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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독일군]]은 이새끼가 전기톱 주제에 기관총으로서 성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MG3로 개조 후 사용중이다. | 현대 [[독일군]]은 이새끼가 전기톱 주제에 기관총으로서 성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MG3로 개조 후 사용중이다. | ||
== | ==개요== | ||
기관총이 최고의 살상무기로 악명을 날린 때느 1차대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최초의 중기관총이라 할 수 있는 '''[[맥심]] 기관총'''은 동맹국이건 연합국이건 상관없이 최전선에서 거점 방어를 위한 화력지원용 병기로 널리 사용되면서 참호전의 꽃으로 그 명성을 남겼다. 상대편 참호를 향하여 달려드는 병사들이 기관총 세례를 받고 죽어나가는게 전선의 일상이었따. | 기관총이 최고의 살상무기로 악명을 날린 때느 1차대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최초의 중기관총이라 할 수 있는 '''[[맥심]] 기관총'''은 동맹국이건 연합국이건 상관없이 최전선에서 거점 방어를 위한 화력지원용 병기로 널리 사용되면서 참호전의 꽃으로 그 명성을 남겼다. 상대편 참호를 향하여 달려드는 병사들이 기관총 세례를 받고 죽어나가는게 전선의 일상이었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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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조약으로 [[독일]]은 탄띠 급탄식 중기관총의 개발과 보유는 금지당했지만 탄창식 경기관총의 개발은 가능했다. [[독일]]은 이러한 베르사유 조약의 구멍을 이용해 탄창식 기관총의 개발과 더불어 중립국 '''[[스위스]]의 총기회사를 인수하여 현지에서 유사시 탄띠식으로도 개량이 가능한 기관총 개발에 나서게 되었고, [[독일]]의 재무장 선언 전인 1934년 이를 비밀리에 제식화하는데 성공했다!''' | 비록 조약으로 [[독일]]은 탄띠 급탄식 중기관총의 개발과 보유는 금지당했지만 탄창식 경기관총의 개발은 가능했다. [[독일]]은 이러한 베르사유 조약의 구멍을 이용해 탄창식 기관총의 개발과 더불어 중립국 '''[[스위스]]의 총기회사를 인수하여 현지에서 유사시 탄띠식으로도 개량이 가능한 기관총 개발에 나서게 되었고, [[독일]]의 재무장 선언 전인 1934년 이를 비밀리에 제식화하는데 성공했다!''' | ||
==역사== | |||
'''이렇게 탄생한 기관총이 MG32인데 겉모양이나 무게로만 보았을 때는 맥심과 같은 중기관총과는 거리가 멀었고, 사수와 부사수 정도의 적은 인원으로 쉽게 이동 및 설치할 수 있어 일선 소부대에서 사용이 가능했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기관단총이나 경기관총이 흉내 낼 수 없는 강력한 화력과 연사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실전에 투입하자 예기치 못한 불편한 점들이 속속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 |||
MG34는 공냉식이었으므로 총열을 자주 교환해 주어야 했는데 구조가 불편한 탓에 야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더불어 먼지나 진흙 등의 가혹한 환경에서 쉽게 오작동을 일으키곤 했따. 거기에 복잡한 생산 공정으로 인하여 단가가 높아 대량 보급하기에도 부적합했다. 곧 '''요하네스 그로스푸스 사'''의 주도로 MG34 의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 |||
이때 [[독일군]] 당국은 신형 중기관총의 개발 방향을 정했는데 이것은 이후 '''SAW(분대지원용 자동화기)'''와 같이 현대의 다목적기관총에도 적용하는 규칙이 되었다. | |||
이러한 목표를 세워두고 새로운 기관총을 개발 중이던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폴란드 엔지니어인 '''에드바르트 슈테케'''가 개발하여 기관총의 구조를 단순화하고 연사속도를 증대시킬 수 있는 '롤러로킹 방식' 기술을 확보하게 되었다. 독일은 이를 적용해 화력을 강화하는데 성공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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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일 (일) 19:33 판
기관총의 모습을 한 독일의 전기톱이다.
그래서 히틀러의 전기톱이라고 불리며 라이언 일병 구하기 첫부분에 연합군들을 녹여버리는게 바로 요녀석이다
현대 독일군은 이새끼가 전기톱 주제에 기관총으로서 성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MG3로 개조 후 사용중이다.
개요
기관총이 최고의 살상무기로 악명을 날린 때느 1차대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최초의 중기관총이라 할 수 있는 맥심 기관총은 동맹국이건 연합국이건 상관없이 최전선에서 거점 방어를 위한 화력지원용 병기로 널리 사용되면서 참호전의 꽃으로 그 명성을 남겼다. 상대편 참호를 향하여 달려드는 병사들이 기관총 세례를 받고 죽어나가는게 전선의 일상이었따.
그런데 당시까지만 해도 맥심기관총은 별도로 편제된 기관총 중대에서 운용하던 중화기였다. 기관총 자체 무게만도 30킬로그램 가까이 나가는데 부속장비로 인하여 대개 4~6인이 팀을 이루어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신속한 이동과 배치가 쉽지 않아 최일선 부대와 동시에 작전을 평치는데 제약이 많았고, 따라서 중대 이하의 제대에서 보유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당시 중기관총은 주로 참호에 고정하여 사용하는 방어용 무기였다. 이것은 참호전에서 공격자가 불리 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현재 돌격소총처러무 연사력과 화력이 좋은 무기를 공격하는 보병들이 휴대할 수 없었으므로 당시에는 당연히 기관총을 난사하는 방어자가 훨씬 유리했다. 때문에 종전 후 승전국들이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의 군비를 제한할 때 중기관총의 보유를 금지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비록 조약으로 독일은 탄띠 급탄식 중기관총의 개발과 보유는 금지당했지만 탄창식 경기관총의 개발은 가능했다. 독일은 이러한 베르사유 조약의 구멍을 이용해 탄창식 기관총의 개발과 더불어 중립국 스위스의 총기회사를 인수하여 현지에서 유사시 탄띠식으로도 개량이 가능한 기관총 개발에 나서게 되었고, 독일의 재무장 선언 전인 1934년 이를 비밀리에 제식화하는데 성공했다!
역사
이렇게 탄생한 기관총이 MG32인데 겉모양이나 무게로만 보았을 때는 맥심과 같은 중기관총과는 거리가 멀었고, 사수와 부사수 정도의 적은 인원으로 쉽게 이동 및 설치할 수 있어 일선 소부대에서 사용이 가능했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기관단총이나 경기관총이 흉내 낼 수 없는 강력한 화력과 연사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실전에 투입하자 예기치 못한 불편한 점들이 속속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MG34는 공냉식이었으므로 총열을 자주 교환해 주어야 했는데 구조가 불편한 탓에 야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더불어 먼지나 진흙 등의 가혹한 환경에서 쉽게 오작동을 일으키곤 했따. 거기에 복잡한 생산 공정으로 인하여 단가가 높아 대량 보급하기에도 부적합했다. 곧 요하네스 그로스푸스 사의 주도로 MG34 의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이때 독일군 당국은 신형 중기관총의 개발 방향을 정했는데 이것은 이후 SAW(분대지원용 자동화기)와 같이 현대의 다목적기관총에도 적용하는 규칙이 되었다.
이러한 목표를 세워두고 새로운 기관총을 개발 중이던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폴란드 엔지니어인 에드바르트 슈테케가 개발하여 기관총의 구조를 단순화하고 연사속도를 증대시킬 수 있는 '롤러로킹 방식' 기술을 확보하게 되었다. 독일은 이를 적용해 화력을 강화하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