계기 | '''유럽이 정치적으로 아시아를 추월하게 된 계기'''<ref>경제적으로 추월한 계기는 [[산업혁명]]이다.</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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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31일 (화) 14:0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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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헬프랑스 ㄴ죽창을 꽂은 건 좋은데 고삐가 갑자기 풀려서 그런지 병신짓도 많이 함
유럽이 정치적으로 아시아를 추월하게 된 계기[1]
개요
근세 프랑스에서 평민들이 벌인 죽창시즌 1.
다양한 배경이 있지만 경제적 원인으로는 베르사유 궁전으로 대변되는 왕실과 귀족 계급의 사치. 여러 차례의 전쟁으로 인한 국고 낭비. 혁명 직전에 찾아온 자연재해로 인한 기근 등이 있다.
사회적으로는 '앙시앵 레짐'으로 비롯된 구제도의 모순이 있으며 또한 당시 유럽 전역에서 유행하던 계몽사상(사회계약설, 주권재민설, 일반의지론 등) 등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이런저런 사유 끝에 나라가 거덜나기 직전에 이르자 다이아수저와 금수저들이 그 이하 놈들을 더 쥐어짜려고 하다가 깨어있던 은수저들이 흙수저, 똥수저들을 선동해 죽창을 찔러버린 사건.
라부아지에같은 역사적인 과학자도 그당시엔 흙수저들에겐 죽창꼽을 금수저 수탈자 새끼로밖에 안보였기에 죽창맞고 끔살당한다. 근데 라부아지에 실드쳐주기엔 얘가 세금을 쥐어짰다는 소리가 있는지라 좀 그렇다.
얘네들이 혁명 일으켜서 학살도 많이 하고 깽판 많이 치기는 했는데, 자유주의 사상의 발전에 존나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고 현대 민주주의에서도 존나 중요한 사건인건 맞다.
프랑스 혁명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도 없었다고 보면 된다.
폭력적이다. 프랑스는 평화시위밖에모르는 헬조선에 한수배워가야한다.
어... 프랑스는 낫과 갈퀴를 들고 일어난... 폭동이야
ㅉㅉ 촛불들고 행진 좀 하면 알아서 귀족들이 물러갈텐데 불쌍한 하층민 군인들이나 다치게하고 말이야! 뭐 프랑스농민들도 죽었다고? 프랑스 농민들 죽은건 지들이 폭동 일으키니까 그런거지!
ㄴ그당시는 왕조야 피의 일요일꼴 날일 있냐
ㄴ드립이잖아 머저리야
ㄴ하여튼 진신류 폭력시위충 새끼들... 그 때랑 지금이랑 같냐? 그래서 ㄹ혜가 전경 다 쳐죽이고 청와대 불바다 만들어서 쫓겨났냐? 프락치랑 니들이랑 다른게 뭐임?
이 사건 이후로 자유주의가 퍼진 유럽 대륙에서는 왕들 눈치 챌 필요 없이 마음껏 학문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연구의 부산물로 나온 게 바로 산업혁명이다. 사실상 갓유럽이 만들어진 계기라고 할 수 있다.
경과
서양문화사 교양때 배운거임 다르면 수정바람
당시 하급수저들의 제3계급과, 1계급의 성직자, 2계급에 해당하는 귀족이 투표권을 두고 삼부회라는 걸 열었다.
존나 웃긴게 삼부회를 열자는게 3신분이 아니라 왕이 재정부족으로 귀족에게 보조지세라는 종부세 매긴다니깐 빼애애액 그런거 하려면 삼부회 열어야한당께욧!!! 라는 병신짓 덕분에 죽창시즌이 열렸다 ^오^ 존나 웃긴건 175년만에 열린 회의라 카더라
ㄴ좀더 부연설명하자면 혁명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은 당시 무리한 인구증가로 인한 식량부족+일자리부족, 그러니깐 가난때문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도시(파리) 인구가 존나게 늘어나는데 정작 그걸 먹여살릴 일자리나 식량이 부족해지고 이로인해 빈곤층은 굶주렸다. 그리고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날이 갈 수록 심해지지(당시 영국과 비교해보면 시장형성이 잘 됀 영국의 경우 잉글랜드 은행 설립해서 자체적으로 돈지랄 할 수 있는 여건 됬지만 프랑스는 이와 정반대였다.) 설마 갑자기 잘 복종하던애들이 "인권!뺴애애애애액!"하면서 반기를 들었겠냐 더군다나 해상권은 영국한테 먹혀서 세계진출은 힘들지...그런데 윗대가리들은 자기 이익 챙기는데에 급급하지...이러니깐 빡치겠냐 안빡치겠냐??
