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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평읍 ====
==== 남평읍 ====


신라때 주마다 정을 하나씩 두었는데, 전남일대에 설치된 무진주엔 이곳에 미동부리정을 두었다.
'''南平邑'''


舊남평군의 중심지이다. [[문재인|차마 말할 수 없는 그분]]의 본관인 남평문씨가 이곳을 관향으로 삼았다.  
면적 54.26㎢. 읍소재지는 남평리.  


남평군은 남평읍, 산포면, 금천면, 빛가람동, 봉황면, 다도면에 있었다.
남평(南平), 대교(大橋), 동사(東舍), 교촌(橋村), 교원(校院), 서산(書山), 오계(五溪), 상곡(上谷), 우산(雨山), 남석(藍石), 풍림(楓林), 노동(蘆洞), 광촌(光村), 수원(水院), 광리(光利), 평산(平山)의 16개리를 관할한다.
 
[[백제]]이전까지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이라 불렸고 [[신라]] [[문무왕]]이 삼국통일이후 [[나주|발라주]]를 폐지, [[광주|무진주]]를 설치함에 따라 무진주의 속현이 되었다. 무진주의 속현이 된 이후 10정중 하나인 미동부리정이 설치되었다.
 
757년 현웅현(玄雄縣)으로 개명되었다. 고려초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고 나주의 속현이 되었다. 1172년 감무가 파견되면서 주현으로 독립했지만 1390년 [[화순군|화순]]에 통폐합되었다. 1394년 다시 감무가 파견되었고 1413년 감무가 현감으로 바뀌면서 현감이 차지하는 주현이 되었다. 또한 도민부곡(道民部曲), 운곡소(雲谷所), 철야현(鐵冶縣)을 통폐합했다.
 
조선시대때 본읍의 교원리, 교촌리, 남평리, 대교리, 동사리, 서산리는 '''군내면(郡內面)''', 광이리, 광촌리, 남석리, 노동리, 수원리, 평산리, 풍림리는 '''동촌면(東村面)''', 상곡리, 오계리, 우산리는 '''저포면(猪浦面)'''에 속했다.
 
1914년 남평군 군내면 + 동촌면 + 저포면 = 남평면이 되었다. 1995년 3월 1일 남평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중봉산(中蜂山)과 정광산(淨光山)솟아 있고, 산지 사이로 지석강이 흐르면서 광활한 남평평야가 발달했지만 본읍은 변두리에 해당한다.
 
왕년에  남평숯이 단단하고 오래 타며 연기가 나지 않아 유명했지만 지금은 그런거 없다. 수원리에서 실뱀장어, 미꾸라지가 양식되고 있다.
 
노동리 고인돌, 동사리 선돌, 석등, 풍림리 죽림사, 장연서원, 서산리 봉산서원, 봉암사, 우산리 모선재(慕先齋), 교촌리 육림사지(六林寺址), 교원리 남평향교등이 있다.  


==== 금천면 ====
==== 금천면 ====


1914년 남평군 금마산면과 어천면이 합쳐져서 금천면이 되었다. 나주배의 본산이며 나주배 말고도 수많은 과일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 매성리, 신도리, 송림리 일대를 제외한 빛가람동 대부분이 금천면 관할이었다.
'''金川面'''
 
면적 22.66㎢ 면소재지는 오강리이다.
 
오강(烏江), 고동(古洞), 광암(廣巖), 신천(新川), 죽촌(竹村), 월산(月山), 동악(洞岳), 석전(石田), 촌곡(村谷), 신가(新加), 원곡(院谷)의 11개리를 관할한다.
 
조선시대에는 본면 신가리, 원곡리, 촌곡리가 '''금마산면(金馬山面)''', 고동리, 광암리, 동악리, 석전리, 신천리, 오강리, 월산리, 죽촌리는 '''어천면(魚川面)'''에 속했다.
 
1914년 금마산면 + 어천면 = 금천면이 되었다. 2014년 2월 24일, 본면 석전리, 동악리, 광암리, 월산리 일부가 산포면 매성리, 신도리, 송림리등과 함께 '''빛가람동'''으로 통폐합되었다.
 
면동쪽, 남쪽에 구릉지가 많고 북쪽 원곡리 부근에서 지석강과 영산강 본류가 합류, 서쪽경계를 이루며 남류한다. 금천평야가 넓게 펼쳐져있어 농업이 발달하였다. 쌀, 보리, 무, 배추, 딸기가 메인으로 생산되며 나주의 명물인 나주배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상위호환의 개량종이 늘어나기 전까지는 원곡리 원촌마을의 원촌무가 김장에 알맞고 맛이 좋은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지금은 상기한 농업, 식품공업, 인초를 원료로 한 돗자리 공업이 촌곡리에서 이뤄지고 있다.
 
