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E 1915 쇼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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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해결을 했다고 본다. 무게가 기관총으로는 상당히 가벼운 약 9.1킬로그램 정도라서 각개 병사가 휴대하여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발들이 탄창을 이용하여 부사수의 도움 없이도 사격을 할 수 있었고, 숙련된 사수라면 돌격하면서 난사도 가능했다.''' 그러나 작전에 투입되려면 탄약을 휴대하는 별도의 병사가 필요했으므로 보통 3~4명이 한 조를 이루어 전투를 이루었다. |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해결을 했다고 본다. 무게가 기관총으로는 상당히 가벼운 약 9.1킬로그램 정도라서 각개 병사가 휴대하여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발들이 탄창을 이용하여 부사수의 도움 없이도 사격을 할 수 있었고, 숙련된 사수라면 돌격하면서 난사도 가능했다.''' 그러나 작전에 투입되려면 탄약을 휴대하는 별도의 병사가 필요했으므로 보통 3~4명이 한 조를 이루어 전투를 이루었다. | ||
'''이 경기관총의 본격적인 양산은 1차대전이 발발한 이듬해인 1915년부터 시작되었다.''' 이때 군 당국이 붙인 정식 명칭은 'Fusil-Mitrailleur Mle 1915 SCRG'라는 긴 이름인데(프랑스다운 쓸데없이 긴 이름), 이를 줄여서 'Mle 1915' 또는 'M1915 CSRG'라고 했다. 하지만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흔히 '''쇼샤''라고 불리는데, 이렇게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것은 프랑스 무기 체계에서는 보기 드문일이었다. 전쟁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대량생산 된 쇼샤는 전선에 바로 공급되어 분대지원 화기로 활약했다.'''(말이 활약이지 사실 병사들 암세포만 증가시켰다. 그이유를 보자)''' | '''이 경기관총의 본격적인 양산은 1차대전이 발발한 이듬해인 1915년부터 시작되었다.''' 이때 군 당국이 붙인 정식 명칭은'Fusil-Mitrailleur Mle 1915 SCRG'라는 긴 이름인데(프랑스다운 쓸데없이 긴 이름), 이를 줄여서 'Mle 1915' 또는 'M1915 CSRG'라고 했다. 하지만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흔히 '''쇼샤''라고 불리는데, 이렇게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것은 프랑스 무기 체계에서는 보기 드문일이었다. 전쟁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대량생산 된 쇼샤는 전선에 바로 공급되어 분대지원 화기로 활약했다.'''(말이 활약이지 사실 병사들 암세포만 증가시켰다. 그이유를 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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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일 (월) 13:27 판
1차 세계 대전에 쓰였던 프랑스의 경기관총
최악의 총
| 주의.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너무나도 쓰레기 같습니다. 이 쓰레기는 쓰레기보다 더 쓰레기 같아서 쓰레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이 문서 보고 쓰레기 생각한 당신, 당장 쓰레기한테 사과해. |
참고로 이 총은 프랑스총이다.
하도 똥이라고 평가받던 아리사카와 SA80 그리고 미네베아 PM-9이전에 존재한 쓰레기 같은 무기였다.
말 안해도 얼마나 최악일까? 밑의 글에서 알아보자.
개요
교전 중에 툭하면 고장을 일으키는 일이 다반사인 무기를 들고 싸울 수 있는 군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무기를 원하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원래 목적대로 사용할 수 없는 무기는 이미 무기라 볼 수 없고 무거운 짐덩이일 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이 만들어지고, 싫다는데도 사용을 강요한다면 일선 병사들에게는 그야말로 상고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무기가 있었다(?!).
프랑스의 새로운 공냉식 기관총
19세기 말이 되자 전통의 육군 강국인 프랑스는 장차전에서 기관총이 중요한 무기가 될 것임을 확신하고 도입을 서들렀다. 독일/영국/러시아 등 당시 주변의 군사대국들이 맥심 기관총이나 그 변형 제품을 채택한 것에 반하여, 독자적인 무기 개발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프랑스는 'Mle 1897', 'Mle 1900'처럼 자국산 호치키스 기관총을 주력으로 채택했다.
전자가 수냉식인데 비해 프랑스의 기관총은 공냉식이어서 야전에서 사용이 보다 편리했다. 하지만 이들 초기의 기관총은 냉각방식과 상관없이 대개 중량이 20킬로그램이 넘는 무거운 장비여서 이동과 배치가 만만치 않았다. 또한 사격을 하게되면 충격을 흡수 할 수 있는 단단한 거치대를 사용해야 했다. 이 때문에 1차대전 당시에 기관총은 진지에 고정하여 사용하는 방어용 무기였다.
그렇다보니 공격을 시작했을 때 보병을 따라다니며 근접 지원사격을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기관총이 절실했다. 바로 휴대와 사용이 간편한 경기관총이었다. 프랑스군은 조병창 시설을 이용하여 1903년부터 직접 개발에 나선다. 이때 개발을 주도한 것은 프랑스 육군의 '루이 쇼샤 중령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좋은 성능
미국의 존 브라우닝이 1906년 완성한 레밍턴 모델 8형 반자동 소총에 적용된 롱리코일 방식과 여기에 가스작동식을 추가했다. 프랑스군의 기존 제식 탄환인 8x50mm 레벨(Lebel)탄을 사용했는데, 1908년 프로토타입(초기) 모델이 완성되었다. 새롭게 등장한 경기관총은 유효사거리가 약 200미터로 그다지 긴 수준은 아니었고, 분당 200발 수준인 둔한 발사 속도도 기관총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해결을 했다고 본다. 무게가 기관총으로는 상당히 가벼운 약 9.1킬로그램 정도라서 각개 병사가 휴대하여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발들이 탄창을 이용하여 부사수의 도움 없이도 사격을 할 수 있었고, 숙련된 사수라면 돌격하면서 난사도 가능했다. 그러나 작전에 투입되려면 탄약을 휴대하는 별도의 병사가 필요했으므로 보통 3~4명이 한 조를 이루어 전투를 이루었다.
'이 경기관총의 본격적인 양산은 1차대전이 발발한 이듬해인 1915년부터 시작되었다. 이때 군 당국이 붙인 정식 명칭은'Fusil-Mitrailleur Mle 1915 SCRG'라는 긴 이름인데(프랑스다운 쓸데없이 긴 이름), 이를 줄여서 'Mle 1915' 또는 'M1915 CSRG'라고 했다. 하지만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흔히 쇼샤라고 불리는데, 이렇게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것은 프랑스 무기 체계에서는 보기 드문일이었다. 전쟁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대량생산 된 쇼샤는 전선에 바로 공급되어 분대지원 화기로 활약했다.(말이 활약이지 사실 병사들 암세포만 증가시켰다. 그이유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