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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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선조 30년 정유년 9월 16일 그레고리력 1597년 10월 | |날짜= 선조 30년 정유년 9월 16일 (그레고리력 1597년 10월 26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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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토) 00:3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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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량 해전 | |||
| 날짜 | 선조 30년 정유년 9월 16일 (그레고리력 1597년 10월 26일) | ||
|---|---|---|---|
| 장소 | 조선 전라도 해남과 진도 사이 명량해협 (세칭 울돌목) | ||
| 결과 | 조선의 승리 | ||
| 교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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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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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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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 규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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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당시 전투 전개 | |||||
|---|---|---|---|---|---|
| 직산 전투 | → | 명량 해전 | → | 울산성 전투 | |
개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휘하의 조선수군과 좆본의 통통배 떼거지가 명량(울둘목)에서 맞붙은 전투를 말한다.
충무공은 이 해전에서 승리하여 조선의 제해권을 되찾고 세계 해전 역사에 전설로 남았다.
이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은 판옥선 단 13척으로 좆본수군 333척 규모의 함대를 일방적으로 털어버리는 기적을 보였다.[3]
상식선에서 납득이 불가능한 전과 때문에 울돌목 밑바닥에 철쇄를 박았다느니 아녀자들을 불러다가 인근 섬에서 강강술래를 시켜서 왜놈들에게 혼란을 줬다느니, 조선 수군에 온갖 어드밴티지를 주는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그냥 우리 킹갓마제스티엠퍼러 충무공께서 정면으로 왜군을 들이받아서 이긴 거니까 착한 디키러들은 말 같지도 않은 뇌내망상으로 갓순신님의 업적을 폄하하는 일뽕짓을 일삼지 않도록 하자.
상황
당시 조선수군은 전투지휘조무사가 상식적으로 질 수가 없었던 칠천량 해전에서
대부분의 함선과 수군병력을 용왕에게 꼬라박은 후 뒈짖해버리고 꼴랑 판옥선 12척만 남은 안습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도 선좆은 정신 못차리고 "수군 해체하고 육군에 편입하자!" 따위의 말을 싸지르며 하염없이 입으로 똥찌리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이게 왜 말이 안되는 주장이었냐 하면, 일단 조선은 도로 상황이 개씹창이었던지라 해상수송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했다.
거기다가 왜군의 홈그라운드 전쟁터는 바다가 아닌 육지였다.
존만한 섬나라에서 십수개의 가문들이 쪽본통일을 외치며 앞의 놈 배때지 칼로 긋고 뒤의 놈 배때지도 칼로 긋고
그을 배때지가 남지 않았으면 본인 배때지도 칼로 긋고 하던게 일상이었으니
하여간 왜놈들은 땅밟고서 사람 배긋기에 능숙해질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조선군의 배는 피지컬로 왜군의 배를 압도했다.
왜군의 주력함선이었던 세키부네(관선)은 대양항해와 빠른속력에 중점을 두고 만든 협저선이었다.
문제는 세키부네의 내구성과 덩치가 좁밥이었던데다가 배 하단이 뾰족해서
어설프게 대포 실어놓고 쐈다간 대포의 반동만으로 꼬꾸라지는, 수송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에 갓조선의 판옥선은 배수량 많아서 전투인원도 많이타고 상하좌우에 좆꼴리는대로 포달아놓고 쏠 수도 있는 왜구담당일진이었다.
좆본수군이 판옥선과 유의미한 전투를 벌이기 위해서는 백병전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는데
접근중에 포맞아서 박살나고, 어설프게 들이받았다가 박살나고, 가까스로 판옥선에 붙어도 판옥선이 세키부네보다 더 높아서
왜군은 시야확보도 못한 채로 판옥선에 기어올라가다가 위에서 떨어지는 총칼화살에 벌집핏자가 되던,
임진왜란 내내 조선수군과 좆본수군의 전투는 거의 일방적인 후드려패기었다.
- ㄴ 다만, 당시 왜군 무기 중에 원시적인 수류탄인 '배락'도 있었기 때문에 접근전은 조선수군 입장에서 승선을 허용 안해도 위험했을 수 있다. 아마 조란환 존나 갈긴 이유도 배보다 적 인마살상이 더 중요하다 여기신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도 선좆은 이러한 이점들을 파악조차 안한 채 기어이 전장을 육지로 옮겨서
풍신수길이 바라던 정명가도의 요구를 백성들의 피를 제물삼아 응해주려고 한 것이다.
으휴 정신병자섂;;
허나 여기서 이순신 장군은 선좆의 아가리를 닫아버리는 희대의 명언을 남긴다.
