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시기를 잘못 잡은 총=
| |
| [[파일:sks.jpg|800px]]
| |
| ==역사==
| |
| '''1945년 [[SVT-40]]을 대신할 새로운 반자동 소총이 요구되자 [[SVT-40]]의 개발자인 '세르게이 시모노프'가 개발한 소총이다.''' 총신 상부의 실린더에 가스르 보내 노리쇠를 후퇴시키는 가스작동식으로, 화약이 감소된 탄을 사용하다 보니 파괴력은 조금 줄었지만 문제되는 수준은 아니었고 유효사거리도 동일했다. 여기에 대용량 탄창을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10발 클립도 사용할 수 있어 범용성을 높였다. 적삭가공 방식으로 생산하여 대량생산에는 불리한 반면 내구성은 좋았다.
| |
|
| |
|
| 시제품은 군 당국으로부터 신뢰성과 내구성이 최고라는 대호평을 받았고, 1946년부터 제식화기로 대량 보급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동구권에 급속히 공여되었으면 여러 나라에서 카피 생산을 했다. 특히 중국은 ;56식 소총'이라 명명하여 주력 소총으로 채택했다. 전 세계에서 생산한 수량을 약 1,500만정으로 추정하는데 2차대전 당시에 사용된 SVT-40의 생산량이160만정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SKS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 |
|
| |
| 자료마다 다르지만 상당수의 SKS가 6.25전쟁 당시에 공산군에 공급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당시 국군도 M1개런드를 사용했으므로 교전 시에 특별히 전력 우위를 점유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북한도 '63식 소총'이라는 이름으로 복제하여 오랫동안 사용한 SKS의 주요 사용자였다. 이처럼 SKS는 6.25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처럼 여러 지역 분쟁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대표적인 소총이었다.
| |
|
| |
| ==신속한 퇴장==
| |
| 그런데 이처럼 뛰어난 소총이 불과 2년만에 소련군 제식무기에서 내려오는 수모를 겪었다. 결정적인 결함이 뒤늦게 발견되어 그런 것이 아니라 시쳇말로'함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대상이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 총기 역사를 바꾼 AK-47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사실 1944년 독일군이 전선에 등장시킨 StG44는 앞으로 보병용 소총이 얼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알려준 시금석이었지만 SKS는 새로운 트랜드를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 |
|
| |
| 같은 시대에 AK-47이 있었다는 것은 SKS에게 한마디로 불행이었다. 흠잡을 데 없이 좋은 총이었지만 반자동소총이 돌격소총과 함께할 수는 없는일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79년에 벌어진 중월전쟁이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현대화에 실채한 중공군은 병력의 우위만 믿고 베트남을 침공했다. 하지만 SKS 로 무장한 중공군은 AK-47로 무장된 베트남군에게 엄청난 수모를 겪었다.
| |
| [[파일:sks_2.jpg]]
| |
| 같은 총탄이라도 어떤 총에서 사용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음을 보여준 증거였다. 소련군이 채택한 지 불과 2년밖에 되지도 않았던 SKS를 과감히 도태시킨 것도 이런 성능 차이 때무니었다. 또한 이는 SKS의 일선 보급량이 많지 않아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만일 2차대전 때에 태어났다면, 아니면 AK-47이 10년만 늦게 태어났다면 한 시대를 충분히 풍미했을 만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사라진 소총이 바로 SKS다.
| |
|
| |
| ==제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