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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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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있던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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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탑 1금당이 기본이던 백제사찰과는 달리 이 절은 3탑 3금당의 구조로 되어있다. 중앙에 목탑이 있고 나머지 두곳에 서탑과 동탑이란 석탑이 있는 식. 물론 목탑과 절은 홀라당 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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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 [[무왕]]시기에 지어졌다. 백제가 멸망한 뒤에도 [[고려]]때에도 이름있는 사찰이었기에 발굴된 기와를 보면 1330년에 만들어진 기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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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조선시대중반~임진왜란시기 서탑을 제외하면 싸그리다 불타버려서 없어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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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륵사지 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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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파괴}}ㄴ미륵사지 동탑한정{{예토전생}}ㄴ미륵사지 서탑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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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남아있는 한반도의 불탑들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놓여있기 때문에 이후 만들어진 석탑들과는 달리 목탑처럼 기기둥조각이 다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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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탑이랑 서탑이 있었는데, 이중 동탑은 1974년에 발견된 기단부를 제외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서탑의 경우 조선중기까지 잘만 남아있었다가 벼락맞고 키가 3분지2로 줄었고 그나마 남은 부분의 절반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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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조선후기때 1층쪽만 살짝 복구가 되었지만 조선시대엔 돈이 없었는지 거기서 복구가 중단됬다. 나중에 [[일제강점기]]때 [[일본 제국|일제]]가 기술력의 한계로 제대로된 복원은 못했고 공구리를 잔뜩 쳐놨다.<ref>한국뿐만 이새끼들은 지들 문화재도 복구하는데 공구리를 쫙쫙 쳐놨다. 그래서 나중에 후손들이 공구리떼내고 다시 복원한다고 똥줄많이탔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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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이후 1974년 발굴조사가 시작되어 동탑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1991년에 [[노태우|보통사람]]이 학자들의 반대씹고 멋대로 2년만에 복원시켰다. 이 미륵사지 동탑복원은 한국 문화재 복원사에 영원한 반면교사로 남게 되었다. [http://news.joins.com/article/425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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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서탑복원같은 경우에는 병신같은 공구리떼내는 것도 있고 우주망작으로 뽑히는 동탑의 복원을 반례로 삼아 20년동안 매우 세심한 복원작업에 들어갔고 결국 2018년 6월에 원래모습으로 복원이 완료되었다.[http://news.joins.com/article/2273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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