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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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8일 (수) 17:5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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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이집트뽕 틀:갓집트

▲△ 수싀 시 숫서슷 세소삿시사? ▲△
◀◁ 삿삿시 세소사서 사싯 시 숫서세 사사섯섯 사시 싰서싯시사? ▷▶
◀◁ 숫시 세소사샷 숫서사서사소 시시쉬시세섯 샛싯시시 샀슷시사? ▷▶
주의! 이 글이 다루는 대상은 존나 미스터리합니다.
씨ㅡ발 뭐가 뭔지 몰?루겟소요. 무섭습니다. ㅠㅠ

틀:너무큼

설명

이집트 파라오들의 무덤.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세계 최대 피라미드인 이집트 쿠푸아재의 피라미드는 2.5톤 무게의 사각돌이 300만개가 사용됐다고 한다... 씨발 그런 꼬추 새끼 하나를 위해서 10만 명의 인원이 투입되었다고 여겨진다 - 근데 이건 요즘 개소리로 밝혀졌고 똑똑한 이집트 사람들이 경사로를 일찌감치 활용해 4000명 정도의 인원이면 충분히 만들 수 있었댄다. 여담으로 돌 조달해 오는 건 석재 생산지에서 돌 틈에 나무쐐기 박아넣고 물 부어서 쐐기를 팽창시키는 간단한 방법으로 절개해 와서(양놈들이 실제 실험으로 인증) 나일강으로 실어왔다고 한다.

ㄴ4천명이면 존나 대단한거다. 헬조선 한 학교 총 인원이 약 800~1000명 정도인데 저 정도 크기를 학교 4~5개분 정도만 갈아 넣는걸로 만들 수 있었다면 ㅎㄷㄷ 심지어 현대에 돌 옮기는 방법과 절개 방법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외계인이 지었다며 온갖 흑색선전들이 나돌았는데 4000년 전 닝겐들이 이 꼬라지를 봤다면 부탁을 랄! 칠 노릇이다

피라미드를 지을 때 노예노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죽어나갔을 거라 생각하기 십상인데, 의외로 피라미드 건축에 동원된 노동자들은 임금도 잘 받고 대우도 좋았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피라미드 건축이 뉴딜 사업과 같은 거라고도 한다. 노동조건 안 맞으면 파업하고 고발도 가능했다. 헬조선 같으면 어디서 파업따위 하냐고 바로 용역깡패 부르고 손해배상 청구 때렸을텐데.

ㅡㅡ피라미드를 노예들이 지었다는 썰은 지네 나와바리에 선진 고대문명이 없어 열폭하던 양놈들의 흑색선전 비스무리한거다. 한국의 고려장같은?

실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집트 노예의 모습, 특히 개독 영화 등에 자주 나오는 채찍질 같은 것도 사람을 뚜까뚜가 하는게 아니라 휘칙! 휘칙! 거리는 찰진 소리로 기합이나 박자를 맞추기 위한 도구로 썼다는 말도 있다. 물론 채찍 자체는 상황에 따라 패죽이는 목적으로 썼을 가능성도 크다만...

아직 내부 구조를 100% 밝혀내지는 못했다고 한다.

피라미드로봇탐사영상

놀랍게도 경남에는 21세기에 지어진 피라미드가 있다고 한다.

단점으로는, 이렇게 눈에 띄게 떡하니 지어놔서, 신과 같은 파라오고 지랄이고 부장품을 노린 도굴꾼들이 득시글댔다고 한다[1]. 심지어 현재 쿠푸의 피라미드 입구는 정식 입구가 아니라 도굴꾼들이 뚫어놓은 통로이다. 특히 이 쿠푸의 대피라미드는 워낙 거대하고 임팩트가 크다보니 수천년동안 도굴꾼들의 심심하면 털러오는 그야말로 공동변소같은곳이라 그 거대한 피라미드를 남겼음에도 관련 유물이 ㄹㅇ 좆만한 인형 하나밖에 안남았다. 나머지는 싹 다 털림

그래서 나중엔 피라미드 대신 '왕가의 계곡'과 같이 어디 으슥한 계곡 같은 데에 몰래 묻는 방식이 사용됐지만 털릴 무덤은 털렸다. 거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게 투탕카멘의 무덤. 사실 투탕카멘 무덤은 너무 개방된곳에 존재해서 처음 발굴하러 들어간 발굴팀도 당연히 도굴됐겠지 ㅋ 하면서 들어갔는데 쉬벌 문을 열어보니까 안에 황금이며 도자기며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피라미드에 낙서된 노동자들의 삶

아 마누라한테 바가지 긁힘..
파라오님아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오늘은 쉽니다.
파라오님아 저 전갈한테 물려서 아프니까 일주일 쉬다오겠음
저는 형이 죽어서 미라로 만들어야하니까 쉼 ㅅㄱ

위 처럼과 같이 감독관과 싸워서 며칠동안 안나갔다가 마누라한테 바가지 긁히고 술먹어서 꽐라가 되는 등 예나 지금이나 거의 똑같다. 먹어서 가되는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고 미래 되어도 똑같을 듯.