광암리, 죽촌리의 10기의 고인돌, 신천리 김해 김씨 삼왕묘(三王廟), 지선당(至善堂), 광암리 은행정사(銀杏亭祠), 죽촌리 충효사(忠孝祠)등이 있다.  


==== 산포면 ====
==== 산포면 ====
'''山浦面'''
면적 20.45㎢. 면소재지는 매성리.
매성(梅城), 신도(新道), 송림(松林), 화지(花池), 산제(山霽), 등수(等樹), 등정(嶝亭), 내기(內基), 덕례(德禮)의 9개리를 관할한다.
조선시대에 본면 등수리, 산제리, 송림리, 신도리 화지리는 '''등포면(等浦面)'''에 속했고 내기리, 덕례리, 등정리, 매성리는 '''두산면(頭山面)'''에 속했다.
1914년 등포면 + 두산면 = 산포면이 되었다. 2014년 2월 24일 매성리, 신도리, 송림리가 빛가람동으로 통폐합되었지만 면소재지는 아직도 매성리에 있다고 한다.;;
동남쪽 해발고도 286m짜리 식산을 빼면 전부 구릉지와 평야다. 북쪽에 지석강이 흐르고 있으며 산포천이 지석강으로 들어간다. 산포평야가 펼쳐져있다.
선제리 선돌, 풍산사(楓山祠), 부조사, 신도리 팔충사(八忠祠), 모충제(慕忠齋), 내기리 영모제(永慕齋), 화지리 삼강문(三綱門)등이 있다.


==== 봉황면 ====
==== 봉황면 ====
'''鳳凰面'''
면적 59.96㎢. 면소재지는 죽석리.
죽석(竹石), 철천(鐵川), 각동(閣洞), 송현(松峴), 장성(長盛), 유곡(柳谷), 옥산(玉山), 용전(龍田), 와우(臥牛), 황룡(黃龍), 신동(新洞), 욱곡(郁谷), 오림(烏林), 운곡(雲谷), 덕림(德林), 용곡(龍谷), 만봉(萬峰), 덕곡(德谷)의 18개리를 관할한다.
조선시대 본면 각동리, 유곡리, 송현리는 '''덕곡면(德谷面)''', 덕곡리(?), 덕림리, 만봉리, 신동리, 오림리, 욱곡리, 황룡리는 '''욱곡면(郁谷面)''', 용곡리, 용전리, 옥산리, 와우리, 운곡리, 장성리, 죽석리, 칠천리는 '''죽곡면(竹谷面)'''이었다.
1914년 덕곡면 + 욱곡면 + 죽곡면 = 봉황면이 되었다.
닭다리모양처렴 생겼는데, 뼈처럼 생긴 남부는 용제산, 덕룡산등으로 이뤄진 산지고 다리살같은 중북부는 저지대 봉황산(54m)등 저산성산지로 북서부는 구릉지이다. 만봉천(萬峰川)과 용전천(龍田川)이 각각 북서류 하면서 유역에 죽석평야, 봉황평야를 형성하여 농업이 발달했다. 
칠천리 용강사(龍剛祠), 칠불석상, 석불입상, 죽석리 고분, 불상,
현충사(顯忠祠), 만봉리 석조여래입상, 와우리 집성사(集成祠), 운곡리 운곡정(雲谷亭), 칠전리 만호정등이 있다.
==== 다도면 ====
==== 다도면 ====
'''茶道面'''
면적 73.14㎢ 면소재지는 신동리.
신동(新洞), 판촌(板村), 송학(松鶴), 풍산(楓山), 덕동(德洞), 궁원(弓院), 방산(芳山), 마산(馬山), 암정(巖亭), 덕림(德林), 도동(都洞)의 11개리를 관할한다.
조선시대 본면 궁원리, 덕동리, 송학리, 신동리, 암정리, 판촌리, 풍산리는 '''다소면(茶所面)''' 방산리, 마산리, 덕림리, 도동리는 '''도천면(道川面)'''에 속했다.
1914년 다소면 + 도천면 = 다도면이 되었다.
나주나 남평쪽이나 군대부분이 평지지만 이지역은 풍악산, 국사봉(國師峰, 440m), 각시봉(261m)등이 솟아 있어 구릉성산지로 이뤄져있다. 1976년 대초댐이 건설되면서 그나마 있던 평지도 수몰되었다.
때문에 참깨, 고추, 취나물, 대봉감, 다도녹차등으로 먹고산다. 암정리에 비자나무 군락이 있어 비자는 많이 나오고 있다는듯.
암정리 운흥사(雲興寺)와 부도군(浮屠群), 석장승, 석불, 마산리 불회사(佛會寺) , 백제고분, 풍산리 계은정(溪隱亭), 영호정(永護亭), 모남정(慕南亭), 귀래정(歸來亭), [[홍기웅]]과 [[홍기헌]]의 가옥이 있다.