물론 제3계급은 두당 투표권을 주장했으나 씹혔다.
그러다가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베르사유 궁전의 테니스코트에서 땡깡을 부리는데 이게 테니스코트의 서약이다.
물론 루이 16세는 이들을 해산시켰다.
그러나 빡친 민중들이 주우욱창을 들고 일어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다.
여기서 살육이 과하긴 했음
어쨌든 이들은 봉건제 전면폐지(귀족들에 대한 보상 없음),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인권선언)을 선포하는데...
이 와중에 루이 16세와 왕비가 몰래 토끼다가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 바렌느라는 곳에서 걸려서 다시 흙수저들은 자극하게 된다.
그래서 입법의회가 열렸으며 이 와중에 온건파(지롱드 파)와 과격파(자코뱅 파)가 대립한다.
처음엔 온건파가 득세하였으나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무능하였고, 자코뱅 파가 상퀼로트라 불리는 도시 거주 노동자들의 머국적인 지지를 받아 집권한다.
이들은 물가 안정 및 보통선거를 제창하였으나, 반동분자는 무조건 기요틴에 모가지를 뎅강뎅강 해버리는 바람에 불만도 있었다.
이를 공포정치라 하며 대표적인 사람이 로베스 피에르이다. 여기까지는 흙수저를 위한 혁명이었다.
이새낀 공안위원회를 설치해서 혁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단두대에서 존나 죽인다.미친듯이.
그런데 공포정치가 심해지고 죽창맞은 금수저 재산을 흙수저에게 주겠습니다. 하는 방토즈 법도 쌩까면서 흙수저들의 죽창방향을 틀게 만든다. 결국 이새끼는 단두대에서 뒈진다.
반혁명분자들이 반란을 일으키는데 테르미도르의 반동이라 한다.
돈 많은 부르주-아 새끼들이 지지해줬다 보니 얘네들이 득세하게 된다. 역시 마지막에 이긴 놈이 최강자다.
결국 지롱드파 쪽에서 총재정부란것 만들었지만 역시 어중띈 애들은 어중띄게 정치를 못했다.
이에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프랑스는 나폴레옹이 정ㅋ벅ㅋ한다.
흙수저들에 의해 생겨난 혁명에서 개이득 본 놈들은 돈 많은 부르주아라니... 주욱창... 죽창이 시급하다...
└뭘 그러냐. 원래 혁명이란게 죄다 엘리트새끼들만 득 보는 거야. 우리같은 하층민은 시대가 바뀌어도 하층민이다. 그나마 콩고물이라도 떨어지는거 없나 하고 지지하는거지
ㄴ ㄹㅇ 공산주의도 결국 공산당 , 관료새끼들이 꿀잼
ㄴ 지랄하네 ㅋㅋ 혁명은 결국 의식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프혁 없었으면 우리는 헬조선보다 더 못한 세상에서 살았을거다.
ㄴ 그래서 민중을 중심으로하는 레프트코뮤니즘이 필요한거다.
중세 때 개독이 있고 봉건시대에 왕과 귀족이 있다면 21세기엔 이 혁명의 승자들이 그들과 똑같은 무전취식과 착취를 일삼고 있다.
프랑스혁명 때 부르주아 돼지새끼들이 주도권 잡았다는 말이 헬조센에선 정설처럼 나도는데 프혁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똥멍청한 주장들이다.
프혁 초기때만 해도 자본가새끼들과 민중편드는새끼들 양대 지분이 컸고 특히 자코뱅 내 산악파같은 현대로치면 민중, 농민, 유대인같은 소수민족 등을 대변하는 사회주의 비스무리한 세력들도 있었는데 개씨발 염병할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진정한 서민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한 이들을 단두대로 보내버려서 지금의 빈부격차와 온갖 차별, 갑질로 가득한 헬조선을 넘어 헬지구가 완성된거다.
결과 및 의의
나폴레옹이 비록 유배를 가서 독재는 끝났지만, 그 후에도 프랑스의 죽창은 아직 날카로웠기 때문에 유럽의 국가들은 이를 무서워하였다.