今臣戰船 尙有十二 신에게는 아직 군선 12척이 있습니다
戰船雖寡 微 臣不死 則賊不敢侮矣 신이 살아 있는 한 적들은 우릴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옵니다
해석 : 알아서 할테니까 제발 좀 닥쳐 씨발새끼들아
보는 이로 하여금 팬티가 앞뒤로 촉촉히 젖게 만들 좆간지 발언을 조정에 던진 이순신 장군도
사실은 원균이 말아처먹은 꼬라지를 보고는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하 이제 어떡하냐" 소리를 내뱉을 정도로 수군이 개작살이 난 상태였다.
배설의 빤쓰런 덕분에 확보한 판옥선 13척, 호남 일대를 탈탈 털어서 가까스로 장만한 군량미와 병력 조금.
그마저도 그 병사들 대부분은 이미 바다에서의 싸움에 승산이 없으리라 속단하여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한편 왜군들은 자기네들을 복날에 개패듯이 패던 조선수군의 자멸에 사기가 오를데로 오른데다가
이번에야말로 빈털터리 조선수군과 이순신의 목을 딸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여
군선 수백척 병력 수천명이 백화점 마감떨이 초밥셋트 받아가려는 아줌마들 마냥 우르르 몰려들어 남해안에 집결하던 상황이었다.
이순신이 여기서 패할 경우, 서해안이 털리는 것은 시간문제요, 왕은 서울 커맨드 센터를 띄워 의주로 옮겨야할 판이었다.
전투 경과
좆본수군이 수평선을 뒤덮으며 몰려오자 조선수군들은 그냥 전의를 상실했다.
그들의 기분은 마치 FM지휘관 등쌀에 밀려 마구 몰려오는 저글링부대 앞에 임즈모드를 박아야만 했던 공성전차 승무원의 그것과 같았으리라.
전투 초중반은 이순신의 장군선 1척을 제외한 나머지 12척 모두가 빤스런 각을 재고 있어서 사실상 판옥선 1척만으로 133척의 왜군 함대를 몇시간동안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나머지 함선들이 도무지 싸움에 가세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순신은 그들을 불러내어 호통을 친다.
"안위야, 싸우다 죽고 싶으냐! 아니면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달아난다고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너(김응함)는 중군이 되어서 멀리 피하기만 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죄를 어찌 면하겠느냐!
당장이라도 처형하고 싶으나 적의 기세가 또한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하겠다!"
그제서야 다른 판옥선들이 하나 둘씩 전투에 임하기 시작했고 왜군함선들은 빠른 속도로 나무판자단위로 분해되어간다.
그 과정에서 왜군장수 여럿의 목이 원래 꽂혀있던 몸을 떠나 판옥선에 효수되었다.
좆본애들이 "이게 아닌데...?" 하며 얼이 빠진 와중에 물살의 흐름마저 왜군 방향으로 바뀌면서
판옥선들은 물살을 타고 왜군함대 정면을 들이받으며 전열이고 나발이고 눈에 들어오는대로 좆본수군 뚝빼기 해체를 감행했다.
앞에서는 괴물같은 놈들이 차례차례 자기네 배들을 해체하고, 왜군수군 본인들도 물살때문에 컨트롤이 안되고
이리저리 떠밀려다니는 왜군배와 왜군배(였던것)들이 들이받으면서 피해만 속출하자
역으로 승산이 없음을 판단한 왜군함대가 일제히 퇴각함으로서 명량 해전은 조선수군의 압승으로 끝난다.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역전극은 운빨좆망배틀을 최대한 기피하는 그 철저한 이순신 장군조차도 "천행이었다"라고 말하게 할 정도였다.
요약하자면 좁아터진 골목에 몰린 열세명의 프로싸움꾼에게 수백명의 동네 양아치가 깔짝거리다 처맞고,
와중에 피아식별 못하고 지네끼리 각목 사시미 난자해 수십명이 뻗어버리자 쪽팔려서 빤쓰런한 꼴이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이렇게까지 허무하게 자멸했겠냐, 다른 원인이나 비책이 있었을것이다."하는 의심에 근거한 망상 끝에 울돌목 전체를 쇠사슬로 연결해
좆본 배들이 지나가는 길을 막았다는 철쇄설까지 나왔을 정도고 이 망상은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도 낙점되어 등장한다.
이에 대해 엄근진하게 따지기보단 그냥 드라마는 드라마다 여기고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거다. 드라마를 정사인 마냥 받아들이는 역알못 흑우 없제?