==음식==
==음식==

2019년 4월 28일 (일) 19:51 판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좆퇴물입니다!!

오래 전 퇴물이 됐거나 진행 중인 대상에 대해 다룹니다.
이딴 새끼들은 고민하지 말고 한시라도 빨리 갖다 버립시다!!
다만 대상이 각성하여 예토전생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문서는 예토전생했습니다!
이 문서나 여기서 설명하는 대상은 오랫동안 사망했다가 최근 다시 살아났습니다!
???: 지옥에 있는 노무현 나와라!

ㄴ 나주 혁신도시 덕분에 인구가 서서히 늘어나는 중이라 카더라.

엣헴! 이 문서에 선비가 왔다 갔습니다.
이 문서는 선비님의 등장으로 인해 노잼이 되어가고 있는 문서입니다. 진지한 문서를 원하시면 위키백과로 가주십시오.

ㄴ 전라도 고을 중에서 양반이 가장 많이 나왔다. 유명한 사람으로는 신숙주와 문신 출신의 임진왜란 의병장 김천일이 있다.

주의! 이 문서는으잉? 꼰대에 대해으잉? 다룹니다.
이 문서는으잉? 카스트급 위계질서 조장하고으잉? 윗사람에겐 고개도 못 들면서으잉? 약자나 아랫사람한테는 훈장질하고으잉? 불합리에 항의하면으잉? 싸가지 없다 드립치는으잉? 개씨발새끼들에 대해으잉? 다룹니다.
"내가 니 친구야?으잉?", "선배랑 후배가 같냐?으잉?", "선생님이 학생이랑 같아?으잉?", "선임이랑 후임이 같냐?으잉?", "내가 선배님이니까.으잉?"
좆까 애미뒤진 꼰대새끼들아

ㄴ 어쩌면 부정적 시각이지만, 이곳은 동학농민운동 때 동학군이 점령하지 못한 지역이다. 윾교 탈레반들의 세가 엄청나서 오히려 동학군이 쫓겨나다시피 했다나.

음메에에- 이곳은 깡촌, 즉 존나 시골입니다.
이곳은 인프라도 없고, 살기도 안좋은 시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자연인이 되기에는 매우 좋은 곳입니다!
전라도의 광역자치단체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
나주시

羅州市

Naju City

광역시도 전라남도
하위 행정구역 1읍 12면 7동 34법정동 448리 121통 1,289반
인구 총106,182명 (2017년 2월 기준)
남53,388명 여52,794명, 50,123세대
행정면적 608.5㎢
시장&국회의원 강인구 & 손금주
시청 소재지 섬네일을 만드는 중 오류 발생: 대한민국 전라남도 나주시 송월동 1100
사이트 http://www.naju.go.kr/

개요

나아아아아아아주 평야!

원삼국시대부터 꽤나 큰 도시였고 마한백제한테 본진털리고 여기로 내려왔다. 덕분에 이곳에는 마한식 옹관묘가 바글바글하다.

하지만 신라가 전남지역을 꿀꺽한뒤 주의 치소를 무진군으로 옮겨서 좆망했다.

왕건슨상님덕분에 살아나서 광주가 도청이 되는 구한말까지 전라도의 '라'자를 담당할 정도로 호남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중 하나였다.

덕분에 양반이 많았고 이지역 관료인 나주목은 평안감사, 과천현감과 함께 꿀보직으로 꼽혔다.

근데 여기 양반놈들이 동학농민운동때 어디 아랫놈들이 설친다며 농민국 진압을 위해 자발적으로 의병을 만들기도 했다.

광주로 몰려 인구가 7만까지 떨어지면서 사실상 시도 아닌 군취급을 받았으나 혁신도시 개발로 인해 서민에게 뻥튀기 삥뜯는 한전과 같은 공기업들이 오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인구는 10만정도로 간신히 시라고 할 정도 --사람들 거의 시내, 영산포 빼곤 잘 안 보인다.--

그나마도 한 7만 8천까지 떨어졌다 광주전남혁신도시 개발로 10만 다시 되찾은 것.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깡촌이 나온다.

사실 시내라는 개념이 없다고 보면 된다

인간문화재 정관채 쪽염색장의 고향이자 거주지이다(영산고등학교에 미술선생님으로 계시기도 하신다)

참고로 나씨가 두개 있는데, 둘다 본관이 여기다.

의병때문에 원숭이들이 도청을 광주로 옮긴 이후 나주가 저꼴이 났다.

이런 좆만한 도시에 광주를 연결해 주시는 버스가 계신다. 바로 애미뒤진 160번이다.

