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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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두산 베어스]] 소속의 야구선수이자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그리고 시대를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야구 대통령. | |||
중대초-배명중-배명고-고려대학교를 거쳐 1998년 [[OB 베어스]]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 |||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우승 멤버로 병역 특례를 받았으며, 이후 심정수, 타이론 우즈, 그리고 심재학과 함께 베어스의 막강 클린업을 구성하였다. | |||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도 유례없는 강한 우타자였으며, 최고의 3루수라는데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이의가 없으나, 뇌가 [[노릇노릇]]하게 불탄 모 지역 팬들은 [[김한수]]따위를 들이밀며, 심지어는 타격 성적에서 도저히 비교가 불가한데도 당시 있었던 큰 화재의 영향인지 유독 저열했던 기자단 투표에 의해 통한수에게 골든글러브를 수차례 내주어야 했다. | |||
이런 간계와 모략에도 불구하고 김동주는 강력한 베어스의 야수진을 대표하는 4번 타자로 10년 넘게 활약하였다. 하지만 2012년 이후 노쇠화로 인한 성적 저하가 왔고, 평소 불의를 참지 못하는 그의 정의로운 성품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범죄두 프론트는 [[김진욱]]을 앞세워 김동주 죽이기에 나섰다. 김동주는 결국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2014년 11월 20일, 새로운 기회를 얻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정든 베어스에 방출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그는 93년 배명고 4번 타자, 그리고 베어스 두목곰의 자존심을 끝내 꺾지 못했고, 그에게 타협을 요구하는 타 구단의 소인배적 행태에 부당하다는 의견을 표명하며 아름답게 은퇴를 선언한다. | |||
==간통주== | |||
김동주가 은퇴하던 날, 전국의 야구 팬들이 북한산에 모여 제사를 지내며 목놓아 꺼이꺼이 울었는데, 그 눈물이 모여 산골을 타고 흐르며 강을 이루었다는 전설이 있다. | |||
이 이야기에서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澗(산골물 간) 慟(서럽게 울 통), 그리고 김동주의 주를 따 간통주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 |||
==사회운동== | |||
커리어 상에 큰 오점이었던 것이 간통 사건인데, 이는 단순히 바람을 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원시적이며 시대착오적인 규약에 던지는 계몽주의자 김동주의 저항정신으로 보아야 한다는것이 지식인층의 중론이다. 그리고 2015년 실제로, 김동주를 필두로 한 지식인들의 저항운동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간통죄가 위헌 판결을 받아 폐지 됐다. 비로소 김동주의 간통에 대한 재평가의 바람이 불고 있다. | |||
2015년 6월 1일 (월) 19:05 판
전 두산 베어스 소속의 야구선수이자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그리고 시대를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야구 대통령.
중대초-배명중-배명고-고려대학교를 거쳐 1998년 OB 베어스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우승 멤버로 병역 특례를 받았으며, 이후 심정수, 타이론 우즈, 그리고 심재학과 함께 베어스의 막강 클린업을 구성하였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도 유례없는 강한 우타자였으며, 최고의 3루수라는데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이의가 없으나, 뇌가 노릇노릇하게 불탄 모 지역 팬들은 김한수따위를 들이밀며, 심지어는 타격 성적에서 도저히 비교가 불가한데도 당시 있었던 큰 화재의 영향인지 유독 저열했던 기자단 투표에 의해 통한수에게 골든글러브를 수차례 내주어야 했다.
이런 간계와 모략에도 불구하고 김동주는 강력한 베어스의 야수진을 대표하는 4번 타자로 10년 넘게 활약하였다. 하지만 2012년 이후 노쇠화로 인한 성적 저하가 왔고, 평소 불의를 참지 못하는 그의 정의로운 성품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범죄두 프론트는 김진욱을 앞세워 김동주 죽이기에 나섰다. 김동주는 결국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2014년 11월 20일, 새로운 기회를 얻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정든 베어스에 방출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그는 93년 배명고 4번 타자, 그리고 베어스 두목곰의 자존심을 끝내 꺾지 못했고, 그에게 타협을 요구하는 타 구단의 소인배적 행태에 부당하다는 의견을 표명하며 아름답게 은퇴를 선언한다.
간통주
김동주가 은퇴하던 날, 전국의 야구 팬들이 북한산에 모여 제사를 지내며 목놓아 꺼이꺼이 울었는데, 그 눈물이 모여 산골을 타고 흐르며 강을 이루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이야기에서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澗(산골물 간) 慟(서럽게 울 통), 그리고 김동주의 주를 따 간통주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사회운동
커리어 상에 큰 오점이었던 것이 간통 사건인데, 이는 단순히 바람을 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원시적이며 시대착오적인 규약에 던지는 계몽주의자 김동주의 저항정신으로 보아야 한다는것이 지식인층의 중론이다. 그리고 2015년 실제로, 김동주를 필두로 한 지식인들의 저항운동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간통죄가 위헌 판결을 받아 폐지 됐다. 비로소 김동주의 간통에 대한 재평가의 바람이 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