어쩌면 드라마보다 더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마다시, 다가오거나 혹은 멀어지거나)
전투 결과와 영향
명량에서 벌어진 단 한번의 전투만으로 왜군은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수군 함선은 적어도 31척이 완전 수장 되고 100척 가량이 재활용 안되는 쓰레기 수준으로 개작살났다.
인명피해는 구체적인 수치파악이 어렵지만 일단은 못해도 수천명이 바다 밑바닥과 찐한 프렌치 키스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한양을 빠르게 재탈환한 후 해상보급으로 전쟁을 수행하겠다던 왜군의 계획은 모조리 백지화되었다.
조선수군과의 접전은 최대한으로 피하게 되어서 명나라 정벌은 커녕 그냥 영남지방에 왜성이나 지어놓고 존버하는 신세가 되었다.
한편 조선수군은 배를 한척도 잃지 않고 많이 잡아봐야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뿐이었다.
(너네들이 익히 아는 '사망자 두명 부상자 두명'은 이순신의 대장선에서 그랬다는 이야기고
실제로 거제현령 안위의 배를 왜선이 덥쳤기 때문에 안위의 배에선 사상자가 어느정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단 전투에서 이기긴 이겼다만 지속적으로 전투를 수행하기엔 여전히 좁밥 수준여서 오늘날의 군산 부근까지 퇴각한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왜군은 대패를 겪고도 해상에서의 입지를 오히려 확장하였다. 그래서 얘네들이 계속해서 바다를 통해 들이댔느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조선수군이 여전히 건재한데다가 이 전투 이후로 희망을 되찾은 전국 각지의 잔존수군병력이 합류하면서
이제는 좆본수군이 한따까리 시도하기 조차 버거운 규모로 성장해버렸기 때문.
물량으로 씹 압도하던 상황에서도 판옥선에 흠집밖에 못내고 줘터졌었는데
더이상 수적우위조차 아닌 상황에서 전투를 시도할 사람이 과연 있기나 했을런지.
명량해전은 어설프게 기세등등하던 좆본군의 사기를 아주 죽여버린 승전으로
이순신이란 신화적 인물을 탄생시키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인간승리의 결정판이라 하겠다.
일본군의 자만
사실 자세히 까보자면 왜군의 납득 불가능한 패배는 왜군 스스로의 자만이 크게 한몫을 해냈다.
과거 문서에 좆본수군이 울돌목이라는 지형을 활용하지 못했다느니,
왜군함선이 속도 빠른 협저선이니 호다닥 병력을 이분해서 정면공격과 동시에 조선수군의 빵딩이를 쌈싸먹어야 했다느니,
해안항해에만 특화된 평저선인 판옥선을 원양으로 끌어들여서 집중공격 했어야 했다느니 하는 얘기가 있었는데 싹 지웠다.
일단 좆본수군은 울돌목의 물살을 타고 들어가서 조선수군과 전투를 시작했다. 이는 이미 왜군이 울돌목의 해류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얘기.
다만 상대가 예상대로 져주기는 커녕 혼자서 함선 수백척을 가로막고 무쌍난무를 벌이다가
종국에는 그런 괴물들 12마리가 가세하여서 유리한 타이밍에 승리를 쟁취하지 못한 탓이 크다.
게다가 좆본수군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닥 많지 않았다. 날짜는 위에 나와있다시피 찬바람이 부랄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양력 10월 25일.
게다가 육지에서는 좆본육군이 조선육군의 격렬한 저항에 부딫혀서 진격이 정체되고 식량과 무기만 소모하고 있었다.
좆본수군은 겨울이 오기 전에 좆본육군을 신속하게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해상병력을 나누니 빙 돌아가서 공격하니 하며 시간낭비할 여유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애초에 좆본수군은 굳이 존만한 조선수군을 격퇴하는데 그만큼의 공을 들일 이유가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비관적인 병력규모차이는 당사자인 조선수군마저 패배를 기정사실로 깔고 들어가는 수준이었다.
거기다가 133척의 좆본측 공격병력 뒤에는 명령을 기다리는 수백척의 배가 더 있었으니 말 다했지.
여기에 더해서 그동안에 자신들을 수년간 괴롭혀온 존재가 그 많던 군대를 싹다 잃고 완전히 빤쓰바람으로 자신들을 막아보겠다고 나선 꼴이어서
어떻게든 이순신 사살이라는 전공을 앞다투어 씹고뜯고맛보고즐기려고 이성적인 판단조차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짜잔! 절대라는 것은 없군요.
좆본배 100척 가량을 판옥선 단 1척이, 그것도 바로 앞을 가로막고 문자 그대로의 일당백을 실현하는 킹순신 당신은 대체...