정치

주의. 이 문서는 헬조선 엑윽보수들이 좋아하는 것을 다루고 있읍니다. 자유민주주의 지켜내겍윽보수.

6월 항쟁 이전

주의. 이 문서는 영포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다룹니다. 우리가 니들보다 섹스 100배는 더 했어!

ㄴ이후

5대 총선까지는 다도면, 왕곡면, 반남면, 공산면, 동강면, 다시면, 봉황면, 세지면, 영산포읍의 갑 선거구와 나주읍, 남평면, 문평면, 삼도면, 본량면, 평동면, 노안면, 금천면, 산포면의 을 선거구로 나뉘었다. 하지만 이후 단일선거구, 혹은 도농분리시절 금성시 + 나주군 단일선거구에서 국회의원을 선출했으나 16대 총선부터는 화순군과 함께 나주 - 화순 선거구로 한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있다.

80년대 중반까지 엑윽보수 정당의 지지율이 높아서 8대 총선 때 당선되었던 민주공화당 이호범이 선거 무효로 쫓겨났다가 큰 문제없이 재선하기도 했고 심지어 5.18 이후인 80년대에도 11대 총선에서는 과거 신민당 달고 나왔던 나석호가 민주정의당 딱지를 달고도 무난히 당선되었다. 하지만 6월 항쟁 이후로 전남이 다 그렇듯이 슨상님께 몰표 나온다.

행정구역

舊 나주목 지역

송월동

영강동

금남동

성북동

영산동

이창동

문평면

文平面

면적 46.99㎢. 면소재지는 안곡리.

안곡(安谷), 송산(松山), 북동(北洞), 동원(東院), 대도(大道), 계로(桂老), 학동(鶴洞), 학교(學橋), 국동(國洞), 옥당(玉堂), 산호(山湖), 오룡(五龍)의 12개리를 관할한다.

과거 거평부곡(居平部曲)이 있던 지역이다.

1914년 아계면(芽界面) + 용문면(用文面) + 거평면(居平面) = 문평면이 되었다. 1983년 청정리, 운봉리, 신광리가 다시면으로 이관되었다.

면 서남부 삼각형지역은 산호평야지만 나머지는 대체로 산지가 많아 동부의 금성산, 옥산, 북쪽 국사봉, 남쪽 신걸산등의 산지가 발달해있다. 고막천(古幕川)과 문평천일대에 경작지가 발달되어있다.

학교리 방동마을은 누에를 쳐 농가의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축협 나주배합사료공장이 가동중이다.

오룡리에 나대용의 생가, 묘, 봉강사(鳳岡祠)가 있고 북동리, 학동리에 선돌, 동원리 송재사(松齋祠)를 비롯해 20여개의 사, 제가있다. 쪽색염색을 하는 윤병운슨상님이 본면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있다.

노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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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安面

면적 42.54㎢. 면 소재지는 금동리. 동쪽, 북쪽으로 광주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문평면, 남쪽으로는 나주시내와 다시면과 접한다.

금동(錦洞), 장동(長洞), 학산(鶴山), 도산(道山), 유곡(柳谷), 계림(桂林), 안산(安山), 용산(龍山), 구정(九亭), 영평(永平), 금안(金安), 오정(五亭), 양천(良川)의 13개리를 관할한다.

1914년 이로면(伊老面, 現 계림리, 금동리, 양천리, 오정리) + 금안면(金安面, 現 구정리, 금안리, 안산리, 영평리, 용산리) + 복암면(伏巖面, 現 도산리, 유곡리, 장동리, 학산리) = 노안면이 되었다.

양천리, 오정리, 금안리등 서쪽 경계를 따라 망산(望山, 270m), 옥산(玉山, 334m), 금성산등의 구릉성산지가 많이 있다. 장성천(長城川)이 중앙을 통과해 영산강에 합류하는 하천변에 나주평야가 발달하였다. 나아아아주평야아아

이 나아아아주평야아아는 토질이 좋고 수리시설이 잘되어있기 때문에 쌀, 보리, 무, 배추, 구릉에서 배, 복숭아등의 과일을 생산하며 특산품으로는 돌미나리와 방울토마토가 있다. 학산리에 식품제조공장과 오정리에 벽돌공장이 있다.

금안리에 쌍계정, 설재사(雪齋祠), 월정서원, 경렬사, 귀래정(歸來亭), 효사재(孝思齋)가 있고 영평리에는 만향정(晩香亭), 호남사(湖南祠), 경현서원이 있으며 계림리에는 영묘재(永墓齋)등이 있다.

신숙주가 본면 금안리 오룡동 출신이다.

다시면

多侍面

면적 56.70㎢. 면소재지는 월태리.

