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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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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홍명희의 친구사랑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는데, 6.25전쟁당시, 홍명희는 피난가던 이광수가 폐결핵+동상으로 오늘내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직접 이광수를 데리고 혹부리에게 사정을 해서 강계에 있는 병원으로 그를 이송 시켜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이 이광수는 병이 악회되어 죽었다고 한다.  
이러한 홍명희의 친구사랑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는데, 6.25전쟁당시, 홍명희는 피난가던 이광수가 폐결핵+동상으로 오늘내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직접 이광수를 데리고 혹부리에게 사정을 해서 강계에 있는 병원으로 그를 이송 시켜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이 이광수는 병이 악회되어 죽었다고 한다.  


저 정도로 인성이 훌륭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월북인사들이 혹부리의 혹에 눌려 죽고 있을 때, 드물게 혹부리에게 죽임을 당하진 않았다. 그냥 명예직만 가진 백수가 되었으며, 다른 '정상진'이란 간부가 홍명희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자 소련으로 추방시키는 것으로 끝났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은 1968년 자연사했다.  
저 정도로 인성이 훌륭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월북인사들이 혹부리의 혹에 눌려 죽고 있을 때, 드물게 혹부리에게 죽임을 당하진 않았다. 그냥 명예직만 가진 백수가 되었으며, 다른 '정상진'이란 간부가 홍명희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자 소련으로 추방시키는 것으로 끝났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은 1968년 자연사했다.
 
이사람의 손자가 경제정책 실패를 뒤집어씌운채로 처형당했다고 한다.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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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5일 (목) 22:1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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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청따리 숙청따~ 너 숙청!!

1888년 5월 23일~1968년 3웚 5일

<임꺽정>의 작가로 알려져 있는 소설가. 신간회 활동당시 좌파쪽의 대표를 맡았으며, 신간회의 2인자였다고 한다.

일데강점기 시절 이광수, 최남선과 함께 '조선 3대 천재'로 알려젔던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였다. 임꺽정을 쓰기위해 10여년을 자료조사에 매달렸을 정도로 치밀한 사람이었고, 임꺽정을 통해 일제강점기 좆본을 비판하려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광수, 최남선과는 매우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해방이후 월북을 해서 부수상,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동기관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성인

자기 친구들이 변절을 했음에도 절교를 하지 않고 진정한 벗이라 여겼으며 자신은 해방직전까지 변절을 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월북을 했음에도 남침을 반대하였다. 이러한 홍명희의 친구사랑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는데, 6.25전쟁당시, 홍명희는 피난가던 이광수가 폐결핵+동상으로 오늘내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직접 이광수를 데리고 혹부리에게 사정을 해서 강계에 있는 병원으로 그를 이송 시켜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이 이광수는 병이 악회되어 죽었다고 한다.

저 정도로 인성이 훌륭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월북인사들이 혹부리의 혹에 눌려 죽고 있을 때, 드물게 혹부리에게 죽임을 당하진 않았다. 그냥 명예직만 가진 백수가 되었으며, 다른 '정상진'이란 간부가 홍명희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자 소련으로 추방시키는 것으로 끝났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은 1968년 자연사했다.

이사람의 손자가 경제정책 실패를 뒤집어씌운채로 처형당했다고 한다.

기타

한국인 최초로'에스페란토'를 배웠으며 이걸 기념하기 위해 호를 '벽초'라고 했다. 그의 생가는 지금도 남아 있는데, 지금 괴산군이 관리하고 있다. 괴산군에서 이기붕과 더불어 유이한 최고 아웃풋이다,

2011년 쯤 핵돼지가 함경도 인민위원회에서 일하던 그의 손자를 숙청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