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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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일 (일) 20:00 판
| 이 문서는 몇 안되는 개념있는 금수저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서민들을 위해 돈을 쓰며, 돈을 벌고 그 돈을 서민들을 위해 , 정당한 방법으로 축적하는 개념 금수저에 대해 다룹니다. 죽창으로 찌르면 안 되는 대상입니다. 우리 흙수저들 편이기 때문입니다. "We are the 1%..We stand with the 99%" |
최무선과 함께 유명한 산업스파이
중국에서 모카 씨를 가져온 인물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건데, 좆본은 한국보다 먼저 목화 들여왔는데도 상업적 재배 실패하고 관상용으로 쓰다가 나중에 조선 중기 때 한국에서 재배된 목화 들여와서야 재배 성공했다.
근데 목화씨를 가져온건 문익점이 맞는데 붓통에 숨겨왔다는건 픽션이다. 실제로는 그냥 가져왔고 원나라가 목화씨 밀반출을 엄격히 통제한것도 아니다. 거기다 장인인 정천익이 재배하고 성공했다는것도 다 픽션이다.
팩트만 정리하자면 원나라 갔다가 목화로 옷 만들어 입는거 보고 쓸모있어 보여서 고려 오는 길에 가지고 와서 재배해서 보급 한게 문익점.
밀수니 장인어른이니 뭐 다 구라임. 썰에 썰을 더하면서 구라가 장착 됨.
근데 왜 그 전에 고려 놈들은 원나라에서 목화를 안가져왔냐면, 고려랑 원나라랑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놈들은 다 귀족이나 관리들인데, 걔들은 목화가 크게 필요 없었거든...
더우면 삼베 모시 입고 봄가을엔 비단옷 입고 겨울엔 양모나 가죽 모피입고 생활하니 목화로 만든 면이 필요 할리가 없지.
그렇다고 아얘 면 자체가 소개가 안된건 아닌게,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면 400필 하사 받았다는 기록은 있다. 그냥 받아놓고 땡이었던거지.
당장 문익점 전에 100여년 이규보라는 무신정권의 딸랑이 같은 사람은 자기 하인들이 겨울에 춥다고 땅굴 파고 나뭇가지로 움집 짓고 지내니까
씨발 놈들아 겨울에 추운건 당연하지 하면서 씨발 제대로 된 옷도 없이 겨울에 밖에서 벌벌 떨던 하인들 임시 움집도 허물어 버리고 그 허물어 버린 움집을 자기 방 난방용 땔감으로 써버림
ㄴㅅㅂㅋㅋㅋㅋ 더 웃긴건 조선시대 까진 그거 가지고 자연주의적이니 뭐니 존나게 의미부여를 하면서 이규보를 빨아줬다는 거
그런 상황에서 목화를 보고 와 이거 존나 유용해 보인다. 있으면 다른 사람들 존나 편해지겠다. 라고 생각한게 문익점 한명 밖에 없었다는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