월태(月台), 영동(永洞), 가운(佳雲), 회진(會津), 복암(伏巖), 가흥(佳興), 신석(新石), 죽산(竹山), 문동(文洞), 동당(東堂), 송촌(松村), 동곡(東谷), 운봉(雲蜂), 신광(新光), 청정(淸井)의 15개리를 관할한다.

지금의 회진리지역은 백제이전까지 두힐현(豆肹縣)이라 불렸는데, 요당시 두힐현의 현성으로 사용된 토성은 대한민국 전역에 있는 토성중에서도 탑10안에 들만큼 거대한 토성이기 때문에 삼국시대 성곽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아 그리고 복암리에 삼국시대 고분군이 있다.

이 두힐현성은 신라가 회진현(會津縣)을 만들면서 보수되었고 이때부터 나주의 속현이 되었다. 하지만 이 회진이란 이름은 오랫동안 잊혀져 신풍리라 불렸다가 1996년 6월 24일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거다.

월태리지역은 수다소(水多所)였다가 수다면이 되었다.

1914년 죽포면(竹浦面) + 수다면(水多面) + 시랑면(侍郞面) = 다시면이 되었다. 1983년 문평면에서 청정리, 운봉리, 신광리, 옥당리 일부가 편입되었다.

북부 백용산, 북동부에 신걸산이 솟아 구릉성산지를 이루고, 남동쪽은 거마산에 이르러 고도가 낮아지며 서부에도 청림산(187m)등의 산지가 분포하고 있다. 남쪽에는 영산강이 흐르고 문평천에는 다시평야가 형성되어있다. 농토가 비옥하고 수리시설이 잘되 있어 농업이 발달하였다.

보광골이라 불리던 보덕마을에서나는 보광골 열무가 김치로 담으면 잘 셔지지 않고 맛이 좋았는데 지금은 퇴물되었다. 가흥리에선 '쪽'으로 만든 물감이 혼수용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무형문화재로 겨우 이어지고 있다.

가흥리 신석기유적, 무숙사(武肅祠), 최희량 장군신도비, 동당리 석곶정(石串亭), 모인재(慕忍齋), 문동리 송촌사(松村祠), 동곡리 고분군, 임란첩보서목, 송촌리 영사재(永思齋), 회진리 매곡재(梅谷齋), 영모정, 죽산리 장춘정(藏春亭), 영동리 무열사(武烈祠), 보산사(寶山祠)등이 있다.

샛골나이 노진남슨상님과 쪽색염장 정관채 슨상님이 무형문화재로 등록된상태.

동강면

洞江面

면적 46.89㎢. 면소재지는 인동리.

인동(仁洞), 월량(月良), 진천(辰泉), 대전(大田), 장동(長洞), 옥정(玉亭), 곡천(曲川), 대지(大池), 월송(月松), 양지(良池), 운산(雲山)의 11개리를 관할한다.

영산강이 매우 큰 곡류를 형성하는 지역이라 곡강면(曲江面)으로 불렸고 일부지역은 두동면(豆洞面)이었다. 1914년 곡강면 + 두동면 = 동강면이 되었다.

백연산, 성산, 옥룡산이 삼대산으로 있고 면중앙에 남북으로 구릉성 산지가 분포하고 있다. 삼면이 영산강에 둘러쌍니 반도형태이며 북서부의 곡강평야, 남해안에 접한 진천평야등에 광활한 옥토가 펼쳐져있다.

한때 몽탄에서 숭어, 장어, 운저리등이 잡혔지만 지금은 그런거 없다. 도청이 목포근처로 옮겨지면서 교통이 나름 편해졌지만 도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북쪽은 교통이 아직도 불편하다. 옛날 나루로 왔다갔다할때는 몰라도 지금은 그런거 없다.

공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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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山面

면적 32.32㎢. 면소재지는 금곡리.

금곡(今谷), 남창(南昌), 백사(白沙), 신곡(新谷), 중포(中浦), 가송(佳松), 동촌(東村), 화성(花城), 상방(上方), 복룡(福龍)의 10개리를 관할한다.

1914년 공수면(公水面) + 오산면(吾山面) = 공산면이 되었다. 이중 공수면은 지금의 금곡리, 복용리, 상방리, 화성리, 남창리, 동촌리이고 오산면은 그 나머지지역이다.

동쪽가송리와 서쪽 경계의 저산성 산지를 제외하고는 밭으로 이요되는 구릉지이다. 삼포강(三浦江)하류 화성리 일대는 넓은 충적평야인 공산평야가 발달되어있다.

논, 방죽에서 나오는 민물새우가 특산품이었지만 지금은 씨가 말랐고 갈게는 아직도 생산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 채굴되었던 덕음광산이 신곡리에 있다.