결과적으로 좆본수군은 갓순신의 의도대로 비오는 날 먼지 날리도록 쳐맞았다.
오늘날의 좆본애들 반응
이순신의 후손인 너나우리들 마저도 이 기적같은 전투가 말도 안된다며 감히 의심하게 되는데, 대판 깨진 쪽본 후손애들 반응이야 어찌보면 당연할 것이다. 븅신들.
역사를 전공한 정상적인 일본인들은 되도록 중립적으로 임진왜란을 평가하고 이순신의 활약에 대해 커다란 터치를 안하는데 반해 좆본 넷우익들은 전황에 영향을 안줬다느니,
국지전에서는 졌지만 이순신은 후퇴했고 남해안을 점령하는 목적을 이뤘으니 전략으로는 승리니 하며 애써 명량해전을 축소하려고 한다.
일본 위키백과를 보면 좆본국뽕 정신승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어차피 이따위 개좆소리가 다 맞다고 치더라도
괴멸상태였던 적군의 10배는 넘는 물량을 퍼붓고도 처발리고, 다이묘 모가지 까지 따인 일을 애써 포장하는 모습이 참 안쓰럽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이순신은 자신의 목적이었던 시간 확보와, 적의 서해로의 진격을 차단하고, 폐지 직전이던 해군을 재건하였다.
이후 겨울이 지나고 좌우영을 수복, 좆본의 한성 공략이 실패하여 정유재란의 나머지 기간동안 왜성에 틀어박힐 수 밖에 없었고
조선은 명에게 전쟁의 주도권를 안내준 채로 좆본을 다시 털어먹기 시작하니 전략에서조차도 가장 큰 수혜를 본 건 결과적으로 이순신이다.
참 이걸 아득바득 이갈며 왜곡하고 폄하하는 쪽본 숭이숭이원숭이들이 불쌍한 이유가
이순신 휘하 조선수군의 공적을 아무리 까내려봤자 쪽본수군이 대판 깨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그 좃도 안되는 조선수군에게 박살난 좆본수군은 조선수군을 내리까면 깔수록 함께 추해지는 것인데, 거기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는 모양이다.
철갑으로 떡칠한 거북선에 찢겨나갔다느니 하는 꼬라지들 보면 참으로 딱한 수준.
일본측의 모 기록에는 이순신의 입에서 벼락이 튀어나와 왜군이 그걸 맞고 죽어나갔다고 묘사했다는 카더라가 있다.
지네들 보기에도 이 패배가 어이없기는 한 모양.
하지만 이건 근근웹발 주작글일 가능성이 높으니 이 문서를 보게 될 역잘알이 수정해주길 바란다.
일제시대 관 장사
갓순신께서 원래 사기캐지만 이 전투로 왜놈들 머릿속에 완전히 사기캐로 정립돼서, 일제시대 군국주의 사회의 여기저기서 많이 우상숭배의 대상이 됐다.
조선영웅열전이라고 그림으로 그려서 팔아먹기도 했으며, 일본해군 잠수함 내부에 이순신을 모시는 성소를 만들어놓기도 했다.
근데 이건 일본 육해군 대립 과정에서 얘네들이 해군 인물 빨 게 없다고 한일합방한 김에 남의나라 장군을 지들 거라고 끌어다붙인 격.
당장 장군님이 누구하고 싸웠는데... 왜놈들이 자기 핥핥한다고 좋아하시겟냐? 오히려 무덤 박차고 나올 일이지.
덤으로, 얘네들은 정신승리를 위해서 자길 털었던 놈들을 존내 띄워주는 풍조가 있다.
대표적인 게, 이에야스 털었던 다케다 가문에 대한 후빨 같은 것.
ㄴ 라스트 쇼군은 왜 빼놓고 얘기하냐
기타
선조는 찌질하게도 나라를 수차례 구한 이순신에게 한동안 원래 품계를 안돌려줬다.
이런 짓거리를 보다못한 명나라의 경리인 양호가 끈질기게 족치니까 그제서야 삐질삐질 돌려줬다.
사실 명량해전 이전에 다시 불러왔을때 돌려줘야 했는데 개새끼가.
이날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후, 다 이긴 전투를 졸장 때문에 시원하게 말아먹는 종특이 또다시 발현되었다.
2014년에 이 전투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명량이 개봉했다...만
스크린 독점에 애국 마케팅에 별의별 병신같은 신파와 좆고증이 점철된, 성웅 이순신 장군의 이름에 물똥칠을 한 졸작 되시겠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리이슈우운싀이이이이이이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