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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만 정리하자면 원나라 갔다가 목화로 옷 만들어 입는거 보고 쓸모있어 보여서 고려 오는 길에 가지고 와서 재배해서 보급 한게 문익점. | 팩트만 정리하자면 원나라 갔다가 목화로 옷 만들어 입는거 보고 쓸모있어 보여서 고려 오는 길에 가지고 와서 재배해서 보급 한게 문익점. | ||
근데 왜 그 전에 고려 놈들은 원나라에서 목화를 안가져왔냐면, 고려랑 원나라랑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놈들은 다 귀족이나 관리들인데, 걔들은 목화가 크게 필요 없었거든... | 근데 왜 그 전에 고려 놈들은 원나라에서 목화를 안가져왔냐면, 고려랑 원나라랑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놈들은 다 귀족이나 관리들인데, 걔들은 목화가 크게 필요 없었거든... | ||
2020년 12월 21일 (월) 11:4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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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과 함께 유명한 산업스파이
중국에서 모카 씨를 가져온 인물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건데, 좆본은 한국보다 먼저 목화 들여왔는데도 상업적 재배 실패하고 관상용으로 쓰다가 나중에 조선 중기 때 한국에서 재배된 목화 들여와서야 재배 성공했다.
근데 목화씨를 가져온건 문익점이 맞는데 붓통에 숨겨왔다는건 픽션이다. 실제로는 그냥 가져왔고 원나라가 목화씨 밀반출을 엄격히 통제한것도 아니다. 거기다 장인인 정천익이 재배하고 성공했다는것도 다 픽션이다.
- ㄴ 장인 정천익이 재배해서 성공했다는 건 사실이다. 고려사에서 해당 기록 가지고 왔다. / 문익점(文益漸)은 진주목(晋州牧 : 지금의 경상남도 진주시)의 강성현(江城縣 : 지금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람이다.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한 후 거듭 승진해 정언(正言)이 되었다. 사신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그대로 주저앉은 체 덕흥군(德興君) 편에 붙었다가 덕흥군이 패망한 후 귀국했다. 중국에서 목면(木緜) 종자를 얻어다가 그 장인인 정천익(鄭天益)에게 부탁하여 심게 하였다. 처음에는 키우는 방법을 잘 몰라 거의 말라죽고 한 줄기만 남았는데, 3년 만에 크게 번식했다. 씨 뽑는 물레와 실 뽑는 기계는 모두 정천익이 만들었다. (文益漸, 晋州江城縣人. 恭愍朝登第, 累遷正言. 奉使如元, 因留附德興君, 及德興敗乃還. 得木緜種, 歸屬其舅鄭天益種之. 初不曉培養之術, 幾槁止一莖在, 比三年, 遂大蕃衍. 其取子車·繅絲車, 皆天益創之.) [네이버 지식백과] 문익점 [文益漸] (국역 고려사: 열전, 2006. 11. 20.,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팩트만 정리하자면 원나라 갔다가 목화로 옷 만들어 입는거 보고 쓸모있어 보여서 고려 오는 길에 가지고 와서 재배해서 보급 한게 문익점.
근데 왜 그 전에 고려 놈들은 원나라에서 목화를 안가져왔냐면, 고려랑 원나라랑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놈들은 다 귀족이나 관리들인데, 걔들은 목화가 크게 필요 없었거든...
더우면 삼베 모시 입고 봄가을엔 비단옷 입고 겨울엔 양모나 가죽 모피입고 생활하니 목화로 만든 면이 필요 할리가 없지.
그렇다고 아예 면 자체가 소개가 안된건 아닌게,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면 400필 하사 받았다는 기록은 있다. 그냥 받아놓고 땡이었던거지.
- ㄴ 기록이 없다뿐이지 1999년 부여 능산리 절터 조사 때 출토된 직물이 면직물이라고 밝혀지면서 면 자체는 백제시대부터 썼다는게 밝혀졌다.[1] 상용화의 계기를 문익점이 마련해줬다고 봐야 할 듯.
당장 문익점 전에 100여년 이규보라는 무신정권의 딸랑이 같은 사람은 자기 하인들이 겨울에 춥다고 땅굴 파고 나뭇가지로 움집 짓고 지내니까
씨발 놈들아 겨울에 추운건 당연하지 하면서 씨발 제대로 된 옷도 없이 겨울에 밖에서 벌벌 떨던 하인들 임시 움집도 허물어 버리고 그 허물어 버린 움집을 자기 방 난방용 땔감으로 써버림
ㄴㅅㅂㅋㅋㅋㅋ 더 웃긴건 조선시대 까진 그거 가지고 자연주의적이니 뭐니 존나게 의미부여를 하면서 이규보를 빨아줬다는 거
그런 상황에서 목화를 보고 와 이거 존나 유용해 보인다. 있으면 다른 사람들 존나 편해지겠다. 라고 생각한게 문익점 한명 밖에 없었다는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