가송리, 남창리, 백사리, 상방리, 중포리에 48기의 고인돌이 산재해있으며 화성리와 중포리에 6기의 고분이 있다. 또한 가송리에는 영효재(永孝齋)를 포함한 10개의 재가 있으며 남창리에는 원사정(遠思亭)등 3개의 정자가 있다.

환뽕드라마가 촬영된 세트장이 있다.

반남면

潘南面

면적 20.35㎢. 면소재지는 흥덕리.

흥덕(興德), 덕산(德山), 석천(石川), 성계(聖溪), 신촌(新村), 대안(大安), 청송(靑松)의 7개리를 관할한다.

백제이전까지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이라 불렸고 신라때는 반남군(潘南郡)으로서 영암군에 있던 야로현(野老縣), 곤미현(昆湄縣)을 속현으로 두었다. 하지만 고려초에 나주의 속현으로 강등크리먹었다. 한명회가 면리제를 실시함에 따라 반남ㅁ년이 되었다.

170대키의 성인남성 4~5명은 들어갈법한 거대한 항아리에 시신과 부장품을 넣어만든 마한옹관묘가 본면 대안리, 덕산리, 신촌리, 흥덕리에 산재해있다. 이 옹관묘들은 나주 반남 고분군(사적 513호)로 묶여서 관리되고 있는 상태.

1914년 25개리가 7개리로 개편되었다. 1996년 6월 24일 하촌리가 성계리로 개명되었다.

중앙에 자미산(紫微山)을 비롯한 산들이 동서를 나누듯 퍼져있으나 전체적으로 구릉지와 평지가 발달되어있다. 삼포강이 동남쪽으로 북류, 대안리를 질러 서류하며, 유역에 비옥한 반남평야가 형성되어있다.

상기한 옹관묘외에도 신촌리 반계정(潘溪亭), 반남서원(潘南書院), 흥덕리 자미정(紫微亭), 상로재(霜露齋), 석실묘, 청송리 영사재(永思齋), 대안리 자미산성, 석천리 석천사(石泉寺)등이 있다.

장동 김씨, 풍양 조씨 못지않게 많은 왕후, 왕세자빈을 배출한 반남 박씨의 관향인 만큼 그들과 관련된 문화재도 여럿있다.

왕곡면

王谷面

면적 30.12㎢. 면소재지는 덕산리.

덕산(德山), 본량(本良), 옥곡(玉谷), 송죽(松竹), 월천(月川), 화정(化丁), 행전(杏田), 신원(新院), 양산(良山), 장산(長山), 신가(新佳), 신포(新浦)의 12개리를 관할한다.

1914년 마산면(馬山面) + 욱곡면(郁谷面) + 전왕면(田旺面) = 왕곡면이 되었다.

서남쪽 공산면과의 경계를 제외하면 전지역이 평지다. 논과 밭의 비율이 2:1이며, 쌀, 보리, 원예작물, 과일, 인초, 유채, 생강의 특용작물이 재배된다. 이곳의 인초는 나주전체 인초생산량의 3분지 1이상을 차지하며 장산리 공장에서 인초가 돗자리로 가공된다.

과 은이 채굴되는데, 신포리에 세봉광업소가 있다.

신포리 봉련사(鳳連寺), 추원재(追遠齋), 두봉사(斗峰祠), 경앙당(景仰堂), 지석묘, 송죽리 금사정(錦社亭), 사모재(思慕齋), 김효병가옥, 화정리 영모재, 옥곡리 모선당(慕先堂)이 있다. 장산리에는 공산면 토지사건으로 일어한 항일 농민운동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세지면

細枝面

면적 30.02㎢. 면소재지는 오봉리.

오봉(五峰), 대산(大山), 내정(內亭), 동곡(東谷), 죽동(竹洞), 송제(松堤), 교산(橋山), 벽산(碧山), 성산(城山)의 9개리를 관할한다.

1914년 지죽면(枝竹面) + 세화면(細花面) = 세지면이 되었다. 좆본새끼들이 지죽면 31개리와 세화면 25개리를 무슨수로 9개리로 압축시켰는지 거참 머단하다. 이건 군면리 대폐합때 북괴새끼들이 마을 통폐합시킨 수준인데;;

동남쪽 산조금있는거 말고는 전부 구릉지와 평지이다. 면중앙을 금천(錦川)이 통과하여 만봉천(萬峰川)이 오봉리에서 합류, 북류하면서 왕곡면과 경계를 이룬다. 금천, 만봉천유역에는 넓은 나주평야가 전개되어있다.

공산면과 함께 민물새우로 유명했으나 여기는 양식에 성공했기 때문에 민물새우가 여전히 많이 생산된다. 이놈들로 담근 토하젓이 특산물로 유명하다. 그리고 멜론으로도 유명하다.