그리하여 혁명뽕에서 역으로 가는 복고주의, 보수주의가 싹트는데 이걸 오스트리아가 주도했고 이러한 체제를 빈 체제라고 한다.
존나 잘생긴 오스트리아의 외무장관 메테르니히가 1814~1815년 빈 회의에서 이끌었다. 프랑스를 견제하고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억압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혁명 후 19세기의 이야기이이고 혁명의 의의로는 경제적으로는 봉건제도의 폐지와 함께 시장경제 및 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전제왕권이 시민계급(부르주아이다)에 의해 타도되고, 권력이 이동되었다는 점이다. 나중에 귀족들은 살기 위해 자신들에게 죽창을 찔러댔던 부르주아와 결탁하여 다시 사치를 부리게 된다.
그리고 이 귀족들은 1848년 혁명으로 다시 박살나게 된다. 사회 전반으로는 악폐습과 불평등이 해소되기도 했다. 아 물론 여성이랑 유색인종은 해당 없음 ㅇㅇ
하지만 이를 위해 프랑스가 치룬 댓가는 엄청 컸는데 프랑스 혁명과 그 뒤를 이은 나폴레옹 전쟁 때문에 사람들이 하도 많이 죽고 혁명 정신으로 사람들의 계몽 수준이 높아지면서 출산율이 급감하게 된다.
결국 프랑스는 국력에서 경쟁국인 영국, 그리고 무섭게 치고올라온 독일한테도 밀리는 신세가 되며 이는 현재까지도 프랑스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가 된다. 이게 얼마나 심각하냐면 1863년에 이미 프랑스는 고령화 사회에 들어갔다.
또한 1805년 3100만, 유럽 2위, 서유럽에선 압도적으로 1위였던 인구가 1914년에는 4000만도 도달 못했다. 같은 기간 동안 영국은 인구가 4배, 독일은 3배로 늘었다. 똑같은 산업화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인구가 폭증하는 상황이었는데도.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구구조는 다시 한 번 박살. 이를 메꾸기 위해 한 때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에서 대거 이민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얘네들이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인가...
왕실은 왜 쳐발렸는가??
요약: 혁명에대한 갈망 + 혁명에 딱 좋았던 당시 프랑스 군사제도
가난에찌든 시민들이 빡친것만큼 무서운것도 없다.
당장 한국 청년들이 헬조선 현실에 더이상은 못참아서 단체로 들고 일어나면 어찌돼겠냐?
하물며 이건 파리 전체가 들고일어났다. 아주 제대로
물론 이런일에 대비하라고둔게 경찰과 군인인데...문제는 당시엔 시위에대한 전술, 대처방법 이딴건 없었음, 당연히 시위 진압대도 그냥 쌩군인이했고 숙련된 베태랑들도 처음겪는일이었다. 이게 진압당시 큰 장애물이 됐는데 군인들은 "혹시 저중에 친구나 가족이 있지 않을까?"같은 생각에 휘둘렸다.
게다가 당시 프랑스 군 계급이 대충 크게 장교 하사관 병사 이렇게 이루어져있었는데
문제는 병사와 하사관은 신분이 주로 평민출신이많았는데 장교는 주로 귀족출신이했다. 이게 왜 문제냐고?
평민이랑 귀족이랑 친해봤자 얼마나 친했겠냐? 장교새끼들은 그냥 뒤에서 지휘만하지 병사들을 직접 훈련시키거나 그런건 전부 하사관 똘마니들한테 넘겼다. 이로인해 장교와 하사관,병사간의 유대는 약했다 군대의 생명인 단일심이 부실했다는거다. 당장 국군만하더라도 부사관이 병사랑친하냐 장교급이 더친하냐? 부사관이지, 근데 프랑스는 이런 좆목질이 더 심했다. 더군다나 하사관은 아무리 열심히 해봤진 평민신분으로 장교로 출세가 힘들었고 이는 불만으로 이어진다. 심지어 혁명끝나고 장교중 절반이 도망쳐지자 그빈자리를 하사관이 매뀠다. 물론 당시 유럽군대는 이런 신분사회식이었다.(ex프로이센) 근데 뭐어쩌라는건가 혁명이 프랑스에서일어났지 프로이센에서 일어났나?
