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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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 | -조선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 | ||
== 배경 == | |||
=== 헌병통치체제의 부식 === | |||
어제까지만 해도 11시 외국이었던 조선을 장악한 일본 제국이었지만 행정 전통과 문화 전통의 이질성이 통치의 장애물로 기능하고 있었고, 이러한 장애물에서 비롯되는 패널티를 보완하기 위해 헌병제도라는 무력통치적인 요소를 도입하였다. 이 요소를 조선에 도입하고 구축해놓은 자는 조선의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로, 그는 일본 육군원수 출신으로 쵸슈 번벌이었다. 조선 통치를 효과적으로 해낸 마사타케였지만, 1916년에 물러나면서 정치질을 하게 되면서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 |||
당시 조선은 일본육군의 거의 유일한 전리품이나 다름없었는데 실제로 일본제국이 조선병합이라는 결정을 내린건 육군을 축으로 하는 쵸슈번벌들의 입김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쵸슈 번벌의 육군출신인사가 아닌 다른 인물에게 육군의 전리품 조선을 넘겨주기 싫었고 그래서 퇴임당시 하세가와 요시미치를 제2대 조선총독으로 추천하게 된다.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러일전쟁 당시 수려한 통솔력으로 조선반도를 제압한 전력이 있는 장군이었다. 당시 하세가와는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평가가 그닥 좋은 인사가 아니었지만, 이러한 육군에서의 화려한 전적을 놓고볼때 평타 정도는 쳐줄거라고 데라우치가 기대한 듯 하다. | |||
하지만 총독으로 앉혀놓고보니 왠걸? 좆병신이었다. 일단 하세가와라는 인물 자체가 육군 이외의 기관에서는 지지기반이 없는 정치인이었는데다가, 뇌물수수를 좋아했기 때문에 평판이 좋지 않았고, 따라서 조선총독부의 고위 공무원들이 새로운 총독을 잘 따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일본 제국의 조선 통치근간이라고 할수있는 경찰력이 약화되기 시작하였고 따라서 통제가 느슨해져 죽창맨들이 일어설 환경이 마련되었다. | |||
=== 쌀 가격 폭등 ==== | |||
유럽 대륙의 인민들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곶통받는 와중에 일본은 유럽의 전쟁특수경기로 인하여 경제가 날아오르게 된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 광범위한 산업화가 진척되면서 대규모의 이농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이로 인해 쌀 공급량이 감소되어 쌀값이 폭등해버린다. 이 쌀값 폭등에 확 돌아버린 일본의 흙수저와 똥수저가 죽창을 들고 1918년에 쌀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였는데, 이 폭동이 어마무시한 수준이라 당시 일본의 내각이 이 폭동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할 정도였다.<ref>조선에서 산미증식계획이 입안된 것도 이 폭동의 영향이다.</ref> 이와 같은 쌀값 폭등은 당연히 일본과 경제가 연동되어있던 헬조선에도 영향을 미쳤고 따라서 헬조선의 흙수저들도 부들부들하고 있었다. 먹고 살기 더러울때 폭동이 일어난다는건 역사적인 진리다. ㅇㄱㄹㅇ ㅂㅂㅂㄱ | |||
== 팩트 역갤의 입장== | == 팩트 역갤의 입장== | ||
2015년 9월 15일 (화) 17:39 판
1919년 3월 1일 발생한 독립 운동. 닛폰새끼들 한테 성질낸 날이라고 할 수 있다 3.1운동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은 민족억압정책을 내세웠지만 우리나라 인구 10분의 1이 이 운동에 참여하자 밟기만 하면 안된다 라는 생각으로 1920년 문화통치를 선포하여 조선총독에 무관이 아닌 문관이 임명될거라 말했지만, 1945년 일본 패망 때까지 실제 문관 총독이 부임한 적은 없다. 급식충들이 삼점일운동이라고 읽어서 혈압을 올려줄 때도 있다.
“3.1 운동은 어 그거는 태극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그 폭동이야. 어 그러니까 일본군이기 때문에 일본군이 진압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조선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
배경
헌병통치체제의 부식
어제까지만 해도 11시 외국이었던 조선을 장악한 일본 제국이었지만 행정 전통과 문화 전통의 이질성이 통치의 장애물로 기능하고 있었고, 이러한 장애물에서 비롯되는 패널티를 보완하기 위해 헌병제도라는 무력통치적인 요소를 도입하였다. 이 요소를 조선에 도입하고 구축해놓은 자는 조선의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로, 그는 일본 육군원수 출신으로 쵸슈 번벌이었다. 조선 통치를 효과적으로 해낸 마사타케였지만, 1916년에 물러나면서 정치질을 하게 되면서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당시 조선은 일본육군의 거의 유일한 전리품이나 다름없었는데 실제로 일본제국이 조선병합이라는 결정을 내린건 육군을 축으로 하는 쵸슈번벌들의 입김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쵸슈 번벌의 육군출신인사가 아닌 다른 인물에게 육군의 전리품 조선을 넘겨주기 싫었고 그래서 퇴임당시 하세가와 요시미치를 제2대 조선총독으로 추천하게 된다.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러일전쟁 당시 수려한 통솔력으로 조선반도를 제압한 전력이 있는 장군이었다. 당시 하세가와는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평가가 그닥 좋은 인사가 아니었지만, 이러한 육군에서의 화려한 전적을 놓고볼때 평타 정도는 쳐줄거라고 데라우치가 기대한 듯 하다.
하지만 총독으로 앉혀놓고보니 왠걸? 좆병신이었다. 일단 하세가와라는 인물 자체가 육군 이외의 기관에서는 지지기반이 없는 정치인이었는데다가, 뇌물수수를 좋아했기 때문에 평판이 좋지 않았고, 따라서 조선총독부의 고위 공무원들이 새로운 총독을 잘 따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일본 제국의 조선 통치근간이라고 할수있는 경찰력이 약화되기 시작하였고 따라서 통제가 느슨해져 죽창맨들이 일어설 환경이 마련되었다.
쌀 가격 폭등 =
유럽 대륙의 인민들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곶통받는 와중에 일본은 유럽의 전쟁특수경기로 인하여 경제가 날아오르게 된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 광범위한 산업화가 진척되면서 대규모의 이농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이로 인해 쌀 공급량이 감소되어 쌀값이 폭등해버린다. 이 쌀값 폭등에 확 돌아버린 일본의 흙수저와 똥수저가 죽창을 들고 1918년에 쌀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였는데, 이 폭동이 어마무시한 수준이라 당시 일본의 내각이 이 폭동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할 정도였다.[1] 이와 같은 쌀값 폭등은 당연히 일본과 경제가 연동되어있던 헬조선에도 영향을 미쳤고 따라서 헬조선의 흙수저들도 부들부들하고 있었다. 먹고 살기 더러울때 폭동이 일어난다는건 역사적인 진리다. ㅇㄱㄹㅇ ㅂㅂㅂㄱ
팩트 역갤의 입장
역갤에선 3.1 운동을
5.18 광주 운동과 광우병 폭동을 합친 꼴로 보고있다
실제로 역갤에서 물어보면 그렇게 답할 가능성이 높다 . 팩트는 개한테 줘버린지 오래인듯
- ↑ 조선에서 산미증식계획이 입안된 것도 이 폭동의 영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