아무튼 피라미드를 지은건 노예들이 아니라 엄연히 돈받고 일하는 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기록들을 보면 최초의 노동조합이 존재했음을 추측할수도 있다.

피라미드의 기원과 역사

피라미드 이전의 무덤양식

피라미드 이전 고대 이집트 왕족은 죽으면 마스타바라는 무덤에 묻혔다. 마스타바는 진흙벽돌로 건물을 짓고 밑에 매장실과 제사실이 있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최초의 피라미드의 탄생

그러다가 고왕국 시대가 열리고 3왕조가 시작되어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하나였던 조세르가 취임하자 조세르는 이전 파라오들처럼 관례적으로 취임하자마자 자신의 무덤인 마스타바를 축조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파라오의 무덤은 파라오가 취임하면서부터 임종할때까지 짓는게 관례였다. 단, 조세르는 이전 파라오들과 달리 자신의 위엄과 공덕을 과시하기위해 이전 마스타바들처럼 진흙 벽돌이 아닌 석조 마스타바를 지을 것을 명령한다.

그런데 조세르는 무려 20년을 통치하며 장수했다. 보통 이전 파라오들은 끽해야 9년 10년하고 뒤졌는데 조세르는 좀 오래 살았다. 그래서 이미 마스타바는 다 지어가는데 조세르가 생각보다 안뒤지니까 당시 수상이자 제사장이며 수학자이며 건축총괄자였던 임호테프(이모텝)가 남는시간동안 마스타바 위로 한층을 더 쌓고 또 쌓고 하다가 그래도 파라오가 안뒤지니까 폭도 넓혀보는 둥 계속 증축공사를 하였다. 그렇게 탄생한것이 최초의 피라미드였던 계단식 피라미드이다.

완벽한 피라미드 형태의 탄생

그러다가 4왕조가 시작되고 스네프루가 파라오로 취임했다. 그런데 이 스네프루는 욕심이 많은 파라오였는지 당시까지만 해도 이집트인들에게 신과 동일시되며 찬양받던 조세르를 뛰어넘고 싶어했다. 그래서 조세르보다 더 위대한 건축물을 지으려했다.

제일 처음 시도한것이 메이둠의 피라미드이다. 그런데 당시 아직 건축 기술이 부족했는지 이 피라미드는 무너져버렸다. 이 피라미드가 지을당시 무너졌는지 이후에 무너졌는지 정확하게는 알수없지만 아마 지을 당시에도 균열이 일어난다거나 무언가 문제가 생겼던것은 확실하다.

아무튼 이 피라미드가 실패하자 스네프루는 또다른 피라미드를 지으라고 명령한다. 이번에는 다슈르 지역에 지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기술적으로 계산을 잘못했는지 반쯤 지으니까 각도를 54도로 너무 크게 만들어서 하부가 불안정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해서 또 무너지게 생긴것이다. 그러자 스네프루는 각도를 줄여서라도 완성하라고 했고 43도로 줄여서 완공했다. 그 결과 상부와 하부의 각도가 다른 피라미드가 지어졌다.

근데 이 스네프루는 아직도 만족을 못해서 이 굴절피라미드도 버리고 또 피라미드를 지으라고 명령했다. 이번에도 다슈르 지역에 짓는데 처음부터 굴절피라미드의 상단부의 각도인 43도로 지으라고 명령했고 그것이 최초의 완전한 피라미드 형태인 붉은 피라미드이다. 그제서야 스네프루는 만족을 했다고 한다.

하나만 지어도 나라 국고가 바닥날정도로 빡센 공사인 피라미드 건설을 이새끼는 무려 3대나 지었던것이다! 이정도면 백성들이 들고 일어날만도 한데 스네프루는 성공했던것이다. 이는 그 당시 그만큼 왕권이 강력했음을 보여주며 또한 스네프루는 당시 농부들을 친구라고 부르며 항상 자신을 낮췄으며 자신의 원래 이름인 스네프루를 파라오 이름으로 사용할정도로 백성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섰고 신하들이 굴절 피라미드를 지을때 각도를 바꾸자는 조언을 흔쾌히 승낙할정도로 주변사람들의 말을 잘 귀담아듣고 수용할 정도로 성군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1. 실제로 이집트 때에도 피라미드를 털려던 도굴범들이 잡힌 기록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