여튼 더 추가하자면 당시 파리 군인들은 지금처럼 뭐 어디 주둔지안에서만 먹고자고생활하지않았다. 병사들은 파리시내에서 노는게 가능했으며 평민 출신의 병사들은 당연히 평민있는데서 놀았다. 이는 곳 혁명사상이 병사들에게 쉽게 주입돼는꼴을 낳았다. 당시엔 지금처럼 봉급도 제대로 못받아서 부업으로 생계꾸리는 병사들도 많았거든
그리고 이게 병사들이랑 친한 하사관들한테까지 퍼진다.
그리고 이런 사상에 덜 노출됀 왕실을 경비하는 병사들도 사정이더 병신같았는데 프랑스는 전에 천조국 독립전쟁 지원한다고 왕실 무기고에있던 머스킷 10만정을 천조국에증여했다. 뭔소리냐면 혁명당시 왕실무기고는 텅텅 비어있었다는거지 당시 10만정이면 조온나게 많은 양이었다.
장교와 병,하사관간 유대부족 + 혁명에 쉽게 노출될 수 밖에없는 병, 하사관들 + 왕실 무기부족 + 이런상황에대한 대처미비 + 평민출신인 군인ㄷ기타등등의 사유로 결국 파리내 군인들도 혁명파에가담한다.
어느정도냐면 발포명령을 받은애들이 조까 하고 장교한테 반기를 들거나, 친히 대포를 끌고나와 혁명에 합류하는 일까지 벌어젔다.
ㅈ된거지
결국이런 군대의 등돌림은 혁명이 성공하는데 크나큰 일조를한다.
루머
| “ | ” | |
— 장 자크 루소의 글을 악용한 어느 선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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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말은 앙투와네트가 아니라 적국 공주가 말했다나 뭐라나. 명품중독 김치녀라 불리는 앙투와네트는 오히려 역대 프랑스 여왕중에 검소한 여왕이었고 국민을 상당히 아꼈다고 한다. 닌자한테 칼빵맞아 뒤진 동방의 병신녀이나 최근에 여왕 자리 내어주신 애비 돌아가신 모 여왕 과는 클라스가 다르다고 할수있다.
ㄴ그럼 왜 죽인거임?
ㄴㄴ민중들의 분노가 향할 곳이 필요했으니까
ㄴㄴㄴ 일단 오스트리아 태생이 문제. 혁명때문에 간과되는데, 프랑스랑 오스트리아 사이가 안좋았음. 계승전쟁이니 뭐니 하면서 합스부르크 왕가와 부르봉 왕가는 척을 졌던 상태고 테레지아가 딸내미인 앙투아네트를 시집보내서야 외형적으로 갈등이 봉합된 형세. 그런데 어디까지나 외형적 봉합이라 혁명 이전부터 바게뜨 놈들은 앙투아네트를 향해 오스트리아 촌년, 오스트리아의 간첩이니 하면서 비아냥되기 일수였으니 혁명 이후엔 인식이 더 거지같아짐. 거기에 혁명 후 바렌느 배신 + 타국의 개입에 대한 불안의 꼴라보 이펙트가 터짐. 일단 왕실이 해외로 튈려고 했던거 자체가 당대 민중들에게 충격이었고 해외로 망명해서 외국 군을 끌어들이려고 했다는것도 문제. 마리 앙투아네트가 오스트리아 머가리 누나인건 알지?
ㄴㄴㄴㄴ처음엔 루이16세를 필두로 입헌 군주정을 구성하려고 했다. 근데 위에 기술했듯이 외국으로 도망치다 바렌느에서 한 백성의 밀고로 잡힌다. 이것 때문에 "아 이놈은 입헌군주 시켜줘도 뒤통수 때리겠구나" 하고 혁명 세력이 판단한거지. 물론 마녀사냥감이 필요하긴 했다. 그런데 재밌는건 이당시 오스트리아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강대국이였고 변변한 장교 하나 없는 프랑스 혁명 세력은 무슨 깡이였는지 그 강대국 오스트리아 황제의 누님을 날려버린다. 이것때문에 당연히 합스부르크 왕가와 한판 제대로 붙지. 그리고 제법 검소한 편인것도 맞고 역사가 기술한 수준의 악녀는 아니였지만 결국 얘는 합스부르크 왕가 일원에다가 부르봉 왕조에 시집간 골수 왕당파, 기득권 세력이였다. 국경 넘어 도망치려고 했던것 자체가 혁명 세력에 위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