성산리와 벽산리 선돌, 송제리 오층석탑, 교산리, 벽산리, 송제리 고분, 벽산리 영사재(永思齋), 벽류정(碧流亭), 대산리 오봉사(五峰祠), 여재각(如在閣)등이 있다.

舊 남평군 지역

빛가람동

이 문서는 특정 국가의 수도 역할을 하는 곳을 다룹니다.
변방지역을 떠나 이곳으로 왔겠지만 어차피 안 될 놈은 안 될 것입니다.

ㄴ공기업이 몰려있다.

2014년 2월 24일 혁신도시개발부지로 편입된 금천면 석전리, 동악리, 광암리, 월산리, 신천리, 산포면 매성리, 신도리, 송림리 각일부에서 신설되었다.

2400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나주인구의 23%가 여기산다

공기업 본사 16개가 이곳에 있다.

남평읍

南平邑

면적 54.26㎢. 읍소재지는 남평리.

남평(南平), 대교(大橋), 동사(東舍), 교촌(橋村), 교원(校院), 서산(書山), 오계(五溪), 상곡(上谷), 우산(雨山), 남석(藍石), 풍림(楓林), 노동(蘆洞), 광촌(光村), 수원(水院), 광리(光利), 평산(平山)의 16개리를 관할한다.

백제이전까지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이라 불렸고 신라 문무왕이 삼국통일이후 발라주를 폐지, 무진주를 설치함에 따라 무진주의 속현이 되었다. 무진주의 속현이 된 이후 10정중 하나인 미동부리정이 설치되었다.

757년 현웅현(玄雄縣)으로 개명되었다. 고려초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고 나주의 속현이 되었다. 1172년 감무가 파견되면서 주현으로 독립했지만 1390년 화순에 통폐합되었다. 1394년 다시 감무가 파견되었고 1413년 감무가 현감으로 바뀌면서 현감이 차지하는 주현이 되었다. 또한 도민부곡(道民部曲), 운곡소(雲谷所), 철야현(鐵冶縣)을 통폐합했다.

조선시대때 본읍의 교원리, 교촌리, 남평리, 대교리, 동사리, 서산리는 군내면(郡內面), 광이리, 광촌리, 남석리, 노동리, 수원리, 평산리, 풍림리는 동촌면(東村面), 상곡리, 오계리, 우산리는 저포면(猪浦面)에 속했다.

1914년 남평군 군내면 + 동촌면 + 저포면 = 남평면이 되었다. 1995년 3월 1일 남평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중봉산(中蜂山)과 정광산(淨光山)이 솟아 있고, 산지 사이로 지석강이 흐르면서 광활한 남평평야가 발달했지만 본읍은 변두리에 해당한다.

왕년에 남평숯이 단단하고 오래 타며 연기가 나지 않아 유명했지만 지금은 그런거 없다. 수원리에서 실뱀장어, 미꾸라지가 양식되고 있다.

노동리 고인돌, 동사리 선돌, 석등, 풍림리 죽림사, 장연서원, 서산리 봉산서원, 봉암사, 우산리 모선재(慕先齋), 교촌리 육림사지(六林寺址), 교원리 남평향교등이 있다.

금천면

金川面

면적 22.66㎢ 면소재지는 오강리이다.

오강(烏江), 고동(古洞), 광암(廣巖), 신천(新川), 죽촌(竹村), 월산(月山), 동악(洞岳), 석전(石田), 촌곡(村谷), 신가(新加), 원곡(院谷)의 11개리를 관할한다.

조선시대에는 본면 신가리, 원곡리, 촌곡리가 금마산면(金馬山面), 고동리, 광암리, 동악리, 석전리, 신천리, 오강리, 월산리, 죽촌리는 어천면(魚川面)에 속했다.

1914년 금마산면 + 어천면 = 금천면이 되었다. 2014년 2월 24일, 본면 석전리, 동악리, 광암리, 월산리 일부가 산포면 매성리, 신도리, 송림리등과 함께 빛가람동으로 통폐합되었다.

면동쪽, 남쪽에 구릉지가 많고 북쪽 원곡리 부근에서 지석강과 영산강 본류가 합류, 서쪽경계를 이루며 남류한다. 금천평야가 넓게 펼쳐져있어 농업이 발달하였다. 쌀, 보리, 무, 배추, 딸기가 메인으로 생산되며 나주의 명물인 나주배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상위호환의 개량종이 늘어나기 전까지는 원곡리 원촌마을의 원촌무가 김장에 알맞고 맛이 좋은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지금은 상기한 농업, 식품공업, 인초를 원료로 한 돗자리 공업이 촌곡리에서 이뤄지고 있다.

광암리, 죽촌리의 10기의 고인돌, 신천리 김해 김씨 삼왕묘(三王廟), 지선당(至善堂), 광암리 은행정사(銀杏亭祠), 죽촌리 충효사(忠孝祠)등이 있다.

산포면

山浦面

면적 20.45㎢. 면소재지는 매성리.

매성(梅城), 신도(新道), 송림(松林), 화지(花池), 산제(山霽), 등수(等樹), 등정(嶝亭), 내기(內基), 덕례(德禮)의 9개리를 관할한다.

조선시대에 본면 등수리, 산제리, 송림리, 신도리 화지리는 등포면(等浦面)에 속했고 내기리, 덕례리, 등정리, 매성리는 두산면(頭山面)에 속했다.

1914년 등포면 + 두산면 = 산포면이 되었다. 2014년 2월 24일 매성리, 신도리, 송림리가 빛가람동으로 통폐합되었지만 면소재지는 아직도 매성리에 있다고 한다.;;

동남쪽 해발고도 286m짜리 식산을 빼면 전부 구릉지와 평야다. 북쪽에 지석강이 흐르고 있으며 산포천이 지석강으로 들어간다. 산포평야가 펼쳐져있다.

선제리 선돌, 풍산사(楓山祠), 부조사, 신도리 팔충사(八忠祠), 모충제(慕忠齋), 내기리 영모제(永慕齋), 화지리 삼강문(三綱門)등이 있다.

봉황면

鳳凰面

면적 59.96㎢. 면소재지는 죽석리.

죽석(竹石), 철천(鐵川), 각동(閣洞), 송현(松峴), 장성(長盛), 유곡(柳谷), 옥산(玉山), 용전(龍田), 와우(臥牛), 황룡(黃龍), 신동(新洞), 욱곡(郁谷), 오림(烏林), 운곡(雲谷), 덕림(德林), 용곡(龍谷), 만봉(萬峰), 덕곡(德谷)의 18개리를 관할한다.

조선시대 본면 각동리, 유곡리, 송현리는 덕곡면(德谷面), 덕곡리(?), 덕림리, 만봉리, 신동리, 오림리, 욱곡리, 황룡리는 욱곡면(郁谷面), 용곡리, 용전리, 옥산리, 와우리, 운곡리, 장성리, 죽석리, 칠천리는 죽곡면(竹谷面)이었다.

1914년 덕곡면 + 욱곡면 + 죽곡면 = 봉황면이 되었다.

닭다리모양처렴 생겼는데, 뼈처럼 생긴 남부는 용제산, 덕룡산등으로 이뤄진 산지고 다리살같은 중북부는 저지대 봉황산(54m)등 저산성산지로 북서부는 구릉지이다. 만봉천(萬峰川)과 용전천(龍田川)이 각각 북서류 하면서 유역에 죽석평야, 봉황평야를 형성하여 농업이 발달했다.

칠천리 용강사(龍剛祠), 칠불석상, 석불입상, 죽석리 고분, 불상, 현충사(顯忠祠), 만봉리 석조여래입상, 와우리 집성사(集成祠), 운곡리 운곡정(雲谷亭), 칠전리 만호정등이 있다.

다도면

茶道面

면적 73.14㎢ 면소재지는 신동리.

신동(新洞), 판촌(板村), 송학(松鶴), 풍산(楓山), 덕동(德洞), 궁원(弓院), 방산(芳山), 마산(馬山), 암정(巖亭), 덕림(德林), 도동(都洞)의 11개리를 관할한다.

조선시대 본면 궁원리, 덕동리, 송학리, 신동리, 암정리, 판촌리, 풍산리는 다소면(茶所面) 방산리, 마산리, 덕림리, 도동리는 도천면(道川面)에 속했다.

1914년 다소면 + 도천면 = 다도면이 되었다.

나주나 남평쪽이나 군대부분이 평지지만 이지역은 풍악산, 국사봉(國師峰, 440m), 각시봉(261m)등이 솟아 있어 구릉성산지로 이뤄져있다. 1976년 대초댐이 건설되면서 그나마 있던 평지도 수몰되었다.

때문에 참깨, 고추, 취나물, 대봉감, 다도녹차등으로 먹고산다. 암정리에 비자나무 군락이 있어 비자는 많이 나오고 있다는듯.

암정리 운흥사(雲興寺)와 부도군(浮屠群), 석장승, 석불, 마산리 불회사(佛會寺) , 백제고분, 풍산리 계은정(溪隱亭), 영호정(永護亭), 모남정(慕南亭), 귀래정(歸來亭), 홍기웅홍기헌의 가옥이 있다.

음식

배,홍어,곰탕으로 유명하다.국밥 빼먹지 말아

아웃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